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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의 <인연> 끝은 이렇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마치 주문처럼 입끝에서 맴돌던 이 구절이 나이들면서 가뭇없이 지워지고 김영도의 <인연>이 오롯이 다가왔다. 부처님께서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그 끝도 좋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김영도의 세번째 인연은 피천득의 그것과는 다르다. '세번째 역시 아름다웠다.'
김영도의 첫사랑은 10대 중반 대동강변에서였다. 20대 초반 명동거리에서 만나 짧게 재회했고 전쟁통에 헤어졌다. 그리고 세월은 구순에 다시 만났다. 두번째 만남이 우연이라면 70년 세월이 흘러 세번째는 인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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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의 <인연>이 나에게서 사라졌고, 사라졌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감수성이 풍부했던 청춘이 지나가서이겠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세계를 만나서일 것이다. <산(山) 세계> 역시 사춘기 시절의 <여자>를 향한 에네르기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하나가 등장하면 과거는 퇴장해야 한다.
많은 알파인 에세이를 탄복하며 읽었다. 그 중에 제법 몇구절을 읇조릴 수 있는 건, 김영도의 1990년 작『우리는 산에 오르고 있는가』의 일편 '한권의 산 책'이다. 산서와의 인연을 그린 이 글은 피천득의 <인연>과 비슷한 구조를 띠어 이해하기도 쉬울 뿐더러, 산에 깊이 알지 못하는 이라도 충분히 공감할 내용이기 때문이다.
평양고보시절 그에게 다가왔던 첫사랑은 곧 산악계와의 지난한 인연맺음의 첫걸음이고 하다. 이 이야기는 위에서 말한 '한권의 산 책'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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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나는 평양에서 당시 5년제였던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평양의 산들은 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았다. 나는 이런 속에서 자라다보니 결국 중학 시절을 마칠 때까지 산을 몰랐다. 당시 학생들은 일본 책을 주로 읽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인지라 물자는 귀했고 따라서 새로 나오는 책이 드물었다. 그래서 중고서점을 순례하다시피 다니던 어느날 나는 색다른 책과 부딪쳤다. 색다르다는 건 그때까지 즐겨 사던 문학이나 철학 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름은 『山-硏究와 隨想』. 오시마 료키치(大島亮吉)라는 저자도 내게는 낯설었다. 그러나 이런 책에 눈이 간 데는 까닭이 있었다. 우선 책을 낸 곳이 당대에 이름난 출판사며, 국판 크기의 검은 크로스 양장이 풍기는 멋이 또한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런 책이 내 책장에 꽂혀 있는 품을 생각하며 책을 펼쳐 보았다.
자그마한 체구의 소년 김영도가 대동강변의 한 헌책방 앞에 서서 햇살을 등에 지고 이 책을 펼치는 모습이 상상된다. 어린 그에게 "국판 크기의 검은 크로스 양장이 풍기는 멋이 또한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런 책이 내 책장에 꽂혀 있는 품을 생각하며 책을 펼쳐 보았다."라는 구절은 얼마나 진지한 고민이었을까나.
당시 김영도의 앳띤 모습은 이렇다. 46년 경성대학 예과 입학 당시의 모습
첫머리에는 논문들이 실려 있었다. ‘동계등산과 스키 등산의 정의’, ‘암벽등반의 미래’, ‘산에 대한 편상’, ‘눈사태에 대하여’ 등 그야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재미없는 글들이었다. 나는 망설였다. 이런 책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나 나는 책을 놓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몇 장 더 넘겼다. 이번에는 수상ˑ시ˑ번역시 같은 것들이 나왔는데 그 속에 ’산장ˑ모닥불ˑ꿈‘이니 ’등성이ˑ골짜기ˑ서재‘와 같은 소품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군데군데 읽어보았다. 그리고 또 읽었다. 결국 나는 책을 사들고 책방을 나왔다.
이 책을 쓴 오시마는 1899년 태어나 게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1928년 일본 알프스의 마에호다카에서 추락사했다. 『山』은 그가 생전에 쓴 글을 그의 조난 뒤 동료 산악인들이 모아서 펴낸 것이다. 훗날 알았지만 이 책은 당시 한정판으로 나왔는데, 전후 일본에서 복고풍이 일면서 희귀본으로 엄창난 값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오시마는 대학시절 산악부원으로 활약했지만, 인간이 성실하고 산을 대하는 태도가 진지했다. 남달리 어학에 뛰어나서 일찍이 유럽 등산계를 일본에 소개하여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구미 등산가들 가운데는 산에 관한 명저를 남긴 사람이 적지 않으나, 금세기 초엽에 오시마 만큼 무게 있게 글을 쓴 사람은 없었다. 특히 등산가의 작품이 하나의 전집 형태로 남은 일은 일찍이 이탈리아의 귀도 레이와 일본의 오시마 료키치 정도가 아닌가 싶다.
