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18문학상 본상 수상작 결정 공고문
예심을 거쳐 본심위원들에게 넘어온 작품은 모두 14권이었다. 시집 3권, 소설집 4권, 장편소설 4권, 동화 2권, 평론집 1권이 그것이다. 위원들은 재논의를 해볼 만한 작품들을 압축했다.그 과정에서 이미 다른 문학상이 주어진 작품을 제외했고, 평론집과 시집들이 제외되었다. 심사위원들이 받아본 평론집은, 한국문학의 쟁점들에 대한 침착한 서술을 주목할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일차적 창작물이 우선일 문학상에서는 제외되는 것이 마땅했다. 시집 3권은 규모와 성취가 비슷했다. 특별히 어느 한 권을 지지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동화 2권은, 둘 모두 주제의식에서 튼튼한 면모를 보여 주었으나 문학 언어의 아름다움 혹은 서사의 긴밀함과 참신성에서 많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소설들이 최종적인 논의 대상이 되었다.
소설들의 주제는 모두 ‘5·18문학상’이라는 이름에 직접 연결되거나 그 이름의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을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진 것들이었다. 권력의 허상과 무모함(『사하맨션』), 광주 항쟁의 마지막 장면(『오리발 참전기』), 여성 노동자의 따뜻한 언어(『불편한 온도』), 4·3의 현재(『돌담에 속삭이는』)는 모두 5·18과 분리되지 않을 한국문학의 중요한 주제와 형식이다. 이 작품들은 그러나 때로는 문장이 불안하기도 하고, 광주 문학의 기시감을 더 넓은 세상으로 확장하고 있지 못하며, 정리되지 않은 수다스러움이나 익숙한 결말의 낯익음 때문에 제외되었다. 사회의 주변부적 존재들을 냉정한 감각으로 처리해가는 『근린생활자』나 해외입양아의 트라우마를 치유해가는 『단순한 진심』 은 현대 한국사회의 맨얼굴을 다루는 소설들이다. 두 작품은 사회적 삶의 문제를 마무리하는 방법에서 크게 달라지는데 전자가 전망 없는 출구와 맹목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지나치거나 급하게 순치되는 주인공의 결말을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소재들을 가져온 것은 분명하지만, 삶의 긍정이나 재발견의 고통을 고려할 때 이 작품들은 동의를 얻기 어려웠다. 고통 자체로만 삶을 바라보는 것은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지나친 순치로 삶의 고통을 무마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진주』는 시기적으로 1980년 이전의 과거와 그 이후의 현재를 아슬아슬하게 결합시킨 작품이다. 간혹 차학경의 『딕테』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작품은 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법을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만큼 신예의 독창성에 주목하도록 한다. 그러나 소설의 활달함이 부족하다. 작품 자체가 소설이 아니었던 것을 소설로 바꿔놓는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는 연유가 있을 것이다. 지나친 내적 독백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한 젊은 소설가의 탄생을 알리는 장점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것이 단편적 독백의 감동 그 이상을 넘어설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은주의 영화』는 공선옥의 소설적 재능이 그의 여성성과 결합된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것에 기이한 생명을 불어넣는 재능이 있는데, 이것은 재능이기 이전에 애정일 것이다. 그 애정이 광주의 이야기들 속에서 꺼져가는 불씨를 찾아내어 드디어 시간과 공간을 함께 아우른 해원의 불길로 만들었다. 그 불길을 이루는 것들은 작고 보잘 것 없었으나 긴 시간 침묵하면서도 결국 자신들의 고통을 잊을 수 없었던 존재들의 육성이다. 그것을 소설로 만든 작가가 공선옥이다.
망월동 국립묘역으로 이장하지 않고 광주의 이름으로 활활 타오르던 첫망월동 묘역에서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던, 마치 자신의 뼈를 매만지는 것과 같았던 모습의 고 이철규 씨의 어머니를 잊을 수 없다. 공선옥은 그 어머니를 또다른 철규의 어머니로 재생시켜서 저 너른 세상을 향해 해원하는 이야기를 들고 우리 앞에 서있다. 그의 소설은 1980년에 머물러 있지도 않고 광주의 죽음에만 머물러 있지도 않다. 그의 소설은 광주라는, 혹은 이철규가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대지와 물 속에서 그동안 사람들이 눈길 주지 않았던 억압된 존재들을, 불어터져 처참했던 철규의 육체와 함께, 그 육체의 육성과 함께 대기 속으로 풀어 해방시키는 이야기이다. 심사위원들은 공선옥의 『은주의 영화』에서 5·18문학상의 진짜 모습을 찾아내었다.
2020 5‧18문학상 본상 심사위원회 (*심사위원 가나다 순)
심사위원장 이경자
심사위원 박수연
심사위원 송언
심사위원 이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