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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껏 지내온 날들을 되돌아 볼 때, 순간순간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때, 그 순간에는 답이 보이지 않았고, 출구가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어떻게 헤쳐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존 번연은 우리가 지나온 이러한 날들에 대해, 천로역경에서 “순례자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걸었습니다. 마침내 동이 터 오르자 자신이 지나온 길이 궁금하여 뒤돌아보았습니다. 그 때,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길은 한 사람만 갈 수 있는 좁은 길이었고, 길의 좌우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한 발자국만 헛딛어도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위험한 길을 순례자가 걸어온 것처럼, 우리가 지나온 날들 역시, 그렇습니다. 그것을 확인할 때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 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소망이었던 성전 건축을 위해 온 백성과 함께 모든 재물을 즐거이 드린 후,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기도는, 다윗의 삶에 있어서 마지막 기도로 기도의 모범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초월성과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그리고, 인간의 연약성을 볼 수 있으며, 또한, 다윗이 일평생 하나님 앞에서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그의 경건한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살아온 지난 날들 속에서, 경험했던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하심,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조들과 언약하심을 그대로 이루셨음을 목도한 것을 되새기며,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위해 하나님께 받친 모든 재물이 자신과 백성 개인의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받은 것이기에,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감당하길 원했던 성전건축이 하나님께서 지시하심으로 말미암아, 아들인 솔로몬에게 맡겨졌으니,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완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기도 속에서, 그의 마음의 중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일평생 동안, 오직 한결같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왔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때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도중에 시험받고, 신앙생활을 중단하는 성도들이 더러 있습니다. 교회에 실망하고, 성도에게 실망하고, 목회자에게 실망하고 등등으로 신앙생활을 중단하고 돌아서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처음 믿을 때의 초심이 변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다윗은 초심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기름을 부음받자, 그는 도망자가 되어야 했고, 사울 왕으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수없이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또, 자신의 잘못으로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자리에서까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이러한 다윗이었기에, 성전건축은 그의 평생소원이었던 겁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크신 은혜들을 통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물리쳤고, 이스라엘을 부강한 나라로 세우셨으며,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그러기에, 본문 12절을 보시면,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다윗의 신앙은 감사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삶 속에서 겪는, 작든 크든 모든 대소사의 해결자가 하나님이심을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도 다윗과 같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나에게 있다고 착각하지 말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기도하며 찬양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1절을 보시면,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라고 합니다. 천지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윗은 가장 먼저,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다윗은 그동안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크신 역사들을 통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본문의 끝에서, “만물의 머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제 1 원인자”, 또는 “최고 권위자”이심을 나타냅니다. 그러기에,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심이니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만이 세상의 최고 권위자이기에, 하나님께서 공의와 사랑에 기초하여, 세상을 섭리하시고, 모든 이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다윗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부르고 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언약이, 자신을 통해 성취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는 다윗의 체험적 신앙고백이며,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찬양하는 겁니다. 고전 6: 19을 보시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하며, 롬 11: 36에서는,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을 포함하여, 만물의 시작과 과정과 끝 모두가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신앙 고백과 감사 찬양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권 의식이 없다면, 신앙생활은 불가능하며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남으로, 다윗처럼,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본문 앞의 10절에서, 하나님을 사모하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다윗은 비록 자신이 왕이지만, 자신을 왕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맡기시고 강하게 하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고백합니다. 다윗이 행하는 것마다 형통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충심으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목동으로 있을 때나 왕으로 있을 때나 집에 있든지 유랑하든지, 또는, 궁에 있을 때든지, 형통할 때나 불통할 때나 언제나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하나님만을 인정했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본문 다음의 12절을 보시면,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고 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고백은 미천한 목동이었던 다윗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으로 크고 강한 권세를 지닌 현재까지 이른 자신의 모든 삶을 되돌아봄으로, 본문과 같은 고백을 한 겁니다. 그러므로,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큰 자나 강한 자를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 작은 자나 연약한 자로도 만들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약한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크고 강하게 만드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다윗이 이것을 체험하였기에, 영광과 찬송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린 겁니다. 여러분, 우리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인내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다윗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고백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6절을 보시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라고 합니다. 감사와 찬양은 성숙한 신앙 위에서 피어나는 꽃입니다.
다윗이 자신과 백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전건축을 위해 예물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며, 그 받은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다윗이 이처럼, 모든 정성을 다해 감사와 찬양을 드린 것은, 그의 미래가 찬란하게 열려 있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엄청나게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았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할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심을 보았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찬양을 드렸던 겁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감사와 찬양은, 오직 성숙한 신앙과 영적인 눈을 지닌 자의 삶의 터전에서,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신앙의 꽃이며, 거기서 맺히는 고귀한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본문 앞의 14절에서,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라고 반문합니다. 이로써, 다윗은 왕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을 간직했다가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청지기적 신앙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신앙은, 자신과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단지 나그네와 그림자와 같은 존재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은,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기에, 우리에게는 아무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 다윗의 인생은 비관의 연속일 수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성전건축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라며, 감격하였습니다. 다윗은 일평생 하나님만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법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오던 날, 그는 너무 기쁜 마음으로, 왕이라는 신분도 잊고 너무 기뻐 춤추다가 바지가 흘러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뻤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를, 하나님이 축복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만이 우리는 우리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틴루터”는 “인간의 어떤 의도 하나님 앞에서는 누더기와 같기에, 인간의 모든 자랑은 오히려 영원한 조소와 진노의 대상이 될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을 그저 경건한 한 사람의 신앙 고백 정도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성도된 우리도 다윗과 같이, 우리 삶의 모든 순간순간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8절을 보시면,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오며”라고 합니다. 자원하여 드리는 기쁜 마음이 영원토록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본문에서, “이것”이란 본문 앞의 17절에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다윗은 지금, 이스라엘이 지금과 같이 하나님께 즐거이 예물을 드렸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 마음을 변함없이 간직하여 영원히 하나님을 따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생각하게”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틀로 빚어 언제나 하나님을 앙망하며 경외케”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위대하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영광스런 하나님, 존귀한 하나님, 부와 귀를 한 손에 갖고 계신 하나님께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어, 본문 다음 19절에서는, 자신의 왕위를 계승할 자신의 아들 솔로몬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솔로몬이 평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다윗은 백성과 솔로몬을 위해 중보기도를 합니다. 이를 볼 때, 다윗은 마지막 임종까지 그에게 남아 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남은 백성에 대한 염려였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본문의 기도만을 가지고도, 그의 신앙이 얼마나 신실했는지, 또 백성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었는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남긴 이 마지막 기도를 통해, 그의 신앙과 인품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다윗이 솔로몬을 위해 기도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그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어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곧, 솔로몬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 있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겁니다. 우리는 이러한 다윗의 기도를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습니다. 그저, 다윗이 자신의 아들인 솔로몬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한 것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을 위한 다윗의 기도는, 그저 평범한 기도가 아닙니다. 다윗의 이 기도는, 그가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요, 인생의 성공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이 기도에는 솔로몬의 모든 행사가 형통하고 복되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에 대해 기도하는 것을 보면, 자녀의 형통과 건강, 복을 구합니다. 그것은, 우상을 믿고 의지하는 이들도 하는 기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녀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 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없는 모든 성공은, 결국 헛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 다윗에게서 본받을 점은, 그가 비록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을 잊어본 일이 없이, 늘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살았다는 겁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늘 하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감으로, 영원토록 하나님께 돌아가는 신앙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 은혜 가운데 거하심으로, 하나님의 복이 자손만대로 이어지는 복된 가정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