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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달라이라마, 티벳불교에서 추앙하는 그분.. 중생제도를 위해서 계속 환생하시는 분에 대해서 제가 선입견을 갖게 된 건 그분의 시계들 입니다. 비록 선물 받았다곤 하지만.. 깨달으신 분, 티벳독립을 위해 망명하신 분, 중생제도를 위해 해탈을 포기하고 보살도를 지키시는 분이 왜 고가의 롤렉스 외 비싼 시계들을 늘 차고 다니는지? 받는 것도 문제지만 받았으면 좋은 일에 써야되는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저는 스님을 평가할때.. 이분이 고가의 승복, 차, 장신구등을 좋아하시나 혹은 곡차를 좋아하시나, 고기를 즐겨드시나, 앵무새법문을 하시나로 평가합니다.. 여하튼 저는 그동안 이해를 할수 없었던 터...
오늘 올라온 미국 CNN 기사 링크 올려 드립니다.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라 번역해서 올리진 않겠습니다. 교수님은 충분히 번역 가능 하시리라 생각됩니다.
https://amp.cnn.com/cnn/2023/04/10/india/dalai-lama-apology-kissing-boy-video-intl-hnk/index.html
그분은 그냥 다 깨우친 천진불 같은 분이라 저런 막행도 용서가 되는건가요?
답변입니다.
왓엠아이님께서 댓글에 다시 쓰셨듯이, 이 기사가 국내 뉴스에서도 다뤄지고 있네요.
https://www.fnnews.com/news/202304110601016101
유튜브에도 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사건의 전 과정이 모두 실린 영상의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bZK81lNKOI
위의 영상이 유튜브에서 삭제되어, 다른 영상을 아래에 링크합니다.
https://youtube.com/shorts/p8xIUbUEuLY?feature=share
이 영상을 자세히 봤는데, 문제가 된 시점에서 달라이 라마 스님께서 소년에게 "... suck my tongue"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런데 소년이 질문하는 영상부터 찬찬히 살펴보면, '음욕으로 인한 실수'가 아니라 '도를 넘는 조크'인 것 같습니다. 물론,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고, 잘못된 조크입니다. 위의 영상에 근거하여 이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Can I hug you(제가 당신을 안아봐도 되나요)?"라고 묻는다.
2. 무슨 말인지 의아해 하는 달라이 라마 스님에게, 옆에서 보좌관들이 소년의 요청을 설명해준다.
3. 달라이 라마 스님이 "OK, Come!"이라고 말하며 손짓으로 소년을 부른다.
4. 소년이 단상에 올라가 양 팔로 달라이 라마 스님을 세게 끌어안으며 뺨에 얼굴을 대며 미소 짓는다.
5. 그러자 달라이 라마 스님이 "... can also ...(이렇게 할 수도 있어!)"라면서, 입술을 내밀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6. 소년이 당황한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입술을 살짝 댓다가 도망가듯이 뗀다.
7. 그러자 달라이 라마 스님이 소년의 턱을 살짝 잡고서 소년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고서 '축원'의 의식을 행한다.
8. 그 후 한참을 소년이 그대로 서 있으니까, 달라이 라마 스님이 소년을 바라보다가 "and suck my tongue(내 혀를 빨거라)"라고 말하면서 혀를 날름 내민다.
9. 소년이 웃으며 살짜 고개를 제쳤다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가까이 한다.
10. 그러고서 소년이 혀를 대려고 조심스럽게 살짝 내밀자 달라이 라마 스님이 얼른 혀를 집어 넣고서 뒤로 물러서며 소년의 어깨들 툭 친다.
11. 당황했던 소년이 달라이 라마 스님의 '조크'를 알았다는 듯이 수줍게 웃자 달라이 라마 스님이 "Thank you, Thank you!"라고 하면서 소년과 악수를 한 후 손을 볼에 댄다. 그후 소년은 단상에서 내려간다.
소년의 포옹 요청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남자에게 "한 번만이라도 껴안아 보고 싶다."고 애걸하는 여성에 대비시킨 후, 포옹은 물론이고 '입술 키스', '진한 키스'든 뭐든지 다 해 줄 수 있다는 '자비의 실천'을 '조크'로 만들어 본 건데 도가 넘었습니다.
달라이 라마 스님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을 겁니다.
