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듯 흐렸던 지난 지난주 금요일 점심때 우리동네(부산 사하구)에서 1시간 거리인
거제시 외포항에서 생대구탕으로 점심후 미역국에 넣을 마른대구와 마른 물메기 사오고....,
환지본처후 백차 백모단과 말차로.....
거제 외포항
생대구탕
중국 복정시 반계진(磻溪鎭) 상해촌(桑海村) 해발 900m 리어카도 들어갈 수 없는 고산 다원에서
지난해 생산된 차로
지인이 14년 간 구입해온 차농에 지난 봄에 부탁을 드렸으나 산촌에 택배가 오지 않아
객지에 거주하는 아들이 고향에 오면 그 편에 보내주겠다고 했으나,
그마져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동네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보내오다 보니 해를 넘겨 며칠전에야 받았습니다.
백차에는 '복정대백차, 복정대호차, 복안대백차, 정화대백차, 복운 6호, 복운 595호' 차 나무 품종이 있습니다.
백차 구매하실 때 유의하셔야 할 부분은 '복정 백차' 값을 주고 '복안 백차'를 구매하는 것입니다.
'복안 백차'는 가격이 저렴하고 생산량이 많으나 시중에 '복안 백차' 이름표를 단 제품은 거의 없고,
모두 '복정 백차' 이름표를 달고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복정백차가 우수하고 맛과 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려주는 근거입니다.
백차는 찻잎이 펴지기 전에 채엽하는 백호은침,
그 뒤를 이어 채엽을 하는 백모단,
맨 나중에 채엽을 하는 찻잎을 '수미'라고 부릅니다.
사진의 차는 백모단입니다.
벡스코에서 구입한 침향을 다마스커스 침항칼로 삐져
전기향로에 훈증(태우지 않으니 연기가 없어 건강상 선호하는 편임)
2018 부산국제영화제 전 회차 매진의 화제작, 일본 영화 <일일시호일>중
빈 여백에 누군가의 마음을 담을 수 있도록 거품이 갈라져서 초승달이 보이게 격불하여야 한다는....
흉내는 내었는데, 억지로 하다보니 내마음도 못 담았네요.
<日日是好日(일일시호일)> 영화 장면중 말차
日日是好日(일일시호일)은 벽암록 제6칙에 나오는 선어이다.
벽암록 제6칙
설두스님 <本則>
擧 雲門垂語云(거 운문수어운)
十五日已前不問汝(십오일이전불문여)
十五日已後道將一句來(십오일이후도장일구래)
自代云 日日是好日(자대운 일일시호일)
거론하다.(擧) 운문(864~949)스님이 말했다.
“十五日 以前에 대해서는 그대에게 묻지 않겠지만,(雲門垂語云 十五日以前, 不問汝)
15일 이후에 대하여 한마디 해보아라.“(十五日已後, 道將一句來.)
스스로 (대중을) 대신하여 말하였다. “나날이 좋은 날이로다.(自代云, 日日是好日).”
원오스님 <評唱> 중에서
垂箇問頭示眾云 十五日已前不問汝 十五日已後道將一句來 坐斷千差不通凡聖 自代云 日日是好日
(수개문두시중운 십오일이전불문여 십오일이후도장일구래 좌단천차불통범성 자대운 일일시호일)
질문을 던져서 대중에게 설법하기를 “십오일 이전에 대해서는 그대에게 묻지 않겠지만,
십오일 이후에 대하여 한 구절을 말해 보아라”하였으니
이는 대뜸 천 가지 차별을 끊어버린 것이며, 범부이건 성인이건 관계없다.
스스로 대신하여 “나날이 좋은 날이다”라고 하였다.
十五日已前 這語已坐斷千差 十五日已後 這語也坐斷千差.....
(십오일이전 저어이좌단천차 십오일이후 저어야좌단천차.....)
垂語了 卻自代云 日日是好日 此語通貫古今 從前至後 一時坐斷
(수어료 각자대운 일일시호일 차어통관고금 종전지후 일시좌단)
“십오일 이전”이라 한 말은 이미 천 가지 차별을 좌단(坐斷)한 것이며 “십오일 이후”라 한 말 또한 천 가지 차별을 끊어버린 것이다. .....
설법을 끝내고서는 스스로 대신하여 “나날이 좋은 날이다”하였으니, 이 말은 고금을 관통하여 전후(前後)를 일시에 차단한 것이다.
※15일 이전 이후 분별심을 초월하여 본래심으로 되돌아가
오늘 지금 여기에서 번뇌 망념없이 한잔 茶마시는 거와 같은 지혜로운 삶이
'나날이 좋은 날'의 삶이다.(내생각)
※벽암록碧巖錄 : 정확하게는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圜悟禪師碧嚴錄)> 또는
<불과벽암파관격절(佛果碧嚴破關擊節)>이라 하며,. 또는 벽암집(碧巖集)이라고도 함.
송(宋)의 설두 중현(雪竇重顯, 980~1052)이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조주록(趙州錄)·운문록(雲門錄) 등에서
100개의 고칙(古則)을 선별하여 각각에 게송을 붙인 송고백칙(頌古百則)에
송(宋)의 원오 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 수시(垂示)·착어(著語)·평창(評唱)을 덧붙여 이루어졌다.
원오극근의 제자들은 스승의 강의를 1105년경부터 모아 기록하기 시작했으며
제자들에 의해 채록되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벽암록(碧巖錄)'의 간행은
1128년(남송 건염 2년) 원오극근의 제자 보조선사에 의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