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피츄
페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잉카제국의 심장 ‘마추피추’일 게다. 마추피추에 가려면 반드시 쿠스코를 거쳐야 하는데 보통은 리마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다. 쿠스코는 고산지대에 위치한 도시라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경관이 무척 아름답다. 구름 위로 불쑥 솟아난 산 위에 쌓여 있는 만년설은 탄성을 자아낸다. 마치 설탕 봉우리 위에 하얀 밀가루가 잔뜩 뿌려져 있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쿠스코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여행자들을 반기는 것은 ‘고산병’이다. 시원상쾌한 공기는 정말 환상적이지만 3000m가 넘는 높은 곳이다보니 오래 달리기를 방금 끝낸 것처럼 가슴이 쿵쿵 뛰고, 머리는 어지럽고,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차서 헉헉댄다. 나는 건강엔 자신이 있던 터라 별 걱정을 안 했는데 슬프게도 비행기에서 내리면서부터 온몸으로 뼈저린 고통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증세가 나아질 때까지 마냥 쉴 수 있는 형편이 아닌지라 일단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시티투어에 참가했다. 쿠스코에 도착하는 여행자들의 마음은 모두 마추피추를 향하지만 현지 적응도 하고 쿠스코도 돌아볼 겸 시티투어를 먼저 한다.
쿠스코는 15세기에 크게 번성했던 잉카제국의 수도여서 유적지가 많다. 시티투어는 1533년 스페인 군대에 쿠스코가 함락되기 직전까지 맞섰던 북쪽 외곽지역의 요새 ‘삭사우아만’을 둘러보는 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털같이 생긴 구름과, 낮밤이 모두 아름답던 아르마스 광장, 순박한 남미 사람들의 미소 덕에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물론 관광객을 봉으로 알고 장삿속에 눈이 먼 현지인들도 간혹 보여서 짜증이 나긴 했지만…. 시티투어를 신청하면 주는 쿠스코 유적지 통합 입장권은 유효기간이 10일이어서 마추피추 투어 후에도 시내 유적지를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어 편리했다. 투어를 끝내고는 꼭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의 야경을 볼 것을 권한다. 유럽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환상의 경치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모를 것이다.
○ 쿠스코는 고산지대이므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 시간 없다고 뛰어다녔다간 낭패. 그리고 마테차를 열심히 끓여 마시길. 마테차는 현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차인데 고산병에 효험이 있단다. 마약성분이 들었다고도 하는데 맛은 녹차와 비슷하다. ○ 수많은 여행사와 가격흥정을..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곳곳에 여행사가 많다. 현지 투어나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 가격 비교를 하면서 흥정을 하면 경비를 절약할 수 있다. ---------------------------------------------------------------------------------------------------------------------- 페루와 볼리비아에는 아직도 잉카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추피추는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동남쪽으로 3600m 높이의 고산지대에 있다. 쿠스코시 북서쪽의 우르밤바 계곡에 있는 마추피추는 두 개의 뾰족한 봉우리와 울창한 밀림에 가려서 산 아래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존재를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마추피추에 올라가보니 탄성이 터져나온다. 구름 바로 아래에 있는 도시는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공중도시’라는 표현이 아주 잘 어울린다. 그 옛날 1만 명 정도가 이 공중도시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니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 높은 산꼭대기에 어떻게 이런 놀라운 도시를 만들어 놓았을까?’ 마추피추를 구경하는 내내 머릿속에는 이런 의문이 계속 맴돌았다. 이 도시를 짓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았는지 그리고 이 많은 돌을 어떻게 산꼭대기까지 옮겨왔는지…. 이 모든 것은 지금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마추피추가 세상에 알려진 것도 1900년이 넘어서라니 정말 볼수록 놀랍고 어마어마한 공중요새라 불릴 만하다. 지금껏 여행을 다니면서 보고 느꼈던 멋진 여행지가 셀 수 없이 많지만 마추피추는 그중 첫 손가락에 꼽힐 만큼 신비롭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런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위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비록 마추피추를 보기 위해 쿠스코에 머무는 며칠 동안 고산병과 추위 때문에 고생을 했지만 그보다 몇 배쯤은 보상받은 느낌이 든 여행이었다.
