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란 무슨 뜻인가?
불자라면 대부분 '일체유심조'란 말을 한번씩은 말해 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체유심조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알고 쓰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는 것 같아서 그 의미를 설명하고자 글을 올립니다.
인터넷에 일체유심조에 관해서 검색해 봤더니 한 사람도 제대로 설명해 놓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교학에 밝은 분 같은데도
'일체유심조'를 깨달음의 경계로 설명해서 글을 올린 분도 있었습니다.
일체유심조는 신라때 당나라로 유학가던 길에 의상. 원효스님이 행여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원효스님이 밤에 갈증나서 마셨던 물이 아침에 일어나서 해골바가지물이었음을 알고는 구토를 하게 된다.
여기서 원효스님께서는 밤에 갈증 나서 마셨던 달콤했던 물이 아침에 해골바가지물임 알고는 구토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一切唯心 造)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게송을 읊고는 당나라 유학길을 중도에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오게 됩니다.
心生則 種種生法 (심생즉 종종생법)
心滅則 龕墳不二 (심멸즉 감분불이)
三界唯心 萬法唯識(삼계유심 만법유식)
心外無法 胡用別求(심외무법 호용별구)
마음이 일어나면 곧 여러가지 법(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면 곧 감(감실 ㅡ신주를 모시는 사당을 말함) 과 분(무덤)이 다르지 않네.
삼계(욕계.색계.무색계)가 오직 마음이요.
만법(만물)은 또 오직 식(識)에 의거한 것이네.
마음 밖에 아무 법(현상)도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것이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를 나타내는 게송인 것이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어떠한 과정에서 쓰여지게 되었는지 그러한 내용을 안다면 일체유심조를 깨달음의 경계로 이해하지는 않았을텐데~
'일체유심조'란 지어낸 마음이 허망한 경계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일체유심조' 라고 말하면서 그 의미를
'세상일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식으로 해석하고 자주 인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는
즉 '만물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 내어서 본다.' 는 뜻입니다.
마음이 지어낸다는 것은
곧 업식(業識)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업식대로 세상만사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업식(業識)이 만들어낸 경계이지 경계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또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는 문구에 나무도 있고 하늘도 있고
온 세상이 눈에 다 보이고 있는데
왜 대상이 없다고 하느냐면서 화를 내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수행이 깊으면서 교학에도 밝은 스님들이 유식무경(唯識無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아왔습니다.
설명해 드리면
"유식무경이 그런 의미였군요." 라고 하십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나
유식무경(唯識無境)를 이해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아서 예를 들어서
쉽게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17년전(2002년)에 꿈을 꾼 것을 예를 들어서 일제유심조(一切唯心造)를 설명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꿈속 장면
천년도 넘어 보이는 큰나무 아래로 좌우로 누군가 두 사람과 함께 내려 오는데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뒤로 돌아보니까 한 비구스님이 결가부좌로 공중으로 날아와서 아주 아주 큰 천도복숭아 나무에서 천도복숭아를 따서 던져 주었는데 내가 받아서 보니 천도복숭아 크기가 신생아 머리통만한 크기였으며 빚깔이 너무 붉고 탐스러웠다. 가슴으로 안았다.
그래서 좌우 일행에게 저 스님을
만나 보고 가자하면서 왔던 길을 다시 올라갔다.
암벽 같은데 구멍구멍으로 들어가니 불상들이 놓여 있었다. 석굴이었다.
아무리 석굴 여기저기
찾아 돌아다녀도 결가부좌로 날아온
그 스님은 찾지 못하고 어느 석굴에 들어가니
한 스님이 새벽예불을 하고 있길래
일행 보고 내가 말을 했다.
"아무리 찾아도 그 스님은 찾을 수 없으니 아침예불이나 하고 내려 갑시다." 라고
하면서 예불에 참석해서 예불 마치고 나자.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나서 꿈속에서 본 장소가 아무래도 한국은 아닌 것 같아서
중국 용문석굴인가 싶어서
유투브로 꿈속 장면을 찾아보니
석굴 모양은 비슷한데
큰 나무가 없고 석굴앞에 강물이 흘러서 꿈속의 장소와 달랐다.
다시 운강석굴을 검색하니 꿈속 장면과 같았다.
큰 석불하고 큰 나무가 있는지 상세히
검색해 보니
수천년된 나무로 '신비의 나무'라고 하고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운강석굴 꿈을 꾸고 꿈속 장면들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을 했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꿈이라는 것도 업식(業識)작용이기 때문에 어떤 잠재의식. 무의식작용으로 이런 꿈을 꾸게 된 것인지를 분석해 보았다.
불교대학에서 유식학을 강의할 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유식무경(唯識無境) 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 운강석굴 꿈 꾼 내용을 이야기 하였더니
바로 한 불자 학생이 말했다.
"교수님 그 꿈은 태몽 꿈입니다.
그 꿈을 팔지 그러셨어요" 했다.
또 다른 한 불자는
"선생님은 전생에 천상에서 살다가 내려온 것 같습니다".
