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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마가복음 1:29-34
예수님께서 ‘내가 이 일을 위하여 왔노라’(38)고, 누가복음에는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눅4:43)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오셨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하는 일이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30세가 되셔서 시작하셨습니다. 공생애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 요단강으로 나가셔서 먼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해변을 지나가시면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와 야고보와 요한을 불러 제자로 삼으셨습니다(17; 20). 이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셔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귀신들린 자에게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이러한 소문이 곧 바로 온 갈릴리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그리고 시몬(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셨습니다(31). 저물어 해가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님께 데려오니 다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참으로 권세있는 가르침과 초자연적인 이적의 연속이었습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의 하루의 일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셨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른 새벽부터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부지런하셨습니다. 부지런한 자의 시간과 게으른 자의 시간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가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새벽 아직 날이 밝기 전에(미명)’이란 아직도 어둠이 깔린 이른 새벽입니다. 어쩌면 지난밤에도 찾아온 많은 병든 사람들을 고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벽 아직 날이 새기도 전에 일어나셔서 하나님과 은밀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어떠한 기도를 하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실 병 고치는 것이나 귀신을 쫓아내는 이러한 이적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각성시키는 수단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이적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에 관심을 갖도록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인기와 영광을 누리면서 메시야 사역을 수행하도록 유혹하는 사단의 시험을 물리치기 위하여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사람들의 인기와 영광을 누리게 함으로써 고난의 길을 피하도록 계속적으로 유혹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원 사역을 수행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예수 생애 가운데 여러 번 기록되어 있는 일상적 행동 중에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바쁘셔도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셨습니다.
성공을 했다는 사람들의 특징이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새벽기도를 누가 만들어 이 고생 시키느냐’고 ‘온 세계 교회가 안하는 새벽기도 안해도 좋다’고도 했답니다. 목회사역 중에서 새벽 기도가 가장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새벽잠을 깨고 일어나는 것은 어렵고 힘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새벽기도는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벽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하셨습니다. 한국교회는 새벽기도를 합니다. 성도들이 새벽마다 성전에서 기도합니다.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우리나라가 크게 복 받은 것은 새벽기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새벽 3시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제가 전도사 때 울산 미포교회에 청빙을 받고 이사도 하기 전 몇 주일은 토요일에 가서 주일을 지키고 월요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현대조선소 정문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추운 겨울 이른 새벽에 서로의 얼굴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둠이 깔렸을 때 현대조선조 직원들의 출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떼를 지어 새까맣게 나와서 정문으로 들어가는 수 천 명을 보았습니다. 사장이나 간부는 일반직원들보다 더 일찍 출근을 한다고 합니다. 현대조선소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합니다.
아침형 사람이 있고 저녁형 사람이 있습니다. 아침형 사람은 대부분 성공하지만 저녁형 사람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게으릅니다.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는 성도들은 대부분 건강하고 사업도 잘 되고 자녀들이 정상적으로 자라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늦잠자고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되는 일은 없습니다. 자신의 건강도 지키지 못합니다.
