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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멋과 맛 그리고 향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1. 들어가기
중국에는 시법이 있어, 모든 문필가들이 창작에 앞서, 이 시법을 읽는다고 한다. 황산은 우리 나라 문인들이 시법도 모르고 글을 쓴다고 질타한 바 있다. 문학 창작에 어떤 틀이 있다면, 그 하위 부류에 속하는 수필 장르에도 무슨 법이 있음직해서 고민해 본 결과, 수필은 세 가지가 삼위 일체를 이루어 문학의 품격, 즉 문학성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필자의 가설에 불과하다. 필자는 오랫동안 수필을 쓰면서, ‘수필다운 수필이 되려면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가’ ‘수필의 문학성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골몰하게 되었다. ‘이것이 수필이다’ 했을 때,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이나 요건이 이론적으로 뒷받침되어야 우리 수필이 문학의 자리에 당당히 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필다움의 평가 영역을 설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를테면 수필은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隨筆 有三>이다. 하나는 <향>이요, 두 번째는 <멋>이요, 마지막으로 <맛>이다. 흔히 수필 작품을 감상하거나, 해설하면서 향기가 있다느니, 맛이 있다느니, 멋이 있다고들 하는데, 정작 향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물으면, 우물쩍거리게 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용어 하나라도 제대로 정확히 알고 사용해야 함이 마땅할 것 같아 그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본고의 목적은 수필문학의 문학성을 보다 확실하게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수필 유삼>을 수필 창작에 있어서 일종의 <필법>으로 정착시켜, 창작 이론 모형으로 발전시켜 보자는 데 있다.
2. 수필의 <향>
수필에 있어서 <향>이 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함의하는가. 꽃도 향기를 갖고 있고, 사람도 그 나름의 향기를 낸다. 과연 수필의 향기, 아니 수필다운 수필이 내는 향기는 어떤 것일까. 향기는 정서적 감화를 이끄는 모든 문장에 두루 통용될 최대공약수다. 수필에 있어서 문장과 함께 생명적이며 매력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수필에 있어서 <향>은 수필 내부에 있는 번득임이다. 외부에서 나타나는 번득임은 <향기>가 아니라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기일 뿐이다. 명수필의 향기는, 그래서 일생 동안 가슴의 내부에서 번득이는 영원한 메아리에 있을 것이다. 여자의 향기는 절반이 속임수라고 한 사람이 있다. 이는 외부의 번득임이 내부의 번득임에 미치지 못한 데 대한 실망의 푸념일 것이다.
향기 있는 문장, 향기 있는 수필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진실>이 있으면 그만이고, 타고난 <소박>이 깃들였으면 그만이고, 독자와 손 마주 잡을 <눈물>이 있으면 그만이다. <진실>, <소박>, <눈물>이 내는 휴머니즘을 능가할 향기가 어디 있겠는가. 여기서 김소운의
육성을 들어보자.
어느 문학 작품에서도 작자 자신의 모습은 풍기게 마련입니다마는 그 중에서도 수필은 가장 직접적으로 그 “사람”을 느끼게 하는 문학 작업이라고 하겠습니다. 인생이나 자연을 주제로 삼은 경우에도 수필은 가차없이 필자 자신을 드러내고 맙니다.
“나”와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운 수필이니만큼 가차하면 여기에는 위험한 함정이 따르기 쉽습니다. 학식이나 안목을 자랑하는 ‘페던티즘’,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붓대가 빗나가 버리는 자기 선전과 자기 변호, 어떤 이득을 계산에 넣은 완곡한 포석, 이런 것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경계해야 할 <터부>요, 수필의 품위를 스스로 저해하는 독소라고 하겠습니다. 한 자루의 펜은 내게 부여된 무슨 특권이 아니요, 하물며 제 자신의 편익을 위한 사유물이 아니라는 것. 이것은 하필 수필에만 한한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글의 상식이기도 합니다.