잉카는 15세기부터 16세기 초까지 남아메리카의 중앙 안데스 지방(페루·볼리비아)을 지배한 고대제국의 명칭으로 동시에 그 사회적 중핵(中核)으로 되었던 부족 및 그 지배계급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잉카라는 명칭이 사용된다. 잉카족은 케추아족이라고도 불리며, 남방의 아이마라족이나 북방의 창카족 등과 함께 페루 인디오의 한 집단이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중의 하나라지만 사람의 힘으로 건설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마추피츄는 늙은 산이라는 뜻이고 맞은 편에 와이야피츄라는 젊은 산이 있다. 해발 2450미터. 정확한 연대도 알 수 없고 2천년 전의 것이라는 학설도 있다.
마추피추는 1911년 7월 24일, 미국의 대학 교수인 하이램 빙엄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서양 학자에 의해 발견 되기 전까지 수풀에 묻힌 채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기에 마추피추를 "잃어버린 도시" 또는 "공중도시"라고 불리는데 공중도시라 불리는 이유는 산과 절벽, 밀림에 가려 밑에선 전혀 볼 수 없고 오직 공중에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서이다.
마추피추는총면적이 5㎢으로 도시 절반가량이 경사면에 세워져 있고 유적 주위는 성벽으로 견고하게 둘러싸여 완전한 요새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마추피추(2280m)는 옛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3360m)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안데스 산맥의 협곡을 따라서 3시간 거리에 있다. 또한 마추피추는 산꼭대기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산 위에서는 계곡이 다 내려다 보이지만 계곡에서는 어디에서 올려다 보아도 도저히 보이지 않아 그 존재를 알 수 없고 접근조차 어렵다.
마추피추에는 약 1만여명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산정과 가파르고 좁은 경사면에 들어서 있어 스페인 정복자들의 파괴의 손길이 닿지 않은 유일한 잉카 유적이다. 정확한 건설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측된다.
이 곳에 태양의 신전, 산비탈의 계단식의 밭, 지붕없는 집, 농사를 짓는데 이용된 태양시계, 콘돌 모양의 바위, 피라미드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이 마추피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이다. 커다란 돌을 다듬는 솜씨가 상당히 정교하다. 각 변의 길이가 몇 m나 되고 모양도 제각각인 돌들을 정확하게 잘라 붙여서 성벽과 건물을 세웠다. 종이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단단히 붙어 있다. 젖은 모래에 비벼서 돌의 표면을 매끄럽게 갈았다고 한다. 가파른 산비탈에 계단식 밭을 만들고 여기에 배수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이 곳이 세계 7대 불가사의중에 하나가 된 이유이다.
1911년 빙엄이 왕궁과 신전 따위를 복원한 뒤로 1956년부터 시작된 대규모 발굴과 복원이 1974년에 끝나 마추피추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고대유적 관광지가 되었다. 잉카인들은 글자 · 쇠 · 화약 · 바퀴를 몰랐지만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강한 군대를 유지했다. 제국은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산맥을 따라 남북을 관통하는 두 갈래 길(잉카 로드)을 2만㎞나 만들어 광대한 영토를 통제했다. 황제의 명령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까지 두루 미처 새 한 마리도 황제의 명령 없이는 날지 않는다고 했다. 잉카인이 돌을 다룬 기술은 신기(神技)에 가까웠다. 그들은 20톤이나 나가는 돌을 바위산에서 잘라내 수십 ㎞ 떨어진 산 위로 날라다가 신전과 집을 지었는데, 면돗날도 들이밀 틈 없이 돌을 잘 쌓았다. (그들이 사용한 가장 큰 돌은 높이 8.53m 무게 361톤이다). 평야가 적었지만 산비탈을 계단처럼 깎아 옥수수를 경작함으로써 그들은 넉넉히 먹고 살았고, 구리를 쇠만큼 단단하게 제련해 썼는데 그 방법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다. 이렇듯 강성했던 잉카 제국은 겨우 100여년 만에 스페인 군대에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의 문명과 패망과 저항에 얽힌 수많은 사연을 집약해 보여 주는 최대 유적이 바로 안데스 산맥 밀림 속의 해발 2280m 바위산 꼭대기에 남아 있는 옛 도시 마추피추이다.