‘산과 산의 대화는 바람 소리로 듣는 길 밖에 없다.’ ‘자일은 자네와 나의 마음을 묶었다.’ ‘베르그슈타이거(독일어로 등산가)는 누구나 산에 자기의 하이마트(고향)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러한 글들을 그때 오시마의 『山』에서 읽었다. 그의 글에는 여기저기 독일어가 나왔는데, 중학생인 내가 그 뜻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의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이렇게 하며 들여다본 오시마의 등산 세계는 먼 훗날 나의 산행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인연이 시작되려고 그랬을 것이다. 소년은 결국 (돈을 탈탈 털어서) 이 책을 산다. 첫사랑은 앞뒤없는 법이다. 앞뒤를 재서는 첫사랑일 수가 없다. 첫눈에 반해 첫발을 내딛어기만 하면 운명의 또다른 문은 열린다.
인터넷에 떠도는 ‘베르그슈타이거(등산가)는 누구나 산에 자기의 하이마트(고향)를 가지고 있다.’라는 구절의 출처가 어딘지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바로 김영도의 첫 인연에서 비롯한 바이다. 그에게 열린 낯선 문은 곧 산악계에 주어진 선물과 다름없다.
1945년 겨울에 나는 혼자 38선을 넘었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도 나는 옛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안국동과 충무로에 있는 고서점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시마의 『山』과 다시 만났다. 나는 빈 주머니를 털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구한 책은 6.25때 다시 내 곁에서 떠나고 말았다.
'1945년 겨울에 나는 혼자 38선을 넘었다,'라는 이 구절에서 항상 한참을 머뭇거리게 된다. 이 시기에 대해 얼마나 할말이 많았을까 싶지만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는 이 구절에서 선생의 성정을 엿본다.
극빈에 시달리며, 한치앞을 모르던 당시 서울 낯선 곳에서 '빈주머니를 털었다'라는 말은 지금과 전혀 다른 맥락일 것이다. 스무살을 갓 넘긴 나이라 감수성이 예민하고 풍부한 그에게 '빈주머니를 털' 대상은 문학과 철학이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의외의 선택을 한다. 『山』을 선택한다.
1958년 성동고 교사 시절
세월이 흘러 1970년대 초에 일본에서 『大島亮吉全集』이 나왔다. 나는 다섯 권으로 된 이 전집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김영도는 24년생이니 이때가 50 전후였을 나이다. '나는 다섯 권으로 된 이 전집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라는 말로 첫사랑과의 지난한 인연을 마치 삼팔선을 넘을 때처럼 짧게 끝맺는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여인은 대동강변에서 소년 김영도가 맞닥드렸던 첫사랑은 아님은 알고 있다. 하지만 첫사랑『山』을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거라는 예단과, 행복한 결론을 원했기에 나는 이 순간이 세번째 만남으로 갈음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김영도과 첫사랑과의 인연을 확대해석하여 "산악계'라는 공적인 인연맺기의 일환, 그 첫걸음으로 속단(?)할 수밖에 없다.
1970년 김영도는 전국 명산에 산장을 짓는 일을 맡으면서 산악계와 맞닥드린다. 이어 에베레스트 원정을 성공리에 수행하고 대한산악연맹 회장직도 맡게 되는 등 산악계의 중심에서 활동한다. 이후에도 항상 젊은 세대들과 함께 하면서 '김영도의 알피니즘'을 널리 선양하고 있다.
피천득의 인연이 '시들어가는 백합'과도 같았던 아사코와의 '세번째는 아니만났아야 좋았을 것이다' 라며 후회와 회한을 남긴다. 그러나 김영도의 인연은 정반대이다. 김영도를 통해 70년대 한국의 산악계는 어리고 귀여운 '스위트피이'에서 '목련'꽃처럼 환해졌다.
한 개인의 사적인 인연을 공적으로 해석한 이 결론도 꽤 나쁘지 않고, 그래서 꽤 행복한 인연이 아니겠나 싶다.
그러나 운명의 문은 아직 닫히지 않고 있었다. 결국 인연은 일대일이라는 지극히 '사적(私的)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다시 자그마치 40년이 흘러야 했다. 2013년, 그는 이제 구순이 되었다. 두번째 인연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수가 있다. 그러나 세번째는 그렇지 않다. '월하빙인'이 등장해야 한다.
