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6] 강정자 (姜禎資) - 말씀따라 모든 사연 뒤로하고
13. 전남지구장인 남편을 내조하며 - 2
10 그러나 먹을 것이 부족해 늘 금식을 밥 먹듯이 하던 시절이었다. 젊은 식구들이 전도가 많이 되면서 부모들의 핍박이 심해졌다. 날마다 교회에 찾아와 소리를 지르기가 일쑤였다. 11 그렇다고 개척 전도를 멈출 수가 없었고 한 사람이라도 뜻에 맞는 일꾼으로 쓰일 수 있게 정성을 들였다. 그러던 중 참아버님께서는 세계 제2차 순회를 떠날 준비를 하셨다.
12 떠나시기 전에 뵙기 위해 청파동 본부교회로 찾아갔더니 참아버님께서 “넌 통일교회 귀신이야.”라고 하시며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영계를 대표해서 경배를 드리기도 했다. 13 참아버님께서 순회를 떠나신 후 120번 경배로 참부모님의 안위와 안전을 놓고 정성을 들였다. 광주 사직공원에 성지를 정해놓고 새벽 3시면 그곳으로 가서 기도를 했다.
14 기도를 하게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도에 몰입했다. 눈이 내려 수북이 쌓여도 모를 정도였다. 말하는 시간보다도 기도하는 시간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15 교회가 대의동에 있을 때 참아버님께서 세계 순회를 마치고 무사히 귀국하셨다. 그곳에서 참아버님을 모시고 집회가 열렸다.
16 그 집회에 약 천 명이 모였는데 참아버님께서는 집회 성공을 매우 기뻐하시면서 ‘전라지구 천종지대명’이라는 휘호를 써주셨다. 그리고 나는 ‘충효지성(忠孝至城), 천정지합(天情之合)’이라는 휘호를 하사받는 영광을 얻었다. 17 모두가 한 끼니를 해결하기조차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말씀으로 배를 채우고 뜻을 위해 살던 때였다. 그 대의동 시절에도 21일 수련 때 언제나 된장 하나 없는 소금국이었다. 18 전남지구장 시절 하늘은 우리 부부에게 아이들을 축복해 주셨다. 동명동으로 이사를 하였을 때 첫딸 유혜중(1964년 12월 3일)을 주셨다.
19 그리고 처음으로 식구들이 가져다준 메주로 장을 담가 21일 수련회 때 된장국을 끓여 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