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돋움달 스무하루, 가랑비 후 흐림.
오늘은 박진영 군이 머리를 깎아주기로 한 날입니다.
그는 스무 해 가까이 내 머리를 깎아주는
솜씨 좋은 미용사였는데
다른 일을 시작하면서 미용 일을 그만두어
머리 모양에 까다로운 내가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닙니다.
그 사이 두어 곳에 가서 머리를 깎았지만
통 마음에 들지 않았고
지난번에 전화를 했더니 마침 오늘은 여러 사람의 요청이 있어서
미용실에 나가 잠시 일을 할까 한다고 하여
나도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깎겠다고 한 겁니다.
미용실에 가 보니 박진영 군은 나오지 않았고
할 수 없이 돌아서서 헌책방에 들러
책 몇 권을 사 가지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지만
눈에 들어오는 미용실은 없었습니다.
그 사이 이따금 길에서 마주쳐 인사 정도를 주고 받는
박인기 씨를 우연히 만났고
차 한 잔 하자고 하여
베트남 사람이 하는 식당 겸 찻집에 들러 차 한 잔 나누고
별 의미 없는 이야기 주고받다가 일어나 다시 돌아오는 길,
마침 오래 된 듯한 이발소가 눈에 띄어 그리로 들어갔습니다.
일흔은 넘어 보이는 노인이 있었고
왠지 머리를 맡겨도 괜찮을 것 같아 자리에 앉았는데
뜻밖에 섬세하면서도 썩 마음에 드는 솜씨로 머리를 깎아주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발소에서 깎아보는 머리,
아마 서른 해도 더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사직동에 가면 있는 두꺼비 이발관이 있고
그 주인이 한 여남은 해 내 머리를 맡아 깎았는데
금산에 있을 때도 머리를 깎는 것은
청주에 와서 깎을 정도로 머리에 대해서는 좀 유별나다 싶게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 이발소가 있었습니다.
한동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군대 가서 머리 깎는 것을 배웠다고 했는데
그는 내 머리가 동글동글해서 깎기가 참 좋다고 했는데
이후 자라서 조금 긴 머리를 하고 다닐 때에는
웬만한 솜씨를 가진 사람이 깎지 않고는
통 어색하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박진영 군이 일하던 미용실엘 다닐 때에
비로소 내 머리카락이 독특한 결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그 미용실을 운영하던 원장 김명희 군의 말을 듣고 알았습니다.
머리카락의 방향이 위와 옆, 그리고 뒤가
각각 다른 곳으로 뻗어 있어서
그걸 볼 줄 모르는 사람이 깎으면
모양이 이상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김명희 군이 얼마 동안 깎다가
당시 부원장이던 박진영 군에게 맡겨도 괜찮다고 하여
그 때부터 내 머리를 계속해서 그가 깎았던 것,
그러니 머리가 자라면 또 누구에게 가서 머리를 깎아야 하나
신경을 쓰지 않으며 안 되었던 근래 몇 달이었습니다.
모처럼 이발소에서 개운하게 머리를 깎고
수염까지 깎는 면도도 받으며
머리에 관련된 갖가지 생각들까지 떠오르는 즐거움,
그리고는 요금을 물으니 ‘팔천원’이라는 겁니다.
요즘 가격으로는 아주 헐한 요금에
약간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데
거스름돈을 그만두라고 했어야 하는데 그걸 못한 것이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겁니다.
다음에도 와야겠다고 쉬는 날이 언제냐고 물었더니
수요일에 쉰다고 하여 그것까지 알아 두고 나와
다시 확인한 ‘국민이용원’은
그분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다녀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돌아와 원고를 살피다가
김태윤 군과 저녁을 먹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어
가서 술 한 잔 곁들인 저녁을 먹었습니다.
오늘 저녁 약속은 그가 출판준비위원회 구성 때
자기를 빼 놓아 서운해 한다는 말을 들어
그걸 달래주려고 만든 자리,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일인데도 거기 못 낀 것을 서운해 하는
그의 마음이 이만저만 고마운 게 아닙니다.
저녁 먹으며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와서 커피까지 한 잔 하고 돌아오는 길은
미뤄 두었던 불편 하나를 해소한 것 같은 개운함
오늘은 머리도 그렇게 시원하게 깎았고
태윤 군과에 대한 것도 깔끔하게 정리를 했으니
어색하긴 하지만 ‘개운함’으로 이름을 붙여
그 이름으로 후덥지근한 날씨를 밀어내며 하루를 마무리하려 하다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뜻밖의 발견’으로 고치고는 자리에 눕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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