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의 아들 김양기(金良驥 1792-1844 이전)는 부친의 솜씨를 이어
받았지만 화원으로 활동한 이력은 보이지 않는다. 도화서 화원이면
으레 맡기 마련인 궁중 회사(繪事)에 관한 기록에 한 번도 이름이
등장하기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추정컨대 그는 민간을
상대로 활동한 직업화가로 활동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더욱이 그의 시대가 되면 그림 수요가 늘어나 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 화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도 했다.(818년에 그는 부친 단원의 친필 글씨를 모아
서첩을 만들면서 기록상 처음 등장하는데 이후 조희룡이
『호산외사(壺山外史)』을 쓰면서(1844) ‘이미 죽었다’고
한 것을 보아 1810년대에서 1840년 무렵까지 활동한 것으로 여겨진다.)
김양기 <송하맹호도> 견본채색 122x40.1cm 국립중앙박물관
하지만 그가 미술시장을 상대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분명
치 않다. 그런 가운데 부산 왜관을 통해 일본에 요구한 수출
용 그림을 그려 판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 추정된다. 일본이
부산 왜관을 통해 조선 그림을 사간 것은 18세기 들어 여러 기록
에 보인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이재관 역시 부산에서
매년 그림을 사갔다는 기록이 조희룡의 『호산외사』에 있다.
일본에 그림을 판 것은 부친 김홍도도 마찬가지이다. 단원이
임희지(林熙之 1765-1820 이후)와 합작한 <죽하맹호도>는
그 대표적이다.(이 그림의 낙관에 수출용 그림에 언제나
보이는 ‘朝鮮’이란 글귀가 들어가 있다) 이를 통해 김양기도
직업화가로 활동하며 부친의 뒤를 이어 일본이 요청한 그림을
그려 판 것으로 보인다. 그와 같은 사례로 여길만한 그림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호랑이 그림 <송하맹호도>로 여기에는
‘朝鮮 金良驥’로 적혀있다.
김양기 <송하맹호도> 견본담채 91.0x55.0cm 일본 유현재
일본의 유현재(幽玄齋)컬렉션에도 같은 제목의 김양기 그림이
있다. 다른 점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랑이가 단원식으로
소나무 옆으로 호랑이를 그린 것이라면 유현재 것은 큰 소나
무가 드리워진 바위 절벽 위에 흰 눈을 번뜩이는 호랑이를 그린
그림이다. 호랑이만 크게 그리는 단원식 구도와는 크게 차이 나
지만 먹선 위에 붓을 위에 점을 찍어 바위 결을 나타낸 모습
등은 단원느낌이 없지 않다.
이 그림의 낙관에는 ‘朝鮮’이란 단어는 보이지 않고 다만 ‘肯園
(긍원)’이란 호만 적혀있다. 그러나 유현재 컬렉션은 일
본에서 전해진 조선그림만을 수집한 것임을 감안하면 이
그림 역시 대일(對日) 수출용 그림 중 하나였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이 호랑이 그림 왼쪽에 칠언고시의 일부가 적혀있
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壯哉非熊亦非貙 장재비웅역비추
目光夾鏡當坐隅 목광협경당좌우
橫行妥尾不畏逐 횡행타미불외축
顧盻欲生仍躊躇 고혜욕생잉주저
웅장하도다, 곰도 아니요 또 이리도 아닌데
눈빛을 두 개의 거울같이 빛내면서 한 모퉁이에 앉아있네
꼬리 늘어뜨리고 멋대로 다니며 사람이 쫓아도 두려워하지 않고
돌아보며 떠나려 하다가도 여전히 우물거리고 있네
이 시는 왕안석이 호랑이 그림을 보고 지은 「호도행(虎圖
行)」의 첫 부분이다. 시의 내용대로라면 북송시대에 이미
호랑이 그림이 그려지고 감상됐다는 사실이 된다. 구한말까
지 그려진 까치호랑이 그림의 기원이 북송시대로 거슬러올
라가는 단서를 제공하는 시이기도 하다. 이 시의 설명에
따르면 왕안석이 구양수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를 지어
그를 탄복시킨 시라고 한다. (김양기 그림 속 제시의 마지막
부분에는 원래 시의 ‘去’자와 달리 ‘生’자가 적혀있다)
그런데 이 시를 가지고 그린 화가가 김양기 이외에 또 있다.
