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는 다른 보호자를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요한 14,16)
오늘 복음 말씀은 이번 주간 계속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마지막 고별사입니다. 요한복음서에는 세 개의 고별사가 있습니다. 13장 31절에서 14장 31절까지의 첫 번째 고별사, 15장 1절에서 16장 4절까지의 두 번째 고별사, 그리고 16장 4절에서 33절까지의 세 번째 고별사로서, 오늘 복음 말씀은 바로 이 세 번째 고별사 말씀입니다. 제자들을 두고 떠나야만 하는 예수님, 아직 예수님을 향한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제자들의 믿음이 견고치 못하고 예수님이 전하는 하느님 나라의 진리를 다 깨닫지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은 그저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이 오늘 복음의 다음 표현 안에서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요한 16,12)
물가에 내 놓은 어린 아이마냥 제자들이 그저 안쓰러워 불안한 예수님의 마음, 그래서 하나라도 더 일깨워주기 위해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 말씀을 건네시지만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가르침을 감당할 믿음도 용기도 턱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 같은 부족함과 안타까움에도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실 진리의 영이 제자들을 더욱 강인한 믿음과 용기로 이끌어 줄 것을 믿으며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진리의 영, 곧 성령을 약속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이 같은 약속의 말씀을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 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의 말씀을 인용한 오늘 복음환호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는 다른 보호자를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요한 14,16)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 그 사랑이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고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면 제자들은 결코 세상에 버려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청해 보내주실 보호자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사랑이 계속하여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이 같은 진리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이 전한 이 같은 하느님 사랑에 관한 진리를 오늘 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모습 안에서 똑같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테네로 간 바오로는 그곳에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복음을 선포합니다. 이미 다른 신을 섬기고 있던 아테네 사람들에게 바오로는 왜 하느님을 믿고 따라야 하는지,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 진정 메시아이심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하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 17,28)
오늘 독서의 이 말씀에 잠시 머물러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바오로가 말한 그대로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살고 우리의 모든 활동은 하느님 안에서 움직이는 몸짓이며,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느님 안에서 비로소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불가분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이 같은 관계성을 오늘 복음의 표현에 빌려 이야기하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고별사를 남기며 약속해 주신 진리의 성령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 주시듯이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숨 쉬고 살아가며 존재한다고 바오로는 역설합니다. 내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 그리고 나의 뜻과 의지 그 모든 것이 하느님과의 긴밀한 관계 안에서, 아니 하느님과의 절대적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우리 안에 이미 계신 하느님,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우리가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사도 17,27)
우리는 보통 우리가 하느님을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이 잘 찾아지지 않으면, 하느님이 내 곁에 없다고, 하느님이 나와 함께 해 주지 않으신다고 불평하며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오늘 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하느님은 이미 우리 곁에, 아니 우리 안에 존재하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며 인식하지 못할 뿐이라는 사실. 우리가 세상의 많은 것들에 우리 마음이 쏠리고 우리의 눈과 귀가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저 높은 것이 아닌, 세상의 이것저것에 정신 팔려 하느님을 보지 못할 때, 마치 우리들은 하느님과 숨바꼭질을 하듯 이미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더듬거리며 찾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오늘 독서의 이 말씀을 꼭 마음에 새기고 곰곰이 되새기며 내 마음 속 하느님을 찾으려 노력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하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 17,28)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안에서 숨 쉬고 살아가며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손을 뻗어 그 분을 찾으려 하는 것, 내 가까이에 이미 와 계시는 그 분을 찾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처럼 아버지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 주시며 오늘 영성체송의 말씀처럼 우리 안에서 무수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이 같은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 하루 여러분 곁에 와 계신 하느님의 흔적을 찾아가는 그리하여 내 안에 오신 하느님을 만나 열매 맺는 하루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는 다른 보호자를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요한 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