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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다시피 올해는 주세페 베르디와 리하르트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국내에서도 그리고 전세계적으로도 두 예술가의 위업을 기리는 수많은 공연과 음악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요. 특히 바그너의 경우 음악이 길고 복잡한데다가, 특유의 이론과 개인적인 주장들이 음악 속에 그대로 녹아있어 처음에는 접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두 주에 걸쳐 리하르트 바그너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유명 서곡과 전주곡들을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유독 바그너의 음악에는 구구절절 얽힌 사연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음악도 길고, 사연도 긴 남자 바그너. 그의 음악과 그 속에 얽힌 이야기, 그 첫 번째 시간입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서곡 - 빚잔치 야반도주 중에 떠오른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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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청년시절 리가(Riga, 현재 라트비아의 수도)의 한 오페라단에서 음악감독 자리를 맡게 된 바그너는 거기서 만난 극단의 여배우 빌헬미네 민나 플라너와 결혼에 성공하게 됩니다.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던 민나는 사실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행복을 꿈꾸던 여성이었던데 반해, 바그너는 하루 온종일 자신의 예술로 온 유럽을 제패하겠다는 야망에 골몰하고 있던 괴팍한 예술지상주의자였습니다. 이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었지만, 딱 한 가지만은 부부다운 대단한 금슬을 보여주었으니 바로 극심한 낭비벽이었습니다.
겨우 시골 소도시의 지휘자이면서도 마치 유럽 최고의 예술가인양 호화로운 대저택, 비싼 빌로드 옷, 최신 유행의 실크햇 등을 고집했던 바그너. 그리고 날이면 날마다 온갖 드레스와 장신구 쇼핑에 몰두했던 민나는 적어도 쇼핑 중독에서만은 천생연분 커플이었습니다. 그러나 쥐꼬리만한 지휘자 봉급으로 이런 호화생활이 오래 유지될 리가 없겠지요. 결국 거듭된 빚잔치를 감당치 못한 바그너 부부는 아예 야반도주를 감행하기로 합니다. 리가를 떠난 두 사람은 배를 타고 북해항로를 거슬러 런던으로 향한 후 결국 파리에 정착합니다. 그런데 북해는 예나 지금이나 살을 에는 추위와 무시무시할 정도로 거친 파도가 압권이지요. 설상가상으로 이때는 엄청난 폭풍우까지 덮쳤다고 합니다. 빚쟁이들을 피해 배타고 도망가다가 아예 목숨까지 잃을 뻔한 바그너. 이때의 모골송연했던 기억이 후일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실감나게 재현됩니다. 이 오페라는 평생 바다를 떠도는 저주에 빠진 네덜란드인 선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으스스한 줄거리의 작품인데, 특히 격랑의 폭풍우를 실감나게 묘사한 서곡이 매우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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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서곡, 지휘 크리스티안 틸레만, 2012 바이로이트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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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채권자들의 눈을 피해 파리로 무사히(?) 도망을 친 바그너는 당대 최고의 도시였던 파리에서 자신은 너무도 당연히 엄청난 성공을 거두리라고 자신합니다. 그러나 웬걸요. 파리는 이 독일인 작곡가에게 너무도 냉정했고, 이때의 아픈 기억은 바그너 평생의 상처로 남게 됩니다.
