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여름 처음 100km 울트라마라톤을 했다. KU(코리아울트라런너스-지금의 KUMF)에서 주최한 연습주 100km였는데 천지도 모르고 대들었다가 된통 혼이 났었다. 그러나 누가 등 떠밀어서 한 것도 아니고 어찌어찌 분위기에 휩쓸려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울트라마라톤이 나를 잡고 같이 가자 했고, 나는 순순히 그러마고 했다. 당시 겨우 완주를 하고 다시는 안한다 했지만 한 번 빼앗긴 마음 돌이키기 어려웠다. 이 후 두 세 차례 100K를 할 기회가 더 있었고 할 때마다 새로운 감동이 있었음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처음 100km를 하고 어찌어찌 참가기를 썼고 KU홈페이지 올렸었다. 작금 전주 100K에 참가하는 우리 친구들의 분위기가 클럽에 고조되고 있고, 이에 새삼 예전 글을 다시 찾아 읽어보니 새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나의 기량이 그 때보다 별로 나아진 것도 없다. 어쩔까 하다가 여기 대회참가후기에 올려 놓기로 했다. 처음 100K에 참가하는 이에게 도움이 될 내용은 별로 없는 듯하지만, 혹 심심푸리 땅콩 삼아 이런 넘도 있구나 하고 아량을 베풀어 주기 바란다.
글이 조금 길다 싶어 2편으로 나누어 올린다. 어데서 보니까 글이 좀 길어지믄 짜증내는 넘들이 있다니까. 근데 본래 울트라마라톤 후기는 울트라로 길다. 울트라 정신으로 읽어야 한다.
<100km 울트라마라톤 참가기 - 이것은 더 먼 길을 가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할 뿐(1)>
★울트라마라톤이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라는 광고의 한 문구처럼 언제부터인가 울트라마라톤이라는 단어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대체로 그런 일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2002년 9월쯤이었다. 남들처럼 달리기에 재미를 붙여 점점 빠져 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인터넷에서 마라톤 정보를 찾던 중에 R 마라톤 잡지사에서 1년 정기구독을 신청하면 울트라용 배낭을 사은품으로 준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잡지도 잡지려니와, 울트라용 배낭이 꼭 내게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바로 정기구독을 신청하였다. 마라톤을 시작하고 처음 하프를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일이었다.
곧 인터넷 KU(코리안울트라런너스) 홈페이지는 내가 자주 찾는 사이트 중의 하나가 되었다. 비록 그 곳에서 주관하거나 관여하는 어느 대회 하나도 내가 참여하기에는 아직은 너무나 먼 당신이었지만 울트라 마라톤의 생생하고 거친 호흡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실제로 그 느낌을 조금 더 가까이 느껴보기 위해 2003년 4월 어느 날에는 용인대 트랙에서 벌어진 24시간주 현장에 나가 보기도 하였다.
서울에서 밤늦게 탄 용인행 버스는 그게 막차라고 했다. 아무도 날 오라하지 않았지만 무슨 정성인지, 자정이 넘어 용인대학교 운동장을 찾아 들어갔다. 손가락을 꼽을 수 있을 만큼의 관계자들. 그 보다 더 적은 수의 주자들... 그들은 외롭게 외롭게 트랙을 달리고 있었다. 트랙 주변에는 묘하게 긴장과 느슨함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도 날 주목할 일도 없는 그 곳 어두움 속에서 나는, 트랙을 반복하여 반복하여 달리는 그들의 모습을 추위에 덜덜 떨며 지켜보다가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날 오전 태릉에서 열린 노원구 하프 마라톤 대회에 다시 참가하였다.
나는 일단 한반도 횡단에 도전하기로 목표를 세웠다. 그 도전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막연한 기다림보다는 그게 훨씬 나았다. 얼마 있지 않아 KU 홈페이지에는 100km 연습주를 시행한다는 공고가 났다. 접수 마지막 날까지 지켜보리라 하던 마음과는 달리 손길은 참가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 이상의 기록을 요구하는 참가 자격 기준에서 나는 초라하지만 그 해 5월 대전 MBC 마라톤 풀코스 기록을 하나 가지고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준 비♠
그해 여름 비가 유난히 많이 왔다. 8월에 있는 연습주에 참가하기 위한 훈련은 비와 상관없이 진행되었다. 주로 심야 시간에 집에서 멀지 않은 중랑천변 자전거 도로를 연습장소로 이용했다. 밤 열한시나 혹은 열두시가 된 시간에도 달리기를 하려고 집을 나갔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도 대중없었다. 새벽 두 시나 어떤 때는 네 시에 돌아오기도 했다. 긴 시간의 훈련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내가 몇 시에 어떤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는지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새벽마다 도둑처럼 살그머니 문을 따고 들어와서는 몸을 씻고 죽음처럼 잠을 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출근해서 일을 했다.
연습주가 계획되어 있는 8월 23일의 전날은 모임 참석차 춘천 인근의 강원대학교 연습림에 머물러야 했다. 간단한 행사가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 간에 거나한 자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가능한 한 힘을 아끼며, 어느 순간 슬며시 빠져 나와 잠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요 몇 해 사이 풍속도가 참 많이 변했다. 이제 억지로 잔을 권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기도 하겠지. 지금 우리네 나이가 몇인가.