소년: 달라이 라마 스님을 한 번 포옹하고 싶어요.
스님: 그래 포옹해주지. 올라오거라
소년: 너무나 기뻐서 양팔을 벌리고서 강하게 포옹한다.
스님: "그렇게 나를 원한다면 포옹을 넘어서 입에 키스까지도 해 줄 수 있어."라며 입술을 내민다. (이때부터 조크의 시작)
소년: 키스까지는 생각하지 않았고 내키지도 않지만, 어른의 말씀이니 따르려고 입술을 갖다 댄다.
스님: 살짝 입술이 닿은 후 소년을 한참 바라보다가 "내 혀를 빨아도 돼!"라며 더 짓궂은 조크를 한다. (도가 넘는 조크)
소년: 당황스럽고 웃겼지만, 스님의 지시이기에 곧이곧대로 따르려고 조심스럽게 혀를 대려고 한다.
스님: 소년의 혀가 닿기 전에, 자신의 혀를 얼른 넣으며 소년의 어깨를 툭 치고 웃는다.
1.포옹 요청 → 2.입술 키스까지 제공 → 3.혀를 빠는 깊은 키스까지 제공 .....
상대방이 1만 요청했지만, 자비심에서 심지어 2, 3도 해 줄 수 있다는 조크인데, 상대가 소년인 점, 성적 농담인 점에서 도를 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100만원만 빌려달라고 요청했는데, 네가 원한다면 500만원도 줄 수 있고, 1,000만원도 줄 수 있다는 식의 마음을 표현한 조크였다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달라이 라마 스님께서, 상황과 상대방과 문화와 시류를 고려하지 않고서 큰 실수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음욕으로 인한 실수'가 아니라, 노화에 따른 판단력 쇠퇴로 '무한 자비심'을 조크로 표현하려다가 도를 넘으셨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불자와 비불자를 가르는 가장 기초적인 기준은 삼귀의 여부에 있습니다. 부처님과 가르침과 스님에 대한 귀의를 한 분은 불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자가 아닙니다. 5계를 받지 않았어도 그 마음에 삼보에 대한 귀의심이 있으면 불자입니다. 물론 초기불전에 근거한 규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삼귀의 가운데 스님에 대한 귀의는 '특정한 스님'에 대한 귀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잡아함경>에서는 어떤 특정한 스님 개인에 대한 믿음으로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 범하게 되는 다섯 가지 잘못을 다음과 같이 나열합니다.
①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스님이 멸시 당할 때, 불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
②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스님이 계를 어겼을 때, 불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
③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스님이 만행을 나가 만날 수 없게 될 때, 불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
④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스님이 환속했을 때, 불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
⑤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불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
<잡아함경>, 대정장2, pp.214b-c.
<체계불학 - 신념체계로서의 불교학>,'5. 출가자와 재가자의 바람직한 관계(pp.147-148)'에서
따라서 삼귀의 가운데 스님에 대한 귀의는, 특정한 스님이 아니라 '승가' 전체에 대한 귀의여야 합니다. 저 역시 존경하는 스님은 많이 계시지만, 특정 스님을 추종하지는 않습니다. 또 덕이 높은 스님께도 머리를 조아리지만, 갓 출가한 어린 스님께도 머리를 조아립니다. 그 스님 개인의 인격을 존경해서 머리를 조아리는 게 아니라, '승복'과 '삭발'의 모습에 대해 머리를 조아리는 것입니다. '승가라는 제도'에 대한 공경입니다.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은 달라이 라마 스님께서, 이번에 본의 아니게 큰 실수를 하셨지만,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이름 없는 스님 가운데 너무나 좋은 분이 너무나 많이 계십니다.
우리가 삭발 염의하신 스님의 사소한 잘못에도 크게 실망하는 이유는, 그만큼 스님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입니다. 삭발도 하지 않고, 일반인과 같은 모습을 한 다른 종교지도자(목사, 신부)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는 게 없기에 그분들의 잘못에 대해서도 "그러려니..."합니다. 그러나 스님에 대해서는 '청정함'과 '도덕성'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크기에, '특정한 스님 개인'의 사소한 잘못에도 실망이 큰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실망이 '스님 전체에 대한 실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질문에서 "달라이라마, 티벳불교에서 추앙하는 그분.. 중생제도를 위해서 계속 환생하시는 분에 대해서 제가 선입견을 갖게 된건 그분의 시계들 입니다. 비록 선물 받았다곤 하지만.. 깨달으신 분, 티벳독립을 위해 망명하신 분, 중생제도를 위해 해탈을 포기하고 보살도를 지키시는 분이 왜 고가의 롤렉스 외 비싼 시계들을 늘 차고 다니는지? 받는 것도 문제지만 받았으면 좋은 일에 써야되는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라고 쓰셨는데, 이 역시 달라이 라마 스님 개인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크시기에 실망이 크신 것 같습니다. 티벳의 불교지도자들이 더욱 검소하게 사시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티벳 불교의 단점'입니다.