<탄호이저> 서곡 - 인생사 새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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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자들을 피해 도망간 파리에서 바그너는 지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다 오페라 <리엔치>가 대성공을 거두어 일약 독일 작센 왕국의 수도 드레스덴에서 궁정악장으로 취임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상임지휘자(카펠마이스터)이며, 당대에는 독일음악계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포스트였지요. 그런데 이런 행복도 잠깐. 드레스덴에서 왕정에 반대하는 ‘5월 혁명’이 일어나자 바그너도 여기에 가담하게 되고, 곧 그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져 다시 한번 필살의 야반도주를 감행합니다. 이번 도피생활은 아예 기약도 없이 길어져, 결국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12년의 망명생활을 견뎌야했습니다. 이 스위스 망명객 시절에 바그너는 오페라 <탄호이저>의 파리 공연을 추진합니다. 원래 드레스덴에서 공연하여 빅히트를 기록했던 작품이었으나 좀 더 파리지엥들의 입맛에 맞게 손질을 해서 아예 대박을 내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 아니 대실패, 아니 차라리 참담한 사고였습니다. 프랑스 황제까지 임석한 첫 날 공연이 관객들의 난동으로 난장판이 되자 남은 2회 공연은 자동 취소되고 맙니다. 공연 역사상 길이 빛날(?) 그날의 참혹한 실패가 얼마나 엄청났던지 열렬한 바그너 지지자였던 시인 보들레르는 바그너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파리에서 당한 이 참담한 봉변이 바그너에게는 뜻밖의 행운으로 작용합니다. 아무리 미운 자식이라도 밖에 나가서 맞고 돌아오면 화가 난다고 했던가요. 독일 음악가가 파리에서 비참한 모욕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 독일이 들끓기 시작합니다. ‘독일 민족주의자들이 여 단합하라! 천박한 프랑스 놈들에게 모욕당한 독일인 예술가 리하르트 바그너를 구제하라!’는 여론이 퍼져나간 것입니다. 결국 작센 왕국은 그에 대한 수배령을 풀어주고 바그너는 독일로 당당히 귀환하게 됩니다. 인생사 새옹지마. 이럴 때 쓰는 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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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탄호이저> 서곡.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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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와 바그너, 동갑내기 두 오페라작곡가는 생전에 파리에서 성공을 거둬보고자 무던히도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오페라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던 파리 오페라 팬들은 이 두 작곡가에게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지요. 그러나 당시에 온 파리를 휘저었던 인기 오페라들은 지금은 소리소문도 없이 모두 사라졌고, 그 곳을 베르디와 바그너의 오페라가 채우고 있는 것은 확실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것입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 - 금지된 사랑, 현대음악으로의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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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수많은 여자와 무수히 많은 염문을 뿌린 바그너였고, 남의 여자와 애정행각을 벌이는데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뻔뻔한 플레이보이였던 그였지만 여기에도 단 한번 예외는 있었습니다. 바로 취리히 망명시절 마틸데 베젠동크라는 여인과의 금지된 사랑이었지요. 왜 ‘금지된 사랑’이냐. 마틸데의 남편인 오토 베젠동크가 바그너의 취리히 망명생활을 재정적으로 책임져주고 있던 든든한 후원자였기 때문입니다. 빈손으로 나타난 망명객 작곡가에게 집주고, 밥 주고, 먹고 살 방편까지 마련해준 마음씨 푸근한 은인의 부인과 애정행각을 벌인 것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비록 플라토닉 러브였다고 할지라도 도저히 일반사회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변태적 사랑이었고, 이것이 바그너를 극심한 고통으로 몰고 갔습니다.
이 비밀스런 사랑, 금지된 사랑에 힘겨워하며 그 감정에 휩싸여 써내려간 음악이 바로 <트리스탄과 이졸데>입니다. 이때 정도되면 바그너의 음악은 원숙미와 심오한 깊이가 한결 더해지게 되는데, 기존의 오페라와는 뭔가 다르며, 좀 더 음악과 극이 밀접하게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작품을 그 스스로 ‘악극(Musikdrama)'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악극에 속하는 작품인데, 현실에서는 도저히 이루지 못할 금지된 사랑을 나누던 두 남녀가 결국 이 현실에 절망하여 동반자살한다는 켈트족의 유명한 고대 전설을 오페라로 만든 것입니다.
특히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은 너무나 유명하지요. 아마 서양음악사상 가장 유명한 전주곡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여기 첫 머리에 나오는 ‘트리스탄 화성’, 이른바 조성의 응결력을 해체해버린 이 모호한 화성이 결국에는 현대음악으로의 길을 열게 됩니다. 복잡한 전문용어를 써서 설명하면 한없이 어려워지니 비유적으로 이야기 드립니다. 말하자면 바그너는 문장에서 주어를 모호하게 처리한 것입니다. 주어가 모호하니 뒤따라 나와 문장을 완결지어 줄 서술어도 자연스레 필요없거나 혹은 모호해집니다. 결국 문장은 언제 어디서 끝날지 모른채 한없이 길어집니다. <트리스탄>의 음악이 이와 같습니다. 조성의 응결력이 해체되니 음악을 굳이 언제 어느 시점에서 끝내야 한다는 구속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 음악은 무한히 흘러갑니다. 마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꿈꿨던 그 무한한 사랑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이를 가리켜 ‘무한선율’이라고 부릅니다. 서양음악사상 가장 결정적인 한 장면, 바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1막 전주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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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 주빈 메타 지휘, 바이에른국립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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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서는 더없이 천재였으나, 사회 속의 한 인간이라는 맥락에서는 형편없는 탕아였던 리하르트 바그너. 이 자기모순적이며 위대하면서도 가증스런 대작곡가의 두 번째 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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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30분 만에 다섯분이나 보고 가셨네요.
우리방에도 잠 못이루시는 분들이 많으시나 봅니다.
조회와 댓글에 따라 올리는 글 조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