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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와 죽음충동 : 데리다와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논문요약]
2008년,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가 기획한 전시 <아카이브 병: 현대미술에서의 도큐멘트 사용
Archive Fever: Uses of the Document in Contemporary Art>(뉴욕 국제사진센터) 이래, 현대미술계
에서 ‘아카이브’ 열풍은 꽤 오랫동안 유행의 최전선을 차지해왔다.
‘백과사전적 이미지 아카브’를 주제로 내세운 2012년 베니스 비엔날레, ‘기억의 정치학’을 주요 모티브로
기획된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카이빙으로서의 전시기획’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현대미술의 대표적 방법론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특히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하룬 파로키(Hrarun Farocki)의 전 작품들이 공간적인 영상 아카이
브로 설치되어 전시의 모티브로 활용됨에 따라,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를 주로 사용한 파로키의
작품 그 자체를 메타적으로 반영하는 ‘아카이브의 아카이브’가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이 비엔날레에서는 제국주의 식민정책의 아카이브로서의 사진과 영상 기록을 이용한 작품들이 다수를 차지하기도 했다(예를 들어 벨기에의 콩고 지배 기록들을 소재로 한 벨기에관의 전시).
오늘날 아카이브 스타일의 작업은 상당히 일반적인 방법론이 되었다.
문서를 진열하거나 파운드 푸티지를 이용하거나 도서관처럼 꾸며놓지 않은 전시장이 드물 정도이다.
예술실천들이 규격성, 통제성, 보수성을 갖는 아카이브와 왜 어떻게 접점을 갖게 되었는가?
현대미술이 사용하는 ‘미학적 전략’으로서의 아카이빙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카이브라고 부르는 ‘근대의
문서고’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동시대 예술현상으로서의 이른바 아카이브 아트(archive art)1)가 사용하는 전략을 ‘미학적 아카이빙’
혹은 ‘탈근대적 아카이빙’2)으로 느슨하게 지칭하면서, 개별 작품이나 경향에 대한 분석을 넘어서 근대적
아카이브와 탈근대적 아카이브의 관계를 좀 더 이론적인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포스터는 엔위저와 달리 공적이고 객관적인 경향에 주목한다.
과거의 아카이브를 재해석하고 파편화시키고 “연결될 수 없는 것을 연결하기”6)를 통해 “편집증적이고
”7), “사적인”8) 아카이브를 구축하기가 포스터에게는 오히려 지배서사에 저항하는 방법론으로 간주된다.
포스터는 이러한 작업의 사례 중 하나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기록이나 옛 작가들의 작품,
버려진 장소들을 소재로 삼는 타시타 딘(Tacita Dean)의 작품들을 거론한다
(예를 들어, 1928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영국으로 가던 중 난파한 배 헤르조긴 세실(Herzogin Cecile)
호에서 항해 도중 바다로 던져진 오스트레일리아 소녀 진 제니(Jean Jeinnie)에 대한 기록을 소재로 삼은
비디오 작품 <던져진 소녀 Girl Stowaway>).
아카이브 아트의 ‘편집적 성격’은 얼핏 병리적인 것에 그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적이고 규범적인 아카
이브에서 일탈하는 대안성을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리비도적 투여’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포스터의
입장이다.
포스터는, 역사를 트라우마적이고 멜랑콜리적인 것으로 보는 알레고리적 관점의 비관론을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작업들의 긍정적 가능성을 찾는다.9)
포스터가 언급한 아카이브 아트는, 근대적 아카이브의 파편적 조각들을 작가의 주관에 의해 새롭게
콜라주하는 작업에 가깝다.
그 형식에 있어서 근대적 아카이브를 패러디하고 있을지라도, 내용적으로는 반아카이브적인 것에
가까운 작업들이다.
아카이브를 이용하고 아카이브의 외관을 띄고 있지만, 사실상 지극히 사적인 전유라는 점에서, 근대적
아카이브의 정의를 이미 넘어가는 작업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할 포스터는 아카이브 아트의 유행을, 한편으로는 근대적 총체성을 해체하려는 주관적 의지의 표현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상징적 질서가 이미 외관상의 총체성을 통해 작동하고 있지 않은”10) 시대적
변화의 징후로 본다.
