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신암공소
1962년 설립
관할본당: 신풍성당
전북 김제시 용지면 신암길 77-4
신암공소는
1961년 12월 31일 한센인들이
익산시 왕궁면 소재 국립익산병원(구 익산소생원)에서
신암마을과 용수리 비룡마을에 분리 이주 정착한 자립의 터전에 있는 신앙공동체이다
신암공소에서 3명의 김옥주(프란치스코), 김평안(마르코),
이상훈 (가시미로) 수사를 배출하기도 했다
52. 용지공소
1956년 설립
관활본당: 신풍성당
전북 김제시 용지면 용지로 664
용지공소는
한국전쟁으로 가족을 북에 두고 남한을 찾아 군산항에 내린
황해도 은율 실향민들이 모인 곳이다
1955년 이병근 분도 원장이 여섯 명의 신자를 사무실에 모아 주일 참례를 하다가
김제 요촌성당(전 김제본당)에 보고 함으로써 용지공소가 되었다.
53. 백자공소
1909년 설립
관할본당: 신풍성당
설립 당시에는 전동성동 관할이였고,
이 후 김제 성당(현 요촌성당)으로 이관되었다가,
신풍성당 설립으로 신풍성당 관활로 이관되었다.
전북 김제시 용지면 백자1길 126
백자공소는 1899년 경 유군심(요셉) 일가족이
익산군 함라에 살다 박해를 피해 이주하여 생업으로 옹기그릇을 구웠고,
신자들이 모여들어 신앙촌으로 발전했다.
1909년 전동성당 백자공소가 설립되었다.
54. 광할공소
1931년 설립
관할본당: 만경성당
설립 당시에는 수류성당 관할
고산에 살던 박경례(루카) 형제가
1931년 간척사업이 활발했던 이곳으로 이주해오면서 교우촌이 형성되고 공소가 설립됐다.
광활공소는 1962년도에 전판술 형제가 자택 옆 소유지를 희사하면서
당시 만경공소가 소유하고 있던 기와집 한 채를 헐어 목재를 마련하고
신자들이 십시일반 봉헌금을 모아 공소강당이 지어졌다.
이후 공소는 급격히 발전해 갔고
1972년도에는 공소 종탑이 건립되고,
이때쯤에 공소 식구가 100여 명이 넘기도 했으며,
1977년도에는 공소 출신 유종환(마태오) 사제가 탄생한다.
이후 공소 목재가 헐고 건물이 낙후해지면서 1990년 공소 옆 건물을 매입
1992년도에 현재의 공소건물(47.5m)이 건립되었다
(전주교구홈페이지에서 발췌)
전북 김제시 광활면 심창로 225
55. 익산공소
1974년 4월 14일 설립
상삼례성당 관할
익산공소는 소록도에서 열심히 하느님을 섬기며 살고 있었던
13명의 한센인 신자들이 익산농장으로 이전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후정리본당(현재 삼례성당)에서 지원을 받고해서 현 공소자리를 매입하고,
1975년 5월에 기공식을 하고 6월에 익산공소가 완공되었다.
예수수도회 수녀들이 상주하면서
1984년에 개원한 성모유치원과 신자들을 돌보고있다.
전북 익산시 왕궁면 공소길 8
56. 성치(성치골)공소
전주교구의 신앙 못자리 같은 곳
1886년 설립
여산성당 관할
전라북도 완주군과 익산시가 접경을 이루고 있는 천호산 자락에 자리한
성치골 교우촌과 공소는 1839년 기해박해 전후부터 신자들이 모여 살았고
1846년 병오박해 때는 당시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가 은신해 두어 달을 지냈던 곳이다.
성치골 교우촌에서는 전주교구 김현배, 이병호, 김선태 주교와 다수의 사제들이 배출됐다.
(가톨릭신문 2018.06.27에서 발췌)
전북 익산시 여산면 태성리 184-8
지금은 종탑만 남아있다.
57. 비봉공소
1976년 설립
관할본당: 고산성당
전북 완주군 비봉면 봉비로 254
58. 수산리공소
1940년 설립
1963년도 교세통계 자료에
수산공소에 신자수가 99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전북 군산시 옥구읍 수산신기길 13 (수산리 151-122)
59. 봉동공소
1943년 설립
1943년 두화공소에서 분리 설립
1953년에 현 위치에다 공소 신축
그 이전에는 교우 가정집에서 공소예예절을 함
관할본당: 여산성당
충남 논산시 연무읍 마봉로347번길 48-2
지금은 사용을 하지않고 있다.
60. 신근리공소
1920년 설립
1897년엔 나바위 성당이 설립되고,
1920년에 공소가 설립되면서 나바위 성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1958년 여산성당이 설립되면서
여산성당으로 이관
관할본당: 여산성당
충남 논산시 연무읍 수철2길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