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 차은혜
가마솥이 내게 온 것은 십삼 년 전이다. 집을 짓고 정원을 꾸미며 가마솥의 자리를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정원 한구석이 그의 자리다. 남들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지만 나름 알맞은 자리라 생각했다. 심술쟁이 바람도 막아 줄 담장이 둘러쳐 있고, 멀리 가지 않고 쉽게 땔감을 공급할 수 있는 나무창고가 있으며, 언제든 씻을 수 있는 물이 있는 곳이다. 부엌처럼 지붕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비바람이 치면 고스란히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어려움은 있으나 그쯤은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도 했다.
두 해 전만 해도 지인들이 오면 한 번쯤 그의 커다란 품 안에 무언가를 삶아 내야만 풍요롭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도 휴무다. 코로나로 인해 서로 안부만 물어볼 뿐 만나는 것이 두려워 꺼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만이 있는 집에서 굳이 사용할 필요성이 없으니 그냥 방치한 상태다. 가끔 문안 인사하듯 가보면 엉망으로 변해간다. 속은 벌겋게 녹이 슬어있고, 뚜껑은 몸통에 착 달라붙어 온 힘을 다 동원해야 마지못해 열린다. 반들거려야 할 얼굴이 뿌옇게 온통 버짐이 번져 있다. 가끔 휴짓조각이나 잡다한 쓰레기를 태우다 보니 겨우 궁둥이만 그슬리는 정도다. 한때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어 내곤 했다. 오리나 닭백숙을 끓일 때는 쉼 없이 입김을 뿜어대어 얼굴과 몸을 흠뻑 적시곤 한다. 그 덕에 기름칠한 듯 윤기가 번지르르하다. 윤기가 흐르는 그를 보며, ‘새침하니 잘생겼다. 기생 오라버니 같다’라며 칭찬이 많았다. 그는 뜨거운 불에 의해 태어났다. 천육백 도의 펄펄 끓는 온도에서 쇳덩이를 녹여 만들어졌다. 그는 불이 없으면 존재 가치가 없다.
예전 시골집에서는 가마솥이 부엌 안방 벽면에 기대어 하나도 아니고, 서너 개가 나란히 자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저마다 크기가 조금씩 차이가 있어 맡겨진 임무도 다르다. 제일 큰 것은 물을 데우는 일이나 여물 삶는 거다. 간혹 많은 양의 고구마도 삶는다. 중간 크기는 밥을 짓는 것이고, 조금 작은 것은 국솥이다. 일어나면 제일 먼저 아궁이의 재를 치우고 불을 피워 물을 데운다. 하마처럼 입을 활짝 벌리고 있는 아궁이에 나무를 쑤셔 넣고 불을 피우면, 아궁이에선 금방이라도 삼킬 듯이 연기가 밀려 나와 달려든다. 부엌은 열기보다 연기로 가득 채워져 눈을 뜰 수가 없다. 숙모는 앞치마를 훌떡 제겨 얼굴을 감쌌다. 눈물과 콧물이 흘러내리면 앞치마는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는 수건이 되기도 하고, 연기를 막아주는 방패도 됐다. 뜨거운 솥뚜껑을 열 때는 행주처럼 휘감아 들어 올렸다.
솥은 어느 것을 넣어 주어도 마다하지 않는다. 단단하고 야문 곡식도 그의 가슴안으로 들어가면 녹신하고 질펀하게 퍼져 나온다. 물 없이 깨나 콩을 볶을 때면 뜨겁다며 몸 밖으로 몰아내기도 하고, 밥이나 국을 끓일 때는 예외 없이 김을 만들어 내다가 급기야는 눈물을 줄줄 흘린다. 불이 시원찮으면 야무지게 다물고는 묵묵부답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숙모는 아궁이 담당으로 날 불러냈다. 자주 불을 지피지만, 번번이 실수다. 불꽃이 일어야 하는데 연기만 뿜어낸다. 꺼지지 않게 나무를 넣어야 하는데, 한꺼번에 넣거나 미쳐 넣어 주지 못하면 연기를 몰고 나와 시위를 한다. 민망함에 작은 소리로 변명하지만 아무래도 불 지피는 것은 내게 버거운 일이었다.
밥이 다 되어 구수한 맛이 흘러나오면 밥그릇들이 줄지어 부뚜막에 오른다. 늘 정해진 순서대로 모여지고 담긴다. 다 퍼내진 솥 바닥에는 보리밥 누룽지가 달라붙어 떼어지지 않는다. 물을 붓기 전 한 수저라도 떼어 보려고 긁지만,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이 되면 반쯤 닳아 날카로워진 숟갈이 필요하다. 부뚜막에 올라 누룽지를 긁어내어 나누어 먹는 것은 소소한 기쁨이다.
부엌의 한쪽은 나뭇간이고, 깊숙한 안쪽 한 모퉁이에는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이는 수다방이다. 예전엔 부엌은 여자들만의 공간이었다. 남자들이 혹여 들락거리기라도 하면 그것이 떨어진다거나 못난 사내라고 내몰았다. 여자들만의 공간에서 우리의 아낙네들이 울고 웃는 곳이 부엌이다. 가끔 숙모는 가마솥 뚜껑을 수없이 문질러 대며 눈물을 훔치곤 했다. 꽃다운 스무 살에 시집와 끼니때마다 걱정하던 숙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빈 아궁이 위에 앉아 있는 가마솥만 바라보며 애꿎은 부지깽이만 나무라듯이 부뚜막만 토닥였다.
어쩌다 아궁이에 불을 넣고 밥을 짓는 날은 숙모의 얼굴이 화사했다. 솥뚜껑을 열면 흠씬 퍼진 보리들이 널브러지듯 퍼져 있고, 보리 한편에 살짝 올려진 쌀은 뿌연 김 속에서 하얗게 빛났다. 보리 속에 얼굴을 반쯤 묻고 숨어 있는 감자는 매일 다르게 느껴졌다. 겨울이면 밥 한 그릇 쏟아 넣고 물 한 바가지 부어 끓였다. 그 겨울밤은 너무도 길었다. 고구마로 밥을 짓든, 봄나물로 죽을 쑤든, 무채를 넣어 무밥을 하든 가마솥은 말없이 응해 주었다. 허기진 가족의 배곯음으로 밥을 지어도 가마솥은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는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우리 가족은 가마솥의 흘러내리는 눈물을 바라보며 심성을 키웠다.
지금 나는 끼니 걱정을 하진 않는다. 가마솥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지핀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그리움에 젖는다. 비록 용도의 변화가 있다 해도 함께 굶주렸던 숙부, 숙모, 사촌들이 그립다. 지금 숙부님이 살아 계신다면 가마솥에 씨암탉이라도 몇 마리 푹 삶아 함께 뜯어 볼텐데…. 오늘도 가마솥 앞에서 가족의 이야기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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