이 불자는 천도복숭아가 천상의 과일을 상징한다는 것을 아는 불자라서 이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또 다른 불자는
선생님 그런 꿈은 복권을 사야 하는데
"복권을 사지 그러셨어요."
또 다른 사람은
그 복숭아를 먹었어야 하는데~
또 위빠사나 수행하는 한 비구승은
'선생님 도화과를 증득하셨군요.'
이렇듯 하나의 꿈 이야기를 듣고서 모두가
자신에 훈습된 업식(業識)대로 꿈 해몽을 했습니다.
대상은 꿈 하나일뿐인데
이렇듯 각자의 업식대로 여러가지 법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심생즉 종종생법(心生則 種種法生)
이러한 것이 바로 일체유심조, 즉 모든 것은 마음에서 지어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고 한다.
어떤 마음을 일으키는데 어떤 대상에서 결정되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의식. 무의식에 훈습된,
즉 자신의 업식대로 대상을 보고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꿈 꾼사람 나의 어떤 업식으로 이런 꿈을 꾸었을까를 알아 보겠습니다.
17년전 상황부터 알아 봐야겠지요
그 당시 조계종 사태로 조계사에서 현집행부스님들과 개혁파스님들간에 싸움이 벌어지면 어떤 스님이 목탁으로 어떤스님 머리를 쳐서 이마에 피가 질질 흐르는 장면이 매스컴을 타고 생중계 하다싶이 온통 뉴스거리가 되고 있을 때였다.
전세계로 방영되면서 불자로서 한국불교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였다.
어떤 스님이 나와서 이 사태를 정리해주길 간절히 바랬다.
그 당시 대구 보현불교 아카데미 참선 요가 선원을 운영할 때
매주 목요일 7시에
성유식론〈成唯識論〉강의를 하면서
색계십팔천( 色界十八天)에 대해서 강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러한 그 당시 상황에서 제六識의 념심소(念ㅡ기억) 작용에 의해서 잠재의식에 훈습된 것이 꿈으로 발현하게 된 것이다.
어떤 심리작용으로 이런 꿈을 꾸었을까요.
운강석굴 장면은 전생의 무의식 작용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현생에는 중국에 가 본적이 없으며
운강석굴을 사진으로도 본적이 없었다.
중국 삼대 석굴이 돈황. 용문. 운강석굴인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
그런데 꿈 속 장면이 현존하고 있는 운강석굴 모습과 똑같다는 것은 전생에 비구승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아뢰야식에 저장되고 훈습된 것이 꿈속으로 나타났을 것이리다.
그런데 결가부좌로 날아다니는 것은 무엇일까?
티벳밀교 요가 수행의
고대 기록에 밀교수행자들은 결가부좌로 날아다녔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운강석굴 비구승일 때 티벳밀교 수행한 수행자였던가??
아뢰야식에 저장된 기억이 무의식에서 꿈으로 나타난 것이리라.
천년이나 넘어 보이는 큰 나무에서 딴 천도복숭아를 전생의 비구승이 현생에 나에게 던져주는 것은 어떤 심리작용에서 꿈으로 발현된 것일까?
그 당시 색계18천을 강의하면서
色界(初禪. 二禪. 三禪. 四禪) 중에
색계 三禪에서 호흡도 끊어지고 의식도 끊어진 상태에서 500년간 선정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현재 수행하면서 호흡도 끊고 의식도 끊고 선정에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이 꿈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천상의 신비의 과일을 상징하는 천도복숭아로 발현된 것이리라.
결국 이러한 꿈은 잠재의식. 무의식에서 훈습된 마음에서 발현된 것이리라.
만약 전생부터 불교 수행자가 아니었다면 석불이나 석굴에서 아침예불를 하는
그런 장면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도교나 기독교인이였다면 꿈속 장면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결국 자신의 업식따라 잠재의식. 무의식에 훈습된 마음으로 지어내어서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일체유심조>란 즉 자신의 업식으로 지어낸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원효스님이 해골바가지 물을 마셨더라도 해골이 더럽다, 무섭다, 썩은 물이다. 등등 여러가지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끝없이 일어나는 부정적 기억의 잠재의식. 무의식을 정화시켜서
부정적 에너지가 소멸한다면 해골바지물이 공함을 깨닫게 되면 여여한 마음으로 종종법생 (種種法生)을 일으키지 않게 될 것입니다.
생각으로 머리로 아무리 헤아려도 내면의 잠재의식. 무의식은 정화시킬 수 없다.
수행으로 뇌파를 낮고 느리게 해서 우뇌가 활성되었을 때만 부정적 에너지를 정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다고 하더라도 하루 단
몇 시간만이라도 수행정진 하십시요.
지어낸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업식(業識) 을 정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이 생애 무엇을 위해서 온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시면서~
사진설명
운강석굴 대불 ㅡ 북위 때 선비족의 힘을 엿볼 수 있는 불상입니다.
천년 넘은 신비의 나무입니다.
(신비의 나무에서 석불과 멀리 떨어져 있음)
운강석굴 ㅡ 꿈속에서 본 모습 그대로 모습입니다.
《이진명 차크라 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