위 예문은 ‘수필의 문학화’를 위한 기본 자세라고나 할까, 수필의 향기, 즉 인간애를 강조한 글이라 볼 수 있다. 지나친 화장은 오히려 역겨움을 주듯, 수필도 ‘이끌리게’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주제를 너무 과장하거나 호들갑을 떠는 기교를 부린다면 품위 없는 문장으로 전락한다. 어디까지나 ‘진실’과 ‘소박’과 ‘눈물’을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조화에는 나비가 안 가도, 쓴 냉이꽃에는 나비가 앉는다.
수필의 생명은 감동이다. 휴머니티야말로 감동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가슴 찡한 사연은 이미 표현 이전에 감동의 씨앗을 잉태에 있다고 할 것이다.
3. <수필>의 멋
수필에 있어서 <멋>이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수필에는 <멋>이 우러나야 한다. 여기서 멋이란 정서의 문학적 형상화를 의미한다. 이렇듯 같은 이야기라도 그것을 어떻게 형상화시키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의미는 달라진다. 하나의 대상이나 사건은 작가의 손에 의하여 형상화되는 과정에서 내용이 변질된다. 그것은 작가의 세계관에 따라 그 관점이 달라질 수 있지만 그보다는 작가의 기교가 무엇보다도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것이 창작의 특수성이다. 수필은 주제 전달의 과정, 즉 형상화에서 문학성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의 눈이 밝은 정서적인 사람만이 수필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정서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바로 "멋"이다. "멋있는 사람"이란 정서가 풍부한 사람을 일컫는다. 언어를 감정 그대로 노골적으로,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부드럽고 윤택하게 각색해서 함축성 있게 표현하는 데서 풍기는 분위기, 그것이 곧 멋이다.
어떻게 하면 멋진 언어가 저절로 구사되고, 멋진 행동이 저절로 나올까? 마음 속에 맑고 깨끗한 거울을 달아 두어서, 언제나 자신의 영혼을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음 속에 해맑은 옹달샘을 파두어서 넘쳐흐르는 물로 마음에 묻은 얼룩과 때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깊고 은은한 소릴 내는 종을 달아 두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양심의 종을 스스로 울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눈도 밝아질 것이다. 마음 속에 작은 꽃씨를 가져서 항상 자신의 주변을 아름답게 가꿀 줄 아는 지혜도 <멋>을 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주제의식의 전달방법, 즉 대상이나 사건의 형상화 기법을 살펴보는 것이 곧 수필의 <멋>을 창출하는 일이다. <멋>을 내는 기법에는 네 가지가 있다.
1) 주제의식의 의미화
의미화란 주제의식을 구체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자기화의 수법이다. 기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작가 자신의 독창적인 수법인 것이다. 때문에 그 의미화 작업은 틀에 매인 방법이나 요령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작자 나름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으로 주어진 제재를 분석하는 개성이요, 이해하는 마음인 것이다.
(a) 격정의 밤이 깊어 한 줄기 밧줄 같은 소나기라도 쏟아져 보라. 바람도 자고, 맑게 갠 이튿날 아침, 하얀 모래밭에 흩어진 짤간 꽃잎들이야 말로 임을 그리다 지쳐 병실의 하얀 침대요 위에 쏟아 놓은 30대 여인의 각혈이 아니겠는가.
(a)는 오창익의 <해당화>란 수필의 종결구다. 주제는 ‘열애’다. 바다 건너 멀리 떠나간 임을 그리는 여인을 해당화에 비유하고, 그를 기다리다 지친 여심을 비바람에 진 빨간 꽃잎으로 의미화하여 “30대 여인의 각혈”이라 했다.
2) 종결어미의 회화화
정적인 이미지를 동적 이미지로 바꾸어 놓으면 수필어가 된다. 시각어를 통해 종결어미를 설명보다 묘사를 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서술어를 회화화한다는 것은 상투적이고 진부하고, 이미 눈과 귀에 익은 표현을 되도록 피하기 위해 설명적인 정적 서술어를 동적으로 영상화한다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언어들이 엮어내는 이미지를 새롭게 창출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서술어에 힘을 실어주면 언어는 활기를 띠게 된다. 이런 표현은 아주 재미있는 특질이 있어 산 언어를 접한 듯한 느낌을 준다.
