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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그리운 독재자 *** 중편소설 그리운 독재자 *** 중편소설 그리운 독재자 *** 중편소설 그리운 독재자 ***
그리운 독재자 -1- <e-book 출간 작품>
사원의 숲에서, 성채 그늘 아래서 나는 그대들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자가 자유를 마치 멍에와 수갑처럼 차고 있는것을 보았다. 그 때 내 마음은 내 속에서 피 흘렸다. 왜냐하면 그대들 자유에의 욕망이 그대들에게 재갈을 물릴 때만이, 또 자유가 최후의 목적이며 기쁨이라고 떠들기를 그칠 때만이 그대들 실로 자유로울 것이므로.
그대들은 실로 자유로우리라. 욕망도 슬픔도 없는 밤이 아니라, 근심으로 가득 찬 낮에 또한 오히려 이 모두가 그대들의 삶을 묶고, 그리하여 그럼에도 그대들 벗어 버리고 해방되어 이들 위로 일어설 때만이.
그리하여 그대들 깨달음이 새벽에 지난 한낮의 시간을 묶었던 사슬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대들 낮과 밤 저편으로 일어설 수 있을 것인가? 실로 그대들 자유라 부르는 것은 이 사슬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사슬인 것을, 그 고리가 비록 햇빛에 반짝거리고 눈을 어지럽게 할지라도……. <자유에 대하여 : 칼릴 지브란>
- 1 -
5․18 특별법을 제정키로 했다는 뉴스가 티브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주방에서 늦은 저녁을 준비하며 뉴스 진행자의 얼굴과 특별법 제정에 대해 밝히고 있는 관계자의 낮익은 얼굴과 그에 따른 여러 글자들이 화면 위를 장식하며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보았다기 보다는 들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조리대에서 거실은 훤히 보였지만 티브이는 한쪽 벽면에 붙어 있어서 목을 길게 빼지 않고는 화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어떻든 다소 격앙되어 있는 듯한 진행자의 목소리는 이 뉴스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고 있었다.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 이해성(李解性)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역시 특별법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는 석간신문을 움켜쥐고 들어온 그는 욕실부터 들어가 몸을 씻고 나와 진작부터 뉴스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더랬다. 뉴스나 다큐멘터리 류 이외에는 거의 티브이 시청을 않는 해성이였지만 간간히 내쪽으로 고개를 돌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는데 그게 없는 걸 보면 특별법에 관한 관심이 어지간한 모양이었다. 하긴 나 자신도 정규방송이 시작되어 그것에 대한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는 눈을 떼지 못했으니 해성이라고 다를 게 무엇이랴.
나는 조리대 앞에서 해성을 바라보며 뉴스를 보고 난 뒤 그의 반응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니 은근히 그의 반응이 기대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 주방을 개조한 덕분에 나는 그렇게 조리를 하면서도 거실을 쉽게 살필 수가 있었고 남편이나 그 밖의 사람들과도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나의 두번째 남편으로써 이해심 많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해성의 배려(?)이기도 했다. 아무리 주방과 거실이 터져 있더라도 조리대가 벽을 보도록 설치되어 주부가 등을 보이고 일한다면 대화가 단절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비록 끊임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더라도 마찬가지가 아니냐고도 했다. 반면에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서로의 간격을 좁히는 좁히는 것이며 무수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였다. 그리하여 요즈음 꽤 많은 가정에서 그러하듯이 조리를 하면서도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도록 주방을 개조한 것이었는데, 그 작은 변화는 우리 부부에게 확실히 다른 감(感)을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연인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채 얼굴만 마주치고 있더라도 모든 것을 느끼고 서로를 읽어내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혹은 전화로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쉴새 없이 떠들어대도 그 거리감은 극복되지 않은 것과, 비록 별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직접 만나게 되면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은 것과의 차이점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시간을 연장하면서 까지 진행된 뉴스는 대부분 특별법에 관한 것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나는 이미 다른 시간대에 보고 들어서 빤히 알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귀를 기울였다. 혹시 그 사이에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호기심 섞인 기대감도 있었고 또한 관심을 안 가질 수도 없었다. 노(盧) 씨 비자금 파문으로 나라가 온통 들끓던 뒤 끝에 터져나온 뉴스이니 말이다. 그리고 남편 해성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도 내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어쩌면 그 특별법 보다도 정작은 해성의 반응에 대한 기대가 내 관심의 전부인지도 몰랐다. 특별법에 관한 뉴스가 끝나고 일반 뉴스로 넘어가게 되자 해성은 뒤로 물러앉으며 건성으로 티브이 화면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뭔가 씁쓸한 표정으로 쩝쩝거리더니 지나가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마땅히 청산해야 될 과거고 진작에 했어야 될 일이지.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고,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해야겠지. 언제까지고 광주에 얽매이고 군사독재에 발목을 잡혀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구. 하지만 뭔가 개운치는 않군. 하필 비자금 파문 뒤에 특별법 제정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와 놀라게 하다니. 내 얘기는 비자금 정국을 돌파하려는 국면전환용이 아니냐 그거야.”
