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울왕이 죽은 것을 보면서
2026년 10월 25일 / 대상 10:13-14
대상 10:13-14 /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대상 10:13-14(새번역) / 사울이 주님을 배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죽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점쟁이와 상의하며 점쟁이의 지도를 받았다. 그는 주님께 지도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의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맡기셨다.
대상 10:13-14(현대인의 성경) /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호와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영매를 찾아다니면서도 여호와에게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그를 죽이고 그의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다.
대상 10:13-14(현대어성경) /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를 배반한 죄 때문이었다. 그는 여호와의 가르침은 따르려하지 않았다. 심지어 무녀를 찾아가 죽은 사람을 불러내어 물어보기는 하면서도 14) 여호와께는 묻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게 하시고, 그의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신 것이다.
<호크마 주석>
10:13 /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 13, 14절은 삼상 31장의 기록에 나오지 않은 내용으로서 저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덧붙인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하나님을 배반한 자는 결국 패망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적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서 ‘범죄하였음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알’은 거의 역대기와 에스겔서에서만 발견되는 용어로서, 여호와의 율법을 파괴하는 의식적, 또는 고의적인 배신행위를 나타내는 말이다(대하 12:2; 26:16; 28:19, 22; 30:7; 겔 14:13; 20:27). 즉, 이 말의 일반적인 개념은 변절, 배신, 불성실 등이다.
저가 … 가르치기를 청하고 - 사울이 하나님을 배반한 구체적인 내용이다. 여기서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라는 것은 사무엘을 통해 지시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사실(삼상 15:11; 13:8-9)을 가리킨다. 또한 ‘신접한 자’란 엔돌에 있었던 접신녀(接神女)를 가리킨다. 사울은 그녀에게 찾아가 ‘사무엘을 불러올리라’라는 요청을 했었다(삼상 28:12-19). 이와같이 미신적(迷信的)인 발상으로 무당이나 접신녀를 찾아가는 것은 여호와께서 엄금하신 영적 간음의 행위였으며 도저히 용납받지 못할 중죄였다(레 19:31; 신 18:9-14).
10:14 /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 이는 사울이 여호와의 뜻을 알아보려는 일체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삼상 28:6에서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노력을 어느 정도 했음을 우리는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① 성심성의를 다해 여호와께 묻지 않았으며, ② 응답의 전제 조건인 그의 죄에 상응하는 진실한 회개를 한 이후에 묻지 않았다. 즉, 여기서 ‘묻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라스’는 ‘주의하여 찾다’라는 뜻으로서(시 77:2; 119:10, 94)본절은 그가 비록 형식적으로 여호와의 뜻을 구했을지는 모르나 전심(全心)으로 구하지는 아니했음을 시사해 준다. ③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처럼 나라의 주관자 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말씀하시면 순종하리라는 다짐 자체가 없었다.
1. 서론
인생의 참된 성패를 결정하는 기준 /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순간을 마주한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스펙, 재물, 사회적 지위나 성취를 두고 성공과 실패를 평가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인생의 평가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속해 있다.
본문 역대상 10장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비극적인 최후와 그 원인을 아주 명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사울 왕의 말로는 참혹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패하였고, 아들들은 전사했으며, 부상을 입은 자신은 이방 사람들의 칼에 찔려 죽기보다 수치스러울 것을 염려해 스스로 자결하고 말았다. 역사적 인물 사울의 죽음 앞에서 역대기 기자는 단순한 정치적 패배나 군사력의 열세가 아니라, 그의 영적 상태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이 시간 사울이 범한 영적 치명상들을 살펴보고,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며 오직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한다.
2. 본론
1.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함(불순종의 죄)
사울의 첫 번째 패착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한 것이다.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 : 사울은 왕이 된 초기 겸손한 사람이었으나, 권력이 공고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욕심과 백성들의 눈치를 더 살피기 시작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모든 것을 진멸하라)을 거스르고 자기 소견에 선한 것(좋은 짐승과 아각 왕)을 남겨두었다.
부분적 순종은 불순종이다 : 사울은 자신이 순종했다고 변명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제사를 지내면 된다는 착각에 빠졌다. 하나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 :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내 기준에 따라 선택적으로 순종하려 한다. 내 유익에 맞고 편안한 말씀은 수용하지만, ‘십자가를 지라’, ‘용서하라’, ‘내려놓으라’라고 하는 말씀에는 귀를 닫는다.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삶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2. 하나님께 묻지 아니함(기도의 단절과 교만)
사울의 두 번째 패착은 여호와께 묻지 않은 것이다.
