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의 미 / 조영안
매실 수확기다. 1년 동안의 수고가 한 달 보름 정도면 마무리되니 짧다. 해마다 맞는 일이지만 매번 다르다. 올해는 냉해를 입어 매실 수확량이 적을 것이라고 한다. 며칠 전 피해를 조사하기에 읍사무소에 접수했다. 정부에서 보상을 하려는 모양이다. 다행히 우리 집 농장은 피해가 적은 편이다. 수작업이 원칙이다. 한 알 한 알에 손이 간다. 힘들 때마다 따는 기계가 발명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고생도 잠시, 보람으로 연결된다.
지난달 23일 처음으로 작업했다. 다른 해보다 맘이 설렌다. 올해는 선별하는 기계도 샀다. 시에서 보조받아 장만하기 쉬웠다. 330만 원 중 절반만 내면 되었다. 그동안 사용했던 기계는 구식이라 선별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상품으로 내놓아도 완전 똥값을 받아 매번 실망했다. 제대로 값을 받으려면 선별이 정확해야 한다고 농협 직원이 귀띔했다. 농장에서 작업하고, 선별은 집에서 한다. 한 상자씩 마무리될 때마다 마음이 풍성해진다. 가격을 알아보려고 큰 것만 골라 네 상자를 보냈다. 다음 날 새벽 네 시 무렵, 알림이 울린다. 서울 공판장에서 경매 가격이 나온다. 올해는 역시 달랐다. 새로 산 선별기가 제값을 하나 보다.
그래서 1주일을 더 키워 어제 작업했다. 다행히 매번 도와주는 단골이 있다. 절반은 직거래가 성사되었다. 가격도 작년의 두 배다. 나머지는 농협에 보낸다. 새로운 선별기는 맘에 쏘옥 들었다. 정확하게 구분되어 훨씬 수월했다. 작업 시간도 단축되고 빠르다. 몇 시간 후면 서울로 달려간 상자의 경매 가격 알림이 온다. 이제 1주일 후 다시 따야겠다.
정신없이 잤다. 일어나 보니 새벽 세 시. 한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잘 끝맺어야지.’하는 마음을 다졌는데, 또 실패다. 매실을 따면서도 글쓰기 숙제가 걱정이었다. 나는 글을 쓰기 전 머리로 먼저 한 번 쓴다. 그런데 늘 후회한다. 머리에서 맴도는 그 글들이 막상 쓰려면 하얀 백지가 된다. 처음에 품었던 생각과는 달리 엉뚱하게 써진다. 언제부턴가 컴퓨터 앞에 앉지 못했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그냥 핸드폰이 빠르고 쉽다. 중간중간 메모와 수정도 가능하니 더 편리하다. 덕분에 이제는 폰으로 글을 쓰는 게 익숙하다.
예전에 타자기 자판을 두드렸던 게 많은 도움이 된다. 처음 컴퓨터를 접했을 때도 남들보다 좀 잘했던 기억이 난다. 이어서 스마트폰이 나오니까 자연스레 더 연습이 되었다. 친구들이 나를 보고 손놀림이 왜 그렇게 빠르냐고들 한다. 또래의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런 것 같다. <일상의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면서는 많이 망설였다. 차분하게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쓸 여유가 생길지 걱정이 되었다. 고민하다 그동안 묵혀 둔 컴퓨터를 쓰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가게에 있던 컴퓨터는 씨씨티브이(CCTV) 화면으로 바뀌었다.
맘 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았다. 틈틈이 이용해야지 싶었는데 생각과는 달랐다. 바빠지니 무용지물이 되었다. 대신 스마트폰 사용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모든 정보가 검색되기에 일단 가게의 인터넷을 끊었다. 서서히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딸이 걱정이 되었는지 자신이 쓰는 노트북을 준다고 했다. 몇 번 시도했는데 그조차 귀찮아졌다. 커서를 옮기는데 내 손이 굳었는지 잘되지 않았다. 느리고 답답하고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폰이 나았다.
