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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5. saddest thing
다음날 아침, 질척해진 언덕을 오르는 심호규가 통화중이었다.
"그래 엄마 아무 일 없으니 마음놔..이젠 잘될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줘. 어.엄마..사랑해. 사랑한다고! 조만간 갈게..아니 그깟 음식..필요없어..그저 엄마품에 안겨 엄마젖도 만지면서 자고 싶어. 그래..사랑하는 엄마 침 꼬박 맞고..아프지마.."
전화를 끊고 힘차게 걷는 심호규의 밝은 표정.
'진작 했어야 했는데...더 늦지 않은 것만 해도 행복이지'
'그래. 오늘도 해는 떴고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어. 호규야, 힘내 넌 할 수 있어!'
단출한 이사장 부녀의 밥상에 비집고 앉는 심호규였다.
"간밤 포장마차서 술값내서가 아니라,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가훈을 어길까봐 마음에 걸리기에"
부녀가 서로 어이없이 마주봤다.
"크크큭. 괄목상대라더니 많이 늘었다?"
"근데 계란찜 멸치볶음..황태국. 새우젖 어떻게 된 게 모두 동물성이야..누구 굶겨죽이려고 작정을 했나"
"세상 가장 치사한 게 반찬투정이란 것 아니?"
"근데 사장님, 남부만이 아니라 중부이북에도 유명한 가수 많거든요. 조용필만 해도 경기가 고향이고 장사익. 심수봉 김세레나 김국환 이선희까지.. 모두 한 시절을 풍미했고...북한만 해도"
"지금은 수업시간이 아니라 밥 먹는 시간이다"
"...."
"근데 뭔 일 있냐? 이제 좀 달라진 것 같은데, 넌 본래 말도 더듬고 자신감이 전혀 없었어"
"일이 있었어요. 글쎄 선생님이 여태 저를 잊지 않고 계시더라고요"
"....그집앞?"
"예. 확인했어요. 이젠 저 혼자가 아니라고요. 엄마도 있고 효실이도 있고..많아요. 많았었어요!"
날자의 표정이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저 맨 끝 창고에 가면 여러 악기가 쌓였을 건데..정리하고 수리해봐라"
키타 몇 대와 아코디언 전자피아노까지 늘어놓고 정리하는 심호규가 키타의 줄을 맞추고 코드를 잡았다.
"흔한 게 사랑이라지만 나는 그런 사랑 원하지 않아"
"겨우 그렇게밖에 못 뜯냐?"
돌아보니 이사장이 뒤에서 툭하니 뱉는 소리였다.
"사실...학원도 안 다니고 집에서 주먹구구로 배워서..."
"악기에도 혼백이 실려야혀. 아니면 소음밖에 안되야"
키타 하나를 들더니 줄 하나를 퉁기고는
"이게 뭐여. 조율도 형편읎잖아. 귀도 청소해야쓰것다"
"저기 이 정도면 어떤 노래 연주라도 가능하거든요?"
말없이 줄을 조이고 풀고 맞추더니 콱 무게를 잡는 이사장
"엔..새디ㅅ.." 하더니 뚝 그쳤는데 호규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바, 방금 그 노래 새디스트송 맞죠? 멜라니사프카"
말없이 일어서서 고물현장으로 가버리는 이사장.
심호규 한층 심각해져서 이사장이 치던 키타를 잡아들었다. 한두번 튜닝을 하고는
"엔디새디스씽...앤디새디스..앤디새디..앤디..앤..앤.."
언덕을 내려오는 심호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조용필이가 오장육부를 훑어내는듯하게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했건만..남자가 어떻게 그런 목소리를 낼 수가 있는 거지..'
'둔탁? 폐부? 목청이 쉬어서?..? 도무지 알콜중독 고물상 사장이 멜라니라니 이런 황당한...'
'하지만...지금껏 나는 그저 주먹구구였었어..한번도 깊게 파고 든 적이..'
'...진중히..정성껏..최선을 다해야...'
원룸 앞. 키타도 두대 꽂혀 있는 리어카에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적재한 심호규가 주인 노파에게 봉투를 하나 두 손으로 건네주었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네요. 그동안 아줌마가 여러모로 마음써준 것은 잘 알아요..뭔가 사려했는데 치수를 몰라..이거 얼마 안 되지만 따뜻한 옷이라도 한벌..사입으세요..간간 들릴게요.."