포스터는 시대의 변화상과 예술의 ‘아방가르드적’ 목표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돌에 대해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포스터가 『실재의 귀환』에서 표현한 바와 같이, 우리 시대가 ‘상징계의 스크린이 이미 찢어진’
시대라면, 새로운 ‘아방가르드’의 전략은 스크린을 공격하는 것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
할 포스터는 이 문제에 대해 더 상세하게 논의를 진행하지 않는다.
포스터가 단지 던져놓기만 한 이 질문을 데리다의 논의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데리다에 따르면, 그리고 그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밀접하게) 참조하고 있는 라캉 정신분석학의
관점에 따르면, 근대적 아카이브는 그 핵심부에 상징적 총체성의 완결을 방해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라캉이 말하는 것처럼, 상징계의 내부에는 ‘구멍’이 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데리다의 논의를 따라가자면, 엔위저와 포스터가 거론하는 ‘아카이브 아트’는 총체성의
외부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연결 짓기가 아니다.
예술은 오히려 근대적 총체성 그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어떤 비총체적인 ‘핵심’을 가시화시키는 행위로
재해석될 수 있다.
엔위저와 포스터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카이브를 이용한 혹은 아카이브의 형식을 차용한 현대미술 작업
이다.
그들은 예술가들이 소재이자 매체로 삼고있는 아카이브 그 자체가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포스터의 글 속에서 아카이브는 ‘정보적인 것’과 동일한 것으로, 엔위저의 글 속에서는 ‘현존하는 사물의
증거적 기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다른 많은 글들에서 그랬듯이, 아카이브 병에서도 데리다는 단어의 어원으로부터 시작한다.
아카이브라는 단어는 ‘원리’를 뜻하는 ‘아르케’와 친화성을 갖고 있는데, 아르케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자연적이고 역사적인 원리, 혹은 ‘시작’의 원리이며, 다른 하나는 규범적이고 법적인 원리, 혹은
‘명령’의 원리이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만 있었으면 문제는 간단할 것이라고 데리다는 말한다.
이 두 원리가 하나 이상이며 둘 이하라는 점이다.
시작의 원리로서의 아르케는 자연적이고 역사적인 근원을 상정한다.
그러나 법의 원리로서의 아르케는 인위적이고 규제적인 질서로부터 시작한다 (이 두 가지를 완벽히
일치시키려는 욕망이 ‘아카이브 병’을 낳는다).
데리다는 아카이브라는 단어가 ‘아르케이온(arkheion)’, 즉 공적인 문서보관소를 말하는 단어에서 나왔
음을 상기시킨다.
아카이브는 단지 문서보관서가 아니라, 명령을 내리고 문서들을 해석할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인 “아르
콩트(archontes)”11)의 공적 거주지이다.
아카이브가 “사건들을 기록하는 것만큼이나 생산하는 것”12)은 그 때문이다.
아카이브에 대한 데리다의 관심은 그의 지속적인 연구주제인 글쓰기라는 ‘기억의 보완물’에 대한 탐구와
궤를 같이 한다.
플라톤 이래 서구 형이상학의 핵심을 형성해왔던, ‘살아있는 기억’의 현전에 대한 욕망과 그 외부적 보완
물로서의 글쓰기 혹은 아카이빙의 관계를 추적함으로써, 사실상 보완물로서의 글쓰기가, 그리고 그것의
근원적 폭력성이, 살아있는 경험보다 앞서며 그 가능성을 구성한다는 것을 데리다는 주장한다.
결국 보완물이 원본의 가능성을 규정하는 토대라는 것, 근원 혹은 기원은 유령과 같은 허구적 구조 위에
서만 존재 가능한 범주라는 것이다.
근대적 아카이브와 탈근대적 아카이브, 관료주의적 아카이빙과 미학적 아카이빙 사이의 선명한 구별은
흐려진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은 사실상 정신분석학 그 자체, 특히 라캉 이론의 핵심부를 차지한다.
라캉은 상징계 전체가 환상의 논리에 의해 지탱되며 그 구조 속에서만 성립가능하다는 점을 논증함으로써
주체성의 장소를 그 환상의 핵심부에 있는 ‘재현될 수 없고 대상화될 수 없는 곳’에 갖다놓은 바 있다.13)
라캉에 따르면 이러한 명제는 사실상 프로이트 이론 속에 내재해 있다.