"우리는 비탈에 납작 붙어서 아래로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땅에 손가락을 찔러꽂은 뒤 미끄러운 풀을 밀어 헤치면서 몸을 위쪽으로 끌어올렸다. 아득한 낭떠러지 저 아래에서는 우리가 밧줄을 잡고 건너온 우루밤바강의 성난 급류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고 있었다. 인디언 안내인이 이 근처에는 사냥감을 뒤에서 공격하는 페루드란스 독사가 많다고 신음하듯이 일러 주었다." 미국 예일대학에서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가르치던 서른다섯살 난 하이램 빙엄이 마추피추를 발견한 1911년 7월24일의 일을 기록한 글이다.
탐험대는 빙엄과 그의 대학 동료 두 사람, 통역과 길안내를 맡은 페루군 하사관 1명, 거기에 노새 몇 마리. 그들은 잉카 제국의 마지막 수도였던 빌카밤바를 찾으려고 들끓는 모기와 지독한 더위와 위험한 급류를 무릅쓰고 우루밤바강을 따라 폐허들을 모조리 조사하고 있었다. 어느날 일행이 빌카밤바 계곡에서 야영하고 있을 때 한 인디언이 나타나 그들의 바로 앞에 깎아지른 듯이 솟은 바위산 등성이에 거대한 폐허가 있다고 알려 주었다고 한다. 잉카 사람들은 3개의 신을 숭상했다고한다. 하늘 -콘돌-독수리, 지상 -표범. 지하- 뱀. 마추피츄 건축물엔 이를 뜻하는 세 개의 창문이 나 있었다.
쿠스코에서 마추피추까지는 기차로 6시간 정도 소요되고 기차역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 간다음 걸어서 다시 30분 정도 올라가야 하는 고대 최후의 도시이다. 쿠스코에서 헬기로 1시간이면 도착할 수도 있으며, 요금은 약 US$ 200정도이다. 마추피추로 갈때는 기차로, 돌아올때는 헬기를 이용하면 당일 투어도 가능하다.
일반적인 아우토바곤의 당일코스 쿠스코는 마추피추로 가는 기점이 된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아우토바곤의 당일치기 코스 투어이다. 쿠스코에서 아우토바곤으로 오전 6시에 출발하여 마추피추 밑의 푸엔테 루이나스 역에 9시 20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마추피추에 10시 도착이다. 돌아오는 것은 푸엔테 루이나스 역에서 3시발 쿠스코행 열차를 타면 19시 30분에 쿠스코에 도착한다. 성수기에는 버스와 아우토바곤을 번갈아 타는 투어가 있다. 올란타이탐보까지 버스를 타고 간 뒤 그곳에서 아우토바고을 타면 쿠스코까지 직행한다. 열차의 시각은 계절에 따라 변동하므로 현지에 가서 확인해야 한다. 일요일에는 여행사가 쉬므로 일요일에 도착하여 월요일에 마추피추로 가는 계획은 무리이다. 로컬 트레인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쿠스코에서 푸엔테 루이나스를 경유하여 기랴밤바까지 가는 로컬 트레인이 있다. 매일 아침 5시 20분과 오후 1시 반의 1일 2편의 차량이다. 푸엔테 루이나스 역까지는 6시간 소요되며 요금은 US$6 정도이다. 표는 전날까지 역에서 구입한다. 열차 표는 여행자에게 팔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마추피추에 장기 체재하려는 사람이나 도중의 역에서 하차하려는 사람 이외에는 여행사에서 표를 구입하는 편이 좋다. 마추피추까지 싸게 가는 방법 그다지 권할 만하지는 않지만 돈은 없는데 시간이 있어서 어떻게 해서라도 마추피추에 가고 싶다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가장 쌀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쿠스코에서 올란타이탐보까지 트럭으로 간 뒤 그곳에서 로컬 트레인으로 마추피추까지 가는 방법이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쿠스코에서 장거리 버스로 우루밤바까지 가서 (약 2시간), 그 곳에서 열차로 갈아타고 마추피추로 가는 방법이다. 버스와 열차를 갈아타는 것이 문제이지만 싸고 버스도 쾌적하다. 역에 도착하면 즉시 마추피추행 미니버스에 올라탄다 역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미니 버스는 이전보다 한결 대수가 늘어났다. 그렇다고는 해도 첫 버스부터 마지막 버스까지 마추피추에 도착하는 시간 차이가 크다. 쿠스코에서의 당일치기 투어에서는 한가하게 버스 따위를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된다. 열차에서 내리면 재빨리 버스에 올라타는 것이 좋다.