티벳 불교에서 전승되는 '문자화 된 가르침'은 너무나 위대합니다. <보리도차제론>이 그렇고, <랑리탕빠 기도문>과 같은 각종 기도문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위대한 가르침을 인격적으로 구현하지 못한 티벳 스님을 가끔 만날 수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 스님께서 당신의 책 인세가 조금 있다시면서, 20만 달러를 경주 동국대에 기증하셔서 2009년 경주 동국대에 티벳장경연구소(현재 티벳대장경역경원)가 만들어졌고 제가 초대 소장직을 맡아서, 후원금도 모으고, 집기도 구입하고, 연구소 공간도 마련하는 등 기초를 다졌습니다(20만 달러는 사용하지 않고 영구보관). 소장 일을 하면서 티벳 불교와 관계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2년 후 어떤 일을 계기로 크게 실망을 하여 소장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후 여러 해 동안 티벳장경연구소 문고리도 잡지 않았습니다. 모든 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재가자든 스님이든 티벳불교와 관련된 분들 가운데 인격적으로 너무나 실망스러운 분들이 몇 분 계셨기 때문입니다. 티벳불교의 가르침이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에 '성기와 입(욕망의 근원)'이 달린 '고기 몸뚱이'의 인간으로서, 그 가르침을 감당하지 못하여, 티벳불교 관련된 분들 가운데 그런 분들이 간혹 보이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티벳불교의 경우, '사람'이 아니라 '문자화 된 가르침'만 적극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티벳불교의 가르침이 위대하지만 단점은 '금력과 권력'이 승가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우리가 닮지 말아야 합니다. 남방 상좌부, 동아시아 불교, 티벳불교가 다음과 같이 결합할 때, 이상적인 불교가 될 것 같습니다.
남방 상좌부의 율 + 티벳불교의 교학 + 동아시아의 간화선 수행
이상 답변을 마칩니다.
첫댓글 청화큰스님 일화중에.. 추운겨울 암자에 먹을것이 라면밖에 없었는데 다른 스님들과 보살님들은 그냥 끓여먹게 하고 큰스님은 스프를 빼고 드셨답니다. 스프에 고기뼈 갈려있다고.. 제가 다른 스님들한테도 그런모습을 기대하나 봅니다. 교수님, 이번에도 어리석은 질문에 답변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교수님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해석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달라이 라마 존자님의 제자로서 서약한대로 "스승의 모든 행위를 옳게 보는" 관점을 견지합니다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교수님 말씀을 참고하여 이 사건을 설명하려 합니다.
혹여 상처받았을지 모를 인도 소년과 그 가족들에게 연민을, 실망하고 분노한 전세계인들에게 연민을, 88세 노구가 되실 때까지 티벳과 전세계, 그리고 불교를 위해 헌신하셨으나 몇몇 이슈만으로 평가당하는 존자님께 연민을 보냅니다.
대중들의 반응에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대부분 달라이 라마 존자님의 메세지에 관심이 없고 그저 '달라이 라마'라는 메신저만 평가하기 바쁘다는 것입니다. 그나마도 흑백논리와 말초적 대응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구요.
