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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신 4장 15절 ~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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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암송 말씀이 신명기 4장 24절 말씀으로, 질투의 하나님에 관한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 보다 다른 것에 마음 빼앗기고 그것을 더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시고 질투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는 성경에서 제일 되는 계명을 어기기 때문에 생기는 질투이며,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는 십계명의 제 1계명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생명 주고, 사랑주고, 은혜 주고, 영원한 삶을 주었는데도 그런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나는 사람들을 향해 질투 하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말씀을 함께 보면서 하나님을 질투하시게 만드는 원인과 배경이 무엇인지, 그리고 질투 하시지 않도록 우리가 해야하는 믿음의 자세들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보기 전에 먼저 성경에서 말하는 ‘질투’에 대해서 잠깐 정리하고 지나가겠습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성경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근원이 되는 7가지 죄악을 정의 하였습니다. 카톨릭에서는 이것을 ‘칠죄종(七罪宗, 라틴어: septem peccata capitales)이라고 부릅니다.
7가지 죄의 내용은 교만(Superbia), 인색/탐욕(Avaritia), 질투(Invidia), 분노(Ira), 음욕(Luxuria), 탐욕/식탐(Gula), 나태(Pigritia)입니다. 인간들은 각각 정도가 심하고 약할 뿐이지 예외 없이 이 7가지 죄들을 짓고 있습니다. 1995년에 나온 브래드피트와 모건 프리먼 주연의 ’세븐‘이라는 영화가 바로 7가지 죄를 소재로 한 영화였습니다.
교만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역시 사람에게는 교만이 가장 무서운 범죄입니다. 지난 7월 약함에 대해 설교 하면서,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도무지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불쌍하다고 했는데, 이러한 태도는 전부 교만에서 비롯 되는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부하고, 자기가 자리에 앉으려하는 최악의 중대 범죄임을 잊지 말고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7가지 죄악을 말하는 근거 구절들은 여러 곳에서 중복되고 반복적으로 나오지만 가장 대표적으로 마가복음 7장 21~22절,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는 구절을 말합니다.
귀신은 사람을 더럽고 지저분하게 만드는데, 이러한 죄들은 사람의 속(마음, 생각,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며 이런 죄들은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을 보면 이 모든 죄악들이 사탄(마귀, 귀신)이 인간을 공격하는 수단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죄인 질투는, 시기, 투기라고 번역 되기도 합니다. 십계명 둘째 계명중에서 우상을 만들면 하나님이 질투 하신다고 했고, 열 번째 계명에서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 탐하는 마음이 질투, 시기, 투기에서 비롯됩니다. 질투는, 하나님이나 인간이나 다른 의미를 지닌 채 십계명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대한 범죄의 원인이 됩니다.
이정도로 하고 인간에게 해당되는 질투(시기, 투기)는 다음 시간에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얼마나 질투를 잘하시는 분인지, 하나님이 질투하실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 15~19절을 읽어 드립니다.
“15. 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16.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17.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18. 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19.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아멘.
이 내용은 한 마다로 “다시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다시는 이라는 말은 이미 범죄 전과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범죄 사건은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금송우지 우상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시내산 정상에서 모세에게 십계명과 온갖 규례와 법도들을 알려주고 계셨는데, 산 아래에서는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를 전혀 몰랐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반을 다 보고 계셨고, 그들이 금송아지를 신이라고 외치며 제사하는 소리들을 다 듣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서 내려가 보아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이렇게 빨리 벗어나서, 그들 스스로 수송아지 모양을 만들어 놓고서 절하고, 제사를 드리며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하고 외치고 있다.”(출 32:7,9, 표준새번역)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정말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만드는 이 광경을 보시고 극도의 질투와 분노하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수백년 동안 노예 생활을 끝내게 해주고, 홍해를 건너 목숨을 구해 주셨는데도 불과 40일을 참지 못하고 배신을 했습니다. 아마 사람이라면 그 배신감에 몸서리치면서 당장 산에서 내려가 그들과 한판 붙고 싶었을 겁니다.
