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번째 수심결 2장
嗟夫라 今之人이여 迷來久矣라
不識 自心이 是眞佛하고
不識 自性이 是眞法하야
欲求 法호대 而遠推諸聖하며
欲求 佛호대 而不觀其心하나니
若言心外에 有佛하고 性外에 有法이라하야
堅執此情하야 欲求佛道者인댄
縱經塵劫토록 燒身燃臂하며 敲骨出髓하며 刺血寫經하며 長坐不臥하며 一食卯齋하며 乃至轉讀一大藏敎하야
修種種苦行하야도
如烝沙作飯하야 只益自勞爾니
但識自心하면 恒沙法門과 無量妙義를 不求而得하리니
故로 世尊이 云普觀一切衆生하니
具有如來智慧德相이라하시고
叉云一切衆生種種幻化가 皆生如來圓覺妙心이라하시니
是知커라 離此心外에 無佛可成이로다
*낱자 공부
嗟 탄식할 차, 迷미혹할 미, 推밀 추, 추천할 추 縱세로 종, 놓을 종, 자유로울 종,
燒불사를 소, 燃 불사를 연, 臂팔 비, 髓골수 수, 刺찌를 자, 叉깍지낄 차, 又또 우 , 執잡을 집, 經날 경, 길 경, 敲두드릴 고, 卯또끼 묘, 齋재계할 재, 藏감출 장, 烝찔 증, 普널리 보, 堅:굳을 견, 敲:두드릴 고
* 해설
인과의 이치 따라 지은대로 나타나는 것이 진리이고 그것이 법이다.
법신에서는 선악의 개념이 없으며 단지 지은대로 나투어 질뿐이다.
부처님은 그 법을 아시는 분이시고 그 법을 활용 하신다.
모르고 가는 길은 두렵다. 그리고 힘들다.
그러나 길을 알면 자기가 조절할 수 있으며 또한 즐길 수 있다.
미리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기 때문에 걸릴 것도 없다.
만일 여행이라면 자유로운 여행일 것이다.
악한 마음과 선한 마음은 형제간이다.
텅빈 마음이 법신이며 그 마음에서 영지가 있어 분별을 한다.
그 분별이 때와 곳에 맞지 않으면 번뇌 망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心 - 佛 / 自心이 眞佛이요
性 - 法 / 自性이 眞法이라
원기 109년 9월 24일
제목 : 엄마의 전화
오랜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엄마가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다며 힘없이 몇 마디하고 끊는다. 어떻게 하라는 거지? 오라는 건가? 동생에게 확인해보니 모르고 있다. 일단 하던 일이 있어 마무리하고 있는데 올케가 자초지종을 설명해준다.
응급실로 갔다. 얼마 후 검사 결과 아무 이상 없으니 귀가하라고 한다. 지난 명절 휴가 동안 아들이 있어 잘 지냈는데 일요일, 근무처인 구미로 가게 되니 전날부터 혼자 있는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되어진다.
엄마를 내 생각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보자 공부했지만, 또 이런 경계를 당하니 그 마음은 사라지고 또 요란해지고 만다. 그래도 그 순간 얼른 알아차리니 어느 정도 편한 마음으로 엄마를 대할 수는 있다.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그런데 우리 집에 와서 저녁 먹으면서도 나 여기 있다. 또 가면 혼자인데…. 하며 울먹인다. 엄마는 내 마음 요란해지게 만드는 도깨비 방망인가보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다시 한번 나를 들여다본다. 이전에는 나에게 너무 의지하려는 엄마가 부담스러웠지만, 그 경계로 공부하고 나니 이제는 자식에게 의지하고픈 엄마의 마음이 인정이 되어지고 아기를 다루는 마음으로 대해진다.
그동안 엄마를 보면서 항상 “나”가 있어 힘들었는데 그 “나”를 놓는 공부를 통해 어느 정도 수용도 되어짐이다. 왜 혼자 있지 못하실까? 하는 생각도 놓아진다. 그것도 내 생각 내 판단이니…. 그럴 수도 있지 해진다. 엄마가 힘들다면 언제든지 우리 집에 오셔도 좋다 해진다. 그리고 아프다고 어린아이처럼 당신의 처지를 드러내려는 모습이 그냥 그대로 보아진다. 이제는 경계가 왔을 때 경계임을 비교적 바로 알아차릴 수 있으니 엄마로부터 입은 은혜를 생각하게 되고 그러니 보은하자 해진다. 한결 마음이 편안하다. 다만 아픈 몸을 다스릴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 나에겐 새로운 경계로 다가온다.
교무의 의견
힘없이 말하는 엄마의 화가 마음에 걸리셨네요.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으니 딸의 심정은 병원에 가야 할 것 같고 또 하던 일이 있으니 그 일도 마쳐야 할 것 같네요. 하던 일을 마치고 가려 해도 엄마의 일이 자꾸 생각이 되어지면 일이 손에 안 잡힐 수도 있지요. 그렇다고 하던 일을 마무리하지 않고 엄마에게 달려가면 마무리 못 한 일이 생각에서 지워지지 않겠지요.
응급실에 검사 결과 별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편으론 안심이 되면서도 응급실에 가야 한다던 엄마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네요.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면 편안하다가도 혼자 계시면 힘들어하시는 엄마와 어릴 때 사리판단을 정확하게 하시던 엄마가 서로 비교되기도 하고 혼자서도 계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불안해하고 자꾸 찾으시는 엄마가 부담스럽고 때로는 원망이 나오기도 하지요.