김양기 보다 한 세대 뒤에 활동한 화원화가 유숙(劉淑 호는
惠山, 1827-1873)이다. 그 역시 단원화풍을 계승한 화가로
손꼽히는데 그가 그린 중에 왕안석의 「호도행」시 구절을
써서 그린 시의도가 있다.
유숙 <포유양호> 저본담채 54.2x34.4cm 간송
간송미술관에 있는 유숙의 <포유양호(哺乳養虎)>이다. 이
그림은 크기가 같은 또다른 호랑이 그림과 쌍을 이룬 것 중
하나이다. 단원파 화가라고 해도 이 그림에는 단원풍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유숙 자신의 화풍인 맑고 깔끔한 인상쪽이다. 바위
굴 사이에 어미 호랑이 한 마리가 두 마리의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김양기 시대도 그렇지만 이
시대가 되면 호랑이 그림에서 단원 그림에 보이는 듯한 위
엄과 위용은 보이지 않는다.
이 호랑이 그림 위쪽에 ‘山墻野壁黃昏後 馮婦遙看亦下去(산장
야벽황혼후 풍부요간역하거)’라고 적혀있다. 뜻은 ‘산속집
담이나 들판집 걸어 놓으면 해진 뒤에 풍부도 멀리서 보고
호랑이 잡으려 수레를 내려 오리라’하는 내용이다. 풍부는 춘
추시대 晉 나라 사잠으로 호랑이를 잘 잡던 사람인데 『맹자』
(진심하)에는 호랑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가 ‘팔을 걷어 부치
고 수레에서 내렸다’는 구절이 나와 그 내용을 가져다 쓴 것이다.
유숙 <심곡쌍호> 저본담채 54.2x34.4cm 간송
그런데 이 그림과 짝이 되는 또 다른 그림인 <심곡쌍호(深谷
雙虎)>에는 다른 시구가 적혀있다. 이 그림은 쌍호라고는
했지만 한 마리는 범이 아니라 둥근 무늬가 박힌 표(豹)이다.
어쨌든 이 두 마리는 깊은 계곡 속에 나란히 앉아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 적혀있는 시구는
‘年年養子在深谷 雌雄上下當相逐(연년양자재심곡 자웅상하
당상축)’이다. 내용은 ‘해마다 자식을 키우려 깊은 골에 있고
암수가 위아래로 항상 서로쫓는구나’이다. 이 구절은 당나라
시인 장적(張籍 약767-약830)의 시 「맹호행(猛虎行)」에서
가져다 쓴 것 같다. 하지만 내용이 조금 다르다. 전체를 보면 이렇다.
南山北山樹冥冥,猛虎白日繞林行。 남산북산수명명 맹호백일요림행
向晚一身當道食,山中麋鹿盡無聲。 향만일신당도식 산중미록진무성
年年養子在深谷,雌雄上山不相逐。 연년양자재심곡 자웅상산불상축
谷中近窟有山村,長向村家取黄犢。 곡중근굴유산촌 장향촌가취횡독
五陵年少不敢射,空來林下看行蹟 오를소년불감사 공림임하간행적
앞산뒷산 나무가 울창해
사나운 호랑이 백주에 숲속을 거닐고
밤 되어 일신의 먹거리 찾으니
산중의 사슴 고라니 모두 숨을 죽이네
해마다 깊은 골짜기에서 새끼를 키우고
암수 모두 산에 올라 쫓지 못 하네
산촌 부근 골짜기에 굴이 있어
늘 마을에 내려와 누런 송아지를 채가지만
오릉의 소년 감히 쏘지 못하고
하릴없이 숲 아래 와 행적만 살피네
유숙이 인용한 구절은 ‘雌雄上下常相逐(자웅상하상상축)’이지만
원문은 ‘자웅상산불상축(雌雄上山不相逐)’이다. 원시대로 한다
면 암수가 산에 올라 쫓을 수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사나운 호랑
이가 산촌마을 근처에 출몰하며 어린 송아지를 채가지만 그 사나
움으로 인해 감히 사냥할 생각도 못한다는 시 전체의 내용을 고려
하면 치명적인 착오라고도 보인다.
유숙이 사나운 호랑이 암수보다 해마다 새끼들을 키운다는 것을
내용을 먼저 생각하고 그렸다면 별문제이다.
