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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구조 | [1] | [2] | [3] |
조건 1.1 | 알고(知) | 숫컷(雄)을 | 밝음(白)을 | 영화로움(榮)을 |
조건 1.2 | 지키면(守) | 암컷(雌)을 | 어둠(黑)을 | 욕됨(辱)을 |
결과 1 | 천하의 ~ 되고 | 시내(溪)가 | 법식(式)이 | 골짜기(谷)가 |
조건 2 | 천하의 ~ 되면 | 시내(溪)가 | 법식(式)이 | 골짜기(谷)가 |
결과 2.1 | 항상의 덕이(에) (常德) | 떠나지 않고 (不離) | 어긋나지 않고 (不忒) | 참으로 충족되고(乃足) |
결과 2.2 | 다시 돌아감 (復歸) | 갓난아이로 (嬰兒) | 무극으로 (無極) | 통나무로 (樸) |
통나무를 통한 잠언 | ||||
근거 1 | 통나무가 갈라지면(散) 그릇(器)이 된다. | |||
근거 2 | 성인(聖人)이 사용하면(用) 관장(官長)이 된다. | |||
주 장 | 큰 마름(다듬기)은 자르지 않는다. (大制不割) |
28장을 위의 도표처럼 나타낼 수 있고, 그것을 한 문단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숫컷(雄), 밝음(白), 영화로움(榮)을 알고(知) 암컷(雌), 어둠(黑), 욕됨(辱)을 지키면(守) 천하의 시내(溪), 법식(式), 골짜기(谷)가 된다. 그리고 천하의 시내(溪), 법식(式), 골짜기(谷)가 되면 항상의 덕(常德)이 떠나지 않고(不離), 어긋나지 않고(不忒), 참으로 충족되어(乃足) 갓난아이(嬰兒), 무극(無極), 통나무(樸)로 다시 돌아간다.(復歸) 그런데 통나무가 갈라지면(散) 그릇(器)이 되고, 성인(聖人)이 사용하면(用) 관장(官長)이 된다. 그러므로 큰 마름은 자르지 않는다.(大制不割)
(4) 문제제기
상덕(常德)은 항상 덕이 유지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 같은데, 갓난아이, 무극, 통나무는 그러한 상태로 있는가, 그 세 가지는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2. 큰 마름은 자르지 않는다고 했는데, 마름이라는 말 속에 자른다는 의미가 있 다. 도대체 자른다는 말인가, 자르지 않는다는 말인가?
< 이어지는 강의 예고 >
422회 (2019. 3.27): 노자 도덕경 29장, 이태호 (통청아카데미 원장/철학박사) 423회 (2019. 4.03): 노자 도덕경 30장, 이태호 (통청아카데미 원장/철학박사) 424회 (2019. 4.10): 노자 도덕경 31장, 이태호 (통청아카데미 원장/철학박사) 425회 (2019. 4.17): 명심보감의 현대적 의의, 임성식 (인평동양사상 연구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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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경남 지음, 장자, 영혼의 치유자, 미다스북스, 67-69쪽
[출처] 소요유(逍遙遊) |작성자 바람풍경
장자 사상의 중요한 특징은 인생을 바쁘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하루하루의 삶을 그 자체로서 중히 여기고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지, 하루하루를 마치 무슨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기계적 소모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장자는 우리에게 인생에 있어서 ‘일’을 권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풍’을 권한 사람이다. 우리는 ‘일’하러 세상에 온 것도 아니고, ‘성공’하려고 온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은 다 부차적이고 수단적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과거 생에 무엇을 잘했는지 모르지만, 하늘로부터 삶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이 우주에는 아직 삶을 선물로 받지 못한 억조창생의 ‘대기조’들이 우주의 커다란 다락방에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당신과 나는 이 삶을 하늘로부터 선물 받아 이렇게 지금 지구에 와 있지 않은가!