프로이트 이론에서 발견되는 외관상의 생물학적 요소들은 시대적 한계에 의해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며
프로이트 이론의 핵심은 ‘구조주의 이후’의 시각으로 재조명할 때 드러난다고 라캉은 주장한다.
반면 데리다는 프로이트 이론 내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관점들의 긴장과 충돌에 주목한다.
과학주의에 대한 프로이트의 믿음을 시종일관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어떤 이질적인 요소들이 그의 이론
속에 섞여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데리다는 이러한 이질성을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미래의 지속성을 설명할 수 있는 개방
적 계기로 재해석한다.
‘아카이브 아트’가 기억상실에 저항하는 활동이라는 엔위저의 주장은, 어떤면에서, 아카이브를 기억의
보완물 혹은 기억의 대체물로 보는 플라톤의 관점을 이어받고 있다 (그 가치평가에 있어서 상반되는 입장
에 있더라도).
아카이브를 보존된 기억과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면 데리다는 아카이브가 기억의 직접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아카이브는 ‘기억과의 단절’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기억 이전에 망각이 먼저 있다는 것, “근본적인 유한성 없이는, 억압에 국한되지 않은 망각의 가능성 없
이는, 어떤 아카이브적 욕망도 없을 것이다”14)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조선령
* 사전
아카이브 [
아트 아카이브
아트 아카이브는 아카이브(기록보존소)의 일종이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아카이브의 소장품안에 미술과 관련된 기록들이 있었다.
도서관과 미술관이 전문화되면서 미술관련 기록들을 전문적으로 보존하는 아트 아카이브가 생겨났다.
아트 아카이브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20세기이후의 일이며, 이후 미술과 관련된 여러 목적에 의해
아트 아카이브는 서구 각국에서 설립 운영되고 있다.
아트 아카이브는 미술관과 미술관련 학문, 특히 미술사의 발전에 의해 이루어졌다.
미술문화가 인류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가치를 인정받게 됨에 따라, 19세기 이후 많은 미술관이
설립되었으며, 미술사의 학문적 토대가 견고해졌다.
이러한 상황은 미술연구와 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특히, 미술관련 기록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미술사는 작품에 대한 비평적 접근과 함께 미술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토대로 형성되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필요는 절대적이었다.
아카이브의 개념
미술관련기관에서 생산되거나 혹은 미술과 관련된 가치 있는 기록자료를 수집, 평가, 분류, 보존하여
유용한 정보로 제공하는 기관
아트아카이브의 구분
* 기관소속아카이브(Single-agency or institutional archives)
미술관련 기관에 소속되어져 그 기관의 기록을 수집, 보관하는 형태
대개 미술도서관, 미술관, 미술대학과 같은 미술연구기관, 경매회사, 화랑, 미술출판사와 같은 미술관련
기관 등에 소속되어 있거나 부설된 아트 아카이브로 전통적 의미의 아카이브 기능을 수행한다.
즉, 기관의 목적에 의해 이루어진 제반 활동중 보관해야할 가치있는-법률적 증거자료이거나 역사적
목적을 지닌- 기록들을 수집, 보존, 제공하며, 이러한 활동을 체계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현행업무상 필요
없는 과거의 자료를 이관하는 절차와 시간, 규정을 마련한다.
* 다원수집(독립)아카이브(Multiple-collection archives)
미래 연구나 전시를 위해 가치있는 다양한 기록을 수집, 보관하는 형태
공공성, 모(母)기관의 사명, 역사적 목적을 위해 운영되며, 공익을 위해 미술기록자료를 수집, 보존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모기관의 소장품과 관련된 주제하에 다양한 미술기록자료를 수집, 보존한다.
이 형태의 아트 아카이브는 대형 미술도서관, 대규모의 미술관등에 소속되어 운영될 수도 있고, 독립적
으로 운영될 수도 있다.
아트아카이브 유형
예술가, 수집가, 화상, 비평가, 출판인, 미술출판 작가와 미술관, 미술협회, 화랑 등 미술관련 기관의
원본 기록자료를 보관하는 아트 아카이브이다.