묻지 않았으므로 :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방향의 누적’이다. 역대기는 사울의 최후를 단번에 정리하지만, 그 결론은 어느 한 사건만을 가리키지 않았다. 사울의 삶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부분적으로만 순종하고(자기 판단을 섞고), 결과가 불리해지면 하나님을 기다리기보다 즉각적 해결을 택하며,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신뢰’가 아니라 ‘불안한 거래’로 흘렀다. 그래서 ‘묻지 않았다’라는 말은 기도의 부재라기보다, 중심이 하나님께 있지 않은 삶의 방향을 말한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는 교만 : 위기의 순간에 인간은 누구를 찾든, 무엇이든 붙잡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울은 중대한 국면에서 하나님께 엎드려 묻지 않았다. 이미 그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응답이 없을 때의 태도 : 다급할 때는 하나님을 찾다가도, 침묵하시거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기도를 포기한다. 사울은 하나님과의 소통의 문을 스스로 닫아버림으로 영적 고립을 자초했다.
기도 없는 열심의 위험성 : 내 지혜와 경험으로 살아가며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 제 인생에 당신의 간섭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참된 성도는 매 순간 주님의 뜻을 묻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는 자이다.
3.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함(세속적 미혹과 타락)
사울의 세 번째 패착은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한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의 영적 공허함 : 하나님으로부터 답을 얻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울은 결국 엔돌의 신접한 여인(영매)을 찾아가 사무엘의 영을 불러올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는 율법이 엄격히 금지한 가증한 일이었다.
우상숭배와 점술의 실체 :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면 인간은 반드시 다른 무언가를 의지하게 되어 있다. 세상의 방법, 점술, 헛된 철학 혹은 인간적인 수단에 의존하여 미래의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영적 파멸을 가속할 뿐이다.
빛 대신 어둠을 택한 결과 : 사울은 평소에 자신이 금지하고 쫓아내었던 신접한 자를 스스로 찾아가는 모순을 범했다. 두려움에 눈이 멀면 진과 위를 분별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사망의 골짜기로 몰아넣게 된다.
3. 결론 및 적용 : 돌이킴과 회복의 은혜로
역대기 기자는 사울의 비참한 최후를 기록하며 대조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시고 그 나라를 다윗에게 돌리셨다. 다윗도 허물과 죄가 컸지만, 사울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범죄했을 때 즉시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와 묻고 또 물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혹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대로 재단(裁斷)하고 지키지 않고 있지는 않은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께 엎드려 묻는 기도를 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영적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 세상의 방법이나 헛된 우상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울의 실패는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완악한 고집을 내려놓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자.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고, 오직 주님 한 분만 우리의 왕으로 모시는 겸손한 백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한다.
읽으면 유익한 글들
▮ 9.11테러가 일어나서 미국의 상하 의원들은 다 모두 허리띠를 두르고, 어깨띠를 두르고, 어깨동무하면서 ‘하나님이여 다시 한번 미국을 축복해 주옵소서.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전부 열창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이여, 우리의 교만을 회개합니다. 우리를 다시 한번 축복하여 주옵소서.’
❚ 작가 오혜령 씨는 1976년엔 36살의 나이로 세계언론인 작가협회 사무총장이 되었다. 1970년대에 희곡 작가로, 배우로, 방송인으로, 또 수필 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미션 스쿨을 다녔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믿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30대 꽃다운 나이에 위암과 림프샘암에 걸리게 되었다. 3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의사의 사형선고를 받은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말았다. 매일 달력의 숫자에 빨간 색연필로 빗금을 쳐나가면서 죽을 날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만 먹어도 토했고 혈변을 보는 고통이 계속되었다. 그동안 주님을 모른다고 하면서 마음대로 살았던 자기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어디서부터 회개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쏟았다. 며칠 동안 화선지에 붓글씨로 자기 죄를 써가며 아프게 회개했다. 밤을 새우며 눈물로 회개하고 또 회개하며 천국에서 주님을 만날 준비를 했다. ‘이제 죽는 시간이 다가왔구나.’ 스스로 임종 준비를 하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너무 추워서 이불깃을 잡아당기는데 겨드랑이에 잡히던 림프샘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않았다. 어깨를 만져보았다. 복숭아씨만 하던 멍울도 사라져 버렸다. 배를 만져보았다. 복수가 차올랐던 배가 완전히 꺼졌다. 그는 살아 계신 주님께서 자기를 만져주신 것을 알았다. 오혜령 씨는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 주님을 만났고 주님과의 교통이 열리니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치유로 나타났던 것이다.
