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신기한 3패
“햐~ 귀곡자란 그렇게 대단한 분이 계셨군요”
“그런데 그토록 대단한 분의 사상이나 저서가 왜 별로 알려지지 않았죠?”
“유가 儒家는 중용 中庸의 도를 중하게 여겨 인 仁과 덕 德을 추구하는 반면, ‘귀곡자’는 순자 荀子의 성악설 性惡說을 기반으로 하여 심리학을 연구, 전개 시켰다.
난세 중에 종횡가들이 자기의 책략과 임기응변의 능수능란한 말재주를 믿고 진, 초, 연, 위, 제, 조, 한을 상대로 전국 7국을 다니며, 유세하고 권력을 장악하였으며 더 나아가 사형제 師兄弟 간에도 서로 죽이고 죽는 전투가 벌어지고, 이웃 국가 간에 상충 相衝되는 손익 損益을 계산하고 제후국들을 부추겨, 제국 諸國들이 합종연횡 合從連橫을 종용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귀곡자’라는 사상과 책은 통일왕조시대 제왕들에게는 난세 亂世에 필요한 처세술로 각인 刻印되어, 민심을 혼란케 만드는 위험한 서책으로 분류되어 금지당하였으며, 당연히 시황제의 분서갱유 焚書坑儒 사건의 대상이 되었다.
분서 대상의 1호 목록이었다.
그 후로 명분과 도덕을 중시하는 유학파 儒學派에 의해 ‘세상을 어지럽히는 책’으로 홀대받고, 밀려 세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니 저평가되고 잊혀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때도 시차 時差가 조금씩은 있었겠지만, 귀곡자 한 집안에 한나라 (一國)를 좌지우지 左之右之할 정도의 뛰어난 인물들이 모두 모여 같이 공부하였다는 이야기지,
그에 비하면 현재 박달촌에 응집 凝集된 고수들의 조합 組合이 유달리 신기롭다고 할 것도 없지.”
한편,
두 노인네의 바둑은 어지럽게 난타전으로 진행되어 대마들이 얽히고설키어 혼란을 야기 惹起시키더니 드디어는 대마간에 수상전 手相戰이 벌어졌다.
서로가 상대의 대마를 수 졸임 하면서, 여기저기 먹이치고 옥 집을 만들고 하더니 패가 발생했다.
그런데 서로 얽힌 흑백 대마 간에 패가 상 중 하. 3곳이나 발생한 묘한 상황이 되었다.
흑이 윗 쪽 패를 따내면 백대마가 단수되어 어쩔 수 없이 백은 중간의 다른 패를 따니, 이번엔 흑대마가 단수로 몰리게 되어 흑이 또 아래쪽의 다른 패를 따낸다. 그러니 이번엔 또다시 백 대마가 단수된다.
백은 어쩔수 없이 다시 윗쪽 패를 따낸다.
서로 얽힌 대마에서 손을 뺄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3곳의 패를 순서대로 상 중 하로 돌아가면서, 계속 상대 돌을 따내며 같은 모양의 바둑이 반복된다.
동형반복 同形反復이다.
“어~ 허... 뭐 이런 바둑이 있냐?”
두 노인네는 중얼거리며 끝없이 이어지는 패로 인하여 바둑돌이 모자라니까, 상대의 사석 死石 흑백 돌을 10개씩 맞바꾸어 가면서 계속 두고 있다.
이때 십칠 선생이 장정 두 명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섰다.
모두들 일어나 십칠 선생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다.
그러나 두 노인네는 주위 상황은 안중에도 없이 바둑만 계속 두고 있다.
십칠 선생도 두 노인에게 다가가 바둑판을 한참 응시한다.
그러더니 “형님들 이 바둑은 빅이오” 한다.
그제야 두 노인은 십칠 선생을 올려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빅이 뭐야” 한다.
“그 상태로 백날을 두어도 맨 그대로지요, 동형반복 同形反復으로 무한반복 無限反復이죠, 그러니 이 판은 무승부 無勝負로 하여야 합니다”
“허.. 바둑에 무승부가 있나?”
“무승부는 이 바둑처럼 3패가 나면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패가 해소되질 않으니 무승부가 되는 희귀한 국면 局面이죠”
“아...하, 그래~~”
“승패 없이 화국 和局으로 바둑이 끝났으니 술이나 한잔합시다”
“흠…. 다 이긴 바둑이었는데 아깝군”
“누가 할 소리, 아우는 오늘 운 좋은 줄 알라”
바둑판을 거두면서도 서로가 또다시 싸운다.
십칠 선생은 같이 온 두 장정에게 평상에 앉기를 권한다.
이중부가 그제야 두 장정을 보니 안면이 있다.
한 명은 해천이고 다른 사람은 갈색머리 설태누차다.
설태누차가 모용 노인을 보고 읍을 한다.
“제자, 사부님을 뵙습니다”
그런데 이중부는 해천과는 아직 정식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이중부가 두 장정에게 목례를 한 후, 해천에게
“강 교위님과 장영 아저씨는 잘 계시지요?” 하니 해천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중부를 보더니
“나를 어떻게 알지?”하고 묻는다.
“작년 초겨울, 산동 북해에서 뵈었습니다”
“아하... 그때 얼른 보았던 나귀 탄 꼬마가 너였구나”
“네, 맞아요”
“강 교위님은 대릉하에 계시고 장영은 며칠 후 이곳으로 올거야”
“아.. 그래요”
석늑이 중부를 보고
“자네는 아는 사람이 왜 그리 많지?” 하며 웃는다.
하긴, 지난 7개월 동안 만나 사람들이 10년 동안 만난 인물들보다 훨씬 더 많다.
조용한 바닷가에 살다 나라의 갑작스러운 변고로 많은 사람이 이동하다 보니 그런 거 같았다.
- 주석
옛 중국 바둑은 화점 네 곳에 흑백이 같이 나누어 선점한 후에 바둑이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의 순장 巡將 바둑 (흑백 돌을 번 갈아가며 놓인 모양이 장군이 전장을 순시하는 것처럼 보여 칭함)은 천원 天元을 제외한 화점마다(변 화점까지 포함)흑백 바둑돌을 교대로 먼저 놓아둔 후, 포석 없이 곧바로 전투로 돌입 突入하였다.
정석 定石이나 포석 布石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 첫수부터 싸움 바둑으로 개시 開始되었다.
전투의 수상전 手相戰이나, 수읽기가 승패를 가름한다.
힘 바둑에 강한 한국 기사 棋士들의 특질 特質과 유사하다.
아니, 순장바둑의 그 난해하고 처절한 싸움 바둑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일본으로 바둑이 전래 되기 전, 예전에는 ‘덤’이란 개념이 없었다.
그러니 실은 ‘빅’ 바둑도 많았다.
‘빅’을 화국 和局이라 칭하였다.
승패 없이 서로가 기분 상하지 않게 바둑을 잘 즐겼다는 뜻이다.
바둑으로 우열을 가리지 못하였으니,
술로 승부를 보는 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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