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오기의 고장
산토끼 노래의 고장"
"창녕 역사기행(歷史記行)..,"
"여행이란 흘러가는 일상에서 한 발 벗어나, 흘러가는 순간에서
자양분이 될 수 있는 것들을 건져놓는 것, 그리고 가슴으로 기억하는 것,
시간이 남아 있는 우리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이렇게 여행은
나 자신을 추스르고 일으켜 세우는 시간을 허락하고 똑같은 일상을 낮설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줍니다. 인생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까지도 풍성하게
채워줌을 이야기 합니다. 오늘은 나의 사진첩 속에 숨어 있는 창녕 역사
이야기를 찾아내어 낙동강변으로 봄을 찾아 떠나보았습니다."
(낙동강과 둔치)
"산골짜기마다 흘러내린 물은 내를 이루며 들판을 휘감고 돌아 마치도
대지의 실핏줄인 양 메마른 황토에 생명을 부여하고, 그기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낱낱 인생들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 분노와 환희를 삼키면서 오늘도 어제처럼
묵묵히 흘러가고 있으니~강(江) !~그기에는 천고의 역사 속에 묻힌
모든 영욕의 침묵하는 증언이 들어 있게 되었다."
(창녕~남지읍 앞을 흐르는 낙동강)
(남지읍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
"남지읍은 창녕군의 남서부 지역으로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변의
넓고 기름진 들판을 살찌워 일찍이 기술영농과 시설채소 재배가 발달 하였으며,
특히 시설재배 채소인 풋고추와 오이는 품질이우수하여 소비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화왕산 :火王山~758m 전경)~군립공원
"화왕산(火王山)은 낙동정맥(태배산맥) 상의 사룡산에서 서남으로 갈라진
비슬산을 솟구치고 끄트머리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솟은 명산입니다."
"창녕의 진산이 화왕산이며 산 이름 자체가 *불이 왕성하다* 는 뜻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 산을 *불의 산* 으로 보았던 것이며, 더구나 화왕산에
불이 나야 풍년이 든다는 전설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화왕산(火王山 : 758m)과 구현산(九峴山 : 579m), 관룡산(觀龍山 : 754m)
세 산은 자연산성을 이루고 산성 안쪽은 ㄷ자 모양으로 형성된 분지는 억새 초원을
이루고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는 성내 56000여 평의 억새풀 태우기 행사가 이루어집니다."
(창녕 역사유적지 안내판)
(창녕 박물관 : 昌寧 博物館)
"사적 제514호인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내에 자리하고 있는
창녕박물관은 창녕의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를
유적과 유물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곳입니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두 고분군은 창녕읍의 동쪽과 북쪽에 펼쳐져 있는 목마산(牧馬山)이
서쪽으로 잦아드는 낮은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5~7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비화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화왕산 기슭에 봉긋한 고분이 만들어내는 경관이 아름답습니다."
"사적 제80, 81호인 창녕 교동, 송현동 고분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2011년 7월 28일 문화재청이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인접 지역에 있는
두 고분군을 통합하고 사적 제514호로 재지정 하였다고 합니다."
"창녕읍 교동 및 송현동 일대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대형고분군은
1911년 일본인 학자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인양사 조성비각 : 仁陽寺 造成碑閣)
"창녕 인양사 비각 안에 있는 조성비(造成碑)는 인양사의 건립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는 비석으로 헌덕왕 2년(810) 에 세워진 비석입니다."
"원래는 *창녕탑금당치성문비(昌寧塔金堂治成文記碑)* 였으나 2010년에
*창녕 인양사 조성비(昌寧 仁陽寺 造成碑)* 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창녕 인양사 조성비 : 昌寧 仁陽寺 造成碑)~보물 제227호
"비석의 남쪽 면에는 탑과 불상 조성 등 여러가지 불사(佛事)가
기록되어 있으며, 동.서쪽 면에는 두행씩 일종의 칭송문인
찬(讚)을 새겨 놓았습니다."
"빗돌의 뒷면에 새겨진 조각상이며, 어떤 이들은 지장보살로 여기지만
앞면에 새겨진 사적비의 내용으로 미루어 승려상으로 보여진다고 합니다."