❚ 대영제국 시절이었다. 영국 왕은 온 세계를 호령하였다. 영토를 크게 넓혀 나가던 왕이 있었다. 그러나 이 왕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다. 어느 날 신하들이 호화스러운 왕관을 씌워주며 말했다. ‘이제 왕의 명령을 거역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자 왕은 이런 신하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나갔다. 그리고 외쳤다. ‘파도여! 잠잠하라!’ 그러나 파도는 계속 일렁거렸다. 파도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때 왕은 말했다. ‘보아라. 내 명령을 듣지 않는 만물이 이 땅에는 얼마나 많으냐? 이 땅에서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이 왕은 절대권력자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을 인정한 왕이었다. 이 왕이 영국 왕 가누 트이다.
❚ 교인 중에도 무당을 찾아가거나 점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는 나오지만,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전에 단군교의 교주를 했던 박해경이라는 사람이 점을 잘 치기로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어떤 계기로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어 목사가 되었다. 변화된 후에 전국을 다니면서 간증 집회를 하게 되었다. 그 소문이 복음 방송국에까지 알려지면서 복음방송에 나가서 간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출연했던 프로그램의 사회를 보는 사람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해마다 자기에게 점을 보러 오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 사회자는 기독교인으로 기독교 계통의 방송국에서 일하면서도 해마다 점을 봤던 것이다. 사실 이런 사람이 정말 불쌍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표를 던져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이다.
❚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매일 새벽 4시부터 5시까지 서재에서 한 시간 동안 기도했다. 워싱턴은 장군 시절 필라델피아 교외에 있는 밸리 포지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그의 기념교회당이 있는 이곳에는 그가 날마다 외던 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하나님, 이 나라를 지켜주실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이 나라 지도자들이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정직한 생활의 본이 되고, 겸손히 백성을 섬기게 하소서.’ 6대 대통령 존 퀸시 아담스 역시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어머니가 세 살 때 가르쳐 준 기도 말투로 기도했다.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도 기도의 사람이었고, 23대 대통령 벤저민 해리슨 역시 기도하는 대통령이었다. 카터 대통령은 지금도 자기 고향 교회에서 주일이면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기도하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나름대로 존경받았고 국가 통치에 공헌했다.
❚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의 영향력은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이분에게 어렸을 때부터 앓고 있는 병이 있다고 한다. 그 병명은 ‘뇌 기능 부전증’으로 호르몬이 이상 분비되는 것이다. 우리가 긴장하거나 화를 내면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는데, 릭 워렌 목사님은 아드레날린이 적정 수준 이상으로 분비되는 것이다. 아드레날린 분비가 과해지면 현기증이 나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설교해야 하는데 앞이 안 보이는 것이다. 앞에 사람이 안 보이니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게다가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있고 어떤 때는 쓰러질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런 상태가 되면 마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꼭대기에 손가락 하나를 의지해 매달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병 때문에 릭 워렌 목사님은 설교하기 전에 항상 기도하였다. 그리고 너무 불안하고 답답하니까 교인들로 하여금 중보기도 팀도 만들게 했다. 그래서 목사님이 설교하는 내내 기도팀이 이렇게 기도한다고 한다. ‘목사님이 견디게 해주십시오.’
