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달 간 퀴즈바람이 미국을 휩쓸었다. 인기 TV 퀴즈쇼 ‘제퍼디!(Jeopardy!)’에서 32일간 연속 우승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프로스포츠 도박사 제임스 홀츠하우어(34)가 지난 3일 방영된 33번째 도전에서 새내기 에마 뵈처(27)에게 분패해 다시 톱뉴스를 장식했다. 그가 역대 최대상금 기록경신의 문턱에서 탈락하자 전 세계 외신이 토픽뉴스로 보도했다.
퀴즈가 재미는 있지만 “닦을수록 더러워지는 게 뭐냐?” 따위는 유치하다. 대체적으로 제퍼디 만큼 어렵지 않되 머리를 몇 바퀴 회전시키며 푸는 퀴즈들이 묘미가 있다. “물고기의 반대말은?” “28일이 있는 달은 몇 월?” 따위다. 정답은 ‘불고기’와 ‘12달 모두’이다. 더 재미있는 건 난센스 퀴즈다. “우리 엄마를 영어로 말하면?”의 정답은 “마이에(애)미”란다.
퀴즈는 까마득한 옛날에도 있었다. 그리스 신화의 외디퍼스는 “아침에 네발, 점심에 두발, 저녁에 세발이 되는 게 뭐냐?”는 수수께끼를 “사람”이라고 단박에 풀어 퀴즈를 낸 괴물(스핑크스)을 혼절시켰다. 성경에도 유대 용장 삼손이 사자를 맨손으로 죽인 후 이를 빗댄 퀴즈로 적국 블레셋 남자 30명과 내기를 건다. 우리 삼국유사에도 퀴즈가 기록돼 있다.
만인이 즐기는 퀴즈가 라디오와 TV의 인기 프로그램이 된 건 당연하다. 영국 퀴즈쇼 “누가 100만 장자 되길 원하나요?”는 세계 112개국에서 최고인기를 누린다. 알파벳을 선택해 감춰진 문구 맞추기를 겨루는 ‘행운의 수레바퀴’는 1975년 미국에서 시작돼 요즘도 프라임타임에 방영된다. 팝송가사만 다루는 미국 퀴즈쇼 ‘그 노래가사 잊지 말아요’도 인기다.
한국 방송국들도 각종 퀴즈쇼로 시청자들을 끌어 모은다. 그중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퀴즈’가 가장 오랜 전통과 가장 높은 시청률을 자랑한다. 1973년 2월 MBC에서 시작해 1996년 10월 중단됐지만 3개월 뒤 EBS가 넘겨받아 이제껏 이어져온다. 지난 2일 방송이 2,249회째였다. MBC의 차인태 아나운서는 이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스타가 됐다.
TV 퀴즈쇼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제퍼디’다. 가수출신 토크쇼 호스트였던 머브 그리핀(작고)이 1964년 3월30일 NBC에서 시작한 제퍼디는 1984년 소니 픽처스 TV에 넘겨진 이후 신디케이트 형태의 매일 프로그램으로 방영돼오고 있다. 알렉스 트레벡의 진행으로 35년째 이어져오며 통산 8,000회째를 넘겼다. 그동안 에미상 33회 수상의 대기록도 세웠다.
이 퀴즈쇼의 출전 지망자들은 우선 필기시험에 합격해야 한다(50점 만점에 35점 이상). 그 후 ‘제퍼디! 두뇌 버스’로 불리는 RV가 전국을 돌며 필기시험 합격자들을 모아 단체 오디션을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또 한 차례 필기시험과 인터뷰 및 모의 퀴즈게임 테스트를 치른다. 고시보다도 어려운 이 과정을 통과해도 한참 후에나 진짜 쇼에 출연하게 된다.
제퍼디는 질문과 대답이 반대로 행해진다. 진행자가 “이것은 닦을수록 더러워진다”라고 말하면 경쟁자는 “걸레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식이다. 출제범위가 엄청 넓어 지식, 상식, 잡식이 두루 필요하다. 몇년 전 “이 한국 기업의 이름은 아시아를 일으킨다는 뜻이다”라고 진행자가 말하자 경쟁자가 잽싸게 “기아(KIA)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해 내가 감탄했었다.
일리노이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홀츠하우어는 32연승을 거두고 총 246만2,216달러를 받았다. 한번에 13만1,127달러를 따기도 했다. 그가 33회에서 5만8,485달러만 땄어도 역대최고기록인 켄 제닝스의 252만700달러(2004년)를 깰 수 있었다. 그를 꺾은 뵈처여인은 오디션을 4번 치른 새내기지만 제퍼디 연구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도서관 사서이다.
제퍼디의 답을 이따금 맞혀도 순발력이 느린 나는 버스 떠난 뒤 손드는 격이다. 요즘은 파적거리로 트럼프 퀴즈들을 즐긴다. “트럼프가 좋아하는 국가(nation)는?” “트럼프가 비아그라를 먹으면?” “트럼프가 쓴 책의 특징은?” 등이다. 정답은 ‘디스크리미국(discrimiNation: 차별),’ ‘고집이 늘어난다,’ ‘13장부터 시작’(13장<챕터 13>은 파산신고 절차임)이다.
6-8-2019
첫댓글 나는 퀴즈 프로를 구경하지 못했어요. 맞는 답을 들으면서도 너무 조마조마해서. 출연자들의 스트레스를 볼 수가 없어서. 잘 하다가 탈락하는 출연자들이 불쌍해서.
그런데...오늘은 윤여춘 선생님의 칼럼이....더 귀하게 읽어집니다. 계속해서 죽- 읽고(?) 싶어서. ^^
모처럼(?) 신선한 소재를 고르셨네요. ^^ 저도 선생님의 칼럼을 계속 읽고 싶습니다.
항상 기대되는 선생님의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