(만옥정공원 입구)
"교동.송현동 고분군에서 가까이 있는 만옥정공원에는 창녕 여러 곳에
있는 문화재들을 모아 공원 곳곳에 배치해 탐방객들이 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충분이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만옥정공원)
(공원내에 자리한 벚꽃나무 한 그루)
(창녕지구 전승비~UN전적비)~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6.25 한국전쟁 때 낙동강 돌출부인 창녕군 남지읍 건너 교두부를 확보하기 위해
적들이 계속적인 공격을 가하여 왔으나 미군 제24사단 및 국군 제2사단의 치열한
역습으로 적을 막았으며,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고 UN군의 인천상륙 작전과
아군의 총 반격으로 북진의 기틀을 마련한 이 불후의 공훈을 기리기위 건립한 전승비입니다."
(신라 진흥왕 척경비각 : 新羅 眞興王 拓境碑閣)
"만옥정공원에 있는 신라 진흥왕 척경비는 진흥왕이 창녕 지역을
신라 영역으로 편입하면서 세운 비(碑)입니다."
"원래 화왕산 기슭에 있던 이 비(碑)에는 진흥왕이 창녕의 비사벌국을
점령한 사실과 여러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신라 진흥왕 척경비 : 新羅 眞興王 拓境碑)~국보 제33호
"단단한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높이는 가장 높은 부분이 3m이고,
가장 낮은 부분이 1.15m이며, 비문은 27행으로 한 행의 글자 수는 일정하지
않으며 전체 643자 가운데 현재 400자 정도가 판독된 상태라고 합니다."
(척화비 : 斥和碑)~경남 문화재자료 제218호
"척화비(斥和碑)는 흥선대원군이 1866년(고종3)에 일어난 병인양요(丙寅洋擾)에서
프랑스군을 ,1871년(고종8) 신미양요(辛未洋擾)에서 미군을 물리치면서 백성들에게
외국과의 화친을 경고하기 위하여 1871년 4월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碑石)입니다."
(창녕 석빙고 표지석)
"창녕 석빙고는 창녕현 관아에서 만든 것으로, 입구에 서 있는
석빙고비(石氷庫碑)를 통해 조선 영조 때인 1742년에
창녕 현감이 세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녕 석빙고 : 昌寧 石氷庫)~보물 제310호
"석빙고(石氷庫)는 봄 여름에 사용할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창고로
겨울에 강이나 하천에서 깨끗한 얼음을 떼어 내 저장하는 곳입니다."
(창녕 객사 : 昌寧 客舍)~경남 유형문화재 제231호
"객사(客舍)는 관아의 부속건물 중 하나로 다른 곳에서 온 벼슬아치나
외국의 사신을 대접하여 묵게 하는 숙소이자 임금을 상징하는위패를 모시던 곳입니다"
"객사 건물은 가운데 주 건물을 두고 좌우에 날개집이 있는 일반적인
객사의 형태가 아니라 정면 3칸, 옆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 건물로 되어 있습니다."
(술정리 동 삼층석탑 : 述亭里 東 三層石塔)~국보 제34호
"결구수법과 각 부분의 조각수법이 매우 정교하고 안정적인 비율을 보이는
전형적인 통일 신라 전성기 탑이며, 8세기 경주를 벗어나 왕경 외곽지역으로
석탑문화가 전파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가치 있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긴장감 넘치는 직선의 미(美)가잘 드러난 이 석탑은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에 비길 만큼 고고한 기품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만옥정공원의 송림정 : 松林亭)
(조용한 마음~봄날의 풍경)
"화왕산(火王山)의 봉우리와 능선들이 호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봄을 알리는 꽃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은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줍니다."
(창녕 향교 : 昌寧 鄕敎 전경)
"향교(鄕敎)는 유교(儒敎)의 옛 성현을 받들면서 지역 사회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미풍양속을 장려할 목적으로 설립된 전통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입니다."
(외삼문 : 外三門)~추한문
"창녕 향교의 건립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 효종 원년(1650)에 한차례 중건 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추한문 : 秋漢門)
"서원의 정면 출입구에는 유생들의 여가 및 여름철 학습 공간으로
누각(樓閣)이 있어야 하나, 지금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추한문(秋漢門)이라는 솟을대문만 서 있습니다."
(동재 : 東齋)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는 기숙 공간으로 유생(儒生)들이 기거하며
공부를 하는 공간입니다. 1987년 동.서재를 복원함으로써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서재 : 西齋)
(명륜당 : 明倫堂)
"명륜당(明倫堂)은 유생(儒生)들이 선생들과 함께
학문을 연마 하는 곳입니다."