❚ 스펄전의 두 편 설교 비교 / 찰스 스펼전 목사가 한번은 형편없는 설교를 했다. 말하자면 완전히 죽을 쑨 것이다. 그는 참으로 마음이 겸비하게 되어 주께 기도했다. ‘주 하나님, 당신은 무에서도 무엇인가를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 형편없는 설교를 축복해 주십시오.’ 그는 한 주간 내내 주님을 의지하면서 이 기도를 했다. 한밤중에도 일어나 기도를 했다. 그 다음 주일은 지난 주의 엉터리 설교를 보상하려는 마음으로 멋진 설교를 했다. 사람들도 굉장히 칭찬했고 그 자신도 굉장히 흡족해했다. 그때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내 이 두 편의 설교의 결과를 한번 비교해 보아야 하겠다.’ 그 결과는 참으로 놀랄 만큼 달랐다. 첫 번째의 엉터리 설교를 통해서는 41명이나 주님을 영접했지만 두 번째의 그 멋진 설교를 통해서는 단 한 영혼도 구원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 뜨거운 눈물의 기적 / 오래도록 교회 문밖에서만 맴돌던 인도의 한 청년이 눈병으로 심히 고통을 당하다가 병원에 입원했다. 눈을 정밀히 진찰한 의사는 긴장된 표정으로 눈에 살인적인 병독이 들어가 감염되었으므로 두 눈을 뽑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므로 내일 즉시 두 눈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참으로 절망이었다. 그 청년은 아픔과 번민과 슬픔으로 몸부림치고 있는데 크리스천 친구가 찾아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보라고 권고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슨 말인들 못 듣겠는가? 그는 친구와 함께 교회에 나가 기도하는데 참으로 염치가 없었다. 그토록 예수 믿으라고 할 때는 끄떡도 하지 않던 자신이 죽게 되자 살려달라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완악했던 마음부터 회개하기 시작하니 기도의 문이 열려 모든 것을 철저히 회개했다. 그는 울고 또 울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눈이 퉁퉁 부을 정도였다. 다음날 마음이 홀가분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대에 올랐는데 다시 진찰하던 의사는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그토록 심하게 번졌던 독균이 깨끗이 사라진 것이다. 그의 뜨거운 회개의 눈물은 영육의 생명을 고침을 받게 하였다.
❚ 프랑스의 농민 화가였던 밀레가 그린 '만종'이라는 그림이 있다. 원래 70달러밖에 되지 않는 물감과 종이를 들여서 그린 것인데, 나중에 어느 미국인이 12만 5천 달러에 사 갔다. 얼마 후에 프랑스 사람들이 이 명화를 다시 본국으로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에서 15만 달러를 주고 사다가 루브르 미술관에 걸어놓았다. 밀레의 ‘만종’은 어느 젊은 부부가 종일 땀을 흘려 일하다가 멀리 예배당의 종소리가 들려올 때, 괭이와 삽을 놓고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명화 속에 세 가지 신성함이 있는데 첫째는, 가정의 신성함이요, 둘째는 노동의 신성함이요, 셋째는 종교의 신성함이라는 것이다.
❚ 로마 한인교회는 몇백 명이 모이는데 대부분이 한국에서 성악을 배우러 온 성악가들이다. 그래서 전교인이 다 성가대원이나 마찬가지이다. 거기에 성악을 전공하는 한국 자매님이 출석했다. 이분이 실력도 있고 곧 세계를 향하여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 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분이 눈이 쌍꺼풀이 아니고 외꺼풀인 것이 걸렸다. 그래서 쌍꺼풀수술을 하려고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그 전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이 ‘왜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꾸 고치냐? 그대로 살아라. 꼭 그래야 만이 행복한 건 아니다. 그래야 만이 미인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 살아라.’라고 말씀했다. 이 분이 그 설교에 큰 감동을 하였다. 그래서 ‘이만하면 은혜가 감사하다.’라고 하면서 수술을 포기했다. 유명한 성악가나 오페라 가수가 되려면 목소리도 좋아야 하지만, 얼굴은 간판이나 다름없으니 수술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분이 목사님이 자기 사정도 모르시는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감동이 왔고, 이분이 그 감동에 순종한 것이다. / 그런데 얼마 지나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때 마침 유럽에서 ‘나비부인’이라는 오페라를 하기 위해 동양인 가수를 찾았다. ‘나비부인’이라고 하는 오페라는 무대가 일본이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할 때 해군 중위하고 나비라고 하는 아가씨가 서로 사랑하는 내용이 줄거리이다. 그러므로 ‘나비부인’의 주인공은 동양인 여자 성악가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그때 당시 유럽에서 활동하는 최고의 성악가 중에 한 사람을 뽑아야 했다. 그때 뽑힌 성악가가 놀랍게도 쌍꺼풀수술 안 한 이 아가씨가 되었다. 실력이 비슷한 분들이 많은데 다른 사람들은 다 쌍꺼풀이 되어 있어서 동양적인 맛이 나지 않았는데, 이 분은 쌍꺼풀이 아니라 가장 동양적으로 보여서 뽑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분이 주인공을 맡았는데, 이 ‘나비부인’이 유럽에서 대성공을 거둠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 설교 시간에 말씀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니 이런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