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먼저 다녀온 휴가 / 하편
글/김덕길
신선한 아침 공기를 가로지르며 차는 인제를 벋어나 영통으로 그리고 설악산 입구인 삼거리 휴게소에 안착을 했다.
아침부터 많은 차량들이 휴게소로 들어왔고 또 휴게소를 벗어났다. 오고 감은 언제나 있었던 일일 테지만 그 차량들 중에 우리들도 속해 있다는 것이 마치 생방송의 주연 배우나 되는 양 우리는 들떠있었다.
“당신 뭐 먹을 거야?”
깨끗할 줄만 알았던 휴게소의 분위기에 조금은 실망한 눈초리의 내가 먼저 아내에게 물었다.
“난, 우동”
“난, 자장면으로 할래.”
사실은 어젯밤 마신 소주도 있고 해서 컵라면으로 국물을 먹을까했지만, 컵라면은 팔지 않았다.
자장면을 한 입 입에 무는 순간 나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앗. 뭔 맛이 이래?”
“왜?”
“그동안 휴게소에서 자장면을 많이 먹어봤지만 이건 아닌데......”
고속도로의 휴게소는 십여 년 전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지금은 음식도 잘 나올뿐더러 화장실 문화도 많이 개선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곳 국도변에 있는 휴게소는 개인이 운영을 해서인지 형편없었다. 세상에 자판기 한 대 없는 휴게소를 본 적 있는가? 이곳은 직접 타주는 커피 외에는 팔지 않았다.
씁쓸한 맛을 뒤로하고 우리는 서둘러 진부령고개를 넘었다. 뻥 뚫린 터널이 설악을 가로질러가고 몇 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는 벌써 설악을 넘고 있다는 느낌이 밀려들었다. 터널을 나와 조그만 공간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심호흡을 크게 하였다. 그리고 오른편으로 보이는 거대한 암릉에 시선이 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울산바위였다. 난, 그게 공룡능선이라고 우겼지만 얼마 안 있어 울산바위라는 지도를 보고는 꼬리를 내렸다. 거대한 바위들이 티격태격하며 일사분란하게 서로 하늘을 탐하고 지내는 저 높은 기암괴석에 우리 부부는 감탄 또 감탄을 하고 있었다.
차는 속초를 지나 간성 쪽으로 내 달리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최대한 해안가 도로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속초까지는 몇 번 들렀지만 속초 위쪽으로는 이번 여행이 초행길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이 저 낯선 바다와, 낯선 거리와, 낯선 어울림들을 마음껏 안아보고 싶었다. 다시 또 언제 이 길을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면 가고 가면 다시 온다지만, 오고가는 길이 멀고머니 어디 한가하게 다시 들릴 날이 또 올 텐가?
간성을 조금 앞두고 우리는 청간정 아래 천진 해수욕장근처 포구에 차를 세웠다. 차를 세우고 방파제를 막 올라가는 순간 아내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와! 바다다!”
바다는 검푸른 억눌림을 밀고밀어 새파란 푸름으로 그것도 모자라 어느 쪽은 푸른 초원을 연상케 하는 연초록 물빛으로 일렁거렸다. 태초에 이토록 맑은 바다를 본적 있던가? 아내의 감탄에 발 맞춰 내 발걸음은 벌써 바닷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힘껏 달려가도 바다는 다 품어 안아 줄 것만 같았다. 마음껏 내 모든 것을 내 맡겨도 싫다는 내 색 없이 바다는 내 지친 심신을 다독거려 줄 것만 같았다. 입었던 반바지를 다시 걷고 무릎까지 차오르는 바다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조금은 차가우면서도 조금은 설레는 간지러움으로 바다속 풀들이 속살거렸다. 수천 년을 파도와 씨름하며 꾸역꾸역 육지를 향해 걸어 나오려 씨름을 하던 돌들은 바닷가 모래사장을 밀어내고 제가 주인인양 똬리를 틀었고 그것도 모자라 어느 곳은 조그만 섬이 되어있었다. 나는 수평선에 주었던 시선을 거두어 바다 속으로 밀어 넣었다. 깨끗한 바닷물에 마냥 뛰노는 물고기와 조그만 생물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내 시선은 소라와 골뱅이에 가 있었다. 소라는 바위에 붙어 마치 돌처럼 단단하게 붙어있었다. 39년 만에 처음 소라를 따 보았다. 바다 골뱅이 역시 처음 잡아보는 것 같다. 나와 아내는 마냥 신기한 듯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는 양 신이 나 있었다. 한 그릇이나 잡았을까? 우리는 다음 일정을 향해 다시 차를 몰았다.