이 유형은 미술작품이 아닌 원본기록들, 즉 왕래서신, 일기, 메모, 소품, 재무서류, 비평문과 전시 카다
로그, 포스터, 초청장, 사진 등의 전시관련 기록, 그리고 관련된 인물의 인터뷰나 증언 등을 보관한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갤러리 아카이브(Tate Gallery Archives)와 미국 워싱턴에 있는 미국미술아카이브
(Archives of American Art)가 이 유형의 대표적 사례이다.
테이트갤러리 아카이브는 영국의 20세기 미술관련기록을 소장하고 있으며, 미국미술아카이브는 18
세기 식민지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미국미술 기록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준 작품적 성격의 자료를 소장하는 아트아카이브이다.
회화, 조각, 건축, 산업디자인을 위한 스케치, 원본 삽화 등의 시각예술에 준한 작품자료를 수집한다.
이러한 자료들은 예술적 가치에 따라서 작품으로까지 평가받을 수 있는 자료들이지만, 엄밀하게 예술
작품은 아니다.
흔히 작가가 본(本) 작품을 위해 제작한 다량의 습작-스케치, 드로잉 등-은 때에 따라서 본 작품에 준
하는 예술적 가치를 가질 수도 있으며,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유형의 기관은 예술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의 성격이라기보다는 아카이브적 성격에 가깝다.
이 유형은 캐나다 온타와에 있는 국립아카이브(National Archives)의 미술부(Picture Division)와 같은
공공적 기관에서부터 미국 아리조나에 있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아카이브(Frank Lloyd Wright
Archives)와 같은 사립 아카이브까지 다양한 유형으로 운영된다.
혹은 중세삽화를 소장하는 수도원으로부터 미술관, 대학기관에 소속된 형태로 운영되기도 한다.
세 번째 유형은 참고, 연구 및 교육목적을 위해 수집된 예술작품의 사진, 인쇄물, 필름 등을 소장한다.
이런 소장자료는 상업적 복제, 유통에 적극 활용되기 때문에 이 유형의 아트 아카이브는 공공적이지만
빈번하게 상업적 성격을 가지기도 한다. 이런 소장품은 예술적 가치를 갖지는 않지만, 정보적 가치를
가져서 연구, 출판, 복제를 위해 사용된다. 유네스코의 국제 예술작품 사진아카이브 목록(International
Directory of Photographic Archives of Works of Art)은 87개국 600개가 넘는 사진목록을 가지고 있다.
그외 다른 유형의 아트 아카이브는 상업적 목적에 의해 운영되는 아카이브들이다.
대부분 전세계 출판사, 광고대행사, 복제품 제작회사 등을 대상으로 미술관련 기록을 제공, 판매한다.
아카이브의 역사
이미 고대부터 아트 아카이브 성격의 기능을 담당하던 기관들이 설립되었다.
박물관, 도서관, 아카이브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지만, 미술기록자료를 보관했음을 알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 페르가몬, 로마의 박물관들이나 15세기 이후 바티칸에서는 일반적으로 기록문서(archival
documents)를 소장하고 있었다.
특히, 소아시아 지역의 페르가몬은 과거부터 당시까지의 "예술가 목록을 어떤 고정적인 척도에 따라
서열을 매기면서 계통을 세워 연대순으로 정리" 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16~17세기 이탈리아 교회나 공공도서관에는 아트 아카이브가 있었으며, 몇몇의 박물관과 미술교육기관
들은 자체의 활동이나 소장 기록물들을 축적하여 보관하고, 목록을 출판해오고 있다.
이러한 예는 독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베를린에 1696년 설립된 프러시아미술대학(Preussische Akad
emie der Kunste)은 18세기부터 현재까지 대학의 업무처리방식뿐만 아니라 대학에 속했던 사람들에
대한 많은 기록도 보관하고 있다.
또한, 뉘른베르크에 있는 게르만국립박물관(Germanisches Nationalmuseum)은 소속 아카이브의 초기
필사본중에 뒤러의 '측량교본(Unterweisung der Messung)'을 목록화하기도 했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아트 아카이브는 개인 미술사학자나 감식가에 의해 진전되었으며, 예술가나 상속
인들에 의해 설립되기도 했다.
개인 미술사가들은 미술에 관련된 기록을 수집하거나, 아트 아카이브에 중요한 소장품인 개인 연구물과
시각자료들을 기증했다.