내침 김에 호랑이 그림 하나를 더 소개하면 우스꽝스러운 모습
때문에 <까치호랑이>란 제목이 붙어버리고 만 마군후(馬君厚,
19세기중반활동)의 호랑이 그림이다. 이 그림은 단원에서
김양기를 거쳐 내려오는 이른바 소나무 옆(또는 아래)의 호
랑이 구도의 그림이다. 그런데 호랑이 얼굴 모습이 조금 희화적
으로 보이고 또 까치가 그려진 때문에 덜컥 <까치호랑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민화는 무명화가들의 독점영역이라는 점을 생각
하면 평가절하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마군후 <까치호랑이> 지본담채 32.5x25.5cm 개인
이 그림에 구절은 ‘未曾行處山先動 不作威風草自寒(미증행처
산자동 부작위풍초자한)’이다. 뜻은 ‘아무데도 가지 않았는데 산
이 먼저 떨며 위세도 부리지 않았는데 초목이 절로 움츠려든다’
이다. 그만큼 무섭고 사납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이 구절은 유명시
인의 시 구절이 아니다. 『삼보태감서양기(三寶太監西洋記)』
라는 통속소설에 나오는 구절이다. 삼보태감은 영락제때 대선단을
이끌고 해외 원정에 나섰던 정화(鄭和)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의
무용 모험담을 『삼국지연의』처럼 통속소설화한 것이다. 이 책은
1597년 무렵에 완성돼 나왔다.
그림 속의 시구로 이름난 대구를 사용한 예는 있지만 이처럼
소설에 나오는 구절을 쓴 사례는 이제까지 거의 없다. 민화에서
『삼국지연의』나『구운몽』의 각 장면을 따오는 경우가 있지만
이 경우처럼 시구처럼 사용한 예는 없었다. 시의도가 확산되는 과
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분화해가는 사정을 말해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또 이는 이 시대에 시의도가 그만큼 환영을 받았다는
사실도 뒷받침해준다 예라고도 할 수 있다.(*)
왕안석 「호동행」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壯哉非熊亦非貙 장재비웅역비추 웅장하도다, 공도
아니요 또 이리도 아닌데
目光夾鏡當坐隅 목광협경당좌우 눈빛을 두 개의 거울같이
빛내면서 한 모퉁에 앉아있네
橫行妥尾不畏逐 횡행타미불외축 꼬리 늘어뜨리고 멋대로 다
니며 쫓아도 두려워하지 않고
顧盻欲去仍躊躇 고혜욕거잉주저 돌아보며 떠나려 하다가도
여전히 우물거리고 있네
卒然一見心爲動 졸연일견심위동 갑자기 한번 보았을 적
에는 심장이 뛰었는데
熟視稍稍摩其鬚 숙시소소마기수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금씩 그
수염을 만지게 되네
固知畵者巧爲此 고지화자교위차 진실로 화공이 기교 다해 이걸
그렸음을 알겠으니
此物安肯來庭除 차물안긍래정제 그렇지 않다면 이놈이 어찌
想當盤礡欲畵時 상당반박욕화시 막 두 다리를 뻗고 앉아 그림
마당섬돌에까지 오려 들겠는가
想當盤礡欲畵時 상당반박욕화시 막 두 다리를 뻗고 앉아 그림
을 그리려 할 적 생각해볼 때
脾睨衆史如庸奴 비예중사여용노 다른 여러 화공들을 종처럼
神閑意定始一掃 신한의정시일소 정신 가라앉고 마음 안정되자
흘겨보며 하인처럼 여겼으리라
神閑意定始一掃 신한의정시일소 정신 가라앉고 마음 안정되자
비로소 한번 붓 휘두르니
功與造化論錙銖 공여조화론치수 그 결과는 조물주의 솜씨와
큰 차이가 없네
悲風颯颯吹黃蘆 비풍삽삽취황로 처절한 바람 산들산들
누런 갈대에 불고
上有寒雀驚相呼 상유한작경상호 위 편에는 추워 뵈는 참
새들 놀라 짹짹 우네
槎牙死樹鳴老烏 사아사수명로오 앙상한 죽은 나무에는 늙은
까마귀 울고 있는데
向之俛噣如哺雛 향지면주여포추 나무향해 몸굽혀 부리로 쪼기
를 새끼에 벌레먹이는 듯하고
山墻野壁黃昏後 산장야벽황혼후 산속집 담이나 들판집 벽에
해진 뒤에 걸어 놓으면
馮婦遙看亦下去 풍부요간역하거 풍부도 멀리서 보고 호랑이
잡으려 수레를 내려 오리라.
(참고: 『고문진보』金學主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