하나님은 이 상황에서 냉정하게 모세에게 말씀 하시기를, “나는 이 백성을 살펴 보았다. 이 얼마나 고집이 센 백성이냐?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말아라. 내가 노하였다. 내가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 그러나 너는, 내가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출 32:9,10, 표준새번역)고 하셨습니다. 산 아래에 있는 배반한 자들은 다 죽이고 모세만 살려두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 과정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모세가 중보 기도하여 용서 받고, 다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어 두 번째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 34:14) 아멘.
하나님의 이름 자체가 질투라고 불릴정도로 하나님은 질투가 강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상을 만들어 절하고, 제사하고, 그것들이 자신들의 신이라고 말하는 것을 결코 다시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향해 질투하시는 원인은 사랑과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할 때 발생을 합니다.
모세는 이렇게 과거에 한 번 백성 전체가 전멸당할 뻔한 금송아지 사건을 상기시며 주면서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 되심을 그의 마지막 설교를 통해 경고하고, 각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로 존경 받는 지도자가 마지막 유언 같이 남겨준 말씀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음을 우리들도 가슴 깊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15절에서, 하나님이 호렙산(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 주셨을 때 아무런 형상도 보여주신 적이 없는데, 너희들은 무슨 근거로 아무 형상이나 만들어서 그것이 하나님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시니 어떤 형상도 다시는, 결단코, 절대로 만들거나, 절하거나, 제사하면 반드시 전멸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질투하시면 다 죽는 겁니다.
하나님의 질투가 어디서 비롯되었습니까? 불순종과 교만함에서입니다. 정확하게는 십계명의 제 1계명을 어겼을 때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여 더 이상 감사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도 대놓고 다른 길로 가버리고, 거짓말하는 자들과 연합하여 오만방자한 언행을 일삼고, 감(깜)도 안되면서 한 줌의 권세와 권력으로 교만함을 내세울 때입니다.
십계명의 1계명도 안 지키는데 나머지 계명을 지킬 리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보아서 철저하고 완전한 배신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배신했고, 가나안 땅을 분배 받고난 후에도 배신했고, 성전을 세우고 왕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음에도 배신했고, 제국의 침략 가운데서도 끝까지 하나님 편으로 돌아서지 않는 완전한 배신을 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중간 중간 배신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렇게 기회를 주었는데도 최우에 가서 완전한 배신을 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언약을 철회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질투의 끝은 진노와 멸망이시지만, 질투의 과정은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은혜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큰 범죄 사건을 상기시켰듯이, 이제는 우리 각자가 우리의 신앙생활, 우리의 인생의 전반적인 상황들을 한 번 상기시켜 보십시오. 나는 내 인생에서 우상을 절대로 만들지 않았다, 내 인생에 우상은 절대 만들려는 생각조차 없다라고 생각 하실 수 있습니다. 그얼게 생각하십니까?
우상은 나무나, 돌이나, 무엇을 만든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 보다 눈에 보입지 않는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우상이 훨씬 더 많고, 심각하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진짜로 그럴까요? 제가 던지는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해 보십시오. 저도 똑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① 여러분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지 않으시죠. 그렇다면, 언제나 하나님이 내 언행심사를 지켜보고 계시고, 내 모든 행위들을 전부 다 기억하신다는 것을 의식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살아가고 계신가요?
② 여러분은, 예수님이 믿음의 주인 되심을 의심하지 않으시죠. 그렇다면,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심판대에 서는 그날까지 날마다 내 믿음을 확증하며 죽기까지 순종하려는 십자가의 길로 잘 나아가고 계신가요?
③ 여러분은, 다 성령 받으셨죠. 성령 충만하기를 원하시죠. 그렇다면, 성령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숨이 막힌 것 같이 답답하여 전심으로 기도하기를 멈추지 아니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죄와 죽기까지 싸우면서 진실로 참회하기에 전심을 다하며 하루 하루를 거룩하게 살아가고 계신가요?