어떤 일이 왜 그러는지 알게 되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해하게 되고 불평보다는 어떻게 도움이 될까 그런 생각이 들지요. 지체장애인을 보면 표정이 어색합니다. 장애인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바라보는 것이 싫고 무섭기도 하지만 지체장애인에 대하여 알게 되면 표정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어떻게 도와줄까 하는 생각도 일어납니다. 아마 엄마의 일도 왜 옆에 사람이 있기를 원하시는지 알게 되면 그러니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고 어떻게 해드려야 좋을지 생각하게 되지요.
평상시 늘 은혜를 발견하는 공부를 하고 발견한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은혜로 가득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받은 은혜가 생각되고 엄마가 자력이 없을 때 갚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 것 같아요. 객관적으로 보면 엄마를 위하여 딸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이 될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일에는 불평불만보다는 편안하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원기 109년 10월 1일
제목 : 남편과 통화
딸이 시험 기간이라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택시를 타고 집에 온다고 말하여 다음날이 휴일이니 괜찮다고 데리러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딸은 공부하고 싶은 만큼 다 하고 들어가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말하여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그러라 대답하였다. 딸이 들어오기 전에 편히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딸이 온 것을 확인하고 ‘감사합니다’라 심고 모셨다.
남편과 통화하면서 “엄마가 돼 가지고 딸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잤어?”라고 한다. 어제 ‘이래도 되나? 괜찮나?’하고 올라왔던 마음이 딸과 대화에서는 서로 수긍이 되었지만, 어쩌면 남편이 할 걱정의 예고였는지도 모르겠다.
딸이 나를 안심시키고 자신의 필요를 말했던 것을 전달하였지만 남편은 그대로 서운하다는 표현을 한다. 남편은 걱정되니 그런 것이다. 그럴 수 있지.
교무의 의견
딸이 시험 기간이 되어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였네요. 집에 일찍 오면 좋고 시험도 잘 보아야 하고 두 가지 중에서 공부를 더 하는 쪽으로 결정을 하였네요. 그런데 아빠의 입장에서는 딸이 밤 늦게 오는 것이 더 걱정이 되었네요. 특히 요즘처럼 험악한 일이 있으면 더욱 걱정이 되지요. 남편의 마음을 읽으면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 고맙고 왜 일찍 잤느냐는 말이 서운하게 들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딸이 늦게 오면 걱정이 많이 되지요 하고 남편의 마음을 읽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원기 109년 10월 2일
제목 : 월초기도 소감
노 경만
언제나 초하루 때면 기도에 가봐야지 마음을 먹은 적은 많은데 익숙지 않다 보니 몇 번이나 아차 또 늦었구나! 생각된 적이 여러 번이었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서운 것이구나 느끼며 미리 챙기지 못한 나의 머리를 꽁하며 꿀밤을 먹였었는데 이번 10월엔 물론 교무님께서 문자를 주신 덕분이기도 하였지만, 공휴일이기 이전에 화요일마다 영어 수업에 참석하다 보니 몸이 먼저 준비를 하고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다행히 수업은 없지만, 월초기도엔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차를 움직이려니 아들이 취미생활인 야구를 하러 내 차를 먼저 타고 가버려 미안하지만 주타원께 나 좀 데려가 달라 부탁을 하니 기꺼이 와줘서 함께 교당을 가는데 왠지 기분이 들뜨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공휴일이라 그런지 기도 인원이 많이 오신듯하고 평소는 별로 출석경험이 없어서 인지는 몰라도 이상스럽게 나의 마음이 훈훈하고 자꾸만 깊은 맘속에서 실실 즐거움의 웃음이 스멀스멀 올라옴을 난생처음 느꼈다. 아~~~앞으로는 월초기도를 절대 빠지지 말고 열심히 다녀보리라 願도 세워보았다. 또 하나 설법 중 느낀 점은 주변 바깥이 공사 때문인지 소음이 다른 날보다 많은 날이었지만 내게는 오롯이 집중되면서 교무님께서 10분간 단전에 힘을 주고 들이쉬기 내쉬기를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고요함이 내겐 옛날 학창시절 읽었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가라앉은 조용함이 떠올라서 정말 머릿속이 하얗게 맑아지며 뭔가 모를 고요를 느꼈다 그 소설 내용처럼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음이 들릴 정도로! 물론 마지막 수업내용처럼 나라를 잃고 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다 끝났다 돌아들 가라’는 슬픈 무거움이 아닌 그냥 그 고요함이 오버랲되는 느낌? 기도 마친 후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현정씨한테 그 상태를 얘기하니 어! 단장님도 그러셨어요? 나도 오늘 처음으로 영어 공부하는 시간이라고 착각하고 첨 참석하였는데 똑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 그럼 이 기분은 뭐지? 하며 궁금해졌는데 그냥 깊이는 모르겠고 그때의 느낌, 기분만 간직하여 열심히 월초기도를 하여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교무의 의견
원불교에서는 자성 반 조와 목적 반조를 가르칩니다. 자성 반조는 자기의 성품을 보라는 말입니다. 성품은 생각이 나온 곳입니다. 생각을 멈추면 성품만 남습니다. 그 성품 자리에 들어가면 영이 맑아집니다. 이것을 우리는 선(禪)이라 합니다. 교당에서 선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습니다. 성품이 본체이니 성품을 보아야 하는데 성품에서 파생된 마음(생각)만 공부하고 있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불법을 주체 삼아 완전무결한 큰 화상을 건설하리라 하셨는데 불법은 자성을 중심으로 가르칩니다. 자성을 알고 마음공부를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