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9]
윌리엄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4)③
윌리엄 홀이 1894년 4월 6일 광성학교(현 서울 광성고등학교)를 세워 기독교 교육을 시작했을 때 조선은 동학농민운동이 종교적 운동에서 정치적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천주교에 영향을 받은 동학운동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주창하며 양반들의 탄압과 착취와 차별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조선의 정부군이 나섰지만 점점 세력이 커지는 농민들의 운동에 기세가 눌리면서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도 텐진조약을 빌미로 조선에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홀은 학교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 군대의 간섭을 원치 않아서 해산한 동학농민군의 바람과는 달리 결국 1894년 7월 25일 조선 땅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은 이듬해 4월 17일까지 이어졌는데 일본이 승리하게 되었고, 조선에 친일내각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홀은 평양에 있는 동안 청나라 군인들이 이송해 온 환자들을 돌보다가 발진티푸스에 걸렸고, 그런 상황에서도 평양 주민들을 치료하느라 과로가 겹쳐서 쓰러졌고, 서울로 이송되었지만 결국 1894년 11월 24일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때가 34세였을 때였습니다. 아내 로제타는 당시 임신 7개월째였고, 몇 년간 고국으로 돌아가 딸을 낳고 지내다가 다시 평영으로 돌아왔지만 어린 딸 에디스 마저도 풍토병으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평양에서 서울 양화진까지 걸어와서 남편 무덤 곁에 딸을 묻었습니다. 그리고 잠든 남편 윌리엄 홀이 남긴 유산으로 1894년 평양에 기휼병원(평양기독병원)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참고> 김재현, 『한반도에 새겨진 십자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