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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본문: 창 35:1-7
제목: 엘벧엘
1. 엘엘로헤 이스라엘 제단에서 일어나 올라가야 한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창33:20)
‘엘엘로헤이스라엘’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뜻이라고 성경 난하주에 나와 있다.
하나님 이름 ‘엘’이 두 번 들어가고 자기 이름 ‘이스라엘’이 나란히 들어가 있다.
밧단아람에서 라반 삼촌 밑에서 20년을 섬기고 일가를 이루고 큰 재산을 형성했다.
20년 만에 만난 형 에서에게 세일로 올라가리라 약속해 놓고
야곱은 그곳에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막들을 세우고 숙곳이라 이름하였다.
그곳에서 자기 좋을 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제단을 쌓고 만족하였다.
‘엘엘로헤이스라엘’ 제단은 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 완벽해 보인다.
종교적 의무를 다하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것 같았다.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제단 이름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창 34장에서 큰 재난이 벌어지고 만다.
하나님이 그 제단과 예배를 받으셨다면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마도 그 사건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만족하고 계속 거기에 머물렀을 것이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아직 야곱의 개인 이름이었을 뿐이다.
민족이 형성되어 민족의 이름으로 불려지기 이전이었다.
‘나의 하나님’이 아니고 자기의 대명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이
어쩐지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은 부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아직 이스라엘은 12지파로 형성된 이스라엘 민족을 일컫는 이름이 아니었다.
아직 부인 넷에 열두 아들과 한 딸을 가진 야곱의 다른 이름이었다.
하나님은 아직 그를 높이지 않았는데 스스로 높인 것 같다.
사울이 아말렉을 물리치고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 것과 같다.
내 좋을 대로 내 편안한 곳에 남들이 알아주는 곳에,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자리 잡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자기 이름을 높이며 제단 이름을 짓고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이 받으실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을 본다.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 디나가 세겜의 추장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결혼을 강요받는다.
이에 시므온과 레위가 할례를 조건으로 약속하였다가 그들이 할례를 행하고 불편할 때에
쳐들어가 남자들을 다 도륙하여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사로잡고 재산을 강탈한다.
야곱은 이로 인하여 보복을 당하고 멸망 당할까 두려워 떤다.
엘엘로헤이스라엘 제단과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셨다면 그 재난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제단을 쌓은 직후 일어난 것을 보면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가?
그 일 후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것을 보면 더욱 분명해 보이지 않는가?
하나님은 아무곳에서나 드리는 제사와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그 이름을 멸하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 예물들을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신12:2-8)
11절에도 같은 말씀이 나오고, 그 이후 계속해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가서
예물과 십일조를 드리고 예배하며 그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큰 문 넓은 길로 가고 있다.
그곳이 과연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한 곳’인지 묻지 않는다.
그곳에 예물과 십일조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면 받으신 줄로 알고 거기서 복을 구한다.
세상이 알아주고 나도 높여지고 자랑스런 곳에서 근사한 예배를 매주 드렸는데,
그곳이 엘엘로헤이스라엘 제단이면 어쩌나?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과 제사를 폐하시고 말았다.
예수님이 가르치기도 하셨던 헤롯 성전도 돌 위에 돌 하나 남김 없이 폐하셨다.
그곳을 주님은 ‘장사하는 집’이라 하셨고 ‘강도의 소굴’이라 하셨다.
그 종교지도자들을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맹인들”이라 하셨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1-24)
제단이 다 제단이 아니고 교회가 다 교회가 아니고 선지자가 다 선지자가 아니다.
엘엘로헤이스라엘 제단인지, 엘벧엘의 제단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곳인지, 강도의 소굴 장사하는 집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의 계명을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셨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하셨다.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는 기갈의 시대가 벌써 되었다.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5)
이 가르침의 전통은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에 의해 회복되었다가
다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가르치는 사사시대로 중세시대로 돌아가고 말았다.
대부분의 유명 신학교들은 현대신학을 가르치지 이 가르침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
19세기의 스펄전은 자기 교회에 신학교를 세우고 오직 청교도 신학만을 가르친다고 하였다.
2.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갈아입어야 한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창35:2)
디나의 불행과 할례 살인과 약탈의 재난을 겪은 후에야 야곱은 깨달았다.
엘엘로헤이스라엘 제단을 쌓을 때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방 신상들을 지닌 채, 정결하게 하지도 않고, 의복을 바꿔 입지도 않고 예배한 것이다.
현대 교회와 예배들이 과연 이 엘엘로헤이스라엘 제단과 닮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마음 속 우상들을 그대로 지닌 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도 않고,
옛 사람과 그 행위들을 새 사람의 그것으로 바뀌 입지 않은 채 예배하고 있지 않는지 말이다.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힘을 다해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있는가?