이승만 대통령이 썼다는 글귀와 사뭇 해변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청간정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오디였다. 뽕나무에 열려있는 열매가 오디인데 어찌나 반갑던지 우리는 한 개씩 입에 물었다. 덜 익은 오디의 새코롬한 맛이 추억을 송두리째 꺼내놓게 만들었다. 어릴 때 친구들과 함께 뽕나무밭으로 오디를 따 먹으러 쏘다니곤 했었다. 아버지의 밀짚모자에 한 아름 오디를 따오면 손은 봉숭아물을 들인 양 벌게지고 입술은 온 통 벌겋게 립스틱을 뿌려놓은 듯 했었다. 청간정에서 내려다보는 동해바다는 참으로 수려했다.
조그만 냇물이 청간정을 휘돌아 흐르고 설악산 아래 우지 짖는 뻐꾸기는 긴 하품을 하며 실없이 노니는 송사리들을 바라보던 곳, 넓은 백사장 동쪽 끝으로 미역줄기가 융단을 깔고 청간정 흔들리는 대숲에 바람소리는 해풍을 만나 고요할 틈이 없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나는 노래를 불렀다. 시인 정지용님의 “향수”가 이곳 청간정에서 생각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정지용 시인은 시 ‘향수’를 직접 체험이 아닌 시인 자신의 상상속의 시골을 상상해서 노래했다는 설도 있지만 지금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감히 얼굴을 들 수조차 없었다.
우리는 다시 차를 몰아 거진항으로 향했다.
항구의 너른 콘크리이트 바닥에는 사람들이 따서 건져놓은 미역다시마 줄기들이 넓게 퍼져있었다. 우리는 이번엔 미역과 다시마를 따기 위해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여보! 어떤 게 미역이야?”
나는 사실 미역과 다시마가 다 같은 걸로 생각이 되었다.
“잎사귀 끝이 구불구불한 거 있지? 그것이 미역이고 잎이 넓고 긴 것은 다시마야!”
아내는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나에게 말을 해 주었다. 나는 아내는 생전처음 미역과 다시마를 원 없이 따서 말렸다. 차는 어느새 송지호를 벗어나 화진포로 향하고 있었다.
화진포를 도착하기 전에 우리는 명태비석이 있는 해안가 동산을 올라가보기로 했다. 나는 거기서 영화 ‘쉬리의 언덕’만큼이나 빼어난 풍경을 또 한 번 보고야 말았다. 산꼭대기까지 오르자 세상은 온통 내 것이었다. 수평선은 끝도 모를 하늘과 악수하고 있었고 사람이 없는 등대는 바다를 보며 밤을 기다리고 명태 축제를 축하하는 명태비의 명태는 산꼭대기에서 바다를 향해 아우성을 치는 듯 보였다. 한 바퀴 산을 돌아보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다. 우리는 전력질주해서 꼭대기에 있는 정자로 뛰었다. 2층으로 되어있는 정자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정말이지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이미 비를 피해 온 동네 아주머니와 두 딸이 산딸기를 가득 물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비가 게였고 아주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내려갔다. 우리는 이 기가 막힌 풍경을 쉬이 잊기 싫어 조금 더 정자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상상의 끝은 황순원님의 소설 ‘소나기’를 생각하게 하였다.
아내와 나의 아름다운 입맞춤은 마치 소나기의 그 소녀와 소년이 어른이 되어서 나누는 입맞춤이 아닌가 할 정도의 착각이 들었다. 우리는 상기된 얼굴을 빗줄기에 말리며 정자를 내려왔다. 비가 개이고 정자 바로 아래쪽에 한 평 남짓한 봉우리가 있는데 의자 두 개가 놓여있었다. 우리는 이곳을 제2의 쉬리의 언덕이라 이름 지었다.
