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흐름-황성호-신부. 광주 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2021년 07월 09일(금)
1960년대 세계 가톨릭교회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 안에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교회의 본질인 사랑과 진리의 삶을 살아 낼 수 있는지 고민했었다. 그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다. 이 공의회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자기 쇄신’ ‘투명한 양심의 교회 건설’ ‘그리스도인들의 친교’ ‘세상과의 대화’라는 핵심적인 주제를 선포하였다. 이 선포는 이제 가톨릭교회가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을 향해 ‘쇄신과 적응’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읽어 친교의 교회로 나아가자고 권고했다. 세상과 함께하는 가톨릭교회를 선언한 것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후 폐허에서 재건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한국 가톨릭교회는 나라의 상황을 살피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 나라의 재건과 전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돌보았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세계 가톨릭교회와 함께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함께했던 것이다.
경제 발전을 이룩해 나가려는 70~80년대의 우리나라는 그 이면에 남북으로 분리된 현실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했었다. 열려 있지 않은 사회, 투명하지 못한 정치적 꼼수들에 의해서 수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했었다. 많은 사제들과 주교들께서 사회의 불안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정치적 박해를 받았던 이들의 대변인이 되었다. 당시 명동성당은 핍박받는 이들의 마지막 피난처였고, 민주화의 성지였다.
이때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87년 6월 명동성당으로 피신했던 학생들을 정부 관계자들이 체포하러 오자 엄중히 꾸짖어 돌려보내면서 하셨던 말씀이다. “맨 앞에 당신들이 만날 사람은 나다. 그리고 내 뒤에 우리 신부들이 있다. 당신들은 나를 밟고, 신부들을 밟고, 수녀들도 밝고 넘어서야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바보’라는 별명을 가지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용기를 아직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이것이 바로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야기한 가톨릭교회의 본질적인 정신이다.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는, 세상과 함께 걷는 가톨릭교회의 지향인 것이다.
90년대 말의 IMF로 인한 경제적 몰락과 함께 밀레니엄의 시대가 다가왔고 현재에 이르렀다. 경제의 발전과 몰락을 순회하면서 우리의 삶은 ‘돈’이라는 거대한 괴물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가고 있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은 이미 우리 삶을 파고들었고, 노예로 전락해 버린 경우도 허다했다. 지금 이 시대의 흐름은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고, 천박한 자본주의의 폐단에 가톨릭교회가 어떻게 세상과 함께할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 시대에 가톨릭교회가 어떻게 쇄신하고 적응해야 하는지를 식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셨다는 복음 말씀이 떠오른다. 거룩한 땅이라 불리는 예루살렘은 성지에 맞는 역할을 해야 했었다.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과부와 어린이들을 돌보아 주며, 병자들과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치유와 위로를 해주어야 하는 하느님의 거룩한 땅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었던 기득권자들은 더 이상의 착취할 것조차 없는 이들을 쥐어짜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를 아셨던 예수께서 거룩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던 것이 아닐까?
코로나 시대,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되는 시대인 지금, 가난한 사람들은 빈곤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쇠사슬에 묶여 벼랑 끝에 서 있게 되었다. 지금 시대의 흐름을 가톨릭교회는 읽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세상과 함께 살아갈지를 식별해야 한다. 물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지금 가톨릭교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지금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 시대가 잃어버린 인간의 본질적인 소중함을 되찾도록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