(b) 요란한 뻐구기 소리가 창가에까지 들려왔다. <c> 요란한 뻐꾸기 소리가 창을 흔들고 있었다. (b) 단풍이 온 산에 붉게 타오르고 있기에 발이 절로 멈춰졌다. <c> 붉게 타오르는 단풍이 발을 붙들고 놔 주질 않았다. (b)월남의 더위, 그것은 하늘에 불화로를 달고 지상으로 내쏘는 용광로였다. <c> 월남의 더위, 아스팔트 길에 군화 자국이 5cm나 되게 박혔다.
<c>는 (b)의 서술어를 동적으로 회화화한 문장이다. (b)보다 훨씬 더 <c>가 감각적 구체성을 띠면서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3) 수필문장의 함축화
문장이 비유를 만나면 멋을 내면서 더욱 진솔해지고, 참신성을 띠게 된다. 수필 문장은 다른 산문어와는 달리 본질적으로 함축성이 담겨야 하는 것이다. 비유는 필자의 느낌이나 생각을 독자에게 더욱 정확하게, 참신하고 생동감 있게 진실하게 전달하는 구실을 한다. 추상적이고 복잡한 사상을 표현할 때, 비유를 쓰면 구체적이고도 간결하게 나타낼 수 있다. 사람들은 구체적이고 단순화된 것을 더 오래 기억하는 법이다.
(d)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세상은 온통 불바다, 거기에 데일세라 몸을 움츠리고/ 아, 그의 정열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기둥이었다./ 유리컵이 얼음 같다./ 아버지의 노기에 찬 음성이 나무에 얹힌 눈조차 떨어지게 울려왔다.
(e) 산골의 날씨는 무섭게 추워지려는데 짝을 버리고 혼자 남쪽으로 갈 수 없었던 애절한 황새의 정, 조류에 따라서는 암수의 애정이 별스런 놈도 있지만, 그것이 모두 그들의 본능이라 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들의 하찮은 본능이 오늘 따라 인간의 종교보다 더 거룩하고, 예술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 김규련의 <거룩한 본능>, 결말 부분 -
(d)는 문장을 비유나 상징을 사용하여 문장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e)는 작품의 주제를 드러나지 않게 함축해서 문장의 분위기 속에 깔아두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인 것이다. 수필에 있어서 함축은 문학성과도 밀접히 관계한다.
4) 중심사상의 상상화
주제단락의 상상화, 즉 문장을 통한 중심사상의 상상처리는 바로 그 주제의 효과적이고도 원활한 의미전달을 위해서다. 수필의 주제 전달은 정서의 구체화로서만 가능하기에 그 방법은 지적이기보다는 정적이어야 하고,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이어야 효과적이다. 다시 말하면, 그 내용이 설사 교훈적인 것, 비평적인 것, 지시적인 것이라 해도 그 전달은 어디까지나 독자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느끼게 하고, 공감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사상의 상상화는 미적 감동과 충격을 주기 위한 필수적 전략이다. 주제의 전달 방법은 어디까지나 상징, 암시, 생략 등 상상적일 수밖에 없다.
(e)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 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 또한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주고, 또한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준다.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e)의 마지막 주제문,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문장은 ‘고독’이란 글의 주제의식을 의미화한 것이다.
3. 수필의 <맛>
수필은 삶의 체험에서 우러난다. 지식과 체험과 사상이 용해되어 예술적인 문장으로 표현될 때, 한 편의 멋진 수필이 탄생된다. 수필의 <맛>은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데서 나온다고 하겠다. 수필 창작에 있어서 중요한 사고 유형은 창의적인 사고와 비판적인 사고다. 두 사고 유형은 맛있는 글을 쓰는 데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정재호는 <수필의 맛>에서 “설익은 설교나 어설픈 철학으로는 수필의 참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수필의 맛은 담담하지만 무미건조해서는 안 되며 시적 향취도 있어야 하지만 시처럼 난해해서도 안 되고 소설 같은 재미도 있어야 하지만 속되어서도 안 되고 철학성이 있어야 하지만 현학성이 짙어서는 안 된다. 송엽차는 솔잎의 까칠한 지성과 물의 무기교의 맛과 쾌감을 주는 설탕이 녹아서 한 잔의 차로 승화된 것이다"고 하면서 맛있는 수필을 송엽차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다.