다음날 아침 일찍 잠이 깨었다.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달리기 복장을 갖추고 신발을 꿰고 밖으로 나간다. 언제부턴가 출장 때마다 빠짐없이 달리기를 위해 신발을 챙기는 것이 이미 버릇이 되어 있었다.
산 속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유난히 싱그럽다. 임도를 따라 천천히 달려 오르면서 컨디션을 점검해 본다. 그 동안 나름대로 준비해 온 것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내리막에서는 이번 연습주를 위해 마련한 쿠션이 좋다는 A사의 신발이 발과 따로 노는 느낌을 다소 받았다. 양말이 미끄러워서 그렇겠지. 하며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 집에 돌아왔다. 그 동안 메모해둔 내용을 중심으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상의 반팔 쿨맥스 셔츠에 하의는 반타이즈. 모자와 양말과 신발. 양말은 여분으로 하나 더 넣고 상의 긴팔 타이즈도 여분으로 챙겼다. 그리고 바셀린, 휴지, 비상금, 신분증, 일회용반창고 몇 개, 필기구, 휴대폰 등. 시계는 어떻게 할까 하다가 차지 않기로 헸다. 어차피 휴대폰에 표시되는 시간으로 측정을 할 터이고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시계는 랩 타임 체크도 되지 않으니. 물은 500ml 물병 2개에 채워 사용하기로 하고, 간식으로는 찰떡 한 팩과 초코렛, 초코찰떡파이. 그리고 어디서 주워들은 대로 대형 쓰레기봉투를 사 와서 우의 대용으로 쓸 수 있도록 재단해 놓았다. 깜빡이는 이미 밧데리 점검까지 마쳤고 헤드랜턴은 밴드를 걷어내고 배낭 왼쪽 어깨 부위에 고무줄을 이용해서 고정시켰다. 준비된 물건을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다시 비닐 팩으로 하나하나 싼 후 배낭에 차곡차곡 밀어 넣었다. 물건들이 울트라 배낭에 꽉 차게 들어갔다. 1년 잡지 정기구독 신청하고 받은 그 울트라 배낭이었다.
♥정신나간 사람들♥
그 새 출발지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준비한 배낭을 메고 안해에게 다녀오겠노라고 말하며 현관문을 나선다.
"몇 시쯤 올 건가요?"
안해는 그저 여느 날처럼 내가 좀 긴 몇 시간의 달리기를 하고 밤늦게 아니면 새벽녘에 돌아오는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때까지 나는 100km 달리기에 참가한다는 말을 못하고 있었다.
" 이번엔 좀 많이 늦을 거야. 내일 아침까지 달리기를 하기로 했거든. 100킬로미터......"
나는 이제 사실을 실토한다.
"세상에......"
안해는 말을 잇지 못한다.
"아니, 누구랑요? 정신들 나갔지. 100킬로미터를. 밤새도록이라니......"
그래도 말을 하고 나니 편안하다. 빗방울은 아직도 점점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나는 우산받기를 포기하고 지하철역으로 바삐 움직여갔다.
얼마 전에 끝난 한반도 종단 달리기를 따라 불붙었던 열기와는 달리 100km 연습주 신청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분위기로 봐서 많은 사람이 100km 연습주에 신청할 줄 알았는데.... 찻잔 속의 폭풍이었나 보지. 나는 그 찻잔 속에서 세상모르고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구. 흐흐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갖지 않고 있는데 말이지." 신청까지 했다가 비가 오는 날씨가 계속되어선지 포기를 선언한 분들도 더러 있었다.
성남에 있는 지하철 야탑역에 내려 집결장소를 찾아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계속 떨어지고 있는 빗방울 사이로 배낭을 메고 달리기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끔 보였다. "이제 시작이구나." 나는 전의를 새롭게 했다.
◆나는 이방인이며 자유인◆
100km 출발 지점인 성남 제2운동장 아래 탄천변에 사람들이 모였다.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나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모여 있는 그 무리들 가운데서도 이방인이었고 자유인이었다. 그것은 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처음 시작하는 그 긴 여행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 그리고 불안한 기대를 한껏 즐기고 있었다.
연습주이기 때문에 배번 같은 것은 없었다. 코스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출발은 예정된 시간인 오후 7시에서 약 20분 늦게 이루어졌다. 자, 가자. 우르르 몰려 나가는 사람들 뒤를 따라 나도 가볍게 두 발을 움직여갔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선두권은 처음부터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 같았고, 내 뒤쪽으로도 한 무리 사람들이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물웅덩이가 많아 그 때마다 발걸음이 조금씩 주춤거렸으나 어느 새 처음 반환점인 오리교에 다다랐다. 10km 지점. 20시 24분을 내 이름 옆에 기입하였다. 초반은 대략 1시간 10분을 예상했는데 좀 빠른 걸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물을 먹기 위해 배낭을 더듬는데 방수커버가 배낭에 덮여 있었다. 웃기는군, 이걸 왜 했을까. 집에 불나면 아이대신 베개를 업고 달아난다더니, 내가 지금 그 꼴이군. 정신 차려. 나는 중얼거리며 이미 저만큼 달아나고 있는 사람들의 등 뒤에서 깜빡거리는 빛을 눈으로 뒤쫓았다.
