44. 어은동 공소 (순례지/성지)
간략설명:1900년 진안 지역 첫 본당으로 설립되었던 유서 깊은 공소
도로주소: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어은동길 23
대전 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통영 방면으로 내려가다 장수 나들목에서 내려와 진안 방향으로 26번 국도를 타고 20여분 달리면 오천 삼거리가 나온다. 오천 초등학교를 끼고 좌회전해서 산골을 4km 남짓 가면 산 막다른 골짜기에 마을이 나타난다.
전라북도 진안군과 장수군을 잇는 해발 1059m의 성수산(聖壽山) 북쪽 자락 끝에 있는 어은동(魚隱洞) 마을이다.
어은동 노인정에서 다리를 건너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비교적 넓은 마당 위로 왼쪽에 종탑을 둔 붉은 함석지붕 건물이 보인다. 1900년 본당으로 설정된 어은동 공소이다. 공소 앞마당 한쪽 끝에 있는 안내판의 내용을 읽어 보면 공소 건물이 건립된 해는 1909년이지만 그 이전인 1900년에 이미 본당으로 설립된 곳이라고 한다. 자동차로 달려왔지만 한눈에 산속 오지임을 알 수 있는데 100여 년 전이라면 정말로 깊은 산골이었을 것이다.
“전주교구사” 또는 “진안본당 105년사” 같은 자료를 보면 이곳 어은동은 이미 1888년에 공소가 설립된 유서 깊은 교우촌이었다. 1876년경 진안 일대에는 1866년의 병인박해를 피해 충청도 등지에서 전라도 산중으로 피난 내려온 신자들이 삼바실, 절골, 모시골, 절번덕이 등에 흩어져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다. 어은동 공소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1888년 어은동 공소가 설립된 후 어느 정도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자 신자들은 점차 어은동으로 이주하여 신앙생활을 지속하였다. 어은동을 비롯한 진안 지역 일대로 전라도의 다른 지역 교우들이 이주해 오면서 신자수가 현저히 증가하였고, 1888-1889년 이 지역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 40명에 이를 만큼 교세는 날로 발전하였다.
진안 지역은 신자들의 성실한 신앙생활로 인하여 1897-1898년 전주(현 전동) 본당 초대 주임이었던 보두네(Baudounet, 尹沙勿) 신부가 관할하던 지역 가운데 신자수와 영세자수가 최고였다. 이후에도 신자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보두네 신부가 담당했던 12년 동안 냉담교우가 없었으며, 1886년에서 1900년 사이에 무려 27개의 공소가 설립되었다.
물고기가 숨은 형상이라고 해서 어은동(魚隱洞)이라고 부르는 마을. 물고기는 로마 교회 박해 시대에 신자들이 서로를 알아보던 암호이다. 마을 이름 자체가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어와 살았던 우리네 신앙 선조들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래선지 이 마을사람 대부분이 교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