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주일입니다. 주일 말씀에서 주홍글씨 작품과 연결된다면 당신의 선택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시편91:1절 말씀)
1. 91편의 요약과 1절의 의미
시편 91편은 두려움과 위험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안전을 신뢰하는 신앙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1-2절), 시인은 하나님을 피난처와 요새로 고백하며, 각 개인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할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둘째(3-13절), 시인은 하나님께서 재앙과 위험에서 어떻게 지켜주시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사탄이 인용하기도 했던 부분(11-12절)도 포함됩니다. 셋째(14-16절), 하나님의 음성으로 직접적인 약속이 선포되며, 사랑하는 자에게 구원과 생명, 만족을 약속하시는 내용이 담깁니다. 1절은 하나님과 가까이, 깊은 신뢰와 믿음의 관계 안에서 사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호와 안식을 묘사합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과 '전능자의 그늘 아래'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보호하심을 뜻하며, 이는 위험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강력한 약속을 상징합니다. 이는 믿는 자들이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품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2. 하나님의 이름과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의 모습
여기서 먼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표현되었느냐입니다. 1절에서 중요한 하나님의 이름이 두가지 언급되어 있고 2절에서도 또 다른 이름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 1-2절에 언급된 사람은 확실히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지존자”와 “전능자”로 불려집니다. 지존자는 ‘엘리온’, 전능자는 ‘샤다이’입니다. 엘리온은 지존자로 번역된 것처럼 하나님의 ‘높으심’을 강조하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 위에 높으시며 모든 권세를 지니신 ‘주권자’이심을 강조하는 이름입니다. 샤다이는 전능자로 번역된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신 ‘전능자’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과 주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능력은 있는데 권리가 없어서 어떤 일을 못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권리는 있는데 능력이 없어서 어떤 일을 못하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보호하는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역사를 보면 왕이 힘이 없어서 쫓겨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자기 힘은 있었지만 권력이 약해서 모함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들 속에는 항상 그런 사람들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운명은 결국 그들이 믿는 그 대상이 어느 정도의 능력과 권력을 가졌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지존자이며 전능자십니다. 즉,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능히 보호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누가 주와 같으리”라고 묻고 “주 같은 분이 없다”고 답합니다. 하나님처럼 높은 분이 없으시고 하나님처럼 강한 분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으뜸’이라면 바로 아래라고 할 수 있는 ‘버금’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존재조차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비교할만한 존재 자체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시고 무한히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그늘 아래 있는 것은 그야말로 완벽한 보호 아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걱정이나 근심을 할 이유가 없다. 잘 모르는 아이들은 엄마 아빠만 있으면 세상에 무서울게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하나님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몰라서가 아니라 잘 알수록 정말 세상에 무서울게 없습니다. 어떤 상황도 하나님보다 높지 않고 하나님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어떤 존재가 되었든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바울도 이렇게 말했다. 롬 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상황이 어떻게 변해도 하나님의 그늘 아래는 언제나 안전한 것입니다. 그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보호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내가 그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느냐 없느냐가 됩니다. 즉,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내가 거주하고 있느냐,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당신은 그늘 안에 있습니까? 그늘 밖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그늘 아래 사는 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의 가장 큰 특징은 그의 눈과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볼 때 내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세요, 그늘 아래 있는 것 같아도 밖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닐 가능성이 더 큽니다. 혹은 반대로 밖에 있는 것 같아도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일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두 사람은 각자가 바라보고 있는 곳에 더 가까이 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연연하고 집착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세요. 그가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91편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하는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편 91편은 20세기 이후에 ‘참호의 시’ 즉 trench psalm 이라고 불리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대포라든지 기관총같은 대량 살상 무기가 등장하자 프랑스군은 참호를 파고 오랫동안 독일군과 대치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 병사들은 철조망에 걸려 죽임당하고 독가스에 노출당했습니다. 게다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지뢰 그리고 저격병에 의한 조준사격으로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위험한 상황에서 프랑스 군인들이 위로를 받기 위해 낭송했던 시편이 91편이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병사들이 위로를 받기 위해서 시편 91 편을 낭독했던 이유는, 시편 91편은 우리에게 강력한 피난처로서의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시련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셔서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91편을 통해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셔서 함께 하십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 91:1). 지존자의 의미는 ‘가장 높은’ 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이 숭고하고 탁월하신 분인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악한 음모나 대적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으시는 가장 높으시며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의 지성소에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임재 가운데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 아래에서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능자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는 것으로, 새가 날개로 새끼를 보호하듯이 하나님의 손길이 그의 백성을 보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함으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확신으로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시편 기자와 같은 고백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시 91:2). 우리의 삶에서 위험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피난처를 찾게 됩니다. 이때 우리의 피난처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새들은 수풀로 찾아 숨고, 여우는 굴 속으로 숨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에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숨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 사역을 마친 디엘 무디가 1892년에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타게 됩니다. 출항한지 사흘쯤 지나 배가 고장을 일으켜 멈춰 서고 말았다고 합니다. 배 안에 물이 차기 시작했고 선원들과 승객들이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가라앉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근에 구조선이 있는지 조차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불안한 이틀을 보낸 후에 무디는 집회를 열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승객 전원이 불안한 마음에 예배에 참석하게 되고, 그곳에서 무디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 91:1) 라는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일기를 기록했습니다. “내 삶의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기도 중에 평안이 찾아왔고, 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런 고백을 주셨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무디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배가 구조가 되었습니다. 무디에게 확신을 준 시편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으로 그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전능자의 그늘 아래 곧 ‘그분의 날개 아래’ 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바로 그 분의 날개 아래 거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은 삶의 풍랑을 헤치며 달려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의 말씀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