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성공 후손 화성문중의 유래에 대한 고찰
이번에 우리 중랑장파 순성공 후손 중 강진으로 낙향하셨던 문중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던중 그 궁금증을 알아보려고 있던 차에 세거지라 여겨지던 전남 강진의 현지를 방문하고 답사하였었다. (2022.09. 16)
거슬러보면 한 형제였었기에 처음에는 서먹하게 만났으나 점차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종친님의 마음이 고마웠고, 강진 입향조이신 휘 혼원의 묘지를 답사했을때의 감동은 아직도 잔상으로 남아 있다.
나의 추측으로는 강진에 낙향하신 것은 아마도 당시 우리 집안 모두가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형제를 분산 피신할 시기와 같으니 큰집의 여섯 아들은 차자(次子)를 고향을 지키게 하고 충청도와 강원도로 분산 이주토록 하였으며, 둘째집은 전라도 강진으로 분산 이주토록 하였을 거란 심증이 선다.
그 세계는 맨 하단에 그림표로 첨부하니 참조하세요.(pdf파일로 보시면 선명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에 알게된 역사적 사실로 보면 강진으로 가셨던 형제분 중 셋째 휘 澄源(징원)이 당시 심기원의 모반 사건시 가담하여 역적으로 몰리면서 자경을 하게 되고 그 자식중 성년이 된 아들은 교형에 처해지고 어린 막내아들은 충청도 당진으로 정배를 가게 된다.
아울러 징원의 형인 渾源(혼원) 浚源(준원)은 노비로 삼게 하였으며, 형의 아들(징원의 조카)은 세거지 강진에서 3,000리 밖으로 정배를 보내니, 큰아들은 경상도 창원으로 둘째아들은 경기도 남양으로 정배를 가게 된다.
여기서 큰아들이 정배를 갔던 경남 창원에서 세거하였던 큰아들은 묘지도 실전하게 되었으나 손자는 다시 강진에서 세거하게 되어 현재는 할아버지이신 입향조의 묘지에 상석을 갖추고 강진에 터를 잡았으며, 현재까지 알기로는 강진문중의 장손은 일본에서 살게 되어 연락이 어려운 상태이다.
역적으로 몰려 피신하다가 스스로 목을 맨 징원의 막내는 당시 12세이므로 형들과 달리 살아서 현재의 충남 당진시 석문면(당진시청에서 자료 취득)일원에 터를 잡았으나 이후 연락이 두절된 상태이다.
그러면 화성문중에 대하여는 징원의 조카이자 강진 입향조의 두 아들 중 경기도 남양으로 정배를 당하신 尙謙(상겸)이 바로 화성문중의 입향조가 되신다.
당시 상황을 유추해보면 강진에서 멀리 쫒겨 났으나 원래의 큰집이 경기도 양평이었으니 바로 인근에서 감시를 받는 유배생활을 하셨다는 결론이 성립된다.
비록 짧은 시간에 취득한 정보로 이러한 주장을 하였으나 오류가 있을시 보완하여 하나씩 배워가고자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