(내삼문 : 內三門)
(대성전 : 大成殿)
"대성전(大成殿)은 공자와 저명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셔 두는 곳입니다.
현재는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봄 가을에 공자에게 제례를 올리는
제례 기능만 남아 있습니다."
(물계서원 : 勿溪書院 전경)
"물계서원(勿溪書院)은 성씨 고택에서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서원이며, 조선 후기 성송국(成松國) 등의 성씨 집안의 선현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원입니다."
(화왕산 : 火王山 전경)
(창녕 성부자 집~아석헌 : 我石軒 전경)
"창녕에 있는 창녕 성씨(昌寧 成氏)의 200칸 규모 고택인 성부자 집(아석헌 : 我石軒)입니다.
이 집은 한 때 30동의 건물이 있는 대저택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대부분 불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창녕 석리 성씨 고가(아석헌)은 창녕 성씨 문중의 석리 입향조(入鄕祖)인
성규호 일가가 살던 집입니다."
"성규호 아들 성찬영은 1909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양파 재배에
성공 했고, 성찬영의 손자인 성재경은 1950년대 후반
양파 채종에 성공해서 전국에 보급 했다고 합니다."
"성규호는 1850년대에 이 마을에 들어 왔으며,
이후 창녕 성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성씨 고가 : 成氏 古家에서 바라본 전경)
"커다란 지네의 주둥아리 부분에 자리잡은 이 고택은 명당으로
앞에 펼쳐진 전망이 호쾌합니다. 전망이 호쾌한 이유는 집 앞으로 보이는
화왕산 때문입니다. 이 고택(아서헌)은 화왕산을 조산(朝山)으로 하고 있는
명당(明堂)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씨 고가 : 成氏 古家 전경)
(양파 시배지 : 始培地 표지석)
"양파 시배지(始培地)의 유래에서 양파는 1908년 원예모범장에서 시험 재배
되었다는 문헌기록이 있다고 하며, 이듬해인 1909년 이곳 대지면 아석가(我石家 : 성씨 고가)의
성찬영 선생이 처음으로 양파재배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양파 시배지 : 始培地)
"성찬영 손자인 성우석(成遇石), 성재경(成在慶) 선생은 한국전쟁 직후
농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보리를 대체하는 환금작물(換金作物)로서
양파를 적극적으로 보급했다고 합니다."
(고려충신 성사제 신도비 : 高麗忠臣 成思濟 神道碑)~경남 문화재자료 제24호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인 성사제(成思濟)의 충절을 기기 위해
성씨 고가(成氏 古家) 앞에 세운 비석입니다."
"고려 공양왕 때 보문각직제학의 벼슬을 한 성사제(成思濟)는
조선이 건국되자 관직을 버리고 불사이군의 뜻을 지키려 만수산으로 들어가
여생을 마친 인물이며, 그 충절이 인정되어 1873년(고종10)
정절공(貞節公)이란 시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산토끼 노래학교 이방초등학교)
"이방초등학교와 산토끼놀이동산은 고(故) 이일래(1903~1979) 선생이
창녕 이방초등학교에 재직하면서 작사.작곡한 국민동요 *산토끼(1928)*의
발상지인 이방면에 세워져 있습니다."
(산토끼 노래비)
"*산토끼* 노래는 일제 암흑기에 하루빨리 나라를 되찾아
전국 방방곡곡에서 우리 어린이들이 산토끼 처럼 자유롭게 뛰는 모습을
보고 싶은 염원으로 이일래 선생님께서 작사.작곡하신 국민동요입니다."
(동요~산토끼 작사.작곡 하신 이일래 선생님 흉상)
"이일래 선생님의 흉상은 동요 *산토끼* 를 작사.작곡하신
이야기와 함께 이방초등하교 정문을 들어서면 자리하고 있습니다."
"팔십 고개를 넘고 나서는...,
오늘밤 잠들었다가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아도
여한이 없도록 그저 오늘 하루를 미련 없이 살자고
다짐해 왔는데 그게 아닌가.., 푸르름이 시작되는 봄의 기쁨을 꿈꾸다니...,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는 기능이 남아 있는 한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청 풍 명 월~~창녕 역사기행..................................................................................,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