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술집을 찾아가던 늦은 저녁,
신설동 개천을 끼고도 얼마나 어둡던지
가로등 하나 없어 동행은 무섭다는데
내게는 왜 정겹고 편하기만 하던지.
실컷 배웠던 의학은 학문이 아니었고
사람의 신음 사이로 열심히 배어드는 일,
그 어두움 안으로 스며드는 일이었지.
스며들다가 내가 젖어버린 먼 길.
젖어버린 나이여, 오랜 기다림이여,
그래도 꺾이지 않았던 날들은 모여
꽃이나 열매로 이름을 새기리니
이 밤길이 내 끝이라도 후회는 없다.
거칠고 메마른 발바닥의 상처는
인파에 밀려난 자책의 껍질들,
병든 나그네의 발에 의지해 걸어도
개울물 소리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다.
오늘은 추위마저 안심하고 인사하는
구수한 밤의 눈동자가 빛난다.
편안한 말과 얼굴이 섞여 하나가 되는
저 불빛이 우리들의 술집이겠지.
가진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미련의 극치라고 모두들 피하는데
그 세련된 도시를 떠나 여기까지 온
내 몸에 깊이 스며드는 신설동의 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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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님이 도미를 결심하게 된 동기는
공군 군의관 시절인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입장을 표명하여
장교임에도 불구하고 심한 고문을 받아 한국을 떠났다고 합니다.
지인을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를 찾아가는 "신설동의 밤길"
육체가 아프면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육체가 아프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건강(建康)"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몸이나 정신에 아무 탈이 없이 튼튼함」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마 마종기 시인님은 육체의 병과 마음의 병을 함께 치료를 하신 것 같습니다.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말에 귀기울여 들어주며 위로하고
또 사랑과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돌보아 주시지 않으셨을까?
요즈음 코로나-19 특히 오미크론이 급속도로 확산되어
많은 사람이 격리되어 홀로 지내고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지며 아퍼지기 쉽지요.
어려운 시기이지만 철저한 예방으로 슬기롭게 잘 극복하시어
마스크 벗고 환하게 웃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소망합니다.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