▼아픔의 징조▼
머지않아 신발이 젖고 발이 축축해져 옴을 느꼈다. 먼저 왼쪽 발, 그리고 오른 쪽 발. 발을 내딛을 때마다 신발에서는 질척질척하는 소리가 났다. "이까짓 것 쯤이야..." 신발이 젖는 일은 늘상 있는 일은 아니지만 온전히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만 나는 발이 젖은 상태에서 달리기를 계속할 때 나타날 그 다음의 현상을 우려했다.
내 발가락이 좀 긴 편이어서 그런걸까? 언젠가 역시 비가 쏟아지던 날 밤 혼자서 30km 정도 달리기를 하는데 마지막 구간에서 새끼발가락이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살펴보니 넷째 발가락에 떠밀렸는지 물에 불은 왼쪽 새끼발가락이 납작해져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지금 그 때의 그 느낌이 오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매우 이르게. "이럴거라 생각해서 바세린도 충분히 발라 두었는데......" 상황이 더 악화되어 달리기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22km 율동공원에 위치한 CP에 도착해서 젖은 발 위에 다시 바세린을 듬뿍 발랐다.
30km 못미처 여수천 입구 다리 밑에는 공지한 것처럼 순두부를 제공하는 포장마차가 정말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곳에 도착한 순서대로 순두부가 푸짐하게 한 그릇씩 안겨졌다. 이럴 때 쓰일까 싶어 하의 뒷주머니에서 미리 넣어두었던 천원짜리를 꺼냈다. 비에 젖어 찰싹 달라붙고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서 몇 장인지 확인도 쉽지 않았다. 순두부는 조금 양이 많다 싶었는데 남기기도 뭣해서 깨끗하게 한 그릇을 비웠다.
양말을 벗어 발의 상태를 살피고 잠시의 휴식을 가진 후 여수천 위로 조금 올라가자 바로 30km CP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 기록한 시간은 23시 09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순두부를 먹으면서 좀 쉰 시간을 감안하면 그저 적당한 페이스라고 생각했다.
♥미답지를 찾아가는 길♥
앞 쪽으로 드문드문 가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웬일들인지 걷고 있다. 천천히 뛰어 몇 사람을 추월해 가다가 나도 걷기 시작했다. 사실 왼쪽 새끼발가락은 진작부터 따끔거리며 발걸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길은 이제 곧게 어둠 속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너무 많다. 이것들을 피하면서 달리기를 하는 일은 여간 성가시지 않다. 이미 발은 젖을대로 젖었지만 그래도 물웅덩이를 무시하고 텀벙텀벙 달릴 마음은 아직 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눈앞에 제법 크고 넓은 물웅덩이가 나타났다. 길 위로는 도저히 피해서 갈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보였다. 도로 가장자리, 풀이 우거진 사이로 누가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길을 벗어나 길다랗게 자란 풀숲 사이로 들어갔다. "에구, 이렇게 구차하게 가야 하다니...." 소심하게 내린 결정에 한숨을 짓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배낭을 벗고 바깥 휴대주머니의 지퍼를 내리고 비닐봉투에 싸 둔 전화기를 꺼내고 하는 사이에 전화벨은 끊어지고 말았다.
♥휴대전화기를 마련한 뜻은♥
지난 5월의 일이었다.
"당신, 휴대폰 하나 사 드려요? 생일은 멀었지만 선물로 하나 해 주고 싶은데."
틈나면 해오는 안해의 제안이었다. 출장을 가거나 퇴근 후의 시간에는 도대체 연락이 잘 안되니 갑갑할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직장에서도 개인 휴대폰을 쓰지 않고 있는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가끔은 좀 별난 인간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사실 그 동안은 꼭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계속 손사래를 쳐 왔었는데 이번에는 나도 마음을 다르게 먹었다.
"그럴까? 아무래도 하나 있는게 낫겠지? 음, 그러면 가볍고 기능 단순하고 그리고 이왕이면 GPS가 되는 거."
내심 나는 울트라마라톤을 생각하고 있었다. 울트라마라톤, 특히 서바이벌은 혼자 먼 길을 찾아가며 닥치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그 때는 휴대폰이 꼭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적어도 그 때의 휴대폰은 나의 생존을 확인시켜줄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되어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며칠 여기저기 알아보는 것 같더니 안해는 드디어 반짝반짝하는 휴대폰을 내 것이라며 꺼내 놓았다. GPS기능은 없지만 대신에 발신자 표시 서비스는 이미 신청이 되어 있었다.
첫댓글 다음편은 언제 올리냐? 잘 읽고 간다.
빨 ~ 랑 2부 올려라.
난 언제나 이런 글 써보냐~~~부럽당.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