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운
구자운(1926-1972). 부산 출신이다.
≪현대문학≫에 서정주의 추천으로 1955년 시 <균열>을 비롯해 1956년 <청자수병>, 1957년 <매>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49년 동양외국어전문학교 노어과를 수료했으며 소아마비로 평생을 불구의 몸과 싸우며 시작에 전념했다. 생전에 한국의 바이런이라는 칭송을 들었으며, 1959년 제4회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박성룡, 박재삼, 박희진, 성찬경 등과 ‘60년대 사화집’ 동인으로 활동했다. 1955년 대한광업회 근무, 1962년 국제신보 상임 논설위원, 1966년 월간스포츠의 편집장 등을 역임했고, 그 뒤로 번역과 출판물의 편집 등으로 생계를 이어 갔다. 1971년부터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를 지낸 바가 있다.
소아마비를 앓은 불구의 몸으로 시에 전념했다. 고아한 수사와 형식미로 한국적 사상을 그려냈다고 평한다.
1972년 12월 15일 사망하였다.
저서
저서로는 프린트판 시집 ≪처녀 승천(處女昇天)≫과 시집 ≪청자수병≫(삼애사, 1969)이 있고, 시인 민영이 편집한 시 전집 ≪벌거숭이 바다≫(창작과비평사, 1976)가 사후에 출간되었다.
구자운의 시
성(城) / 구자운
우리들은 줄곧 성을 찾아왔다.
우리들의 성은 허지만 큰거리에서 별로 멀진 않다.
그것은 숯검정 낀 부엌의 기름내 자오록한
텅 빈 걸상이 널리운, 뒷골목의 목로 술집이니까.
우리들은 어느 때보다 일찌감치 안방을 차지하였다.
이렇듯 먼지 이는 날씨엔 목구멍이 컬컬해진다.
우리들은 술을 기울여 다시금 탄약에 불을 붙였다.
종이 바른 벽을 뚫고서 포탄이 뛰쳐나갔다.
거리는 조용하여 참새 새끼 한 마리도 없다.
오후의 햇살에 눈 녹은 고드름이 빛나고 있다.
우리들의 악당은 사뭇 여러 방향에서 솟아나온다.
그것은 우리들의 탄환으로 하나하나 거꾸러진다.
어떤 악당은 한창 용감히 덤벼든다.
아주 권력이 있는 것인 양, 하지만 술에 빠져
떠내려가는 것이 이런 치들이다.
어떤 악당은 좀 경망한 주제에 넘보기 어려운 재주가 있다.
「탐욕」 「억지」 「교사」 「철면피」
갖가지 악당들이 몰려서 밀고 온다.
「경험」이랑 「숙련」이랑 부리는 술책이 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들에겐 하찮은 표적이다.
우리들은 늘 술로 무장하고 있다.
술이란 놈은 죽지 않는 영웅이란 말이야,
이것은 또 얼마나 요긴한 마술일러냐
우리들은 탄약을 다 써버리고 둘쨋번 성을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
<신사조> 1962. 2. / 구자운 시전집 『벌거숭이 바다』, 1976, 창비.
*모두 다 떠나 버린 다음 / 구자운
너희들이 모두 다 떠나 버린 다음
나도 천천히 일어나 가리라.
― 어둡고 고된 나달이여,
내 사랑, 변함이 없는 길이라면
진실을 찾아 헐벗고 방황하는 것은
아름답고 외로운 깃발이리니.
그러나 너희들 웃음을 마련하여
모두들 훌훌히 떠나 버린 다음에
남는 것은 이지러지고 서러운 모습들.
출처 : IT조선(https://it.chosun.com)
청자수병(靑磁水甁) (1956)-구자운
아련히 번져 내려
구슬을 이루었네.
벌레들 살며시
풀포기를 헤치듯
어머니의 젖빛
아롱진 이 수병(水甁)으로
이윽고 이르렀네.
눈물인들
또 머흐는 하늘의 구름인들
오롯한 이 자리
어이 따를손가?
서려서 슴슴히
희맑게 엉긴 것이랑
여민 입
은은히 구을른 부풀음이랑
궁글르는 바다의
둥긋이 웃음지은 달이랗거니.
아롱아롱
묽게 무늬지어 어우러진 운학(雲鶴)
엷고 아스라하여라
있음이여!
오, 저으기 죽음과 이웃하여
꽃다움으로 애설푸레 시름을
어루만지어라.
오늘
뉘 사랑 이렇듯 아늑하리야?
꽃잎이 팔랑거려
손으로 새는 달빛을 주우려는 듯
나는 왔다.
오, 수병(水甁)이여!
나의 목마름을 다스려
어릿광대
바람도 선선히 오는데
안타까움이야
호젓이 우로(雨露)에 젖는 양
가슴에 번져 내려
아렴풋 옥을 이루었네.
벌거숭이 바다 (1964)-그자운
비가 생선 비늘처럼 얼룩진다.
벌거숭이 바다.
괴로운 이의 어둠 극약(劇藥)의 구름
물결을 밀어보내는 침묵의 배
슬픔을 생각키 위해 닫힌 눈 하늘 속에
여럿으로부터 떨어져 섬은 멈춰 선다.
바다, 불운으로 쉴 새 없이 설레는 힘센 바다
거역하면서 싸우는 이와 더불어 팔을 낀다.
여럿으로부터 떨어져 섬은 멈춰 선다.
말없는 입을 숱한 눈들이 에워싼다.
술에 흐리멍텅한 안개와 같은 물방울 사이
죽은 이의 기(旗) 언저리 산 사람의 뉘우침 한복판에서
뒤안 깊이 메아리치는 노래 아름다운 렌즈
헌 옷을 벗어버린 벌거숭이 바다.
첫댓글 아! 청자수병이여...
한갖 청지수병을 저리도 처절히 아름답게 노래하다니...
구자운 시인 그는 분명 시인이였고, 시를 운명처럼 노래하다 간 시인이였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