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만든 사람은 오세환 교수(36세, 계원조형예술대학 가구디자인과). 신인작가관(salone satellite)에 출품한 이 책장으로 그는 당당히 올해의 ‘Young & Design’상을 수상했다. 신인작가관은 40세 미만의 디자이너들만 참가할 수 있고, 한 사람에게 단 세 번의 출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특징. 올 초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한 차세대디자인리더에 선정된 데 이어 겹경사를 맞은 그는 “오랫동안 꿈꾸었던 일이라 정말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해마다 밀라노 가구박람회에 가서 자료를 모아 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왜 여기서 주인공이 못 되고 이렇게 박수만 쳐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언젠가는 꼭 작품을 내고, 상도 받겠다고 결심하고 작년에 첫 도전을 했지요. 이번이 두 번째 출품인데 꿈을 이루게 돼 정말 뿌듯합니다. 올해는 차세대디자인리더에 뽑혀 그 지원을 받은 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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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밀라노박람회에서 받은‘Young & Design’상 상패. |
그는 이번 전시회에 책장 외에도 ‘송 버드(song bird)’라 이름 붙인 새 모이 주는 도구와 라탄 소재의 의자도 선보였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긴 이 의자는 지난해 플라이우드 소재로 만들었던 것을 천연 라탄 소재로 변형해 출품한 것. 편안하면서도 뛰어난 곡선미로 현지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의 출품작 중 책장은 현재 이탈리아 유명 가구업체인 사미에서, 뫼비우스 의자는 미국의 사무용 가구업체인 허먼 밀러가 생산을 검토 중이다.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가구디자인의 길에 들어섰다. 처음에는 가구디자인 사무실에서 일하다 최근에는 직접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3년 전부터는 계원조형예술대학에 겸임교수를 맡아 사업과 강의를 병행했지만, 올 초부터는 사업을 접고 강의와 작품 활동에만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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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밀라노박람회에 출품한 책장‘플러그드 퍼니처(Plugged Furniture)’. 현재 이탈리아 회사와 프로젝트 진행 중. |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대로만 디자인을 하다 보니 너무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을 버는 쪽으로 갈 것인가, 나의 가치 혹은 가구 디자이너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쪽을 택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죠. 멀리 보면 아무래도 그쪽이 맞는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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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배열할 수 있는 아베크 시리즈. |
회사를 정리한 후 그의 집은 작업실이 되었다. 미혼으로, 혼자 살고 있는 그의 집은 인테리어 잡지에서 금방 튀어 나온 듯 감각적이다. 무엇보다 곳곳에 놓인 독특한 인테리어 소품들이 눈길을 끈다.
낚시줄을 이용해 허공에 매달린 듯 연출한 스탠드, 카메라 삼각대와 필터박스를 이용한 재활용 조명, 퍼즐 조각처럼 생긴 식탁, 어떻게 세워 놓느냐에 따라 높낮이와 모양이 달라지는 벤딩 스툴(의자) 등 그가 직접 만든 제품들은 빛나는 상상력으로 가구와 발명품의 경계를 가볍게 허문다. 밀라노박람회 때도 그는 모든 참가 디자이너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과제 수행에서 단연 돋보이는 아이디어로 큰 박수를 받았다.
“똑같은 티셔츠를 디자이너들에게 한 장씩 나누어 준 뒤 마음껏 디자인해 보라는 것이 공통 과제였어요. 모두들 티셔츠에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으로 자신의 감각을 드러냈는데, 저는 그걸 적당한 크기로 접고 지퍼를 달아 가방을 만들었어요. 이게 우리나라 TV에도 소개되면서 ‘살 수 없느냐’는 문의가 많아 한동안 애를 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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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에 아로마 향을 넣을 수 있게 디자인한 명상용 등. |
아이디어의 원천을 묻자 그는 “특별한 노력이 있다기보다는 그동안 살아온 경험, 일상생활에서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내가 갖고 싶은 혹은 쓰고 싶은 물건에 대한 생각이 모두 어우러지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고는 “어렸을 때 과학을 좋아했고, 대학 때까지도 프라모델 만드는 걸 즐겼던 게 ‘조금’ 도움이 되기는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가구디자이너로서 그가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는 의자. 그는 “어렵기는 하지만 디자이너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어 좋다”며 “보면서 즐겁고, 사용하면서 즐거운 의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의자에 대한 관심은 집안 곳곳에 배치한 다수의 의자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거실, 베란다, 주방 등에서 눈에 띄는 것만도 무려 10여 개. 디자인과 컬러도 다양하다. 직접 만든 것도 있고, 소장하기 위해 구입한 것도 있다. 외국 유명 작가의 작품도 여러 점이다. 이 가운데는 고물상에서 개당 2000원에 모두 5개를 세트로 구입한 한 영국 작가의 작품도 있다. 플라스틱 소재에 프레임이 단순해 폐품 취급을 받고 있던 것이 마침 그의 눈에 띄었던 것. 실제 매장에서 10만 원 이상에 팔리는 제품이라고 하니, 대단한 횡재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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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에 지퍼를 달아 만든‘T Bag’. |
“수집이라기보다는 참고자료라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디테일을 보기 위해 구입하거든요. 옷이 보는 것과 입었을 때 느낌이 다른 것처럼 의자도 마찬가지예요. 보기에는 참 예쁜데 앉으면 불편한 것들이 있어요. 물론 미학적으로 만족스러우면 그런 불편쯤은 용서가 되지만요.(웃음) 저는 의자가 단순히 앉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장식하는 하나의 오브제로서 시각적 만족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컬러나 소재, 디자인 등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그건 작품이라기보다 그냥 의자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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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Play Ground’. 안양예술공원 내에 영구 설치된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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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출품했던‘고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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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조명 위에 푹신한 스펀지와 패브릭을 씌워 쓰임새가 다양하도록 만든 제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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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부부 디자이너 ‘찰스 앤 레이 애임스’의 작품을 보여 주었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라며 이런 의자들을 보면서 명품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고 한다.
“비싸고, 몇몇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명품이 아니라 이렇게 시간을 초월해 모든 사람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진정한 명품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저기 있는 의자도 덴마크의 프리츠 한센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제품이거든요. 출시된 지 52년 됐는데 지금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어요. 아마 여기저기서 많이 보셨을 거예요. ‘짝퉁’이 엄청나게 나와 있거든요. 전 세계적으로 모조품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은 그 회사에서 시중에 팔리고 있는 모조품들을 전부 모아 전시회를 한 적도 있어요. 5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찾고, 갖고 싶어 하는, 그런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제일 부럽죠. 저도 언젠가는 꼭 그렇게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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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소재인 라탄으로 만든 뫼비우스 의자. |
이번 수상을 통해 그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된 오세환 교수. 현재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생산을 타진 중인 뫼비우스 의자와 책장은 어쩌면 그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설령 무산되더라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외시장 문을 두드릴 계획이다. 내년 밀라노박람회에도 또 한 번 참가하기 위해 기획안을 준비 중이다. 별다른 지원도 없이 혼자서 박람회 참가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일이 때로는 버겁기도 하지만 그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로서, 해외시장 개척은 해마다 배출되는 수많은 신입 가구디자이너들에게 보다 넓은 길을 열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