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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을이 왔다.
7월의 산행을 간신히 마치고 석달 동안 단 한번의 산행도 그 흔한 바람쐬기도 없었던,
참으로 가난한 존재에 불과하던 내게
눈부신 가을이 도착하였다. 포장을 벗기면 와르르 빛이 쏟아지는 가을.
천지에 빛깔은 가을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 빛은 아래에서부터 오는 계절의 섭리를 거슬러 위에서부터 내려오신다.
가을산은 그 섭리를 받들어 윗마을로 들라 하신다.
남도 사람들은 윗지방이 선계인 것처럼 꾸역꾸역 행장을 차리는 것으로 그 뜻을 받든다.
10월 11일~12일 이틀간에 취할 가을산은 서울의 도봉산과 강화도의 마니산.
새벽 닭처럼 부지런히 일어나 서울로 서울로 흘러들어 갔다.
이곳에서 5시쯤엔 출발해줘야 알현할 수 있는 거리. 그 어려운 서울산을 5년만에 만났다.
문득 5년 전의 첫 산행지였던 북한산이 기시감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동네 남산만 겨우 몇 번 들락거렸던 사람이 세계적으로 혼잡한 북한산에 첫 둥지를 틀었을 때,
촌놈들의 서울행차 소문을 들었는지 산은 초만원의 사람들을 보내어 맞아주었고,
우리는 화답하듯 아는 사람마저 모두 잃어버리고 낙오하게 되었다.
그 많은 인파에 놀란 가슴, 백운대 바윗덩이 쯤에서는 비까지 만났다.
숨을 곳은 어디에도 없어 작은 나무 아래에서 꾸역꾸역 김밥이란 걸 먹고,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도 지도도 없던 때에 하멜른의 피리따라 도착한 곳은 엉뚱한 하산 지점.
서울은 눈 뜨고도 코 베이는 곳이라,
초보 등산객들 혼쭐내기에 서울산의 다양한 등산로만큼 적절한 무대도 없지 싶었다.
자나 깨나 산길 조심할 일이라고 얼마나 되감기한 곳이었던가.
시간은 흘러 다시 새침한 서울산을 만난다. 이번엔 같은 북한산 자락의 도봉산이다.
1박 2일간의 일정이 빼곡히 행간을 채우고 있었다.
첫 날과 이튿 날의 일정이 여문 가을 낟알처럼 단단해 보였다.
5년 사이 격세지감이라, 어느덧 아는 사람도 제법 늘어 이번엔 허술하게 그냥 당하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초보 산객이 윤똑똑이였다면 가끔은 똑똑한 산객에게도 서울산은 시험에 들게 한다는 것.
시간이 흘러도 이 데자뷰가 반복된다면 그것은 어찌 해석해야 할까.
결코 서울산은 인정어린 마음씨가 아니라는 것과 똑똑이나 윤똑똑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얄팍한 안도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즐거움도 유난히 많았고 사연도 유난했던 이번 1박 2일 산행에선 다양한 웃음 보따리가 각자의 배낭속으로 들어갔을 거다.
그런만큼 사람들과 더 친해진 산행이었던 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5시간의 달리기 끝에 마침내 도봉산 아래에 도착하였다. 서울산엔 가을이 한창이었다.
- 예상 산행거리 : 약 9.5km , 예상 산행시간 : 5시간 -
도봉탐방지원센터 - 광륜사 - 도봉서원 - 금강암 - 도봉대피소 - 만월암 - 다락능선합류 - 포대능선으로 - 포대정상 - Y계곡 - 신선대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조망) - 주봉 - 칼바위 - 오봉능선으로 - 오봉 - 여성봉 - 오봉 탐방지원센터
도심 속의 산행 들머리는 번잡해서 그냥 놓치기로 하고 숲으로 들어야 온전히 기뻐할 수 있다.
잠시 오르다 보니 재미나게 생긴 바위가 있다. 산객들에겐 '인절미 바위'로 알려져 있나보다.
차진 인절미를 떡판에 담아놓고 칼로 썰어놓은 듯이 금이 간 바위였다.
박리작용이라는 일종의 풍화 현상으로, 낮에는 햇빛에 뜨거웠다가 밤이면 바람에 냉각되어 바위 표면이 떨어져나가는 현상이란다.
단풍 처음 본 사람처럼 오래오래 즐기고 놀기 위해, 바로 그것을 위해 이토록 멀리 산행을 왔다.
만월암이라고 했다. 커다란 바위 아래 인적은 끊겼는데, 사람보다는 길잃은 달빛이나 찾아들 것 같은 묵직한 바위틈에 저렇게 자그마한 암자가 바윗돌 목구멍 사이에 앉아 있었다.
햇살 좋은 날 볕쬐는 노파처럼 자그맣게 몸을 말아쥔, 떠돌이 가랑잎 같았다.