이 세 가지 질문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질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가 곧 그리스도인의 삶의 열매가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질문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경외(경배)하는가라는 질문이었고, 예수님에 대한 질문은, 내가 얼마나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앞에 겸손함으로 내 구원을 꽉 붙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고, 성령님에 대한 질문은, 심판대 앞에서 네 믿음을 보증해 주실분에게서 얼마나 자신감이 있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이 세가지 질문이 진짜 내 삶에서 어설프게라도 적용되도록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세가지 질문에서 자꾸 벗어나려는 사람은 우상숭배자의 길로 잘못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에게서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이 떠나버리려는 상태, 상황, 그리고 그런 의도적인 행위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인가요? 제가 이 질문을 던져놓고 제 양심에 대답을 요구해 봤습니다. 제 대답은 갈팡질팡, 우왕좌왕, 이리저리 였습니다. 그럼에도 제 양심이 가리키는 방향은 미끄러지고 넘어지는데도 자꾸 하나님의 길에서 엎드러져 있으려고 발버둥 정도는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이런 물음에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만, 질투 (시기, 투기), 음란 등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모든 악한 것이며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보이지 않는 우상의 다른 형태들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았지만 여전히 죄라는 우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죄와 짝하여 사는 불쌍하고 연약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스스로를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속으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전부 다 질투를 유발하는 우상에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 보고 계시는 듯하면 금방이라도 나만의 금송아지들을 수시로 만들면서 시도때도 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멀리하고, 거부하고, 떠나고, 무관심하고, 원망하기까지 합니다.
출애굽기의 상황으로 보면 하나님은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하여 전멸시키벼 버리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실까요? 하나님은 삼의일체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두려워 하지 아니하고, 구원을 값싸게 여기고, 성령을 기만하는 우상 행위에 대해서 강하게 질투를 발하고 계시고, 그 질투가 진노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계십니다.
지금 이러한 경고는 한 번 범죄한 경력이 있음에도 다시 기회를 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들입니다. 또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겉잡을 수 없는 엄한 징계를 받게 될 것입니다. 모세도 지금이 문제가 아니라, 나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평안할 때, 배부를 때, 게을러졌을 때 이 백성들이 또 다시 하나님을 배반하게 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사람들은 진짜 간사한 동물이라 살아 숨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 줄 모르고, 잠잘 수 있는 집, 먹을 수 있는 음식, 화목한 가정이 있을 때 미련하게도 이 순간에 하나님을 배신합니다. 하나님 알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 찾기를 멈춰 버립니다.
모세는 자신이 죽고 없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신하지 않게 하려고 다시 한 번 우상숭배에 대해 말합니다. 20~24절입니다.
“20.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 풀무불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 오늘과 같아도 21. 여호와께서 너희로 말미암아 내게 진노하사 내게 요단을 건너지 못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그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라고 맹세하셨은즉 22. 나는 이 땅에서 죽고 요단을 건너지 못하려니와 너희는 건너가서 그 아름다운 땅을 얻으리니 23.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 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모세는, 나는 그 아름다운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기서 죽게 될 것이며, 이제는 너희들 곁에서 더 이상 경고하는 말을 해 줄수 없으니 이제는 스스로들 알아서 언행을 삼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두 번씩이나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을 배신하지 말라고 설교한 것은 진짜 유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때 만큼은 이 말을 진심으로 지키겠다고 받아들였을 겁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몇 가지를 반드시 기억하도록 설교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너희들을 택하셨다는 것, 둘째, 쇠풀무(몸이 타들어가는 고통) 같은 애굽에서 인도해 냈다는 것, 셋째,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신 것을 기억하라고 강조합니다.
이 세가지를 우리에게 적용시켜 보면, 하나님이 창세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택하셨다는 것, 죄와 사망으로 영원한 불못에 던져져 버릴 죄의 사슬을 끊어내서 구원의 은혜를 주셨다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인도하여 주신 다는 것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구원 받은 의인이 되었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모세, 여호수아,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다 광야 2세대 들입니다. 1세대들은 광야생활 중에 전부 세대 교체가 되어 이미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 모세는 2세대들에게 너희들이 죽을때까지 구원받은 백성임을 명심하고, 또 명심 하면서 반드시 지켜갈 성경 구절 한 마디를 들려 줍니다. 그 말씀이 이번달 암송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신앙의 1세대들은 과거에 모세로부터 똑같이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말씀을 들은 후 너무나 빨리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런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너희 2세대들은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되, 특별히 모든 것(사람의 마음과 생각속에서 나오는 모든 죄)을 소멸(다 태워버림, 영벌의 불못에 던짐)시키시는 심판의 하나님 되심을 절대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2세대들은 1세대들의 범죄와 배신의 사건을 교훈삼아 다시는 동일한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겁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2세대들에게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범죄하지 말라는 무거운 내용과만 연결시킨 것이 아닙니다.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선포했습니다.