독창성과 비판성을 가져오면서 수필의 고고하면서도 담박한 맛을 주는 양념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수필에 반드시 위트, 유머, 새타이어, 아이러니, 파라독스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장르의 특수성으로 보아 수필은 그런 점을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것들이 수필문학의 맛을 낸다는 것이다. 수필의 오미라 불리는 이들은 글에 생동감을 주고, 재미나 흥미를 북돋아 주고, 웃음을 선사하며, 긴장감과 놀라움을 제공해 준다.
여기에는 관습적인 불문율이 있다. 처방에 있어서도 조제의 원리와 배합의 원리가 있듯이 그 친화성의 원리가 있다. 바꾸어 말해서 비상이 들어가야 할 약이 있고, 감초가 들어갈 약이 있다는 논리다. 풍자와 반어, 그리고 역설은 비상에 비유해 보고, 기지와 해학을 감초에 비유해 본다면, 중수필에는 비상이 들어가야 제격이고, 경수필에는 감초가 들어가야 그 맛과 효능이 배가된다.
1) 기지(위트)
‘기지’는 영어로 위트라 번역되는데, 우리말 사전의 뜻으로는 “그때 그때의 경우에 따라 재치있게 변통하는 슬기”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문학적 용어로는 “짧고 교묘하여 놀라움을 일으키도록 계획적으로 고안된 일종의 언어적 표현”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지만 꼭 언어적 표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발한 판단이나 어떤 사물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나 의미를 도출해 내는 능력도 기지의 소산이라고 볼 때, 판단이나 해석적 능력의 기지도 있을 수 있다.
똑 같은 새소리였지만 서구인들이 그것을 즐거운 노래소리로 들어 ‘새가 노래한다’고 표현한데 반하여 한국인들은 슬픈 울음으로 들었기에 ‘새가 운다’라고 표현했다는 발상, 그리고 물에 빠지거나 혹은 뜻하지 않은 조난을 당했을 때, 한국 사람은 ‘사람 살려’라고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핼프 미’라고 한다는 대비를 통해서 한국인의 의타성을 도출해 낸 해석력, 우리는 배고픈 민족이기에 미각어도 발달되었고, 그래서 더위도 ‘먹고’, 나이도 ‘먹고’, 욕도 ‘먹고’, 심지어 사람의 성격을 평가할 때는 ‘싱거운 놈’, ‘짠 놈’, ‘매운 놈’이라 했다는 해석 등은 기지에서 나온 발상이고 해석이라 하겠다.
2) 해학(유머)
생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에 의하면 유머란 긴장의 돌연적인 해방, 신경의 휴양이라고 한다. 바로 여기에 유머의 진수가 있다. 울음이란 모든 동물의 공통 분모요, 웃음이란 유인원의 특징이라고 임어당은 그의 <동서양의 해학>에서 말한다. 그 점에서 보면 유머는 인간 정신의 개화다. 그러기에 최고의 유머란 사려 깊은 웃음으로 인간의 힘을 조장하는 청량제요, 수필의 맛을 한껏 우려내는 조미료다. 그것은 우주적인 연민의 정에 의해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말하자면 모든 인생에 대한 슬픔과 동정에 찬 통찰 속에서 드러난다.
유머는 대개 우스갯말이나 우스운 외양이나 우스운 행동양식에서 나온다. 그러면 수필에서 유머를 어떻게 도입할 것이며 또 어떤 종류의 수필에서 수필가의 유머 감각이 필요한지를 살펴보자. 먼저 우스개 말일 경우는 수필 작품에 부분적으로 끼어 넣어 분위기를 우선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유머러스하게 꾸미려면 우스운 외양이나 행동에서 그 소재를 구하면 된다. 이런 것에 걸맞는 소재라면 인물스케치, 성격상의 결점, 신체상의 특징 내지 결점, 상대방이나 나의 특이한 버릇, 무지나 오만, 건망증에서 나온 어처구니없었던 실수담, 음이나 뜻으로 말미암아 이상한 해프닝이 일어난다는 성명수필 등을 들 수 있다.