2012년, 13년 연간 그를 둘러싼 배경은 이러하다. 안성민이라는 신입회원이 그의 앞에 나타난다. 강운구의 '설악산 너와집'에 관해 쓴 에세이로 김영도의 입에서 '안성민'이라는 이름이 거론된다.(가입한지 10년 조금 안된 나는 겨우 한번 밖에 언급되지 않음을 기초하면, 월하빙인 안성민과의 만남 역시 준비되어 있었다고 해야 할듯 싶다.) 그리고, 김영도는 2013년 초 선언을 한다. '산악인 김영도를 이제는 잊어달라. 지금부터는 20대 철학과를 갓학한 철학도로 기억해달라'라고 하면서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번역을 선언한다.
산으로 이끈 첫사랑이 산에서 세번째 인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이제 알레그로로 서둘러야 한다. 4월 김영도는 모임에서 '100년전 일본 산악계 사정(事情)'을 발표한다. 이후 안성민은 '나의 애장도서' 코너를 마련하여 모임때 돌아가면서 선보이는게 어떠하냐고 제안한다. 그리고 '책에는 항상 주인이 따로 있다'라는 생각을(남에게 좋은 일 하겠다는 생각^^ - 저도 그에게서 이 말과 함께 '설악산 너와집'을 받은 적이 있슴) 품고 있던 그는 5월 모임에 나온다. 바로 김영도의 첫사랑과 함께 말이다.
아래는 구순의 김영도와 그녀와의 세번째 인연, 그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월하빙인 안성민이 책의 표제를 보이는 순간이다.
그는 이렇게 내뱉었다. '똑같아, 똑같아...그때와 똑같아.' 첫만남에서 그녀를 이렇게 묘사했다. "우선 책을 낸 곳이 당대에 이름난 출판사며, 국판 크기의 검은 크로스 양장이 풍기는 멋이 또한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런 책이 내 책장에 꽂혀 있는 품을 생각하며 책을 펼쳐 보았다."
'야, 저 친구가 '아무도 모르라고'했던 이 여인을 어떻게 알았지?'
그녀가 품었던 이야기들. 이 중에 '산장,모닥불, 꿈'과 또 한 편은 '사람과 산'에서 펴냈던 편역서 '하늘과 땅사이'에 실려 있다.
추측컨대, 안성민은 이런 정도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이 항상 이렇게 의외의 인물이 물꼬를 트는 법이다. 다소 머쓱해하는 얼굴과 환한 미소 사이에서 그이의 손에 꼭 잡혀있는 첫사랑.
김영도는 직접 페이지를 넘기면서, 첫만남에서 자기를 설레이게 했던 그녀의 표정을 짚어준다. ‘베르그슈타이거(독일어로 등산가)는 누구나 산에 자기의 하이마트(고향)를 가지고 있다.’‘ 이말을 말을 읇조릴 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서로 동료애를 느끼는가. 산을 향한 산악인쉽이 자일파트너쉽으로 한정되기 이전의 모습은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잠간.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다른 사진을 본다.
문득 아득해진다. 만약, 대동강변에서 어린 김영도가 첫눈에 반하지 않았다면, 우리 산악계에서 그녀의 이 모습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초라해졌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문득 아득해진다. 이 구절이 펼쳐낸 장(場)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 것이다.
그러나 세번째 만남의 순간에 함께 한 나는 '김영도의 인연'의 끝을 지극히 사적(私的)인 그 무엇으로 끝맺고 싶다. 평생에 걸쳐 순정을 지녀온 그에게 첫사랑은 온전히 그의 것으로 돌려주고 싶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첫사랑의 몇구절은 '하늘과 땅사이'에 있으니 더이상 그에게서 첫사랑 이야기를 채근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환한 미소를 가진 10대 김영도 소년은,
<산서 23호> '일상성으로부터의 도피'에서 " 흔히 우연과 필연을 따로따로 생각하지만, 나는 필연이 주개념이고 우연은 종개념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적극적인 인생에서는 언제나 올 것이 온다고 나는 본다"라고 끝맺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왔다. 너무 늦지 않게.
항상 마음속에만 놓여져 있던 그녀를 아마도 오늘저녁 비단 이불로 모실 것이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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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 총무의 아이덴터티는 퓨전 빅브라더~ 동양과 서양, 현대와 고전, 알피니즘과 날라리즘, 청량산과 히말라야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비빔밥과 파스타를 기분 내키는대로 요리해놔도 모두 명품이라고 감격... 그의 사유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으니 여기까지가 그의 한계인지 아니면 여전히 그 확장성이 현재진행형인지^^
사실...몸둘바를 모르겠군요.
책에도 임자가 있듯이...[산 연구와 수상]책도 진정한 임자를 찾아 기쁠것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감동..
고문님이 이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은 정말 보기힘든 상황인데....정말 보기가 너무 좋네요....
김진덕 총무의 말솜씨가 대단합니다.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주인이 있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