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 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모두가 울먹였던 그날 저녁.
2013년 8월 말러 교향곡 9번의 연주를 준비하던 서울시향의 정명훈 예술감독(이하 정명훈)에게
비보가 전해진다.문화교류차 정명훈이 북한을 방문했을때 은하수관현악단 단장인 바이올리니스트
문경진이 정치적인 이유(를 빙자한 숙청)로 총살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문경진은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특성상 훌륭한 실력을 갖췄음에도 크게 알려지지 못했던 예술가였다.
정명훈 역시 그를 매우 아꼈고 특히 자신이 이끄는 라디오 프랑스필하모닉의 은하수 오케스트라와
파리에서 합동연주를 했을때를 비롯해 기회가 될 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무대에 그를 소개했다.
그렇게 아꼈던 후배 음악가를 허망하게 잃은 정명훈은 매우 큰 슬픔에 잠겼고 하필 당시 서울시향과
준비했던 말러의 교향곡 9번은 그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곡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서울시향 단원 중에는 라디오 프랑스필하모닉과의 합동 연주때 문경진과 함께 연주했던
사람들도 있었기에 그들 역시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몇몇 단원들은 합동여누 당시 함께 맞춰 입었던 티셔츠를 연미복에 속옷처럼 덧입고 나왔다.
연주회 시작전부터 단원들에게는 애통함과 비장함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말러의 교향곡 9번은 말러 자신이 작곡 당시 느꼈던 심리적.육체적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 지나온
인생에 대한 회한.체념 그리고 미련이 전부 녹아있는 작품이다.
1악장을 지배하는 F#-E의 짧은 모티브는 이승을 떠도는 망령과 같다.
그에서 파생된 모티브들은 절규하듯 울부짖거나 꺼져가는 목숨처럼 헐떡 거리며 사라지기도 한다.
2악장과 3악장은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활발하거나 산만해서 냉소적인 웃음
혹은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와 같이 느껴질 정도이다.
흡사 '세상은 나를 위해서 술 한잔 사주지 않았어'라고 소리를 지르다 갑자기 껄껄 웃는 말러가 거기에
있는 것 같다.그리고 그 끝네 모든것을 체념하기라도 한 듯 길고 긴 한숨과도 같은 4악장이 기다리고 있다.
힘들었던 삶이 비로소 끝나가는 것을 직감한 작곡가가 자신의 마지막 남은 한방울의 힘을 쥐어짜듯
써내려건 악상으로 가득차 있는 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연주하는 지휘자와 단원들에게는 더욱 높은 수준의 몰입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어설프게 연주하려거든 아예 연주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2013년 8월,정명훈과 서울시향 단원들은 연주 직전에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곡을 연주하는 평범한 일상과 죽음의 공포느누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몇발자국 차이로 늘 곁에 있고 언제든 우리들 덮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어쨋던 이날의 연주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렇게 음반으로도 제작되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앞서 말러의 9번 교향곡에 대해 설명하면서 '죽음의 공포'라는 단어를 썼지만, 거의 울음에 가까운 감정으로
흐느끼며 연주에 참여했던 지휘자,단원,스태프들 그리고 거대한 '음악적 현상'에 기꺼이 동참한 관객들은
그 공포를 넘어 새로운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어짜할 수 없는 공포에 정면으로 , 그것도 매우 치열하게 맞선뒤 생겨나는 의지와 감사함을..
그리스인이 비극을 사랑했던 이유가 비극의 정화 효과 때문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이 음반은 2013년 8월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느낀 그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그동안 DG가 작업한 서울시향 음반에 대해 공통으로 제기되었던 답답한 음질.음색의 블렌딩 문제도
상당히 해소되었고, 섹션마다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 충실하게 강조되어 있다.
음색의 변화 또한 민감하게 잡아내 상당히 만족 스럽다.
한국 관현악 연주사에 한 획을 그었던 그날의 기록이 한층 정성스레 담겨있는 이 음반을 꼭 들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