"엄마나,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내가 뭐 잘해준 게 있다고..어, 언제라도 놀러와.."
리어카를 끌고 언덕을 오르는 심호규였다.
'화발다풍우 인생족별리...앤디 새디스..앤디..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이에게 이별을 고하는 거라지만...진짜 슬픈 일은 잊혀지는 것인지도...'
'그동안 난 차라리 잊히기를 바랬던 것 같아..앤디새디..앤새디..앤새..앤..앤..'
언덕위에 올라 리어카를 내려놓고 한숨을 돌리다 결연한 표정이 되어 핸드폰을 꺼내어 느리게 번호를 눌렀다.
"선생님. 저 호규여요..그동안 신경쓰이게 해서 죄송해요. 저는 그저..그저...앞으로는 절대로"
[ 호규니? 전화해줘서 고맙다...그래. 뭔 말이 필요하겠니..내가 하고픈 말은...넌 스스로를 귀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돼. 넌 세상에서 둘도 없는 특별한 존재란 말이야. 내말 알겠지?]
"...예. 선생님" 전화를 끊었다.
-- 그렇게 믿어보기로 할게요. 선생님 --
고물상으로 심호규가 올라왔는데 하우스 앞 평상에서 이사장이 어떤 늙은이와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오늘 이사한다고 혔잖아?"
"뭐 짐이랄 것도 없는걸요"
"마침 잘왔어. 인사혀. 여그는 소리에 고수인 박선상이여"
"...안녕하세요"
"술있으니까 안녕한 편이라고 봐야지. 술은 하는가?"
"아주 조금요. 한두잔"
"한두잔도 나름이지"
"소주잔으로 딱 두잔"
"8점. 가수기획사에 들어갔었다고 들었는디 목소린 싱싱한 편이네?"
"아주 작은 가게였는 걸요"
"큰데 쓸리지 않은 게 다행여. 그런덴 틀에 맞춰서 훈련시키걸랑. 결국 그룹멤버로 데뷔시키는 것이 목표고 공식이지. 성공하든 말든"
"워낙 재주도 없지만 비용 때문에 지망생들 뒤치닥거리나 해준 걸요"
"7점. 돈은 아무 상관없어. 마음 자세가 중요한 것이지. 좌절한 이유를 돈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식해서여"
"예. 돈탓이 아니라 제가 너무 모자라서였어요"
"한참 청춘이 왜 이리 패기가 없나. 6점"
"낙제가 아닌 것만 해도 워디여"
"울나라에 가수 지망생이 몇인지나 알아? 8만7천567명이 넘어"
"그게 도대체 어디에 나오는 통계여? 확인도 안되는 헛소리하는 버릇 좀 고치랑게!"
"그중 반 이상이 7점이 넘어. 인석은 5점이나 될까말까란 말여. 그도 자네를 만났기에 후히 쳐준거여"
"불세출을 만난 것은 안치나?"
"물론 나 같은 불세출의 천재를 만났으니 7점은 줘야겠지. 어이 호구라고 했던가? 아무 노래나 함 불러봐. 무슨 노래든"
"....저는 누가 노래 부르라고 해서 부르지 않는..것이 신좁니다. 제가 왜요? 생기는 것도 없는데!"
말을 마치자 뒤도 안 돌아보고 밑으로 향했다.
이사장이 박에게 물었다.
"어뗘?"
"글쎄...운명이 구르는대로"
허탈하게 언덕을 내려오는 심호규
'난 도대체 뭘 기대하는 것이지? 이사장같은 술꾼과 고물상이나 출입하는 늙은이가 기인이사이기를 바라는 것인가? 이런 형편없는 동네로 전락한 것도 한심하건만...'
"동생!"
보니 날자가 장바구니를 들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잘됐네. 무거워 죽겠는데 이것 좀 들어줘"
"내가 왜...요?"
"뭐락꼬?"
"이유없이 그러기..싫네요"
미련 없이 내려가버리는 호규를 어리둥절히 쳐다보는 날자였다.
어두운 하늘에서 눈보라가 몰아쳤다. 다세대 이삿짐 보따리가 흐트러진 방 한가운데 호규가 허탈히 반쯤 누워있었다.
