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8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시편 4편 8절의 절정은 마지막 문장입니다.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여기서 “안전히”는 히브리어로 “라베타흐”(לָבֶטַח)입니다.
이는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도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는 안전을 가리킵니다.
또한 “살게 하시는”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안전한 자리로 옮겨 거하게 하신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안전의 근거는 환경이 아닙니다.
내 안전의 근거는 건강도, 재산도, 사람의 보장도 아닙니다.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십니다.”
이것은 죽음의 문제 앞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사람은 건강할 때는 죽음을 멀리 있는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병이 들거나, 나이가 들거나, 가까운 사람의 장례를 경험하면 죽음이 갑자기 가까운 현실이 됩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질문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나는 하나님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가?”
성경은 이 질문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 죽음의 두려움에서
우리를 놓아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예수님은 죽음을 멀리서 바라보시며 위로하신 분이 아닙니다.
친히 혈과 육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과하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에 삼켜지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4편 8절의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구약의 시인은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라고 고백했습니다.
신약의 성도는 십자가와 부활의 빛 아래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셨으므로, 나는 죽음의 두려움에 영원히 묶여 있지 않습니다.”
밤에도 주님은 우리를 지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죽음을 없는 것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죽음을 진지하게 봅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며, 인간이 스스로 이길 수 없는 마지막 원수입니다.
그래서 성도도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성도도 병상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도도 밤에 잠 못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죽음을 마지막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죽음보다 크신 주님을 믿습니다.
무덤보다 크신 부활의 주님을 믿습니다.
생명과 죽음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평안은 억지 긍정이 아닙니다.
현실을 똑바로 보면서도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두렵다. 그러나 죽음보다 크신 주님이 계신다.”
“밤은 길다. 그러나 밤에도 주님은 깨어 계신다.”
“나는 나를 지킬 수 없다. 그러나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다.”
오늘 밤 잠자리에 들 때 이 말씀을 천천히 붙드십시오.
성도는 죽음의 저주보다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예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