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빛을 꺼주세요. 그래도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세요. 그래도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열정적 시구는 젊은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가 열네 살 연상의 여인에게 바친 애절한 사랑의 고백이다. 시인 릴케를 열병으로 몰아넣은 주인공은 심리학자이자 작가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1861~1937)였다. 니체와 프로이드를 연인으로 뒀던 이 여인은 당시 이미 심리학자로서 또 문필가로서 명성을 누리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유분방한 삶의 방식과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한 인물로 뭇 남성의 흠모를 받고 있었다.
루를 처음 본 순간 릴케의 심장은 마비되는 듯했다. 자신이 꿈꿔온 여인이 거기에 있었다. 36세의 기혼녀인 루는 22세 시인의 마음을 앗아갈 정도로 여전한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리분별이 분명하고 여유 넘치는 매너 속에서 릴케는 자신이 그토록 갈구하던 따뜻한 모성애를 발견했다. 부모의 불화와 이혼으로 고독하고 불우한 청소년 시절을 보낸 릴케에게 유일한 위안은 시를 쓰는 일이었다. 그가 루를 만난 것은 바로 뮌헨대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루도 시적인 언어로 자신의 에세이를 찬미하는 이 여린 감성의 젊은 시인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고 만다. 둘은 육체적 관계에서 점차 정신적 관계로 발전한다.
1901년 릴케는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두지만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릴케는 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지만 누구도 루의 자리를 채워줄 수는 없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루의 자리는 점점 더 커져갈 따름이었다.
YouTube에서 Lou Salom?: la donna che ha fatto perdere la testa all'Ottocento 보기 - http://www.youtube.com/watch?v=qO8lBv4nmiE&feature=youtube_gdata_pl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