꾸스꼬 출도착 기준 Vistadome 등급 꾸스꼬 출발 : 06 시 출발 / 9시 25분 마추피추 도착 마추피추 출발 : 15시 마추피추 출발 / 18시 50분 꾸스꼬 도착 Backpacker 1 등급 꾸스꼬 출발 : 6시15분 출발 / 10시5분 마추피추 도착 마추피추 출발 : 15시25분 출발 / 19시45분 꾸스꼬 도착 Backpacker 2 등급 꾸스꼬 출발 : 6시35분 출발 / 10시30분 마추피추 도착 마추피추 출발 : 15시50 출발 / 20시10분 꾸스꼬 도착
잉카 태양의 신전(페루 마추피추) | 잉카,마야신전
페루 마추피추 잉카 문명 유적지(신전 군)
마추피추는 쿠스코에서 112km 떨어진 곳에 해발 2400m 높이의 산봉우리에 만들어져 있다. 아마존 강의 원류인 우루밤바 강 위의 절벽에 세워져 있으며 아래에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아 그 존재를 알 수 없고 접근조차 어렵다. 총 면적은 40만km 2 이고 약 1만여명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정과 가파른 좁은 경사면에 들어서 있어 스페인 정복자들의 파괴의 손길이 닿지 않은 유일한 잉카 유적이다. 1964년 미국의 고고학자 진 사보이는 이 지역의 전모를 파헤쳤다. 빙엄의 발굴보다 넓은 양 끝이 약 1km에 이르는 건물들을 찾아냈으며 여러 결정적인 증거도 발굴해냈다.
1988년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을 통하여 잉카제국이 형성되기 6백년 전인 서기 800년에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히함 비프만은 "마추피추는 잉카문명의 전단계로 잉카의 기원이며, 1300년경 버려진 것을 스페인 침공을 계기로 망코 잉카가 재점유하여 1543년경 다시 건설하였다. 마추피추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층계와 높은 방호 벽, 그리고 수로에 의하여 북부와 남부의 두 부분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다. 남쪽으로는 고지대 농업지구와 저지대 농업지구가 있고, 북쪽은 도시구역이다. 도시구역은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서부 도시구역인 하난(Hanan)과 동부 도시구역인 후린(Hurin)으로 나뉜다.