1873년 Hermann Grimm(1828~1901)은 베를린대학 미술사교수로 임용되자, 바로 베를린에 있는 미술
관의 기록물들, 특히 전문적 수공으로 복제된 기록자료들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Alinari 형제는 1854년 증거를 남기기 위해 미술작품을 사진으로 촬영했다.
그들은 1892년 우피치포토그라피코(Ufficio Fotografico)를 설립했다.
이것은 사진아카이브(photoarchives)와 예술작품의 화상아카이브(picture archives)의 시작이었다.
작가에 의해 설립된 아트 아카이브로는 영국과 독일에서 처음 선보였다.
영국의 공예가이자 사상가였던 William Morris (1834~1896)와 화가인 Frederic Leighton(1830~1996)
는 런던에서, 독일의 화가인 Franz von Stuck (1863~1928)는 뮌헨에서 각각 일반공중에게 자신의
작업공간을 미술관 또는 아트 아카이브로써 공개했다.
또한, 줄레이아카이브(Juley Archives)는 개인에 의한 사진아카이브로는 유래없는 대규모의 아트 아카
이브이다.
Peter A. Juley(1862-1937)와 Paul Juley (1890-1975) 부자는 미국디자인학교(American Academy of
Design)의 의뢰에 따라 1896년부터 1975년 사이의 거의 모든 미국 미술가들의 작품을 촬영했다.
Peter A. Juley는 상업적인 사진작가로 1896년부터 미국 미술작품과 미술가들을 촬영했고, 그의 아들이
뒤를 이었다.
두 부자에 의해 이루어진 줄레이아카이브는 약 127,000컷의 이미지에 1만명의 미국작가의 작업을 기록
하였다.
이 사진아카이브는 1970년대 정보제공을 위해 알맞은 보존과 연구가 가능한 스미소니언 협회에 양도
되어, 현재 국립미국미술관(National Museum of American Art)에 "The Peter A. Juley & Son
Collection"으로 보관되어 있다.
이외에 '크리스티(Christe's)'와 같은 경매회사나 화랑 혹은 미술출판사도 관리했던 작가의 기록자료와
비평가의 서신이나 원고를 소장하고 있다.
아트 아카이브의 발전은 개인보다는 공공기관과 기관들의 협력에 의해 더욱 촉진되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의 유럽의 주요국가들은 미술도서관, 미술관, 미술대학내에 공공의 아트
아카이브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관들은 오래된 미술기록에서부터 현재의 기록까지를 소장하고 있으며, 독일의 '미술아카이브연방
협회(The Bundesverband der Bildarchiv)'와 같은 아트 아카이브 연합체에 의한 협력과 교류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미술아카이브연방협회는 독일의 주요도시인 드레스텐, 쾰른, 함브르크, 비엔나 등지에 산재한 아카이브
들의 연합이다.
미국의 경우 국립아카이브와 국회도서관이외에 스미소니언의 지원을 받는 미국미술아카이브가 있다.
미국미술아카이브는 기관에 속한 기록만을 보관하지 않는 즉, 다양한 미술기록을 수집하는 '다원수집
아카이브'이다.
이러한 종류의 아트 아카이브는 1942년 필라델피아 미술관 판화 큐레이터인 Carl zigrossor (18912~
1975)에 의해 처음으로 제안되었다.
그는 미국미술관련 기록문서를 보존할 중앙보관소의 설립을 미술관 이사회에 종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가 실현된 것은 1954년 디트로이트 미술협회 도서관에서 시작되었다.
디트로이트 미술협회장이었던 E. P. Richardson과 사업가이자 수집가였던 Lawrence Fleischman은
미국내 미술을 위한 조사센터의 설립을 착상하고, 연구센터로 법인화 했다.
이것이 현재의 미국미술아카이브의 전신이며, 1970년에 스미소니언의 협력단체로 연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트 아카이브의 역사는 고대로 소급하여 거슬러 올라가 그 시초를 찾아볼 수 있지만, 현대 개념의 아트
아카이브는 그 역사가 짧다.
그러나 서양의 주요국가들은 미술문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정하여, 다양한 형태의 아트 아카이브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아카이브들은 공공의 지원을 받으며, 사회에 지식을 축적하고 제공하는 기관으로써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정보기술의 발전과 다량의 기록물 관리에 대한 방법들을 협의하기 위해 도서관, 미술관과의
협력을 증대시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