재물을 권력을 명예를 자녀와 가족을 성공과 출세를 그렇게 사랑하고 섬기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우상인 것이고 이방 신상들을 그대로 지닌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는 거듭나기 전에는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지만,
이제는 빛의 자녀가 되었으니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
우리의 소망은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천국을 사는 것이고, 이 땅에서 천국을 살아야 한다.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주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
주님 다시 오실 때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어야 한다.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흠없게 보전되어야 한다.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다고 했다.
사람들이 보고 있고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속이 깨끗해야 겉도 깨끗해진다.
바리새인들은 겉은 깨끗하였지만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채웠다.
맹인된 인도자들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켰다.
박하와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더 중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져야 한다.
말씀으로 살 때 거룩해지고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거룩해진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이 없으면 거룩함의 실천이 없으면, 위선자가 될 뿐이다.
벧엘로 올라갈려면 의복을 바꿔 입어야 한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의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3:9-10)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이면, 옛 것은 지나가고 새 것, 새 피조물이 되었다.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것이다.
그 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것이다.
옛 사람과 그 행위는 우리의 타고난 성품과 행실이요 세상에서 형성된 것들이다.
이제 거듭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한 사람들은 그것들을 헌 옷 벗듯 벗어버려야 한다.
새로운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기 때문이요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식까지도 새로워져야 한다.
그것이 성화요 그것이 주님의 형상을 입고 그 형상을 따라 사는 것이다.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고난의 연단을 견디게 하신다.
그 끝에 가나안이 있고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있고 축복과 형통이 있다.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의복을 바꿔 입어야 벧엘로 올라갈 수 있다.
엘벧엘 제단을 쌓을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신다.
3. 엘벧엘의 제단을 쌓아야 한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창35:3)
외동딸의 수치와 피비린내 나는 살인과 보복당할 두려움을 경험한 후에야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를 만나 주셨던 곳 벧엘로 올라갈 것을 결단했다.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떠났다.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꿔 입고 말이다.
하나님은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함으로써 추격하는 자들이 없게 하셨다.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다.
벧엘은 야곱이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곳이었다.
환난 날에 응답하시고 축복하신 곳이었다.
우리도 벧엘로 올라가서 엘벧엘의 제단을 쌓고 엘벧엘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쌓은 제단 엘엘로헤이스라엘은 자기를 예배할 뿐이다.
그 제단은 자녀의 불행과 흑암의 재앙들을 불러오고 지켜주지 못한다.
하나님이 내 환난 날에 나타나시고 나를 만나 주신 곳 벧엘로 올라가야 한다.
이방 신상들, 마음 속 우상들을 버리고 묻어 버리고,
자신을 깨끗이 하고, 옛 사람과 그 습관들을 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신 새 사람을 입고 올라가야 한다.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도 아닌 곳,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을 찾아 올라가야 한다.
그곳에서 예물과 십일조를 드리고 예배하며 주신 복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해야 한다.
영과 진리로 참되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
두 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여서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곳,
문이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도 적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곳,
그곳이 엘벧엘 제단이요, 하나님이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한 곳이다.
엗벧엘의 제단으로 가서 그곳에서 예물과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은 받으시고 축복하신다.
그러나 벧엘에서도 우리가 우상을 버리지 않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않고,
의복을 바꿔입지 않으면, 엘벧엘에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엘엘로헤이스라엘에 머물고 만다.
여러분이 속한 제단은 어떤 곳인가? 엘엘로헤이스라엘인가? 엘벧엘인가?
우상을 버리고 거룩하고 새 사람으로 살라고 가르치고 권면하는 곳인가?
긍정의 힘을 가르치고 위로하며 높여주며 축복과 형통을 강조하는 곳인가?
모든 지혜로 가르치고 권면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울려고 하는 곳인가?
쉬운 몇 가지만 하면 성공하고 형통하고 복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 곳인가?
지옥은 말하지 않고 천국만을 말하고, 저주는 말하지 않고 축복만을 말하는 곳인가?
성경을 읽어놓고 단상에서 자기 얘기 세상 얘기 세상 지혜와 학문을 늘어놓는 곳인가?
성경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인 줄 알고 거기서 보화와 진주를 캐내어 줄려고 하는 곳인가?
이 물음들에 답해 보면 내가 쌓는 제단이 엘엘로헤이스라엘인지 엘벧엘인지 알 수 있다.
디나와 형제들의 불행과 야곱의 고난이 어디로부터 왔는가?
내가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겠느냐고 베드로 사도는 말씀한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답다고 하였다.
같은 고난 같지만 엘엘로헤이스라엘 제단으로 인하여 오는 고난인지,
엘벧엘의 제단으로 인하여 오는 고난인지 분별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벧전2:21)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고 하였다.
엘엘로헤이스라엘의 제단을 쌓다가 오는 고난은 죄로 인한 것이요,
엘벧엘의 제단을 쌓다가 오는 고난은 선의 연단이요 소망을 이루는 고난인 것이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엘엘로헤이스라엘 제단과 예배로 만족하다가 저주를 받게 된다.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를 가르치고 받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오직 엘벧엘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시기 바란다.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갈아입고, 벧엘로 올라가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