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벽을 처절히 깨우치다
상상이 지나치면 현실감각이 무너진다.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다보면 사회의 시선이나 규율, 규칙, 도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하루빨리 돈을 벌어야한다는 조바심에 휩싸였고, 거기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정해진 선에서 벗어나고야 말았다. 그것은 바로 가출이었다.
보통 청소년들의 가출을 보면 가정의 불화, 친구들의 꼬드김 같은 이유가 존재한다. 허나 필자의 가출에는 뚜렷이 드러나는 계기도 없었다. 그냥 무작정 사업자금을 벌어보겠다며 집과 학교를 훌쩍 떠나 거리로 나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철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때까지는 필자가 세상의 주인공이며, 밖으로만 가면 내가 노력하는 데로 무슨 일이든 성공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필자는 그런 생각으로 간단한 옷가지와 함께, 그동안 한푼 두푼 모아뒀던 돈을 들고 무작정 세상으로 나갔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명확한 대책도 없었다. 필자는 길거리에 비치된 사랑방, 교차로 같은 무가지를 집어 들고 구인란을 살펴보았다. 다른 동네에 있고, 숙식제공에 무조건 돈을 많이 주는 곳이면 족했다. 그런 조건은 수십 개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릴 줄만 알았다. 필자는 곧장 공중전화기로 달려가 신문에 나온 구인란에 적힌 곳에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구인란 보고 전화 드렸는데요, 일 할 사람 구하신다고 해서요.”
“네, 나이는 어떻게 되십니까?”
“18살인데요.”
“아 죄송하지만, 미성년자는 안 됩니다!”
생각해보니 필자는 미성년자에 학생의 신분이었다. 그런 것 상관없이 어디서건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달랐다. 결국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수십 군데 전화를 해봤지만 고등학생을 써준다는 곳은 찾지 못했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말았다. 밤이 되자 가출을 했다는 사실에 퍼뜩 겁이 났지만, 이미 학교를 빠졌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한 번 뽑은 칼 무라도 베야 한다는 심정이었다. 별수 없이 근처의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찜질방에서 하루를 보낸 후 필자는 다시 일을 구하기로 했다. 전날 잠들기 전에 생각했던 대로 이번에는 나이를 속이기로 했다. 그러자 금새 일이 구해졌다. 음식배달원을 구한다는 족발집으로 갔다. 족발집 사장은 필자를 보자마자 혹시 다른데서 일해본적은 있느냐고 물어왔다. 솔직하게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하자 사장은 본론으로 들어가 일당을 제시했다. 액수는 둘째 치고 당장 일을 하는 것이 중요했음으로 필자는 흔쾌히 수락하고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배달의 기수’로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오토바이에 철가방을 싣고 이집 저집을 달렸다. 그렇게 기대해왔던 일을 시작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일당을 주고, 더 많이 배달하면 추가로 돈을 또 준다고 해서 미친 듯이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렇게 하루를 일하니 만 오천원을 줬다. 하루 평균 사오십 군데를 돌렸는데 수중에 떨어진 돈은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일했다. 온 몸이 피곤해질 정도로 일했는데도 모인 돈이 십만 원도 안됐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을 하기에는 이걸로는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래저래 계산을 해봐도 몇 년을 일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다른 배달원을 따라 아침 일찍 신문배달도 뛰기로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 빼고는 음식 배달로 동네를 구석구석 잘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신문배달도 큰돈이 되지 않았다. 신문배급소에서 학생이라는 사실을 들켜버려서, 돈도 다른 사람보다 적게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막상 돈을 벌어보니, 돈을 버는 일이란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힘든 일은 다 하는데 돈은 결국 사장이나 소장에게 가지, 필자한테는 거의 오는 것이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해 보고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음식을 배달하고 신문을 배달하는 일로는 절대로 큰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배달로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기에 당장 다른 일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족발과 보쌈을 배달하며, 틈틈이 좀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곳을 물색했다. 그러던 중 동네의 어떤 건물에서 웨이터를 뽑는다는 전단이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숙식제공, 그리고 적지 않은 월급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당장 그곳에 전화를 걸었다. 술집사장은 이것저것 물어보지도 않고 저녁쯤에 가게로 찾아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배달을 하는 도중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요란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술집에 들어섰다. 어두컴컴하고 요란스런 불빛이 깜박이는 술집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장차림의 한 아저씨가 허리 숙여 ‘어서 옵쇼’ 라고 인사를 건넸다. 얼떨결에 마주 인사를 건넨 필자는 그 아저씨에게 웨이터 전단을 보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안쪽으로 들어가 다른 아저씨를 데리고 왔다. 굉장히 험악하게 생긴 인상의 아저씨였다.
