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방을 지나면 길이 조금 넓어졌다.
비포장도로였지만 자동차가 다니는 신작로였다.
지금처럼 자동차가 흔한 시대가 아니어서
가끔 먼지를 일으키며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면
아이의 눈에는 그것조차 큰 구경거리였다.
자동차가 지나간 뒤에는 흙먼지가 길 위에 한동안 떠 있었고,
그 먼지가 가라앉으면 다시 고요한 시골길이 되었다.
신작로를 따라 조금 더 가면
전기선을 정비하던 전기회사가 있었다.
그곳을 지나 오른쪽으로 남쪽을 향해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왔다.
길은 여전히 신작로였지만 곳곳에는 수렁이 있었다.
비가 온 뒤에는 신발이 진흙에 빠지고,
걸음을 잘못 디디면 발이 푹 빠질 만큼 질척한 길이었다.
그 길을 돌아 또 돌아가다 보면
마침내 저 멀리 우리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 내 눈에는 학교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학교 운동장이 보이고 교문이 나타났다.
교문 안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진 건물 가운데에는
유난히 높이 솟은 ㅅ자 모양의 교실이 있었고,
그 좌우로는 같은 모습의 교실들이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낡은 학교 건물에는 세월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창문 너머 화단에는 백 년은 되었을 것 같은 가이스카 향나무들이 가지런히 줄을 맞추어 서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 한쪽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나무가 있었다.
500년은 넘었을 것 같은 고목 버드나무.
사람들은 그 나무가 6·25전쟁 때 폭탄을 맞았다고 이야기했다.
나무의 한쪽은 불에 타버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나무는 죽지 않았다.
한쪽이 시커멓게 타버렸어도
긴 세월을 견디며 다시 가지를 뻗고 서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나무를 보면서
그저 오래된 나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버드나무는 어쩌면 우리 부모님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홍수에 논과 밭을 잃고,
헐값에 땅을 팔고,
다시 작은 논을 마련하고,
어머니는 미나리를 팔아 새로운 논을 장만하고,
그렇게 삶의 한쪽이 무너질 때마다
또 다른 쪽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신 부모님.
한쪽이 타버린 버드나무처럼,
우리 부모님도 삶의 상처를 안고서 살아오셨다.
지금은 그 길 위에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철길도, 신작로도, 논배미도,
어린 내가 바라보던 학교의 모습도
세월 속에서 하나둘 변해갔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아직도 그 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집 뒤 골목길에서 시작하여
샘길을 지나고,
통 샘을 돌아 x 도네 집 앞을 지나고,
논배미 사이를 걷고,
기찻길 두 가닥을 건너
서문정미소 앞 작은 다리를 지나고,
점방을 지나 신작로로 나서고,
수렁 길을 돌아
마침내 학교 교문에 들어서던 그 길.
그 길은 단순한 등굣길이 아니었다.
그 길에는 홍수로 농토를 잃고도
다시 살아갈 길을 찾으셨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이 있었고,
가난 속에서도 자식을 학교에 보내며
내일을 바라보셨던 부모님의 마음이 있었다.
나는 작은 책가방 하나를 메고 그 길을 걸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길의 양쪽에는
부모님의 눈물과 땀,
고향의 흙냄새와 냇물 소리,
그리고 어린 나의 꿈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길이 보인다.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
논두렁의 푸른 벼,
광 치 천의 맑은 물,
기차의 기적 소리,
그리고 한쪽이 불에 타면서도 묵묵히 서 있던 늙은 버드나무.
그 길을 걸어 학교에 가던 어린아이 나는
그때는 몰랐다.
자신이 걷고 있는 그 길이
훗날 평생 잊지 못할
‘나의 인생길’의 첫 장이 되고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