장자는 어느 과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장자가 산책을 나갔다가 아주 슬픈 얼굴로 돌아왔다. 제자가 그 까닭을 물은 즉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길을 가다가 웬 상복을 입은 부인을 남났는데 땅에 꿇어 앉아 축축한 무덤을 부채질하고 있지 않는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그 여자 왈, ‘저는 사랑하는 남편에게 생존시 그의 무덤이 마르기 전에는 재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지요. 그런데 이 고약한 날씨 좀 보세요’라고 하지 않겠어.”
위와 같은 유머가 없었다면, 중국에도 신경쇠약자가 많았을는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중국의 병서인 <삼략>에는 부드러운 것으로서 억센 것을 제어한다는 “유능 제강”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대자연의 진리를 꿰뚫는 말이다. 그러기에 최고의 유머란 사려 깊은 웃음으로 인간의 힘을 조장하는 청량제다. 그것은 우주적인 연민의 정에 의해서 더욱 두드러진다.
3) 풍자(새타이어)
수필에서 풍자가 지니는 뜻의 비중은 크다. 풍자를 글자풀이대로 보면, 풍은 빗대서 바른 말을 한다는 뜻이고, 자는 찌른다는 뜻이다. 남의 결함이나 결점을 직선적으로 말하지 않고, 돌려서 말하거나 다른 말로 빗대서 말하는 것을 이른다. 따라서 풍자는 사회 죄악이나 사람들의 옳지 못한 것을 대상으로 한다.
풍자는 재치가 있되,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냉소, 조소, 자학, 야유, 독설, 희롱, 빈정거림, 비난, 비평, 비꼬는 따위의 개념이 담긴다. 수필이 아닌 다른 장르에 있어서는, 남을 헐고 찌르는 표현 방법에 별로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직간접으로 작자가 드러나는 수필에 있어서는, 남의 결점이나 결함을 다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필은 작자의 품격이 바탕에 깔려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수필에서의 풍자는 그만큼 표현상의 기술이 따른다. 풍자는 솜방망이 속에 들어있는 송곳 같은 것이라고 한 말이 있다. 북송의 문장가 구양수가, 사회를 어지럽히고 해치는 간사한 무리들을 빗대서, ‘증창 승부’라는 글을 쓴 것도 그런 것이다.
4) 역설(파라독스)
역설은 처음에 듣거나 읽을 때 정상적인 경험과 보편적인 지식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거나 거짓처럼 보이지만, 한참 따져보면 참을 뜻하는 표현이다. 파라독스는 사실과 모순되는 듯하기 때문에 독자를 당황하고 긴장하게 한다. 그리하여 주의를 끌고 의미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다음은 이대규의 <수필의 해석>에서 인용한, 수필에 나타난 파라독스의 예다.
(1) 성인의 가르침은 알기 쉽다. (2) 그런데 성인의 가르침을 연구하는 학자가 성인의 가르침을 어렵게 한다. (3) 학자는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연구하지 않고, 성인의 가르침을 나타낸 말을 복잡하게 따지기 때문이다.
위의 예문에서 (2)가 역설이다. 영구는 연구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을 알아내려는 활동이다. 알기 쉬운 것을 모르게 하는 활동은 연구의 원래 목적에 어긋난다. (2)와 같은 활동은 독자의 상식이나 기대에 어긋나기 때문에 (2)와 같은 말은 거짓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1)과 (3)의 문맥에 의하여, 거짓 같은 (2)의 말이 참이 되므로, (2)는 파라독스다.
5) 반어(아이러니)
아이러니는 표현된 말과 그 뜻, 한 인물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의 사실, 인물의 동기와 행동의 결과가 반대인 것을 뜻한다. 아이러니에는 언어적 아이러니, 극적 아이러니, 사건의 아이러니가 있다.
이대규는 <수필의 해석>에서 ‘언어적 아이러니는 반대되는 표현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 즉 말하는 것과 의미하는 것이 반대되는 것’이라 하였다. 언어적 아이러니는 전달되는 의미를 강화하거나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1) 혜월 선사는 흉년에 굶는 사람들에게 버려진 몇 백 평의 땅을 개간하게 하여 논을 만들었다. (2) 그 논을 개간하는 데 든 비용은, 같은 논을 사는 데 드는 비용의 몇 곱이 더 들었다. (3) 선사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한 것이었다. (4) 그러나 선사는 많은 사람이 굶주림을 면하고, 새 논이 생긴 것을 기뻐했다.
