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시설 확충이라는 한 가지 방법으로는 수입차 AS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선뜻 나서는 업체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임유신의 업 앤 다운] 불편한 줄 알면서도 그냥 넘어갔다가 후회하는 때가 종종 있다. 분명히 얘기는 들어서 알지만 ‘설마 진짜로 그러려고’라는 생각 때문에 멋모르고 일을 저질러 버린다.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모르는, 실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겪는 일이다. 때에 따라서는 대체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도 한다. 자동차 AS가 이런 경우 중 하나다. AS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산다. 그리고 후회한다. 몇 만 원짜리 물건이면 잊고 버리면 그만인데, 수천만 원이 넘는 자동차를 사면 두고두고 고생한다. 그런데 알면서도 당하는 이런 일이 일상화됐다. 자동차를 사지 않을 수는 없어서다. 불편을 감수하는 일 자체가 자동차 생활의 일부로 녹아들었다.
AS에 대한 불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산차와 수입차 가리지 않고 불만이 나온다. 판매 규모가 어느 정도 일정하고 그에 맞춰 오랜 세월 동안 시설을 갖춘 국산차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계속해서 판매가 늘어나는 수입차는 AS 문제가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AS 인프라는 하루아침에 구축되지 않는다. 서비스센터를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실제로도 투자도 하지만 판매가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AS 시설에 맞게 판매량을 조절할 수입차 업체는 없다. 수익이 우선이니 최대한 많이 팔아야 한다. AS와 판매가 나란히 어깨동무하며 달리지 못하고, 판매 뒤를 AS가 헐떡이며 저 멀리서 뒤쫓아 가는 형국이다. 그 거리가 좁혀지고는 있지만, 좁혀지는 속도는 아직도 느리다.
자동차를 사는 기준은 여러 가지다. 가격·디자인·성능·브랜드·내구성 등등. 사람마다 기준의 우선순위는 다르다. 수입차는 특히 AS가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AS 때문에 수입차를 사지 않는 사람도 있고, 특정 브랜드는 AS가 나쁘다는 이유로 아예 거르기도 한다. 수입차를 사기 위해 주변에 알아볼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그 브랜드 AS 별로라던데”이다. 반대로 따지면 AS만 잘해도 브랜드 이미지를 좋게 하고 판매를 늘릴 수 있다는 뜻이다.
수입차 AS 인프라는 수치상으로 봤을 때 국산차에 밀린다. 현대자동차 연간 판매 대수는 대략 65만대, 서비스센터 수는 1,400여 개다. 이중 직영서비스가 22개이고 나머지는 블루핸즈 등 협력사지만 협력사도 현대차 서비스로 봐도 무방한 구조다. 수입차는 가장 많이 파는 메르세데스-벤츠가 6만 대선이고, 그다음 BMW가 5만 대선이다. 두 브랜드의 서비스센터 수는 각각 대략 40여 개. 현대차 서비스센터 한 곳이 460여 대의 차를 감당한다면 벤츠와 BMW는 6만대로 잡았을 때 한 곳이 1,500대 정도를 소화해낸다. 물론 이 수치는 단순한 참고용이다. 누적 판매 대수와 현재 돌아다니는 차의 수, 서비스 센터 규모와 수준 및 운영방식, 고장 발생률과 내구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정확한 비교가 된다.
벤츠와 BMW를 예로 들었지만 이들이 아닌 다른 수입차 브랜드 중에는 판매 대수 대비 서비스 센터 비중이 높은 곳도 있다. 이런저런 변수를 다 떠나서 수입차의 서비스가 여전히 ‘부족 상태’라는 사실 하나만은 확실하다. 국산차 업체 중 쌍용자동차와 르노삼성자동차와 연간 판매 대수가 10만대 전후인데, 서비스센터 수는 각각 550, 350여 개다. 6만 대 파는 벤츠라면 적어도 서비스센터가 200여 개는 넘어야 국산차 수준의 서비스가 이뤄진다.
서비스센터가 부족하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원하는 날짜에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급하게 서비스 받아야 하는 경우에도 밀리기 일쑤다. 입고한 다음에도 며칠씩 기다려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부품 수급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한참 여유롭게 예약하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가 힘들다. 수입차는 정비료도 비싼 편이다. 보증 기간에는 그나마 덜하지만, 보증 기간이 끝나면 비용 지출이 꽤 크다. 싸게 할 수 있는 사설 정비소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보편화 돼 있지도 않고 정보도 없어서 이용률이 그리 높지 않다. 수입차 AS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어서 문제점을 대부분 알지만, 당장 해결하기는 힘들다. 어떻게 하면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해결할 수 있을지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수입차 AS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큰 줄기는 수입차 대중화다. 더 많이 팔리고 보편화해서 국산차와 비슷한 환경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내 수입차 업체 규모로 볼 때 서비스센터를 이른 시일에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수입차 업체 규모가 더 커져야 서비스센터 확장도 원활히 이뤄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판매량이 더 늘어야 한다. 판매량 증가와 함께 환경도 바뀌어야 한다. 아직도 수입차는 국산차보다 비싸고, 시장도 분리돼 있다. 국산차와 수입차의 경계가 무너져서 수입차가 국산차 팔리듯 팔려야 한다.
당장 현실적인 방법은 수입차 업체들이 서비스에 관해서 개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수입차 AS는 폐쇄적이다. 업체들은 AS에서도 이익을 얻어야 하므로 공식 서비스 외에는 서비스를 개방하지 않는다. 수준 높은 서비스와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수입차 공식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 않다. 시설이나 고객 응대는 높은 점수를 받을지 몰라도 정비 내용은 불만이 많다.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고치지 못하는 부분을 사설 서비스에서 고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국산차는 굳이 지정 서비스센터를 가지 않아도 동네 일반 카센터에서 정비를 받을 수 있다.
수입차도 공식 서비스센터가 아닌 곳에서도 서비스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수입차 정비를 하는 사설 정비소가 늘기는 했지만 수입차 업체와는 무관하다. 차에 관심 많거나 정비료를 아끼려는 일부 사람들만 찾아간다.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서비스를 받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대부분 수입차 오너는 사설 서비스센터 가기를 주저한다.
수입차 업체는 협력사를 늘려 공식 서비스센터가 아닌 곳에서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간단한 정비와 소모품 교환 등은 동네 카센터에서도 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딜러가 자체 서비스망을 갖추는 현재 구조로는 공식 서비스센터 확충이 더딜 수밖에 없다. 시설을 늘리려고 해도 숙련된 정비인력을 구하기 힘들다. 자체 교육으로 수준을 높이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외부의 실력 좋은 사설 정비소와 제휴를 맺어 정비 네트워크를 확장한다면 인력은 물론 시설 부족도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문호를 넓혀 나가면 동네 카센터처럼 수입차도 취급하는 자생적인 카센터들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수입차 AS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여러 가지다. 자체 인프라 확충이라는 한 가지 방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완전히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고, 해결될 때까지 불편은 고객들이 감수해야 한다. 수입차는 한 해 20만대 넘게 팔린다. 더 많이 팔려야 하지만, 20만 대도 적지 않은 숫자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이 숫자를 감당해내기 힘들다. 판을 뒤엎는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