그리고 교수님께서 티벳장경연구소 업무를 맡으시며 상심한 적이 많으셨다니 조심스레 위로의 말씀 올립니다.. 국내에서 티벳불교를 신행하거나 공부를 하다보면 티벳불교 내부의 부조리에 한 번, 티벳불교 외부의 오해와 편견에 또 한 번 이중으로 마음 고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티벳불교는 위대한 정신적 유산을 보전하고 있지만 그 유산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지 못한 부분이 많아보입니다. 가톨릭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며 살아남았듯이, 근현대 티벳불교 교단에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있었다면 사정이 지금보다는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주제넘게 가정해 볼 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접할 때마다 환희롭고 경탄하게 됩니다. 그러나 교단, 제도로서의 불교나 불교가 처한 시대적 현실을 생각하면 우울해지고 페시미스트가 되어가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젠 정말 밖으로 향한 마음을 돌려 저 자신부터 돌아볼 때가 아닌가, 그게 부처님 가르침의 본래 목적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어젯밤 여러 생각에 잠을 설쳤고, 교수님 글 보고 또 이런저런 상념이 들어 되는대로 끄적여 보았습니다._()_
메세지에 관심갖다 보니 그분 손목에 늘 감겨있는 수억원에서 수천만원 짜리 시계가 눈에 밟히더이다. 그분의 메세지가 하나도 안와닿아 질 정도로..
@왓엠아이 전 선생님과 논쟁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다만 존자님 시계를 누차 언급하시니 그것에 관해서만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달라이 라마 존자님이 착용하신 시계 중에는 명품 시계도 있고 명품 시계 아닌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명품 시계 대부분은 직접 구매한 것이 아니라 선물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전부 선물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달라이 라마 존자님이 갖고 계신 명품 시계 중에는 롤렉스 뿐만 아니라 파텍 필립도 있다고 합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파텍 필립은 롤렉스보다 한 차원 격 높은 하이엔드 워치의 "끝판왕"입니다. 그런데 이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미국 군인들이 티벳 영토를 통과하는 것을 허락해준데 감사하는 의미로 선물했다고 합니다. 만약 미국 대통령의 선물을 거절하거나 현금화한다면 외교적으로 큰 결례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왓엠아이 비단 명품 시계말고도 전세계 사람들이 존자님께 드린 수많은 값진 선물, 공양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공양을 받는 것이 반드시 세속사람들처럼 욕심으로 취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수많은 선지식들은 가르침을 듣기 위해 보물, 처자식, 자신의 목숨까지 아낌없이 스승에게 바쳤고 그것이 불교에서 법을 청하는 예禮입니다. 또한 중생의 복전福田이 되어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승가가 해야할 일 중 하나라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물질에 대한 탐착을 여의는 것이 중요하지 물질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이나교처럼 외적인 무소유를 강요하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은 아니니까요.
@왓엠아이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전 존자님 책을 볼 때 존자심 시계를 본 적이 없고 존자님 법문을 들을 때 존자님 시계를 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 수 년간 법문 동영상을 보더라도, 염주를 차신 모습은 나와도 시계를 찬 모습은 보기 어렵고 명품 시계는 더더욱 보기 어렵습니다. 명품 시계의 존재는 존자님 비판하는 사람들 글을 보고서야 알게되었구요. 그래서 메세지에 집중했는데 시계가 보인다는 말씀은 저에게 납득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사 명품 시계를 차고 계신 모습을 보거나, 혹 그럴 일은 없더라도 저에게 시계를 달라고 요구하시더라도 황금보다 귀하고 목숨보다 귀한 법을 주신 분이니 크게 개의치 않을 것 같습니다.
@보리심 저는! 자고로 스님이라면 내적/외적 모두 무소유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도 다버리고 출가하셨구요. 평생 탁발, 밥도 빌어 드셨습니다. 제가 오래전 다니던 절에서 송년법회때 어떤 거사님이 십억을 또 어떤 보살님이 오억을 보시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꼴을 보고 그뒤로 그절은 발을 끊었습니다. 복전이 되어 공덕을 쌓을 기회요? 거 어느 경전에 나와있는 내용입니까? 보시받은 돈으로 승복입은 사람이 누가 봐도 과한 불상을 짓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골프치러 다니고! 물질의 많고 적음, 문제 됩니다. 그 물질이 다 보시 받은거라면 더욱 그렇구요. 루즈벨트가 선물한 파텍필립 시계 현재 감정가가 얼만지 아십니까? 우리돈으로 십억이 넘습니다. 저가 만약 많은 사람들한테 존경받은 깨달은 존재라면 그런거 소장안하고 있을거 같습니다.
@왓엠아이 제가 한 말은 모두 경전에 근거한 내용입니다.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여기는 김성철 교수님 카페이고 불필요한 논쟁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곳이니 선생님의 댓글에 더 답글달지는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