글쓰기 수업도 나는 스마트폰으로 한다.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수업을 들을 수가 있다. 그래도 집에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듣는 수업이 제일 좋다. 화면에 내 얼굴을 공유하고 싶어도 폰이라 어떻게 나올까 싶어 망설여진다. 남편과 딸도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찬다. 편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면 누가 뭐라냐고들 야단이다. 고집불통이란다. ‘조, 최, 강’이란 말도 있지 않는가.
1주일 내내 내 머릿속은 글쓰기로 가득찬다. 글감이 주어지면 후딱 써서 빨리 올리자고 내 자신과 약속하지만 번번이 실패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는 이유를 스스로 만든다. 한 주도 빠뜨리지 않고 쓰리란 그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이번 학기에도 한 번 올리지 못했다. 글감이 ‘춤’이었다. 거의 완성해 놓고 올리지 못했다. 늘 이런 식이다. 써 놓은 게 아까워서라도 올려야지 싶어 또 용기를 낸다.
새벽 네 시에 접어든다. 한 알 한 알 매실을 따면서 ‘오늘은 이 일로 글을 써야지.’ 하고 한 편을 후딱 머리에 저장했다. 그런데 머릿속은 과부하가 되었고, 내 몸은 천근만근이다. 책상 앞에 앉았다. 낮에 머릿속으로 써 놓았던 글을 써 내려갔다. 아뿔싸! 스르르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일어나 보니 이 시간이다. 다시 자기가 아깝다. 글을 올려야지. 이번 학기를 마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
첫댓글 글이 좋습니다.
매실로 원하는 만큼의 소득을 올리기를 응원합니다.
이번 학기도 수고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응원에 늘 힘을 얻곤 한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선생님!!
저희집 매실도 하나도 열리지 않았더군요.
가게, 농장 일 다 바쁘신 중에도 글쓰기의 끈을 꼭 붙들고 계신 선생님께서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닮아 가겠습니다.
아휴, 바쁜거 닮으시면 아니되옵니다. 오늘 새벽 쓰고나서 저한테 '잘했다" 했어요. 너무 피곤해서 쓰다가 그대로 잠들었나 봐요. 저는 되레 선생님 글을 닮고 싶은걸요?.
하하.
유종의 미 거두셨어요.
애쓰셨습니다.
자다 일어나 해결 했답니다. 맨날 막차예요.
휴대폰으로 글을 쓰시는 것도, 바쁜 와중에도 늘 글을 놓지 않으시는 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이제는 휴대폰이 더 빠르고 편하답니다. 함께여서 고맙습니다.
와. 새벽 4시까지. 유종의 미를 거둔 선생님 존경스럽습니다. 선생님만의 감성 있는 글 항상 즐겁게 읽었습니다.
올리지 않으면 허전하고, 제 자신한테 용서가 안될 것 같았네요. 늘 선생님 글 읽으면서 부러워 했답니다. 좋아서 예요.
스마트폰으로 쓰는 게 엄청 어렵던데, 대단하십니다. 한 학기 동안 글 잘 읽었습니다.
지금은 컴퓨터가 부자연스러워요. 이 것도 습관인가 봅니다.바쁘다 보니 어쩔 수 없었어요. 저도 함께여서 고맙습니다.
와, 진짜. 우린 정말 글쓰기를 사랑하나 봐요.
맞아요. 황선생님이 늘 부러웠습니다. 글이 좋아서요. 앞으로도 사랑하게요.
앉으나 서나 글쓰기 생각만 하시는 선생님, 존경스럽습니다. 한 학기 동안 좋은 글 올려주셔서 많이 배웠습니다.
저만 그럴까요 하하
좋아하니까 그러려니 합니다. 저도. 선생님 글 보면서 많이 배우고 행복했어요.