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악인이 한번 타면 영원히 내릴 수 없는 지옥행 수레
-악인은 누구이고, 지옥은 어디인가
결혼 한 달 전, 갑작스레 사라져버린 약혼녀. 사라진 그녀를 뒤쫓는 과정에서 알게 된 그녀의 진실. 그녀의 모든 것은 가짜였다! ‘화차’란 일본 전래동화에 나오는 표현으로 악인이 한번 타면 영원히 내릴 수 없는 지옥행 수레를 뜻한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여주인공이 저지른 악행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 때문에 결혼에도 실패하고, 아이도 잃고, 자신의 몸마저 팔아가며 생활고에 허덕였지만 아무것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생활은 더 힘들어지기만 했다. 그랬던 그녀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다른 사람으로 사는 일..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살기위해서 그녀는 다른 여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다른 여자가 되기 위해 그 여자를 없애야만 했다. 그녀의 이러한 선택은 행복해 지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행복해 질 수 없었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녀가 행복해 질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화차’는 원래 1992년 미야베 미유키의 일본 소설 원작이다. 2011년 일본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영된 적이 있고 2012년 한국 영화로 제작되었다. 소설은 92년에 초판이 발행되고 2012년에 완역본이 발간되기 까지 4번의 증보판이 있었다.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4번이나 수정, 보완되어 재출간 되고, 영화·드라마로 까지 만들어 진다는 것은 이 시대의 사회상을 잘 담고 있고, 여러 사람에게 널리 읽혀질 가치가 있다는 뜻이라 생각된다. 영화 ‘화차’와 원작 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인물에 있다. 원작 소설은 극중 남자주인공의 사촌형인, 사라진 여주인공을 쫓는 형사의 시점위주로 서술된다. 반면 영화 ‘화차’는 여주인공을 사랑한 남주인공의 시각에서 서술된다. 이는 이야기 전개에 ‘사랑’이라는 한국인이 공감하기 쉬운 정서를 가미시켜 관객들의 몰입을 수월하게 한 감독의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사랑하는 약혼녀이지만 파헤쳐지면 질수록 그녀의 실체는 충격적이다. 멜로와 스릴러의 접목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화차’에는 사회적 구조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던 여주인공의 모습이 잘 묘사 되어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 그 빚을 오롯이 떠안은 젊은 여자. 세상은 더욱 살기 좋아졌고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경제는 어려워졌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 졌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빚을 청산하기 위해서 다른 여자의 인생이라는 가면을 쓰기 전, 그녀는 여자이기에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경험해야 했다. 주인공이 남자였다면 상속받은 마이너스 재산인 빚을 갚아 나가는 여러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여자였고,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원치 않게 끌려가서 몸을 팔고 매일 밤 다른 손님을 맞는 상품이 되어야 했다. 그 결과 그녀는 원치 않는 아이를 가졌고, 또 원치 않게 아이를 잃었다. 우리가 꿈꾸고 동경하는 모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일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두운 면이 우리사회의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두운 모습들을 외면하려고 하는 것 같다. 내 일이 아니니까, 어두운 모습은 보기에 힘드니까. 감독은 이 작품에서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못 본 체 넘어가버리는 사회구조의 어두운 면을 관객들에게 직접 보여주려 노력한다. 보여만 주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극단적인 결말까지 제시한다. 우리가 외면하려고 애쓰는 면들은 사실상 대단히 있을 법 한 일들이다. 원작 소설의 열린 결말과는 다르게 극단적인 결말을 제시함으로써 관객이 조금이나마 사회구조의 어두운 면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경계심이 생기게 되었다면 감독의 의도는 잘 전달 된 것이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자본이 기반이 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행복해 지기 위해서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하고, 행복해 지기 위해서 좋은 집에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행복은 꼭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닌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내 가정을 지키고, 나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일 것이다. 영화에서 여자주인공은 행복 하고 싶었고, 행복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고, 끝끝내 행복할 수 없어서 죽음을 맞이했다. 사실상 영화 내에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자주인공은 결국 죽음을 맞이했고, 남자주인공도 사랑하던 여자를 잃었다. 그럼에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지나온 삶을 반성할 수 있는 거리를 한 가득 선물 받고 돌아오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것이 영화 ‘화차’의 진정한 의의가 아닐까.
참고문헌: 소설 ‘화차’, 미야베 미유키(박영난 옮김), 시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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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 ‘화차’
첫댓글 원작소설과 영화를 비교하여 내용거리가 더욱 풍성해졌으며, 여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끌어낼 수 있는 이 시대의 사회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