서부도시구역이 주로 사원, 왕궁, 탑, 그리고 귀족계급을 위한 권위적이고 종교적인 건물이 세워진 반면 동부도시구역은 일반대중들을 위한 주거와 작업장 그리고 거주민의 통제를 위한 건물군으로 계획되었다. 이 도시로 들어오는 길에는 통나무다리가 있는데 적군이 침입해 오면 이 통나무를 치워 길을 끊었다고 한다. 태양의 신전, 지붕없는 집, 산비탈의 계단식 밭, 농사를 짓는데 이용된 태양 시계, 콘돌 모양의 바위, 피라미드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이 마추피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이다. 커다란 돌을 다듬는 솜씨가 상당히 정교하다. 각 변의 길이가 몇m나 되고 모양도 제각각인 돌들을 정확하게 잘라 붙여서 성벽과 건물을 세웠다. 종이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단단히 붙어 있다. 젖은 모래에 비벼서 돌의 표면을 매끄럽게 갈았다고 한다. 가파른 산비탈에 계단식 밭을 만들고 여기에 배수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마추피추의 건축물에서 가장 특이하고 기이한 형태로 모든 건물에 벽감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벽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결같이 사다리꼴 형태로 위보다 아래가 넓은 안정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큰 것은 미라나 사제들의 물품을 보관하는데 사용되었고 작은 것들은 가정의 우상이나 일반 물건을 놓았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확실하게 그 용도가 규명되지 않았다.
마추피추 태양의 신전
태양을 숭배했던 잉카인의 도시답게 마추피추 가장 높은 곳에는 '인티와타나'란 해시계가 자리잡고 있었다. 커다란 돌을 깎아 만든 해시계는 사각형으로 다른 지역에서 보았던 해시계하고는 사뭇 달라 보인다. 마추피추의 해시계가 사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는 까닭을 크게 두 가지로 추측하고 있다. 하나는 태양이 모서리를 지날 때를 기준으로 시간을 측정하였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각 면은 동서남북의 방향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도 추측일 뿐이다. 해시계가 정확한 물증이 없는 반면 잉카 인들은 태양력을 사용하고 농경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는 증거는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잉카 인의 달력에 의하여 확인되고 있는데 잉카 인들은 5월에는 수확을, 6월엔 태양의 축제를 그리고 8월에는 파종을 실시했다는 자료가 남아 있다. 마추피추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장소는 태양의 신전이다. 잉카 최후의 왕국이었던 쿠스코에 있는 태양의 신전과 흡사하다. 수많은 문과 구멍으로 이루어진 태양의 신전에서조차 가장 주목받는 장소는 신전 입구에 있는 독사의 통로로 어느 방향에서 물건을 넣어도 빙글빙글 돌아 반대편으로 빠져나간다
마추피추 태양의 신전
태양의 신전으로 사용된 탑과 2층 주택, 왕궁이 있는 곳으로 대부분의 태양의 신전이 원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곳도 태양의 신전이라 불린다. 마추피츄에서 유일한 원형 건물이다. 이 건물의 지하에는 여러개의 제단이 만들어져 있고 미이라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곳을 왕의 무덤이라고 한다.
태양신전 아래의 왕의 무덤
신전의 벽은 아주 잘 다듬어졌다. 그곳에는 두개의 창이 있는데 이 창의 각 구석에 하나씩 총 네 개의 상징적인 창이 있다. 이 창의 하나는 동쪽을 다른 것은 남동쪽(인티 뿐꾸 쪽)을 향해있다. 동지(7월 21일:여기는 남반구) 해뜰 무렵 태양 빛이 정확하게 동쪽 창을 통하여 비추고, 하지(12월 21일)에는 역시 남동쪽의 창을 통하여 비춘다.
태양을 묶는 돌 (해시계)
태양의 광장에 있는 인띠와탄(태양을 묶는 기둥)이다. 이 기둥은 큰 바위를 조각하여 만든 기둥과 더불어 동짓날 떠나가는 태양을 붙잡기위한 기둥이라고 한다.
마추피추 콘돌(철새, 기러기 모양)의 신전
마추피추 콘돌의 신전
바닥에 있는 돌의 모양은 마치 모이통에 부리를 넣고 있는 닭머리 형상의 납작한 바위가 있고, 그 뒷쪽에 솟아 있는 커다란 바위의 모습은 마치 새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이곳을 콘돌의 신전이라고 한다. 그 바위 아래는 지하로 내려 가는 계단이 있는데 마치 지하감방처럼 만들어 졌다하여 '감옥'으로 불리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