바로 위의 예문의 (3)은 아이러니다. (3)을 보통말로 바꾸면, ‘(3.1) 선사는 참으로 슬기로운 일을 한 것이었다’로 될 것이다. (3.1)과 같이 평범하게 표현하지 않고, (3)과 같이 아이러니로 나타나면, (3.1)의 의미가 강화된다.
극적 아이러니는 작품 속의 말하는 이나 어떤 인물이 아는 것을 또 다른 인물이 모르는 것이다. 이것은 한 어리석음과 다른 인물의 슬기로움이나 훌륭함을 강조한다.
1.나는 기차 탈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늙은 방망이 장수에게 방망이를 깎아 달라고 부탁했다. 2.노인은 오래도록 방망이 깎이를 계속했다. 3.기차 탈 시간이 가까워 오자 나는 빨리 깎으라고 재촉했다. 4.재촉하면 방망이를 팔지 않는다고 노인은 화를 냈다. 5.나는 불쾌하고 화가 났다. 6.노인은 일을 멈추고 담배를 피웠다. 7.나는 불친절한 노인에게 중오심을 느꼈다. 8.한참 후 노인이 나에게 방망이를 주었다. 9.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방망이를 주었다. 9.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방망이를 주었다. 10.아내는 요즘 사기 어려운 좋은 방망이를 사왔다고 기뻐했다. 11.나는 그 노인이 좋은 방망이를 만들려고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12.그리고 훌륭한 노인을 멸시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 예문의 극적 아이러니는 3에서 7까지 지속된다. 이 아이러니는 11과 12에서 작가가 새롭게 깨달은 것은 강조한다. 사건의 아이러니는 동기 실현을 위한 행동의 결과가 동기와 반대가 되는 것이다. 사건의 아이러니는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동기와 비참한 결과를 강조한다. 박문하의 ‘잃어버린 동화’에 사건의 아이러니가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공허한 마음에 위안을 얻으려고 ‘초가’를 찾는다. 그러나 그는 초가가 헐린 빈터를 보고 상실감에 젖는다. 그리하여 그는 초가를 찾기 전보다 더 큰 공허감을 맛본다. 이 아이러니는 작가의 공허감을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4. 나오며
지금까지 필자는 수필 창작의 이론 모형 연구 차원에서 필법, <수필 유삼>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숙명 같은 수필의 잡문성을 나름대로 극복해 보고자 했으나 본고의 내용은 부족한 점이 많다. 좋은 수필의 요건에 세 가지가 전부일 수 없다. 한 편의 문학수필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주제, 제재, 문장, 구성 등 구성적 요건 뿐만 아니라 주제의 의미화, 문장의 개성화, 구성의 다변화 등 기능적 요건의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필자는 수필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부족한 분야에 대해서 차근차근 연구하고 또는 하나하나 보완해 나갈 것을 약속한다. 특히 수필의 <향기> 부분은 계속 연구 검토함으로써 이론 모형을 보다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진정 좋은 수필은 진통과 고뇌 속에서 태어난다고 했다. 그래서 수필을 창작함에 있어 필법에 대한 진통과 고뇌는 좋은 수필을 낳는 씨앗이요, 어머니다. 수필은 언어를 부리는 역량에 따라 작문이 되기도 하고, 잡문이 되고, 작품이 되기도 한다. 작문과 잡문의 수준에서 벗어나 작품의 수준에 든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수필 유삼>의 필법을 수필 창작시 기법으로서 활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롤랑 바르트의 육성을 들으며 본고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그는 ‘글쟁이’와 ‘작가’를 확연히 구별하라고 했다. 이 말은 ‘글쟁이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언어를 이용하는 사람이고, 작가는 전달 차단적 언어를 재료로 쓰는 사람이다. 작가는 말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어떤 언어적 물질을 만들어내는 거인이다‘고 정의하고 있다. ’수필 유삼‘의 차원에서 곱씹어 보면, 더욱 의미심장한 말이다. 본고가 창작 활동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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