전화가 울리자 받는데..
"그래..석현아. 아니...나 투자할 최소한의 돈도 없다고 했잖아..미안하다. 네 새출발에 도움이 안되어서...효실이? 아니 효실이가 무슨 돈이 있다고? 너 설마..아니 안돼, 절대로!! 갸도 머리가 있어서 절대 안먹혀. 혹시라도 걀 쑤시면 너완 영원히 절교야!..뭐?....그.그런..너 그렇게까지 형편이 안 좋은 거냐? 그래. 백만원이람...번호 보내라. 한시간내로 쏴줄게. 석현아..좋은 날이 올거야. 잘되길 진심으로 비마..그래 힘내 새꺄"
날이 밝아도 진눈깨비가 내리는 마을전경인데 호규의 방안풍경은 거의 그대로였다. 빵과 햇반과 음식포장지가 굴러다니고
'선생님 전화 때는 온 세상이 내 것 같았고 빛이 나더니 하루 이틀만에 이리도 가라앉을 줄이야...'
'똑똑' 노크소리에 눈을 뜨는 심호규.
방문이 열리더니 날자가 보따리를 들고 들어왔다.
"어억, 여. 여긴 어떻게 알고?"
"이 좁은 바닥 새로 이사온 집 찾는 게 무슨 문제라고. 그런데 방안 꼴이 이게 뭐야. 아이고 추워. 얼어죽으려고 작정한 거야?"
"연탄도 있지만 그리 춥지 않아.."
"그걸 말이라고! 배관이 얼어터지면 돈이 몇 갑절 더 든단 말야. 버너 있지? 켜고 후라이팬 찾아봐. 난 연탄불부터 붙일 거니까"
"저기..나 지금 많이 당황중이걸랑..누나가..이럴 이유가..뭔지.."
"넌 하나하나 이유 따져가며 살았니? 오늘 아침엔 무슨 이유로 눈은 떴는데? 지금 숨 쉬는 이유는 뭔데?"
얼마 후 현관겸 부억에서 연기가 나고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는 날자. 방안에서 어정쩡히 코펠에 불붙인 호규. 날자가 후라이팬에 국자로 한뭉큼 퍼넣자 부칭개가 파지직. 날자가 호기있게 소주병을 따서 마셨다.
"호구야 네 선택..네 자유 상관하지 않겠어. 많이 힘든 상태란 건 알겠어. 하지만 이것도 지나갈거야. 좋은일 나쁜일이 번갈아가면서 올거야. 나도 그랬으니까..하지만 할 건 해야 돼. 제대로 자고 제대로 먹고 제대로 씻고 그래야 생각도 행동도 제대로 되는 것이란 말야...너 어제 오늘 세수도 못했잖아. 욕탕 가서 제대로 씻고 와. 지금 당장!"
황황히 밖으로 나오는 심호규가 혼이 나간 표정이었다.
'저 여자가 이러는 이유가 대체 뭐지? 나와 무슨 이해관계가 있다고...?'
한밤중 이발도 하여 깨끗한 얼굴로 옷도 사 입었는지 말끔해진 호규가 방문을 열자. 이삿짐 모두가 가지런히 정리되었고 작은 소반엔 소주반병이 올라있고. 접시엔 떡갈비와 잡채까지 올라있었다.
창문엔 커튼까지 쳐있고 발로 방바닥을 문지르며 호규표정이 이상해졌다.
'따뜻한 정도가 아니라 이건 뜨겁잖아?'
나무젓가락을 쪼개며
'그래. 오늘만 세잔 정도...'
아침 고물상 전경. 할머니가 유모차에 싣고 온 박스뭉치를 저울에 달아 돈을 내주는 호규 모습. 친절히 배웅하다가 멀거니 자신을 바라보는 이사장을 봤다.
"키로당 45원 맞지요?"
"단골에겐 오원을 더 쳐줘야 혀"
"다음에 올 때 보태주지요. 저기...박선생..님이 뭐라던가요?"
"난 남의 말을 함부로 옮기는 사람이 아니란다"
"저도 굳이 알고 싶지는 않네요. 젊을 때 날리긴 했겠지만..그건 사장님도 마찬가지겠고.."