삶을 수단시하지 마라. 삶 자체가 목적임을 알라. 이 삶이라는 여행은 무슨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그러니 그대여 이 여행 자체를 즐겨라.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인생이란 소풍이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소풍을 보내면서 단지 열흘짜리 휴가증을 끊어 주신 건데, 하느님이 사는 중심우주와 우리가 사는 외곽우주가 서로 흐르는 시간대가 달라 그것이 백 년이 된 것뿐이다.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에는 글자 어디를 뜯어봐도 바쁘거나 조급한 흔적이 눈곱만큼도 없다 ‘소(逍)’자는 소풍간다는 뜻이고, ‘요(遙)’자는 멀리간다는 뜻이고, 유(遊)자는 노닌다는 뜻이다. 즉, ‘소요유’는 ‘멀리 소풍가서 노는 이야기 이다. ’소요유(逍遙遊)‘는 묘하게도 글자 세 개가 모두 책받침 변(辶으)로 되어 있다. 책받침 변(辶)은 원래 ’착(辵)‘에서 온 글자인데,
’착‘이란 그 뜻이 ’쉬엄쉬엄 갈 착(辵)이다. 그러니 ‘소요유’를 제대로 하려면 내리 세 번을 쉬어야 한다. 갈 때 쉬고, 올 때 쉬고, 또 중간에 틈나는 대로 쉬고! 참 기막힌 이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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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老子)가 지닌 세 개의 보배
이태호(인문학 통청아카데미 원장)
노자는 『도덕경』 67장에서 자기는 세 개의 보배를 지니고 있다(我有三寶)고 말했다. 그 세 개는 자애(慈), 검소(儉), 겸손(不敢爲天下先)이다.
첫 번째 자애(慈愛)는 부모가 자녀의 행복을 진정으로 바라는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노자는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이러한 마음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 사회에서 인정받게 된다. 교육자는 피교육자를, 생산자는 소비자를, 의사는 환자를, 정치인은 유권자를 자식처럼 대한다면, 훌륭하고 능력 있는 교육자, 생산자, 의사, 정치인이 된다. 그렇게 되니 이들에게는 부수적으로 재산, 지위, 명예, 권력 등의 영광스러움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이때 검소(儉素)가 요구되는데, 이것이 두 번째 보배이다. 검소는 사치와 낭비를 하지 않고, 자신의 생활에서 소박함을 유지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영광스러움이 따라올 때 어느 선에서 만족하고 멈추는가? 노자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선에서 만족하고 멈추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爲腹不爲目, 12장) 그리고 더 큰 영광이 와도 초연하게 대처한다고 하였다.(雖有榮觀 燕處超然, 26장) 또 그 선에서 만족하는 자를 부자(知足者富, 33장)라고도 하였다. 이 부자는 영광스러움이 따라 붙는데도 검소해서 지출을 줄이니 그 영광스러움은 더 커진다. 그리고 그 힘을 다시 자애로움을 실천하는 데 쓰기 때문에 이 사람은 더 큰일을 하게 된다.
이때 겸손(謙遜)이 요구되는데, 이것이 세 번째 보배이다. 큰일을 하려면 자연히 남 앞에 서게 된다, 노자는 이때 남 앞에 서려고하지 말고 뒤에 있으라고(不敢爲天下先) 말한다. 만약에 남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의 자애와 검소가 거짓으로 비치게 되고, 그것들이 결국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자는 22장에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말고(不自見), 자신의 말이 옳다고 하지 말고(不自是), 자신이 공을 세웠다고 하지 말고(不自伐), 자신을 자랑하지 말라(不自矜)고 하였다.
자애, 검소, 겸손을 지니면 인생을 여유롭고 재미있게 살면서도 자연히 큰일을 하게 되니 보배임에 틀림이 없다. 자기가 자식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니 즐겁다. 검소한 생활로 만족하니 재산을 늘릴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며, 여유롭게 산다. 남 앞에 서려고 하지 않으니 지위, 명예, 권력을 잃을 근심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보배를 지닌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다툼이 없는 삶을 사니(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8장)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노자가 지닌 세 개의 보배를 우리도 지녀서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인생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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