해성의 그 말에 나는 조리대 너머로 그를 바라보며 거들고 나섰다.
“나도 특별법 제정을 환영하긴 하지만 뒷맛이 개운했던 것은 아니야. 비자금 정국도 그렇지만 현 대통령은 자신의 입으로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하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예측 못할 깜짝쇼를 여전히 계속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검찰에서 이미 공소권 없음이란 결정을 내렸는데 그것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도 그렇고 말야. 더군다나 역사에 맡기겠다고 누누이 말해왔던 게 대통령 자신 아니었어?”
“아무튼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문제가 많아. 그가 취임 후 추진해온 개혁조치들, 공직자 재산 공개, 금융실명제, 토지실명제, 5․18 특별법 등이 이미 정치적으로 계산된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받아들이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저 깜짝쇼에 동원된 관객에 불과할 뿐이라고. 아무리 뛰어난 감각과 정면돌파가 그의 특기라지만 말야”
“그는 3당 합당의 아들이라는 출생에의 약점을 짊어지고 있어. 그런 그에게 일부에서 말하는 피해가기 사정이나 표적사정은 불가피한 일 아니야? 그 정도는 이해해 줘야 된다구. 물론 그가 출생에의 약점이 없다면 좋았을 테지만 당시 그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길이었는지도 모르고, 문제가 있다면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준 국민들에게 있지 않을까?”
“……아무튼 앞으로 논란이 많겠군. 소급입법이나 일사부재리 원칙 같은 문제들 말야.”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아. 물론 그런 논란이 없을 수 없고, 있어야 마땅한 것이지만 찾아보면 얼마든지 방법이 있을 거야. 공소시효니 초헌법이니 위헌이니 하는 문제들은 법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과거의 예도 있잖아. 48년 친일파 척결을 위한 「반민족특위구성에 관한 특별법」, 60년 4․19혁명 이후의 「반민주인사 처벌을 위한 특별법」, 5․16 군사쿠데타 이후의 반정부인사를 처벌하기 위한 「국가재건비상조치법」등이 그것이고, 불란서에서는 2차대전 후 나치전범을 단죄하기 위해 공소시효를 박탈하는 법제정을 하여 끝까지 추적하기도 했어. 그리고 법리논쟁도 그렇긴 하지만 정작 문제는 우리 국민들에게 있는 것 아니야? 5․18에 대해 그렇게 외치던 사람들이 막상 칼을 뽑아 드니까 국면전환용이니 뭐니 하고…… 노씨 비자금 파문만 해도 그래. 전(全)씨야 자신이 연출한 선거에 의한 대통령이 되었지만, 87년 노씨를 대통령으로 앉혀놓은 것은 바로 우리 국민들이었어. 기득권을 잃지 않을까 해서, 변혁이 가져올 불안 때문에, 일부의 갈망에도 불구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앉혀놓은 것 아니야. 그런데 이제와서 비자금파문이 터지자 국민들은 분노하고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이지. 정작 돌을 던져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들이 아닐까……?”
한참 이야기를 하다보니 해성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게 깨달아졌다. 뭔가 놀랍다는 표정이었는데, 잠시 뒤 그는 나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지금 당신은 어느 쪽이야?”
“어느 쪽이냐니. 그런 질문이 어딨어? 우리는 지금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 뿐이라구.”