"착각은 자유니께. 오늘은 아줌씨들이 올건디 함부로 대하지 말고 친엄마 모시듯 친절해야 되야...베푼대로 돌아오는 거이 세상사인겨"
"그럼요..친엄마까지는 힘들겠지만..이모 대하듯 하지요"
열심히 고물 수레를 나르는 심호규였다.
'폐지 한가득 모아도 2000원 벌이밖에 안 된다니 너무 한심한...저 할머니 자식들은 이런 사실을 알까?'
'..그래 돈은 문제가 아니야. 움직일 수 있고 라면값 버는 것만도 큰 행복이지..비전은 암담해도....'
라면 끓이는 호규를 지켜보던 날자가 물었다.
"왜 그것만 넣는 거야?"
"난 계란은 안 먹으니까 따로 끓여야지"
"차암 잘났다. 계란 안 먹는 게 무슨 큰 벼슬이니?"
"내 스스로와의 약속이야! 포기하면 다른 것들도 점점 포기하게 될 것 같아서"
"그래. 그런 쥐꼬리만한 지조라도 없으면 뭐로 위안 삼겠냐..헌데 닭과는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래?."
"똑딕이라고...병아리 때부터 나를 그렇게 따라다녔었어..마치 개처럼 변소에도 학교에도 기를 쓰고 아무리 말리고 가두어도 소용없었어...추울 땐 한 이불속에서도...3년도 넘게 정이 들었는데..초등 3학년땐가 설날에 잡아먹는다는 소릴 듣고는..눈앞이 캄캄해져서 같이 가출인지 도망을..."
"...정말로 정이 들었었나 보다..."
"그로부터 1년도 못 살고 나와 같이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버스에 치여 온몸이 터져...."
"저, 저런! 끔찍했겠다"
"그때부터 닭고기는 물론 계란 돼지고기...고기 종류는 무조건 안먹었어"
"조류는 본래 알에서 깨어나 제일 처음 보는 동물을 어미로 보는 버릇이 있대. 각인효과라든가? 그 병아리 어디서 사온 게 아니고 집에서 부화한 거지?"
"화, 확실힌 몰라도 아마 그럴거야"
"그럼 틀림없어. 너를 엄마로 알고 따라다닌 거야"
"...그..그래서 똑딕이가..."
"똑띡이라고? 이름도 참 골때리네..."
"정말 똑똑은 했어! 개나 고양이보다도 더. 그건 확실해"
"...우길걸 우겨..닭이 개보다..그래 믿어줄 게 도끼눈 뜨지마“
잠시 서로가 말없이 생각을 하다가..
"호구야 넌 참 알면 알수록 희한한..놈이야.."
"웃기고 한심한 놈이겠지. 나도 알아"
"그말이, 그뜻이 아냐! 좋은 뜻으로 말한거야"
"...후배...효실이도 그러두만...그래봤자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 거라고...“
밖으로 나가는 호규를 잠시 바라보는 날자였다.
'..어쩌면...얘 진짜 성공할지도....?'
저녁 먹은 후 수업시간이었다.
"훈련? 방법..비결은 읎어..폭포앞에서 소리지르고 허는 것은 사기여..마음을 담으면 듣는 사람에게 자연 기가 전해지는기여"
"제가 노래 습작해놓은 게 있는데요...시작만 해놓고 끝도 못본.."
"기려? 해볼 테면 혀봐. 함 들어봐줄게"
호규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았다.
입을 우물거리다 망설이다 주저하다 끝내 한마디도 못하는 호규였다.
"날 새거따?"
"아..아직 덜 익어서 같아요...너무 부족하고 졸렬해서..가사도 가락도 차마..."
"기려..막연해서는 안되야..부족함을 알았으니 된겨. 인자 차차 차도가 있을 거시다"
"....안녕히 주무세요"
호규가 밖으로 나가버리자. 여태 보기만 하던 날자가 말했다.
"쟤가 정말 물건은 물건인 것도..?"
"익기도 전에 침바르지 말거라"
...............계속........................
미발표 습작 초고를 올립니다.
최초의 유일공간이니 펌이나 복사는 금해주시길...
비평 비판은 적극 환영감사할 것이며...
후일 혹시 출판된다면 반드시 감사턱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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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파노님
새해복많이 받으시고요
건강하세요
@*흑진주 예. 진주님도
새해엔..산토끼..산삼토끼라도 잡으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