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명예교수의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읽어보면 인생에서 친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승만 박사와 인촌 김성수 선생을 비교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박사는 언제나 친구가 없었다. 그가 아무리 위대한 정치 역량을 지녔다 해도 마침내 친구를 못 가졌기 때문에 고독했다. 그러나 인촌 같은 분은 항상 좋은 친구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일생을 보냈다. 두 분 중에 누가 더 우리 사회에 업적을 남겨주었는가는 오늘(4·19혁명 직후)에 와서는 의심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김 교수는 연세대로 옮기기 전에 중앙고에 근무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1947년 가을 학기에 중앙고에 부임해서 교사로 3년, 교감으로 3년 있으면서 인촌 선생을 가까이에서 모셨다”며 “당시 인촌 선생은 중앙고의 교주(校主), 오늘날로 말하자면 이사장이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생에서 직접 보고 배운 두 명의 은사로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인촌 선생을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부하를 사랑하고 지혜롭게 대해 주는 데 인촌 선생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며 “인촌 선생 밑에서 있었던 때가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행복했으며, 그 이후에 그런 분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고려대에서 영국사를 가르쳤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까지 이름이 올랐던 고 김성식 교수로부터 ‘인촌이 살아있을 때 야당은 분열한 일이 없었는데 인촌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야당이 한 번도 합쳐본 적이 없다’는 평가를 직접 들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인촌 선생의 인덕은 늘 제1선이 아니라 제2선에 있으면서 한번 믿고 쓴 사람을 끝까지 믿고 썼다는 데 있다”며 생전에 인촌을 알고 지낸 사람들이 거의 사라지면서 인촌이 일각에서 부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