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마음의 지층
떡
민속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떡은 밥 짓기보다 앞선 곡물 조리로서 그 역사가 깊다고 한다. 그런 설명이 아니더라도 밥이 일상성을 나타내고 있는 데 비해 떡은 잔칫날과 같이 특수한 날과 결합되어 있다. 설이고 추석이고 으레 명절이 가까워지면 떡방아를 찧는 소리가 들려온다. 누나가 시집을 가거나 어머니가 고사를 지내는 그런 날에도 떡시루가 등장한다.
밥은 삼백예순날 늘 같은 모양, 같은 맛으로 그리고 같은 그릇에 담겨져 나오지만 떡은 계절에 따라 다르고 잔치의 성질에 따라 변하는 하나의 이벤트가 된다. 멥쌀가루에 어린 쑥잎이나 새로 움트는 느티나무 잎을 섞어서 찐 쑥설기, 느티설기의 향기로운 떡을 먹으면 벌써 봄이 온 것이다. 그리고 반달 같은 송편을 빚으면 이제 가을이 뜰 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계절의 변화뿐이겠는가, 돌떡을 먹으면 아이가 혼자 일어서 대지를 밟고 한 발 한 발 떼놓는 작은 기적을 느끼고, 생일떡을 먹으면 키가 한 치나 더 자란 녀석의 뒤통수가 한결 든든하게느껴진다.
아니다. 떡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옛사람까지도 한자리에 불러 앉힌다. 소설가 이상의 말대로 "호박고자리에 무시루떡, 그 훅훅 끼치는 구수한 김에 좇아서 증조할아버지의 시골뜨기 망령들은 정월 초하룻날, 한식날 오시는" 까닭이다.
떡은 일상의 삶에서 벗어난 일탈성과 예외성을 만들어 익숙한 생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낯선 공간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억의 달무리가 되고 그 행위의 변주가 된다.
그러나 떡은 잔치의 의미론만이 아니라 물질로서의 형태를 갖고 있어 미각과 함께 시각의 즐거움을 준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떡은 인간의 감각이 결코 고립적인 것이 아니라는 증거물이 된다.
절편의 표면에 여러 가지 무늬를 찍는 한국의 떡살엔 차바퀴 모양의 원형 무늬가 있는가 하면 네모난 정방형의 무늬도 있 다. 딸을 시댁에 보낼 때처럼 떡 위에 각인된 그 떡살 무늬는 떡을 보내는 이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생일날 케이크 위에 'Happy Birthday'와 같은 문자를 쓰는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추상적인 문양의 형태에 의해 암시되는 품위 있는 시각 언어다.
떡살과 같은 인위적인 무늬가 아니더라도 시루떡은 우리를 미각과 후각과 촉각을 종합하는 완벽한 시각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그것은 지충처럼 한 켜 한 켜 켜를 이루고 있는 그 고물들이 자아내는 중층적 구조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미각의 지질학이다.
형태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한 시루에서 만들어진 여러 형태의 다양한 시루떡은 온 동네로 돌려진다. 시루떡은 바로 중층적인 구조를 이루며 살아온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문화의 단층이다.
밥 옆에 떡이 있기에 우리의 일상성은 늘 태초의 그날처럼 극적으로 새롭게 눈뜨고 일어서는 것이다.
우리 문화 박물지 중에서
이어령 지음
첫댓글 품위있는 시각 언어, 문화의 단청, 미각의 지질학 표현 너무 찰집니다.
시골뜨기 망령들이 드시러 오시는 떡... 저도 나이들어 바뀐 음식기호도 중 "떡 싫어" 하다가 "떡이 너무 좋아"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떡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