예수님서는 새벽 기도하시면서 성경 어디를 보아도 제자들을 깨워 같이 기도하자 하신 적이 없습니다. 제자들은 내버려두시고 혼자 조용히 빠져 나오시어 기도하셨습니다. 새벽기도는 강제적이 아니라 개인 스스로 하도록 자유에 맡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하면서 여러 사람을 괴롭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홀로 조용히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 하셨습니다. 은밀한 중에 하나님과의 밀담을 하시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는 남들이 보는 데서 하기 보다는 조용히 하나님과 만남으로 깊은 사귐을 가지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일과는 매일 바쁘셨습니다. 지난밤에도 늦게까지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느라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리셨을 것입니다. 어디를 가시든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피하시거나 물리치지 않았습니다. 목자 없는 양같이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찾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손길을 펴주셨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이시고, 병든 사람은 고치시고, 죽은 사람은 살리셨습니다. 그 바쁜 중에 잠깐 기도하시기 위하여 저들을 피하시기도 하셨지만, 무리들은 그곳까지도 따라왔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과 중에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기 위하여 바쁘게 일하셨습니다. 본문에도 기도하시는 데까지 제자들이 와서 ‘모든 사람들이 주를 찾나이다’(37)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초창기 갈릴리 사역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열광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곳까지 제자들이 찾아와서 사람들에게도 돌아가시자고 예수님을 재촉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그들에게로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38)고 말씀하시고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많은 병든 사람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이 고쳐주시기를 바라고 기다리고 있다는 데 예수님은 그들에게로 가시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을 사양하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갈릴리로 가셔야만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사람들을 위로하셨고 보호도 하셨지만 결코 그 일에 의존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배척한다고 괴로워하시거나, 멀리한다고 해서 섭섭해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는 데에도 마음을 빼앗기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데도 그들에게로 가시지 않으시고 다른 곳으로 가셨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에 대한 답은 ‘내가 이 일을 위하여 왔노라’(38)고 하셨습니다. 같은 내용의 말씀이 눅4:43에는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이란 하나님께서 하라고 세상에 보내신 일입니다. 물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에게 귀신을 쫓아내주는 일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보내신 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일보다 더 큰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가버나움에 찾아온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예수님께 기대했던 것은 메시야 왕국을 세우는데 필요한 기대감이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들도 역시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마을로 가자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기다리고 있는 가버나움에 가셔서 사람들에게 영웅적인 대접을 받는 것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환영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복음 전하시는 일을 하시는 것이 바로 주님의 일과였습니다. 이 일을 위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나는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일을 위하여 이 땅에 보내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 땅에 보내실 때 무엇인가를 해야 할 일을 하도록 보내신 것입니다. 아무른 목적도 없이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다른 일 다 해봐도 별 수 없어 가장 하기 쉬운 일이라 마지못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하나님께서 일을 하도록 보내셨다는 것을 알면 그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일을 하므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한다고 말합니다. 동물과 같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목적과 일치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의 목적은 ‘사람을 섬기려 오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찍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일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 일을 하셨습니다. 쉴 사이도 없이 음식 잡수실 시간마저도 없이 그 일을 위해 최선을 다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다 하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불과 3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라고 보내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실 일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심히 전도하셨고 나머지 일을 제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이 자라게 하는 일은 제자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을 자라게 하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만 하시고 십자가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실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실수는 내가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자녀들을 키우는 일도 부모로서 할 일까지만 하면 그 다음은 자녀들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녀들의 일도 끝까지 부모가 다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을 이것뿐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며 그리고 자녀들이 할 것입니다. 내가 더 맡으려고 하니까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철없는 제자들을 그대로 놓아두고 가실 때 얼마나 불안하셨으면 하나님께 의탁해 놓으시고 그냥 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전도하시는 일을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 무엇을 하기 위해서 왔습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보내셨을까요? 물론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하도록 보내시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마다 각각 다른 일들을 하도록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라고 보내신 그 일을 다 하고 살았다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처럼 성공적이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슨 일을 하도록 보내셨는지를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패를 하고 불행하게 살다가 죽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일찍 하나님께서 하라고 보내신 것을 알고 그 일을 하므로 자신은 말할 것도 없을 뿐 아니라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까지도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셨을까요? 하나님께서 하라고 보내신 일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모르신다면 지금이라도 기도하셔서 하루라도 빨리 아셔야 합니다. 그 일을 아셨다면 그 어떤 일보다 그 일을 최우선적으로 하셔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다른 그 어떤 것도 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자신을 기다리는 그들에게로 가지 않으시고 갈릴리의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고 전도하셨습니다.
나를 이 일을 위하여 보내셨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을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뿌리치고 내가 할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무엇을 하려고 왔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무엇을 하라고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섬김을 받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우리도 남에게 나누어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약한 자들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그 일을 다 하고 세상을 떠나는 날 우리도 예수님처럼 ‘다 이루었다’라고 말하며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 일을 위하여 왔노라’. 우리 모두 그 일을 다 하시고 ‘다 이루었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