25~31절 말씀입니다. “25. 네가 그 땅에서 아들을 낳고 손자를 얻으며 오래 살 때에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일으키면 26. 내가 오늘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 27. 여호와께서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으실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쫓아 보내실 그 여러 민족 중에 너희의 남은 수가 많지 못할 것이며 28.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 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30.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의 말씀을 청종하리니 31.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아멘.
모세는, 너희 2세대들이 과거에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1세대와 같이 우상이나 형상을 만들어 스스로 부패하면 속히 망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이 노를 발하셔서 반드시 진멸 당할 것이라는 것을 말한 후에, 그러나 그 땅에서 사는 동안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으면 만나 주실 것이니, 너희들은 항상 마음을 돌이켜 말씀을 청종하며, 너희들과 맺은 맹세의 언약(순종의 복, 불순종의 저주)을 항상, 절대로 잊지 말고 살아가라고 선포 했습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은 분명하지만, 신실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충만케 하시고 청종하는 자들을 평안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곁에 머무는 삶을 살라는 설교 내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여정은 우리들의 인생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으며 방랑하는 유랑 민족이었던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십자가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잊어 버린 채 과거의 습관대로 여전히 죄와 교만과 불순종과 거짓과 짝하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1세대의 죄악을 확실하게 귾어내지 못하고 불행하게도 광야에서만 맴돌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정신 차리면 됩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 이런 모습이었다면 우리는 다시 모세의 마지막 설교를 듣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세대의 심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라는 말씀 앞에 진실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서야 합니다.
한 번 실수는 실수라고 여기지만, 여러번 실수는 실력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계속 반복되는 죄악은 그 사람의 본 모습인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참회하고 돌이키려는 마음이 있는 자들에게는 한 없는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다시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허락 하십니다.
하지만,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전멸당할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나 다시는 똑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고 맹세의 언약(십자가 구원의 은혜)을 맺고도 또다시 마음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죄악들을 거침없이 행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소멸하는 불로,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전멸시키시는 심판의 주인으로 우리를 엄하게 다스리실 겁니다.
이번 달 앞송 말씀은 우리 인생의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에 놓여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을 다시 정리하고, 정말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곁에 머물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과 버림당하는 심판의 길로 아나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갈림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로 가고 싶으시고, 어떤 결정으로 나아가시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의 결단은 만나주시는 하나님 이십니까? 질투하시는 하나님 이십니까?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고 그냥 이대로가 좋사오니라는 무관심 입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는 신앙생활은 대충 대충, 이것 저것, 이쪽 저쪽을 어슬렁 거려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 편에 확실하게 서지 않고 잇으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는 인생 곳곳에서 질투하시는 하나님만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마지막 유언으로 말한 것처럼 “나와 내 집은 결단코 하나님만 섬기겠다”확실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어느쪽인지 분명하게 선택하고 그 길로만 나아가려는 확고한 결단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 남은 인생은 정말 황금 같은 시간입니다. 단 1초도 낭비하여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나의 모든 인생의 시간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질투하시는 하나님 앞에 참회하며 살아가겠노라고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질투하심의 끝은 소멸시키시는(영벌에 처하시는, 불못에 던져 버리시는) 심판의 불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마음과 생각이 문제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면 죄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을 멀리하면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달에는 우리 모두가 내 자신의 모든 언행을 지켜보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실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인생을 마친 금송아지 세대가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안식을 누리는 복된 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나와, 내 가족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예배드리고 말씀 듣고 있는 것 아닙니까?
00교회 모든 성도는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으로 나의 신앙 여정을 점검하고, 분리하고, 새롭게 결단하여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이 아닌, 신실하시고 자비롭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과 아름다운 동행을 이루어가는 믿음의 인생 여정으로 나아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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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확실하게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언행이 하나님 보다 앞서지 않게 하시고, 오직 순종과 감사와 소망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