왁자하게 올라오는 산사람들을 묵언수행의 도량으로 바라보는 이 깊은 산사의 일상.
바위와 바위 사이로 하늘이라곤 세 평 남짓,
그 사이로 단풍 드는 담쟁이가 어찌나 드넓다는지...
만월암을 두고 뒷간처럼 돌아가면 왼편 산자락으로 바위들의 군무가 펼쳐진다. 다락능선이란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면 익어가고 있다는 듯 조금씩 붉은 볼우물이 만들어진다.
붉은 점들 한 장 한 장 펼치다보면 화들짝 만나게 되는 것이 가을.
한껏 고무된 시선으로 10월의 달력을 바라본다.
그러나 만월암에서 포대능선까지의 구간은 다정도 병인양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코스다.
놀며 쉬며 가라고 주위의 바위와 단풍이 나타났으니, 그들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지루했을까.
다행스럽고 고마운 풍경이다.
이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위대함을 무엇으로 다 갚을까.
친절한 누군가가 10계단마다 숫자를 표기해 두었다. 헉헉 349계단...
인내심을 발휘하며 마지막 고지에 이르니 숫자는 418을 가리킨다.
도심을 벗어난 숲에 조용히 들어앉은 새들의 둥지처럼 옹기종기 절집이 그림 같다.
도봉산 자락에서 꽤나 알려진 망월사란다.
달빛만 가득차면 다른 건 채울 게 없을 만월암을 방금 건너왔는데, 망월사는 달빛을 바라본다고 하네.
아무래도 이곳 산자락은 달빛 정겨움이 가득한가보다.
도봉산은 서울시의 북쪽인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와 양주시를 거느린 산이었다.
북한산 국립공원 자락으로 불암산, 수락산이 이웃해 있으며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산으로 일찍이 알려져 있었다.
이미 달력 속 그림 같은 풍광을 자랑하는 바위의 명산이란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속시원히 어느 도심인지는 알지 못하겠고 다만 남편이 군복무 시절을 상기해서 저곳이 의정부라는 것만 방향을 더듬게 했다.
쭉쭉 뻗은 도로와 아옹다옹 살아가는 도시를 여태 한번도 동경한 적 없었다. 그건 참 기특한 생각 같다.
잠시 수학여행 온 기분으로 서울 어느 하늘 아래를 바라보는 것으로 그만이다.
가을산으로 옷을 반쯤 갈아입은 산에서 먼 도시를 바라보는데, 내 사는 곳이 더 좋아지는 건 왜일까.
포대정상에서 바라본 도봉산의 모습이 특히 멋진 장관을 연출했다.
오르는 동안 단풍 든 빛깔에다 우뚝 솟은 바위의 자태까지.. 가히 달력 속 가을에 취하지 않을 도리가 없도록 한다.
도봉산의 주인공 세 봉우리.
맨 왼쪽이 선인봉(708m), 가운데 새끼손가락이 서있는 봉이 만장봉(718m)인데 둘은 꼭 붙어 있어서 구분이 쉽지 않았다.
이들은 바위이면서도 보는 방향에 따라 여러 각도를 선사하기 때문에 산을 탐구하며 오르는 사람들에겐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 같았다.
맨 오른쪽 우뚝 솟은 봉우리가 도봉산 최고봉인 자운봉(739.5m)이다.
가장 오른쪽 신선대에 사람들의 실루엣이 서있는 것으로 봐서 그곳 움푹 파인 곳이 Y계곡이 될 것이다.
드디어 Y협곡이 나타났다.
밧줄 보면 심란해지는 마음이 두근두근 해왔으나, 사람의 생각만큼 앞서가는 것이 없다는 그간의 숱한 경험으로 긴장을 이완시킨다.
어릴 때 그랬다. 왜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괜스레 마당을 빙빙 돌았던 것 같다.
할머니는 어지럽다고 눈을 질끈 감으며 손사래를 치셨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재밌어서 빙글빙글 돌고 또 돌았다.
어지럼 뱅뱅.. 고추잠자리였을까.
지금은 장난기도 사라지고 나는 주위 사람들이 용감할 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말리는 나이가 돼버렸다.
아, 제발 거기엔 가지 마라. 위험하다. 안돼~~~.
눈을 질끈 감는 것으로도 모자라 간이 콩알만해지는 것을 수시로 경험한다.
때가 되니 알 것 같다.
너무나 위험할 것 같은 난간 끄트머리에 용감하게 서더라도 그 정도로까지 놀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무턱대고 눈을 질끈 감으며 만류하지만, 내 서보니 알겠다.
고로 불안해보이는 아이들도 제 깜냥이 있기 마련? 그게 생각대로 고쳐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두 Y계곡에서 앞사람의 한 발 한 발에 초집중을 하며 순서를 기다릴 때였다.