그는 이곳의 지배인이라고 말하면서 언제부터 일할 수 있냐고 곧장 물어왔다. 족발집 배달원 일을 하던 도중이었지만 어차피 일당으로 일을 해왔기 때문에 필자는 당장 내일부터 일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내 목소리가 맘에 들었는지, 지배인은 그럼 다음 주부터 나와서 일하라고 말했다. 순식간에 채용이 된 것이다. 한 번쯤은 의심을 해볼 만한 일이건만 원체 절박했던 터라 필자는 그 제안을 넙죽 받아들였다.
필자는 그대로 족발집에 돌아가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곧바로 짐을 챙겨 나왔다. 당연히 신문배달도 그만뒀다. 돈을 더 많이 주는 곳이 생겼으니 거기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필자는 술집에서 제공하는 웨이터 복장을 입고 어두컴컴한 술집 입구에 서서 손님들을 받았다. 손님들을 위해 안주를 나르고 술을 따르고 담배 심부름에, 가게 청소까지 도맡아서 했다. 만취한 취객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몹시 고됐지만, 중간 중간 팁도 받고 정신없이 바쁜 터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했다. 급격한 환경변화에 내가 가출했다는 사실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필자는 하루하루 월급을 기대하며 묵묵히 시키는 일만 열심히 했다.
내가 술집 바닥을 밀걸레로 닦으며 시간을 보낼 무렵, 집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었다. 어머니는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온 동네를 샅샅이 뒤져가며 필자를 찾아다녔다. 학교가 발칵 뒤집힌 것은 물론이며 경찰서의 전화기는 매일 불이 났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친분이 있는 고위급 경찰들에게 필자를 찾아줄 것을 부탁하고, 밤이면 차를 몰고 이 동네 저 동네로 필자를 찾아 나섰다. 부끄럽고 속상해서 속이 다 타버렸다고 한다.
어느 날, 평상시대로 웨이터 복장을 하고 숙소를 나서 술집에 들어서는데, 입구에 경찰이 서있었다. 경찰 옆에는 지배인이 오만상을 찌푸리고 필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험악한 그 얼굴로 ‘박규남!’ 하면서 이름을 부르는데 필자는 나도 모르게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사이 경찰 한 명이 다가와 내 어깨를 붙들었다. 순경아저씨는 내게 “야! 너희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 이제 집에 가자!”라고 말했다. 그제야 필자는 모든 게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술집에서 나와 지배인과 함께 숙소로 짐을 찾으러 되돌아갔다.
지배인 아저씨는 내게 온갖 욕을 하면서 미성년자를 쓰면 가게 정지 먹는데 너 때문에 망했으면 좋겠냐, 너가 미성년자인줄은 전혀 몰랐다, 그 사실을 경찰에 잘 이야기 하지 않으면 혼내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필자는 너무 무서워서 그동안 일한 돈을 달라는 말은 꺼내보지도 못하고, 알겠다고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만 해야 했다. 웨이터 옷을 벗고, 원래 내 짐을 찾아 경찰차를 탔다.
경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왠지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다. 약 2주 동안이었지만, 정말이지 세상이라는 곳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그리고 필자를 걱정하고 찾아다닌 가족이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경찰차는 우리 집에 도착했다. 경찰차에서 내리니 어머니가 눈물이 그렁거리는 얼굴로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맨발로 밖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