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과 우리말 / 서울 여의도
너벌섬과 너름
여의도가 ‘너나 가져라’ 해서 나온 섬이라고?
여의도의 옛 토박이 땅이름은 너벌섬
여의도는 한강물의 퇴적작용에 의해 모래가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섬으로 조선시대엔 말 목장이었다.
그 말 목장의 중심인 작은 산을 '양마산(養馬山)' 또는 '양말산'이라 했다. 지금의 국회의사당 자리에 있었던 산으로, 높이가 한 50m쯤 되었다. 방목장(放牧場)인 여의도의 이 모랫벌을 '양말벌'이라고 했고, 그 안쪽에 있는 벌을 '안양말벌'이라고 했다. 양마산은 국회의사당을 지을 때 흙을 깎아서 둑을 쌓는 데 이용하여 지금은 산의 형체가 없어졌다..
양말벌에선 양이나 염소도 많이 길렀다. 그 내용이 <대동지지>, <동국여지비고>에 나온다.
"여의도는 밤섬 서쪽에 있는데, 맑은 모랫벌이 육지에 닿아 있다. 여기에 전성서(典性暑)의 외고 (外庫)가 있어서 양을 놓아 기른다."<대동지지>
"나의주(여의도)는 예전에 목장이 있어서 사축서(司畜暑)와 전성서의 관원을 보냈으나, 이를 페지하였다. 지금(고종 때)은 사축서의 양 50마리, 염소 60마리만을 놓아 기른다. <동국여지비고>
이 기록을 보아서도 여의도는 나라의 중요한 목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던 곳이지만, 조선 말까지도 주민이 없었다. 그 빈 자리에 밤섬이나 강 건너쪽 마포 사람들이 땅콩 등을 심어 거둬 먹는 정도였다.
여의도는 조선시대엔 경기도 고양군(지금의 고양시)으로, 일제 때는 '여율리(如栗里)'라 했다. 이 이름은 '여의도'의 '여(汝)'자와 '율도(밤섬)'의 '율(栗)'자를 취한 것이다. 1933년 말 조사 자료에 의하면 여율리에는 일본인이 1집, 한국인이 101집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밤섬에 거주해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여의도는 여러 이름으로 나온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밤섬과 여의도가 붙은 한 섬으로 '잉화도(仍火島)'로 돼 있고, <동국여지비고(東國與地備攷)>에는 '나의도(羅衣島)'로 돼 있으며, <대동지지(大東地誌)>에는 '여의도(汝矣島)'로 돼 있다.
이 이름으로 미루어 보건대, 여의도는 '너른 벌의 섬'의 뜻인 '너벌섬'으로 불러 온 듯하다. ‘나의도’의 '나'는 '너'의 소리빌기이고, '의(衣)'는 '벌'을 취한 한자 표기로 보인다. '옷'의 옛말이 '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羅衣)'는 '나벌' 또는 '너벌'의 표기로 여겨진다.
'잉화도'에서 '잉(仍)'도 '너' 또는 '나'의 옮김으로 보인다. 이 '잉(仍)'은 '니'로도 읽어 왔는데, 예부터 땅이름에서 '너', '니' 등의 소리빌기로 많이 써 온 글자이다. '잉화'의 '화(火)'는 '불'로, '벌'과 음이 근사하니, '잉화도'는 결국 '너벌섬' 또는 '니벌섬'의 한자 표기로 보인다. 즉 '여의도', '잉화도', '나의주'는 모두 '너벌섬'의 다른 표기이다.
항간에서는 '여의도'를 쓸모없던 땅이라고 해서 '너나 가질 섬'의 뜻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한다. 이는 한낱 얘기 좋아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근거없는 말이다.
여의도 이름의 친척뻘 되는 이름을 보자.
잉근내仍斤內(고구려 때 충북 괴산) *늣, 는
잉벌노仍伐奴(고구려 때 경기도 시흥) *너벌노
잉홀仍忽(고구려 때 충북 음성) *느름골
잉리하仍利阿(백제 때 전남 화순) *느리개
진잉을進仍乙(백제 때 충남 금산) *긴느리
동잉음東仍音(신라 때 경북 포항의 신광) *새느름골
잉매仍買(고구려 때 강원도 정선) *늣물골
경기도 시흥의 고구려 때 이름은 잉벌노인데 통일 신라 때 경덕왕이 곡양(穀壤)으로 고쳤다. 잉벌노의 변한 이름인 잉화곡(仍火谷)은 경기도 안산시의 한 지역 이름으로 남아 1914년 군면 폐합 때까지 존속했었다. 곡량의 곡(穀)도 그 훈이 ‘낟’이므로, ‘나’, ‘너’의 차음으로 이용했다. 이 이름들은 ‘너른’의 뜻이 포함된 이름으로 보인다.
잉벌, 잉화의 ‘벌’과 ‘화(火)’는 결국 같다. 발음상 ‘불’은 ‘벌’과 비슷하다. 잉화의 원래 이름은 ‘너븐들’로 보이는데, 이 지역 시흥시 광석동(廣石洞)의 토박이 지명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은 지명의 그 끈질김을 실감케 하고 있다. 같은 시의 화정동에는 너벌, 너비울이란 친척 땅이름이 남아 있다.
‘늘다’나 ‘넓다’ 같은 말은 많은 친척말을 두고 있어 토박이 땅이름에서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넓다의 원말은 ‘넙’이다.
즁생을 너비 제도濟度하시니<석보상절>
광廣은 너블씨오 <월인석보(序,7)>
노와 너왜 차차 져거 <월인석보(十.120)>
너붐 : 넓음의 옛말. 넙다 : 너르다나 넓다의 옛말 (각 국어사전)
넓다는 뜻이 들어간 땅이름 무척 많아
‘넙’은 상당히 많은 명사를 낳아 놓았다.
넓고 펑퍼짐하게 생긴 바위를 너럭바위라 하는데, 옛말은 너러바회이다.
그 밖에 늦다, 눅다(누긋하다), 눕다, 늘다, 느리다, 낮다, 얇다, 얕다, 널다(빨래 따위를) 같은 말도 발음상으로나 뜻으로나 넙, 널에 상당히 근접돼 있음을 느끼게 한다.
경기도 성남시의 판교(板橋)는 널로 놓고 다리가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 하지만, 너른 들의 뜻의 지명이 변한 것이다.
널들 > 널드리 > 널다리(板橋)
전라 : 노루목 놀목 놀메기
충청 : 누르매기 눌목 누르목
경상 : 널목 너르목 너르메기
경기 : 날목 날매기 날미..
표기는 달라도 같은 뜻에서 나온 이름일 수 있다. 땅이름을 글자 그대로만 해석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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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말
–넓은, 넓적한, 널따란. 너붓한, 너볏한, 넉넉한, 너그러운, 널찍한, 널부러진
-너비(폭)
-너벅선(넓은 배), 너벅지, 널빤지, 넙데기(수건을 뜻하는 심마니말)
-너러기(자배기), 널방석(넓은 짚방석), 넙치
-널음새(말이나 사물을 펼쳐 놓는 솜씨)
* 친척 땅이름
-넉넉미黃龍 / 충남 세종시 금남면
-느남이於南 / 대전시
-놀미獐山 / 경기 파주시 조리면 장곡리
-누르메黃山 / 경남 합천시 가야면
-너리미於音 / 경남 울산시 언양면
-널미板尾 / 강원도 화천군
-느러리於屹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느러니廣院 / 강원도 홍천군 내면
-너다리(너더리) / 충남 서천군의 판교면, 홍성군 서부면,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전남 순천시 서면 판교리, 대전시 동구 판암동
2022년 8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