말을 해놓고 나니 웬지 머쓱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해성이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 것 만큼이나 내 스스로에 대해 놀라고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식으로 내 생각들을 개진할 수 있게 되었는가 말이다. 사실 이전 같았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내 의견들을 조리 있게 나타내기는 커녕 남의 생각을 따르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고작이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어쩌면 해성과 살게 되면서 생긴 변화가 아닌가 싶다. 아니, 생겼다기 보다는 해성이 가져다 준 변화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미 밝혔듯이 해성은 이해심 많고 남의 의사를 존중해 줄 줄 아는 남자였다. 그리고 전 남편과 헤어진 후 다시 만난 이년 연하의 두 번째 남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동거하는 남자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열명 안팎의 친구들과 양가 친지들이 보는 앞에서 간편한 옷차림으로 맞절을 하는 것으로 성혼(成婚)을 알렸고, 해성이나 나나 우리가 부부라는 점에서는 심정적으로 확고했다. 그러나 아직 전 남편과의 호적정리가 끝나지 않아서 해성의 호적에 입적되지 않은 까닭에 법률적으로 보면 우리는 동거인에 지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자의 삶이 상대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해성을 만나고 나서였다. 해성을 만난 뒤 내 삶은 완젼히 달라져 있었다. 전 남편인 태권(康泰權)과 살 때는 감히 생각지 못할 정도였다. 하고보면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은 먼저 간 사람들의 말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여자 팔자 뒤웅박 신세라느니, 남자를 만나기에 달렸다느니 하는 것들…… 무시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웬지 거부하고 싶고 받아들이기가 떨떠름했던 그런 말들. 하지만 막상 경험하고 나니 틀린 말이 아님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남자나 여자 문제에만 국한시키고 싶지는 않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어느 집단에서 상대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것은 꼭이 인간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과 동물, 동물과 동물, 혹은 식물세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가 있을 것이다. 사나운 개의 주인은 개를 사납게 다루고, 그 사나운 개에게 동료 개는 꽁지 빠지게 도망을 치는 놈도 있고, 한 수 아래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복종하여 굴종의 단맛에 길들여지는 놈도 있다. 똑같은 소나무 일지라도 기어오르는 넝쿨식물이 적당하면 함께 살아가지만 왕성한 놈을 만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해성을 만나 삶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비단 남녀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 대 인간 사이의 일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어떻게 전 남편인 태권과의 호적을 정리하고 해성의 호적에 입적시켜 우리의 사실혼 관계를 법률혼으로 까지 끌어가느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그리 큰 무리 없이 해결될 것 같다. 그동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이혼수속 밟기를 한사코 거부하던 태권이 요즈음에 와서는 도리어 이혼수속 밟기를 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태권이 호적정리를 거부했던 것은 아이 때문이었다. 비록 호적상일지라도 우리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엄마 없는 아이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없는 엄마를 호적에 남겨둔다고 해서 그게 무슨 소용일까마는 태권의 고집은 생각 외로 강했다. 그래서 나는 이혼서류를 작성하는 대신 태권으로부터 각서라는 것을 받아내었다. 우리의 이혼이 사실임을 인정하고 차후 어떠한 경우에도 문제삼지 않겠다는 각서였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여 실제 법정에 서게 될 경우 그 각서가 어떤 효력을 발생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태권을 믿었다. 적어도 태권은 자신이 인정한 이혼을 호적상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여 문제삼을 치사한 인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혹자는 각서 따위가 무슨 소용이며 왜 그렇게 진작 청산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짓을 했냐고 하겠지만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그런데 태권에게도 여자가 생기게 되자 이번에는 오히려 그쪽에서 호적정리를 서두는 상태인 것이다. 물론 아직 직접적으로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친구를 통하여 그런 이야기를 비쳐왔으니 조만간 무슨 연락이 와도 올 것이고, 그러면 나는 그에 적절히 대응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여 따지고 든다면 그게 내 약점일 수도 있다. 내 자신에게는 물론이려니와 해성에 대한 내 입장에서도 그럴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삼 당 합당의 아들이란 약점을 안고 있어 피해가기 사정이나 표적사정이 불가피하듯이 아직도 내 호적이 전 남편인 태권에게 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내 약점인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5․18특별법을 제정키로 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그리고 그 이전의 비자금 파문 등을 지켜보면서 내가 전 남편인 강태권을 떠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무엇 때문에 그것들을 접하고 지켜보며 전 남편인 아니, 호적상으로 따진다면 지금도 남편일 수 밖에 없는 강태권을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계속>
분교터에 캠핑장> (갈론캠핑장 등산입구까지내려옴
첫댓글
그리운 독재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역으신 듯요
그 시절의 개혁조치 정치 일면의 등등
출간하신 작품인가 봅니다
속리산을 종주하셨어요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