제주도 신라호텔을 끼고 호텔 해수욕장을 거닐다 보면 쉬리의 언덕을 갈 수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사뭇 황홀했다면, 이곳은 꾸미지 않은 자연미 그대로의 황홀감이었다. 우리는 한참동안 그곳에서 놀다가 내려왔다. 내려오던 중 어느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 여기서 뭐 하세요?”
“약초 꽃 따는 거예요.”
“이 꽃 엄청 많던데 이것이 약초에요?”
“예, 관절염에도 좋고 따서 팔기도 한답니다.”
이름이 뭐라고 알려주긴 했지만 우리는 금세 잊어버렸다.
우리는 거진항에 차를 세우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삶의 역동성이 보이는 항구로 걸어 들어갔다.
몇 발자국 걸어가자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께서 말을 건네 오셨다.
“어머나 벌써 바다에 들어갔다 나왔는가 봐요. 다 젖었네요?”
“예, 미역 딴다고 젖었네요.”
“시원하니 참 좋죠?”
아주머니께서는 장사 수완이 보통이 아니셨다. 보통 호객행위를 할라치면 일단 “손님 이곳으로 오시지요. 이곳 회가 기가 막힙니다.”이런 식으로 본론부터 꺼내기 마련인데 이 아주머니께서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저 편안한 이웃으로만 생각되었으니 아마 내가 그곳 분위기에 녹록하게 젖어 있었나보다.
“이쪽으로 와 보세요! 이거 방금 들어온 고기인데 맛이 끝내줍니다. 아주 싸게 파니까 구경이나 해 보세요.”
우리는 순순히 아주머니를 따라 갔다. 또 다른 아주머니는 이미 커다란 양동이에 고기를 한 바가지나 쏟아 붓고 있었다.
“이거 통째로 다 드시고 만원만 주세요!”
나는 이렇게 많은 양의 물고기를 한 끼 식사로 어찌 먹느냐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주머니는 양이 작아서 그런 줄 알았는지 덤을 또 듬뿍 담아주셨다. 아주머니의 성의에 어쩔 수 없이 처음 생각했던 모듬회 대신 세꼬시로 먹기로 결정했다. 바닷가라서 참 싸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고기값은 만원, 회 떠주는데 삼천 원, 매운탕에 밥 끓여주는데 또 만 원 이렇게 따로따로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식당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멀리 태백에서 오신 부부와 우리는 담소를 나누었다.
나는 점심을 맛있게 하였지만, 아내는 뼈까지 씹어 먹어야 하는 세꼬시가 영 어색했던지 많이 먹지 못해 미안했다.
차는 화진포 앞바다로 달려갔다. 김일성 별장과 이기붕, 이승만 별장이 있다는 화진포는 저녁햇살에 그을려 구릿빛 얼굴을 드리우고 있었다. 적재적소에 가장 좋은 곳을 골라 별장을 세웠겠지만, 청간정의 그 기가 막힌 풍경보다도, 제2의 쉬리의 언덕이라 이름 붙여준 그곳 산꼭대기보다도 못한 것 같았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해양박물관을 들렸다. 수족관속의 고기들 중 너무나 아름다운 고기를 발견했다. 넓다란 몸통인데 노란색이었다. 마치 그림속의 그림같이 그 고기의 아름다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해는 뉘엿뉘엿 설악산으로 숨어버렸고 우리는 이제 서서히 여행의 종지부를 찍고 있었다.
올라오던 길이 아쉬워 소양강에 잠깐 들려 강기슭을 가득 메운 목초지를 원 없이 바라보았다. 목가적인 풍경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만 같았다. 온통 눈이 시원했다. 바다를 보며 시원해진 눈이 초록색 목초지를 보며 또 시원해졌으니 시력이 아마 조금은 올라가지 않았나 싶다.
저녁은 홍천 부근에서 청국장으로 마무리했다. 텔레비젼에 나온 집이라 해서 잔뜩 기대를 했는데, 역시 소문난 잔치였다.
길다 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여정이었다.
갑자기 떠난 길 치고는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 쌓기였다. 이 추억을 발판삼아 또 맡은 바 생활에 충실할 것이다. 때로 낯선 곳으로의 충전은 일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또 다른 원동력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