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의 저작권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 손택수
구름 5%,
먼지 3.5%, 나무 20%, 논 10%
강 10%, 새
5%, 바람 8%, 나비 2.55%
돌 15%,
노을 1.99%, 낮잠 11%, 말 2%
(여기에 끼지
못한 당나귀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함)
(아차,
지렁이도 있음)
제게도 저작권을 묻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작가의 저작권은 물론이고 출판사에 출판권까지 낼 용기가
있다고도 합니다
시를 가지고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한 어느 방송국 피디는
대놓고 사용료 흥정을 하기까지 했답니다
그때 제 가슴이 얼마나
벌렁거렸는지 모르실 겁니다
불로 소득이라도 생긴 양 한참을 달떠 있었지요
그럴 때마다 참 염치가 없습니다
사실 제 시에 가장 많이 나오는 게
나무와 새인데
그들에게 저는 한 번도 출연료를 지불한 적이 없습니다
마땅히 공동 저자라고 해야 할 구름과 바람과 노을의 동의를 한 번도 구한 적
없이
매번 제 이름으로 뻔뻔스럽게 책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작자 미상의 풀과 수많은 무명씨인 풀벌레들의 노래를 받아쓰면서
초청 강의도
다니고 시 낭송 같은 데도 빠지지 않고 다닙니다
오늘은 세 번째 시집 계약서를 쓰러 가는 날
악덕 기업주마냥 실컷 착취한 말들을 원고 속에
가두고
오랫동안 나를 먹여 살린 달과 강물 대신 사인을 합니다
표절에 관한 대목을 읽다 뜨끔해하면서도 초판은 몇 부나 찍을 건가요 묻는 걸
잊지 않습니다
알량한 인세를 챙기기 위해 은행 계좌 번호를 꾸욱 꾹 눌러 적으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