그때 한 모험심 강한 여성 등산객이 모두가 무장한 채 순순히 기다리는 틈새를 비웃듯 대오를 이탈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난데없는 돌출이 그렇듯 스르륵 혼자 벽에서 튀어나왔는데, 주위엔 얼추가 남자 일색이었다.
그녀는 맨손이었고 어떠한 자일도 없었으나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갑자기 절벽을 기어 내려왔다.
이때 남편이 그 어지러운 고추잠자리를 향해 비명을 질렀다. 아가씨, 안돼요 안돼 ~~~~..(손짓까지 해가며)
아가씨는 힐끗 한번 쳐다보았을 뿐, 즐거운 마당돌림을 하듯 거뜬히 벽을 산보하는 게 아닌가.
괜히 눈을 질끈 감은 사람이 늙은네 같아졌지만 눈앞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영화 한 편 본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도 의문이다. 무엇이 급해서였을까? 그냥 단순히 돌출이 주는 자기만족이었을까?
Y계곡 속엔 이렇게 장난기 많은 놀이터도 있다.
누군가에겐 룰루랄라 즐거운 체험장이고, 누군가에겐 낙타 바늘 구멍 통과하듯 살 빼야지 에고, 하게 만든다.
신선대에 오르니 자운봉이 코끼리 같다.
큼직한 두상을 머리에 포개 얹은 형상을 이렇게 가까이서 조망하니 점심의 휴유증이 씻기는 기분이다.
한 등산객은 무심의 경지에 다다랐다.
하늘 아래 바위를 베개 삼아 적어도 이 산에서 가장 유유자적할 일, 달게 오수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를 일러 신선놀음 이라 하지 않을까.
만장봉과 선인봉이 서울을 굽어 바라보고 있는 틈새로 울긋불긋 꽃단장 중이다.
하얀 암석이 더욱 여성스럽다.
살다보면 특별히 은혜로운 날 올 때 있다.
나는 늘 카메라 한 번 찍으면 남들보다 몇 발짝씩 처져 몸놀림이 빠름에도 어딘지 손해볼 때 많았다.
그런 처짐을 보상할 방법이라곤, 뒤로 돌아 1등일 때다.
신선봉에서 선두그룹의 누군가가 그만 알바(정해진 루트가 아닌 지대를 갔을 때를 부르는 말)를 시작하고 말았다.
덕분에 꼴찌였던 나, 그만 1등 되었다.
문제는 그것으로서 끝이 아니었다. 이 길을 그대로 이어간 사람이 몇 있었다는 거다.
마치 5년 전의 데자뷰처럼, 점심식사 이후였고, 사람들 많이 가는 곳으로 따라 갔으며,
나중엔 알아도 돌이킬 수도 없어 그대로 하산하게 된..
그 길로 하산한 사람들의 모험심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고생고생하여 간신히 하산한 것도 기가 막힌데, 서울의 지하철을 타게 된 과정부터는 서서히 웃을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하필 그 지하철이 선로 변경하는 지점이라, 순간의 선택이 아주 중요했다.
무슨 난해한 ox 퀴즈처럼 내려야 하나 그대로 가야 하나 따위로 고민에 빠지게 된 것.
그것도 온몸으로 퀴즈를 풀어야 하는 신세.
내렸다 탔다를 거듭해야 했던 우리의 아줌마들은 이래도 아닌 것 같고 저래도 아닌 것 같은,
낮도깨비 춤사위에 얼마나 분주했을까.
새벽잠 설치며 서울까지 왔는데, 이런 하급 몸개그를 하게 될 줄이야,
서울은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라 했으니...
생각할수록 이 사건은 웃다가 주름만 갈 일이다.
하여간, 발길의 선택은 가끔 손보다 중요해진다. 산에서는.. 그것도 서울 산에서는 더더욱...
우리의 목적지대로 가려면 이 신선대에서 계단으로 곧장 하산하는 것이 아니라, 식탁을 차렸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산길 알바는 소중한 경험의 준말이라 해도 되겠다.
멀리로 여성봉과 오봉이 보이고, 산은 그윽하게 깊어 있었다.
다시 결정의 순간이 왔다.
저녁엔 강화도까지 가야 해서 제 시간에 도착해야 하는 중요한 책무를 느낀 나머지 내가 속한 후미팀이 바쁘게 되었다.
후미팀은 여성봉과 오봉으로 가던 길을 되돌려야 했다. 이웃에서 길을 물어본 결과, 송추계곡 쪽이 더 가깝다고 해서였다.
가야 할지와 포기 할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지만 포기를 선택했다.
강화도까지 가는 배를 후미팀 때문에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알고보니.... ..... 배 시간은 자유로이 많았으며 시간 또한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하였다.
또한 그 봉으로 갔었어도 시간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가야 할지와 포기 할지에 대해 고민할 순간이 오거든, 당연하게 가야 한다에 서라고 하고 싶다.
그래야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과 포기하지 않는 데서 경험이 풍부해진다는 것을 동시에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